[필리핀] 11. 모알보알 협잡꾼들 안녕~ 처참했던 세부시티 걸으며 여행 마무리
스노클링 다음날 팔뚝을 보니 작은 반점수준이었던 해파리 쏘인 자국이 마치 모기 물린 자국 처럼 뚱뚱하니 커져있었어요. 눈으로 보는 모알보알 파낙사마 해변의 수중생태계는 정말 아름다웠는데 이 망할 해파리들이 여행자들을 괴롭히고 있다니... 이게 좀 흠이구만요.
그래도 거북이가 모든 걸 보상해줬어...^^ 거북이랑 나란히 유영했던 그 짧은 순간은 잊지 못할거에요. 다른 스노클러들이 없어서 오로지 둘 뿐의 시간이었거든요.
하여튼 시간이 지나자 상처는 별다른 처치를 안 해도 자연스레 가라앉아서 심각한건 전혀 아니었어요.
좋은 추억을 뒤로하고 숙소를 나서서 이 해변에 들어 올 때와 같은 가격인 100페소에 트라이시클 타고 모알보알 대로변 버스정류장으로 갑니다. 가는 도중에 트라이시클 기사가 말을 걸어와요.
- 어디가요? 씨부 가요?
= 네네
- 택시 타고 갈거면 컨택해줄까?
= 노노
대로변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다시 현지인 남자 몇 명이 몰려와 또 택시이야기를 하는데 1,500 부릅니다. 하지만 우린 그냥 큰 에어컨버스가 타고 싶을 뿐...
그런데 잠시 기다리다보니 하얀색 봉고가 우리 앞에 샤라락 정차하고 뒤에서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이 그 차에 우르르 타네요. 아... 이곳도 태국처럼 근거리 이동은 이런 봉고차로 하는구나. 태국에선 이런걸 롯뚜라고 하는데, 이 차는 옆구리에 시티링크 뭐시기라고 씌어 있었어요. 이게 먼저 왔으니 그럼 이걸 타고가도 괜찮겠네... 싶어서 타볼까하는 모션을 취하면서 옆에서 승객들을 이 봉고차에 밀어넣고 있는 호객꾼한테 요금을 물었죠.
그랬더니 우리질문에 대답을 안 하고 슬쩍 눈치를 보더니 지들끼리 뭐라뭐라 하는거에요. 음...뭐지? 보니까 봉고 안에 자리도 남았던데? 뭐 못 타도 크게 아쉬울 건 없으니까...
그래서 다시한번 물었더니 또 지들끼리 쑥덕쑥덕하더니 우리에게 날아온 대답은 3,000 그러니까 정확히 이러는 겁니다.
“쓰리 따우전. 원타우전 파이브 헌드레드 each”
지금 이게 뭐하는 시츄에이션인가요...? 여행자한테 바가지를 씌울거면 한 200 부르면 되는거잖아요. 그럼 한 명당 100씩 더 받아먹는거니까... 근데 뭐 얼마?
이 ‘모알보알–세부 미니밴’ 가격은 정확히 100입니다. 근데 지금 뭐하는 액션인가... 이정도 되면 바가지를 씌우겠단건지 아니면 그냥 놀리는건지... 이런 작자들과 말 섞는거 자체가 싫어서 아무 대꾸도 안하고 그냥 자리에 앉아 세레스 에어컨 버스 기다립니다.
좀 이따가 다른 미니밴 한 대가 도착했어요. 우리는 눈도 안주고 있었는데 이번엔 150페소라고 타라고 합니다. -_-;;
머지않아 온 에어컨 큰 버스(1인당 130페소)는 우리를 실어 올렸고 마치 시내버스와 같은 속도로 달려서 100km 거리를 3시간 만에 주파하네요.
아... 그래도 한 열흘 동안 해안가 시골마을 분위기에 머물렀다가 쇼핑몰과 고층건물이 보이는 도시 오니까 마음이 좀 편안해 지네요.
이제 우리는 남은 시간동안 아얄라 쇼핑몰에 가서 아이쇼핑도 좀 하고, 같은 값이어도 해변에 비해 숙소시설이 훨씬 더 좋은 숙소에서 자고, 맛사지도 한 시간에 400 받는 해변에 비해 여기선 누엇타이에서 한 시간에 200이면 되고... 할게 그래도 좀 있네요. 여기저기 프렌차이즈 식당과 편의점도 많으니까 먹는 것도 다채로울거 같고 말이죠.
우리는 세부시티에서 참치턱살 구이로 유명한 stk ta bay 식당, 그리고 통돼지구이 레촌도 먹고... 뭐 그런 식으로 먹고 쉬면서 여행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시내에서 볼만한 곳들은 처음 도착했을 때 이미 좀 본 터라서, 그 당시에 못 본 몇몇 박물관을 찾아가보려고 알아봤는데 엇 이게 뭐야. 수그보인지 스그보인지 발음이 좀 헷갈리는 박물관은 일요일이 휴일이에요. 으응? 일요일에 쉬는 박물관이라니... 보통은 일요일에 관람객이 많아서 일요일은 오픈하고 월요일을 휴관하는데 여긴 좀 다르네요.
그리하야 고른곳은 오스메냐 써클과 항구 중간 즈음에 있는 코론 스트릿을 구경하러 가게되었어요. 코론 스트릿은 세부에서 아주 오래된 길에 속한다는데 서울로 치면 대략 어느 길이랑 비슷하다고 해야할까요. 오래된 상업지구이고 현지인들 쇼핑몰이 많으니까 대략 동대문같은 분위기라고 봐야할까...? 갸우뚱 ^^ 접점이 잘 잡히진 않네요.
사실 우리 숙소인 abc 호텔이 위치한 라모스 길거리는 뭐랄까... 이게 필리핀의 로컬 모습이라고 봐야할지, 아니면 좀 더 거친 모습이라고 봐야할지 가늠이 잘 안 되고 있긴 마찬가지...
숙소에서 로빈슨 플레이스 백화점 가는 라모스 거리의 그 짧은 구간을 걷다가 본 것입니다.
여자어린이 걸인 집단(부모도 없이 도대체 어떻게 이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걸까요.)이 길가에서 뭔가를 집어 들고는 자기들끼리 히히덕거리고 있더군요.
그 아이들을 보고 바로 조금 걸었더니 이번엔 어떤 웃통 벗은 비쩍 마른 남자가 머리가 깨져서는 어깨랑 뒤통수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거에요.
피 때문에 윗옷을 벗었는지 아니면 아예 윗도리는 없이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목 언저리와 등판에 흐르는 핏줄기를 보니... 아아... 시선을 그에게 고정하는게 너무 괴로워 얼른 눈을 돌리게 됩니다. 로빈슨에서 볼일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봤는데 그 사이에 머리에 압박붕대를 감고는 빵을 사먹고 있었는데, 붕대로 응급처치를 했으니 다행이라고 봐야겠죠.
그래도 두발로 서서 뭔가 먹고 있으니 큰 상처는 아니었나봐요.
코론 거리로 갈 때 경험삼아 지프니를 타보기로 하고 지프니 옆에 coron이라고 씌어있는 차에 답삭 올라탔습니다. 정확한 요금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얼마 내나 유심히 봤는데, 6 아니면 7페소인 것 같았어요. 이럴 때는 얼마냐고 물어보지 않고 많이 타본 것처럼 20페소 지페 쓱 내밀며 손가락 두 개(2명)를 보여줍니다. 6페소 거슬러 주네요. 1인 7페소
코론 스트릿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쇼핑하러 나온 현지인들로 붐볐는데 좀 지저분했어요. 슈퍼메트로–가이사노–콜로네이드 같은 간판을 단 덩치 큰 규모의 쇼핑건물이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우리는 들어가기가 좀 꺼려지더군요. 다른 이유는 아니고 딱히 살 것도 없는데 가방검사 당하고 그런게 싫어서요.
세부의 오래된 상업지구 거리 분위기는 대략 이러하구나 감상하고 우리는 오스메냐 대로로 빠져나와 숙소 방향인 북쪽으로 살살 걸었습니다. 이 대로변의 분위기를 볼 겸도 해서요...
아... 근데 걷고 난 후에는 사실 좀 후회가 되었어요. 그냥 보지 말 것을요. 아니면 택시타고 이동할 것을... -_-;;
오스메냐 도로가 세부의 큰 도로들 중 하나라서 뭔가 좀 로컬문화를 기대하는 면이 있었는데... 딱히 볼 건 없었고 그 대신 걸인들이 정말 많았어요. 게다가 이곳은 뭐랄까... 심신이 다 탈진되어서 혼이 증발해 버린 것 같은 상태의 사람들이 많네요. 또 안타까운건 어린이 걸인들도 꽤 보입니다.
제일 충격적인 장면은... 셔터가 내려간 어느 건물 앞에 정말 완전히 나체인 사내가 비스듬히 모로 누워있는데 거의 아사직전인지 골반뼈와 허벅지뼈가 온전히 뼈 모양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뒤통수에는 미처 봉합되지 못한 상처가 크게 벌어져서 뭔가 희고 노랗고 검붉은 살색이 그대로 노출되어져 있었어요.
저는 미처 머리의 상처까지는 못 봤는데요, 요왕이 그 상처를 봤을 때 처음에는 뭔가 구분이 잘 안되어서 ‘저게 헤... 하고 벌려진 입인가?’ 했다는군요. 하지만 그건 뒤통수였어요.
그리고 그 남자의 완전히 뼈만 남은 안쓰러운 나체의 엉덩이에는 온통 배설물로 칠갑이...
어떻게 그래도 필리핀에서는 좀 살만한 곳이라고 평가받는다는 세부시티에서, 그것도 제일 대로변이라 할 수 있는 곳에 이렇게 완전히 버려진 사람이 있을까. 국가의 그 어떤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로요.
차라리 우리가 거쳐 왔던 세부의 시골에서는 이렇게까지 심신이 모질게 박탈당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물론 도시 빈민 문제가 꼭 세부 만의 상황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여행하며 보아온 가장 처절한 모습이 아닌가 했어요.
저녁에는 아얄라 몰 가는 길을 한 몇 백 미터 걸었는데 거기선 엄마-아이 걸인가족이 많이 보였어요. 걸인생활을 한지가 꽤 된 거 같은데 엄마 품에 안긴 아이는 아직 갓난아기... 이걸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지요.
저는 이 길을 걷기 전에는 뭐 카르본 재래시장도 가보고 어디도 가보고 막 동선을 생각하다가, 그냥 다 접고 숙소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우리의 첫 필리핀 여행에서 느낌 점은... 우리가 대략 가늠했던 수준보다 필리핀이 좀 더 가난한 나라였다는 것... 그리고 바다는 역시 필리핀 이라고 사람들이 말할 때 그저 늘상 듣게 되는 여행자의 과장 정도로 생각했는데 바다는 좋긴 좋았다는 것.
그리고 스페인과 미국의 지배를 받는 동안의 영향때문인지 뭔가 묘하게 동서양의 생활방식이 섞인거 같다는 느낌 뭐 그런거였여요.
국회의원도 상하원제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마르코스 이멜다가 하원의원 해먹고 있다는 뉴스도 예전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탐욕스러운 인간이 살기도 오래 살아요. 하긴 쌓아놓은 돈으로 좋은 것 찾아먹고 병원 자주 다니고 그러니 빨리 죽지도 않나봅니다.
간식이 아닌 주식으로 먹는 빵집이 많은 것도 서양의 영향 같아 보였고,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서 구운고기를 많이 먹는 것도 그렇고... 레촌도 알고보면 스페인음식이라는군요.
늘상 칭하는 호칭이 ‘써’ 또는 ‘맘’인 것도...
물론 이런 것들이 필리핀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추지 못한 채 급하게 한 첫 방문에서 느낀거라 그냥 영 오해한 것 일수도 있습니다. 다음번 여행에서는 또 다른 것, 새로운 면을 볼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또 봅시다. 필리핀.
그나저나 정세나 좀 안정되어야 필리핀의 다른 지역에도 좀 가든 말든 할 텐데 말이에요.
(끝)
세부 오스메냐 서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