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씨엠립 여행
2007년 4월의 기록입니다.
이른 새벽,
카오산 여행자 버스를 타고 아란 국경에 도착했다.
나의 모든 여행 정보는
대충 검색한 태사랑 정보.
국경에서 사설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 된단다.
국경 통과하고 서성이는 여행자 세명을 눈으로 찾았다.
같은 차량으로 아란에 도착한 이들이다.
일본인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 영국인 남자 한 명, 그리고 나.
통성명과 적당한 흥정 후, 씨엠립으로 출발했다.
나 포함 남자 셋은 무계획이었다.
도착해서 발품팔아 숙소를 찾을 생각이었고,
일본 여자애는 이미 게스트하우스 하나를 봐 놨단다.
넷은 모두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투숙했고
2 명씩 트윈베드룸에 머물렀으며,
내일 아침 함께 앙코르와트 투어도 가기로 했다.
넷 모두 동남아 일주가 계획이라,
어느 누구도 고민없이 앙코르와트 하루 티켓이면 충분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앙코르 와트로 갔다.
인간의 의지를 이긴 나무도 보고,
유적 사이에서 낮잠을 자는 청년의 모습도,
유적지를 정글짐 삼아 노는 아이들을 봐도
모두 함께 유적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큰 감흥은 없었다.
여태 까지는 앙코르와트에 대해 잘 몰랐었고,
배경지식이 없으니
여기나 거기나 다 똑같은 돌무더기로 보였다.
마지막 코스로 일몰을 보는 프놈바켕에 올랐다.
비까지 오니 일몰도 그저 그랬고,
뭔가 하루가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일본 남자애와 영국 남자애는 내일 프놈펜으로 간단다.
'나도 내일 씨엠립을 떠날까?'
이렇게 하루 머물고 떠나는 경우는 없었는데,
있어도 딱히 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비를 피하는데,
관광객들 사이로 현지인들 한무리가 보인다.
"너네들 캄보디안이야?"
"맞아"
"씨엠립 살아?"
"응"
고등학생들이고,
고향은 씨엠립 근처이고
무료로 재워주는 파고다(절)에서 생활하며 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키 큰 친구에게 물었다.
"집에는 자주 가?"
"집이 멀어서 못 가"
"마지막으로 언제 갔는데?"
여러달 되었단다.
순간 머리가 반짝,
'얘네집에 놀러가면 어떨까?'
"내일 너네집 함께 가면 어떨까?"
"갈 수는 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얼마나?"
"차타고 2시간은 가야 돼."
"괜찮아"
일본인 여자애에게 물었다.
"낼 저 친구 집에 놀러갈건데 너도 같이 갈래?"
"어, 좋은 생각이네. 나도 갈게."
"오케이"
내일 아침 8시 까지 우리가 머무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함께한 일본 남자애와 영국 남자애와는
안젤리나 졸리가 툼레이더를 찍을 때 매일 들렀다는
'Red Piano' 바에서 넷이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다음 날 아침
이 두 명이 왔고,
숙소앞 뚝뚝 기사와 가격협상을 했다.
"8달러"
"오케이"
거리가 먼 게 아니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빨리 갈 수가 없어서 멀다고 느껴졌다.
실제론 30km 를 넘지 않을 듯 했다.
공터에서는 배구를 하고 있다.
옛 수레가 있는 반면,
새 수레도 다닌다.
마을 한쪽에선
폭풍에 무너진 집을 고치려 분주했고,
어느 집 마당엔
곧 쓰러질 듯한 움막도 있었다.
큰 재산이겠지?
이집 저집 돼지를 키운다.
대가족이었다.
큰 누나와 동생들과 조카
전화가 없어서
아무 연락없이 방문한 것인데
가족들은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차려줬다.
맛은 있었는데,
파리들이 너무나 많이 달려든다.
이런 시골에선 어쩔 수 없다.
손님인 우리가 다 먹고 나니,
아이들이 식사를 한다.
외국인들이 마을을 방문하니 희한한 구경거리가 생겼나 보다.
동네 아이들이 다 모였다.
집 안을 보니,
공간이 구분되지 않은 한 곳에서
가족들이 함께 잠을 잔다.
그나마 줄에 걸어 놓은 큰 이불이
개인의 공간을 구분지어 주는 단순한 방식이다.
마을에 술도가가 있대서 가봤다.
증류식 소주를 만드는 우리와 똑같은 방식이다.
맑게 걸러지지 않아서
진한 정종의 맛이 났다.
뒷끝이 확 오른다.
동네 아이들에겐
내가 술마시는 모습도 구경거리가 되나 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슬리퍼도 신을 수 없을 정도의 가난함.
아란 국경으로 캄보디아에 입국했을 때,
유난히 가슴에서 더운 열기가 느껴져서 불편했는데,
나중에 되짚어 보니
문 하나 사이를 두고 태국보다 눈에 띄는 가난함의 징표들이
무의식적으로 불편했던 것 같았다.
캄보디아시골 마을 방문은
나에겐 이색적 추억으로 남아 있으나,
가난의 적나라한 목도는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너무 늦지 않게
씨엠립으로 돌아왔다.
하늘은 눈부시게 맑고,
길은 가난했다.
돌아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다들,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ps. 여름부터 한 번 정리해야지 했다가,
망고찰밥님 글 보고 이제서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