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강 절경의 중심, 싱핑
(2005년 글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잠시 머물렀던 쓰촨성 캉딩의 경우, 청두에서 머물렀던 게스트 하우스에서 캉딩의 샐리까페의 명함을 주워들었는데 사실 이곳의 경우 캉딩 시내에서 심하게 멀어서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캉딩의 다른 숙소들이 텅텅 비는 상황에서도 그곳은 일찌감치 서양인 여행자들로 full이 되어버려서 애써 택시를 타고 간 우리를 실망케 했다. 자기 숙소에 올만한 여행자들이 포진해 있는 루트마다 명함을 뿌려둔 것이 무척 영업에 도움이 되는 듯 했다. 만약 우리도 한국에서 여행자숙소를 운영하게 된다면, 온 동네방네 명함부터 뿌려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어쨌든 싱핑으로 향하는 우리의 손에는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 작은 명함이 한 장 들려져 있었는데 이름하야 ‘라오자이산老寨山 게스트하우스’이다.
우리가 이곳에 머물러야 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이곳의 주인장이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일본인이라면, 숙소의 질이나 여러 가지 상황들이 좀 더 산뜻하고 괜찮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심 때문이었다. 일본이라면 우리에게 좀 껄쩍지근한 나라이긴 한데...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의 껄끄러운 일들은 정부차원에서 서로 해결해야 할 일로 남겨두고, 민간인대 민간인으로서의 관계는 좋은 쪽으로 끌어가는 게 훨씬 우리에게 좋을듯하다.
싱핑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선착장으로 가는 동안 둘러본 이 작은 마을은, 양숴에 비해서 무척이나 황량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가끔 양숴에서 머무르는 서양인 여행자들이 자전거로 이곳까지 달려온 다음 쪽배에 그 자전거를 싣고 다시 양숴로 되돌아가며 리 강의 전경을 즐기는 통에 외국인들은 심심찮게 보이긴 했지만 서두, 양숴에는 전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쨌든 물어물어 찾아간 ‘라오자이산 게스트 하우스’는 일본인 아저씨와(사실 노인에 가깝다...) 중국인 아줌마(나보다 3살 적었다) 그리고 돌을 갓 넘긴 두 살배기 아들이 살고 있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였다.
사실 이곳까지 물어물어 찾아온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바로 명함에 새겨진 한 줄의 글귀 때문이었다.
- 방마다 인터넷 회선 있슴돠.
오호호호... 과연 그게 가능할까? 방에서 인터넷 하는 일이? 아마 명함에만 그렇게 써져 있지 실제론 아닐거야... 아니면 따로 돈을 내야 할지도 모르지... 라면서 약간 반신반의하며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어슬프게 꾸며진 다다미 방에 배낭을 던져놓고 제일 먼저 요왕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선을 연결하고 노트북을 세팅한다. 오 예~오 예~오 예~ 기분 좋을 때 지르는 소리를 연속 3번이나 질러대는 걸 보니 되나부다.
그것도 별도의 요금 없이 60위엔의 방 값에 포함되서 말이다.
배낭여행 7년 만에 숙소 방에서 인터넷하기는 이번이 난생 처음...
노트북이 없는 여행자들에겐 그 아무리 인터넷 선이 10개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림의 떡일 뿐일테지만,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더할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그 덕분에 날 벌레가 득실거리고 샤워기에서 물이 감질나게 나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곳에서 장장 네 밤이나 지내게 된다.
자~ 일단 이 기쁜 소식은 뒤로 하고 밥부터 먹으러 나가야지~~
마을 물가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값을 받고 있는 선착장 부근의 식당을 뒤로한 채 마을을 가로 질러 한참을 걸어 나가니 무섭게 생긴 아줌마가 주걱을 휘젓는 값싸 보이는 식당이 보인다. 이곳을 우리는 파리집 이라고 불렀는데 프랑스 파리랑은 전혀 상관이 없고, 밥 먹는 내내 우리의 음식과 팔다리에 파리가 들끓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사실 이 파리집은 우리가 싱핑에 머무르는 내내 우리의 단골 함바집이 될뻔~ 했으나... 두 번째 방문 때 우리가 시킨 갈비탕의 국물을 남긴걸 보더니만 주방장이자 주인이기도 한 아줌마가 약간 광분해서 우리를 혼내는 통에 그 후 발길을 딱 끊어버렸다. 여튼 그 아줌마의 말은 이 맛있는 국물을 왜 안 먹냐는 거였는데, 사실 우리는 갈비가 탕으로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하고(음식 이름에 탕자도 없었다... 아직도 중국메뉴는 어렵다) 맛있는 튀김을 기대하고 있다가 탕이 나오는 바람에 속이 쓰렸는데 거기다가 국물 안 퍼먹었다고 야단법석까지 하고... 아줌마 너무 무써워요~~
국물을 가리키며 하오츠 하오츠~(이게 맛있는 거야) 연신 소리를 질러대는 아줌마의 닦달을 뒤로 하고 계면쩍은 얼굴로 그곳을 빠져나와버렸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누런 황토 먼지가 펑펑 일어나는 이곳은 가끔씩 들리는 여행객들만이 이 휑한 마을 풍경을 그나마 약간 활기 있게 만들어주곤 했다.
우리가 이곳에서 뭘 했던가...
일본인 아저씨가 손수 만들었다는 숙소 바로 뒤의 산꼭대기 정자에 올라간 일, 그리고 며칠 만에 한번씩 서는 시끌벅적한 시골 장터를 구경한 것, 그리고 이곳에서 양디까지 걸어서 가겠다는 야심만만한 하이킹 계획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기진맥진한 채 쪽배에 실려 싱핑으로 돌아온 것이 이곳에서 우리가 한 액티비티의 전부 였다.
장이 서는 날 온 동네사람들이 다 몰려나와 그야말로 분주한 광경을 연출 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내 눈을 끌어당긴 것은 치과였다. 달리 뭐라고 표현을 해야 될지 몰라서 치과라고 하긴 했는데, 당최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2평정도 되는 후미지고 더러운 칸에 역시 더러운 의자가 하나 놓여 있고, 뭔가 길쭉한 꼬챙이 같은 것이 달린 기계가 시커먼 때를 뒤집어쓰고 있다. 보통 사람들 보다 더 행색이 나빠 보이는 아저씨가 그 꼬챙이를 들고 늙은 아줌마의 입을 쑤시고 있는데, 사실 한국에서도 일명 ‘야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미용이나 치과 방면으로 알음알음 못된 짓을 한다고 풍문으로 듣긴했다만서도 이곳에서처럼 이렇게 가게까지 차려놓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정말 정식 의사일지도 모른다.
왠만한 치통이 아니었다면 저 아저씨가 들고 있는 꼬챙이에 입을 맡기지는 않았을텐데, 정말 어지간히 아팠나 보다. 으으~~~ 보고만 있어도 등골이 오싹하다. 천정부지로 뛰어대는 망할 놈의 부동산 문제만 제외한다면 우리나라... 정말 살기 좋은 나라인거 같다. 적어도 아시아 에서는 말이다.
이곳의 날씨는 아직도 덥고 쪽배를 타고 유람 할 것이 아니라면 길에서는 딱히 뭔가를 할 것도 없었다. 혼잡한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다 보니 에어컨 나오고 인터넷 되는 우리 숙소의 방이 자꾸 머리에서 맴돌고, 결국 우리는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나방들이 불에 몸을 던지듯~ 숙소로 돌진하고 말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바른 생활 스타일이 인터넷 하나로 완전 뭉게지는 나날이었다.
잠자다가 언뜻 뒤척여 보면 요왕은 어두운 방구석에서 환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어느 날은 내가 또 그러고 있고... 그러다 다음날 일어나 보면 시계는 오전 10시... 또 일어나서 인터넷 좀 보다가 점심 먹으러 나가고... 휴우~
하루 세끼 꼬박꼬박 먹어주고 정상적으로 잠자던 우리는 그 새 하루 두 끼만 먹고 주침야활 하는 모드로 바뀌어져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지... 원래 여기선 이틀만 머물기로 했는데, 하루 더 연장~ 또 하루 더 연장해서 결국은 이곳에서 4박이나 해버렸다. 새벽 서너시에 잠들어 버리니 다음날 일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이곳에 온지 나흘째가 되던 날 낮, 요왕은 이렇게 지내서는 안 된다며 맘을 단단히 먹고 신발끈을 동여맨 후 양디로 하이킹 하러 가겠다며 문을 나섰다. 때마침 배탈에 시달리던 나는 숙소주인 아저씨에게서 얻어온 알약이나 먹으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있었는데...
일정상으로 저녁 늦게나 와야할 사람이 한 너댓시간이 지나자 되돌아 온다.
- 왜 이케 일찍 왔어?
- 어우... 양디까지 가는데 아주 죽는 줄 알았어. 오늘 따라 날은 덥지, 또 거기까지 가려면 강을 3번이나 건너야 되더라구... 길도 안 좋고 말이야... 강가의 경치는 무지 좋던데 너무 힘들어서 볼 기운이 있어야 말이지...그러고 있는데 쪽배 주인한테 답삭 잡혀서리 배로 좀 올라갔다가 그냥 배타고 돌아온거야...
- 배타고 보는 경치는 좋았어?
- 어... 정말 멋있더라... 근데 어떤 할아버지가 날 보더니 ‘빠가야로!!’ 그러는 거야... 그래서 뱃사공 아저씨들이 그 할아버지 말리면서 ‘한궈런 한궈런(한국인)’ 그랬다. 휴우~~
하긴 이곳 중국에서 채널을 돌리다 보면 꼭 어느 채널에선가는 일본 군인이 중국 사람을 두들겨 패고 총쏘고 괴롭히는 주제의 드라마가 꼭 방영된다. 워낙 채널도 많고 재방도 많이 해줘서 그런가보다. 드라마가 잠시 쉬면 그때는 또 다큐멘터리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고... 그러고 보니 올해가 일본 패전 60주년이라서 더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중국 여행하는 일본인들도 거의 없지만, 가끔 다니는 일본 사람들도 신변의 위협 때문에 자기의 국적을 한국인 이라고 둘러댄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요즘의 무드로 봐서는 아예 근거 없는 소리도 아닌 듯하다.
여기 뒷산(라오자이산) 만 해도... 꼭대기에 일본인 아저씨가 만든 정자가 있고 그 옆에 있는 바위에 ‘이곳을 만드는데 일본의 어디에서 기증을 했습니다.’라고 새겨져 있는데... 누군가 그중 ‘일본’이라는 자를 정으로 쪼아서 지워 버린 것을 다시 복구해 놓은걸 볼 수 있었다.
하여튼 땀으로 절어 완전히 무거워진 티셔츠를 벗으며 방에 꼬꾸라지는 요왕을 보자니 오늘 갑자기 배탈에 걸린게 오히려 행운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아닌게 아니라 어제까지만 해도 요며칠동안은 해가 구름에 가려져 있었는데 오늘은 구름이 싹 거치고 햇볓이 쨍쨍 한것이 무지 더운 날씨였다. 그래도 좋은 경치를 봤다니 다행이다.
강아지가 먹이를 향해 앞발을 모아들고 헥헥거리듯, 우리의 두 손도 키보드 위에 얹혀진 채 내내 엎드려 있었더니 그동안 못 느끼고 있었던 어깨 뻐근함이 다시 되돌아왔다.
인터넷 블랙홀에 완전히 빠져 폐인이 되기 전에 이곳을 떠나기로 단단히 맘먹고 일어난 아침... 우리는 못다먹은 사탕을 빼앗긴 아이처럼 짐 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마우스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컴터를 젤 마지막으로 배낭에 꾸려 넣었다.
잠시 잡혔던 발목을 풀고, 예전부터 중국에서 경치 좋기로 이름 자자하다던 구이린으로 어여어여 가야지...
이제 우리의 90일짜리 중국 비자는 그 기한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