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고 뒤집히는 재미있는 일상 - 시장西江
(2005년 글입니다.)
구이저우 성의 볼거리는 성의 서쪽으로는 싱이와 황과수 폭포, 그리고 구이양을 분기점으로 성의 동쪽으로는 먀오족과 둥족 같은 소수 민족의 집성촌을 찾아가 보는 것으로 크게 나눠진다고 한다. 누가 나눴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이렇게 정의해 놨으니 우리도 일단 가 보려고 맘먹었다.
구이저우 성의 성도인 구이양은 정말 볼거리도 별로 없고, 성 자체가 가난해서 그런지 도시 분위기나 사람들의 모습도 약간은 남루한 인상을 주는 도시였다. 하긴 뭐 명승고적지만이 볼거리라고 볼 수는 없지..... 사람 사는 모습 자체가 볼거리 이고 체험인걸......
중국을 전체적으로 뒤덮고 있는 건설현장 분위기에 발 맞춰서 도시 곳곳마다 고층 빌딩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바, 이 공사가 다 끝나고 나면 어느 정도 세련된 모습을 보여줄 듯 하기도 한데... 정확한 끝이야 우리 같은 이방인들이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이고....
하여튼 이곳을 거의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도시와는 한동안 이별하고... 광시성의 계림에 도착하기까지 계속된 소수민족 부락을 거쳐서 남하 해야만 했으므로 우리는 깡촌 시골로 들어가기 전에 잘 먹어 둬야 한다면서 훠궈 뷔페도 먹고(비록 입에 잘 안 맞긴 했지만...) 월마트 가서 한국산 컵라면을 몇 개 사두거나 하며 주로 먹는 걸 찾아다니는 걸로 구이양에서의 이틀을 보냈다.
그럼 먀오족의 최대 집성촌이라 알려진 시장西江으로 일단 출발.....
구이양에서 상태 괜찮은 버스를 타고 3시간을 달려 동쪽의 카이리에 도착, 여기서 1박한 뒤 약간 털털 대는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을 남쪽으로 달려 레이산으로 간 다음 레이산에서 다 쓰러져가는 버스를 타고 비포장 길을 달려 2시간을 달리니 드디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시장이다.
이 조그마한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지라, 마을로 들어서는 고개를 넘는 순간 이곳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특이한 검은 지붕의 집들이 산등성이에 빽빽한 이곳은 약 1,000개의 먀오족 집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논두렁에는 전통적인 복장과 틀어 올린 머리를 한 여인네들이 분주히 논에 물을 대고 있었다.
이곳을 흐르는 작은 개천은 다른 곳과는 달리 얕고도 깨끗해서, 동네 아줌마랑 아이들이 물장구치고 노는 걸 보자 우리도 함께 끼어들고 싶을 정도였다. 물에서 노는 아이들이야 많이 봐왔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저런 물에서 놀다가 피부병에라도 걸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역시 우리가 깊은 산골에 들어오긴 왔나 부다.
정직히 말하자면, 소수민족에 대한 깊은 이해나 관심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기보다는 다른 여행자들이 그러하듯이 그저 이들이 사는 모습을 한번 ‘관람’해 보고 싶은 맘이 거의 전부였다. 물론 다가오는 인연을 마다할 이유도 전혀 없고 누군가 다가오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하지만, 낯선 이방인에게 다가와 정겹게 말을 붙이는 사람들이란 늘 숙소에서 나온 삐끼님들일 뿐...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에게도 우리의 존재란 ‘흥미로운 눈알을 굴리며 잠시 머물다가 하루 이틀 뒤에 떠나버리는 사람들’ 일뿐인데 뭔 놈의 애정이 있어서 정겹게 말을 붙이랴... 암 것도 모르는 호기심 어린 애들이나 ‘헬로우~’ 할뿐이다.
중국에서 가장 큰 먀오족 마을, 시장
마을 옆에는 논이 펼쳐져 있다
먀오족 여자들은 머리를 올리고 장식을 한다
하여튼 버스에서 내려 두리번거리다가 게스트 하우스를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라 몇 발자국 걷다 보니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듯 한 숙소 발견~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인터넷을 하다가 벌떡 일어나 우리를 맞이해준다.
- 방 얼마에요?
- 두사람에 60 이요.
- 50에 해주셍....
커이커이~ 라는 아저씨의 대답과 함께 방에 짐을 내려놓고 마을 투어 시작~ 했는데, 어느 시골 마을이 다 그렇듯이 딱히 눈길을 끄는 건 없었지만, 논두렁 사이를 걷는 다거나 잘 놀고 있는 오리를 잡아먹을 듯이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노는 것도 나름 잼있다. 이런 류의 소수민족 마을은 그냥 그 자체가 볼거리 인 듯...
그나저나 저녁이 다 되가는데,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작은 컵라면 하나뿐이어서 우리는 아사직전...
아까 숙소 값을 깍은 게 못내 미안했던 우리는 저녁은 숙소에서 먹기로 결정하고 1층으로 내려갔더니만, 어째 뭔가 음식을 만들어 낼 거 같지가 않다. 서성거리고 있으니 숙소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말한다.
- 밥은 지금 안돼요. 이따 8시에 돼요. 8시에 와요. 5명이서 먹을 거 에요.
5명이라...? 다른 여행자들도 그때 먹을 라고 기다리고 있나...?
건 그렇고 지금이 5시인데 8시까지 기둘리라니... 알겠다고 그 시간에 다시 오겠다며 숙소에서 나오긴 했는데, 길가에 늘어서 있는 식당을 보자마자 우리 상태는 ‘마님 못 참겠구먼유~’ 같은 머슴 상태가 돼서 식당 안으로 돌진하고 말았다. 오직 계란 하나 만을 넣은 양 많은 볶음밥을 허겁지겁 들이키고 나니 후회가 밀려오고, 이따 8시에 또 밥을 먹어야 되는 약속이 부담스러워졌지만, 일단 한 번 말한 거 뒤집기도 뭐해서 방에서 부른 배나 가라앉히기로 했다.
약속된 8시... 마당으로 나가보니 다른 여행자들은 안보이고 이 숙소 주인 아저씨랑 일하는 일꾼 부부, 그리고 우리 이렇게 5명이 먹을 식사가 마련 되 있네.... 아아~ 이건 좀 부담스러운걸... 왠지 남의 집 단란한 식탁에 불청객스럽게 초대 된 듯한 이 불편한 느낌은 뭐람...
게다가 아직 배에서는 차오판이 떡~ 하고 버티고 있어서, 차려놓은 반찬의 대부분을 간만 보고 내려놓게 되었다. 한족인 주인아저씨는 칭다오에서 일하면서 많은 한국인들을 알게 되었다는데, 그 한국분들한테 좋은 인상이라도 받은 건지 우리에게 무척이나 잘해준다. 일하는 부부 역시 한족이라는데 이 먀오족 시골 마을까지 한족이 들어와서 제일 큰 사업을 하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페트병에 가득한 술을 꺼내오더니 마구마구 권하는데, 술이 잘 받진 않았지만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요왕은 연거푸 3잔이나 들이키게 되어버렸다.
- 이거 얼마나 내야 되는 걸까.....?
- 글쎄... 뭐 알아서 청구 하겠지 뭐... 그나저나 밥이 당췌 안 넘어간다...
- 나도 아까부터 꾸역꾸역 밀려 올라오는데 그래도 퍼주는 건 어떻게든 다 먹자....
우리가 알고 있는 몇 마디의 중국어가 밑천을 드러내자, 접시도 어느 정도 비워지고 마침내 식사는 끝나게 되었다. 식사가 끝나고 모두들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옮겨놓고 나자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서 어디론가 가려한다. 재빨리 뒤따라가서 계면쩍게 웃으며 물었다.
- 아저씨.... 저거 뚸샤오치엔? (이거 얼마에요?)
허걱! 그런데 아저씨의 반응은 손사래를 치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뿌스 뿌스~’ 라고 하는 게 아닌가...
역시 소수 민족 마을로 들어오니까 뭔가 다르구먼... 예상치 못했던 호의, 우리를 숙소 손님이 아닌 진정한 ‘손님’으로 대해주는 이 상황이 너무 고마운 나머지 우리는 어쩔 줄을 모르고 ‘셰셰(감사합니다)’를 연발 했다. ‘메이꽌시(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아저씨 또한 사람 좋게 웃는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한 단면만 본 게로군...역시 사람은 많이 겪어봐야 안다니까...
아~~그동안 약간 시달렸던 마음이 갑자기 노골노골 해지면서 감격한 맘을 추스르며 잠시 의자에 앉아 있으니 아저씨가 손짓을 하며 우리를 부르는 거다.
아저씨가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께요~~ 모드가 되어버린 우리는 그를 따라 어디론가 가게 됐는데, 오늘이 무슨 먀오족 축제가 있는 날인가?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전통 복장을 갖춰 입고 곱게 화장을 했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어디선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해서 의자는 금방 빈틈없이 채워졌다. 우리 숙소에 묵고 있던 프랑스 아이들도 뒤늦게 나타나 뒤늦게 자리를 잡고 나니, 먀오족 전통 춤과 무용이 이어졌다. 요왕이 그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내게 말을 건다.
- 이건 왠지 돈 내는 거 같지 않냐...? 아니면 그냥 이 사람들 축제인건가...?
- 설마... 돈 내는 거면 미리 말을 해줬겠지... 그냥 따라 오라고 했겠어...
- 그치? 아..오늘 정말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다 풀리는 거 같애... 넘 행복하다.
프랑스 아이들도 무대? 중앙에 나가서 오~ 샹제리제~ 를 부르고 그 중 누군가는 불쑈를 하기도 한다. 다른 중국인들도 한마디씩 노래를 뽑고, 급기야 코리아! 코리아! 라는 숙소아저씨의 부추김에 요왕까지 나가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이 축제의 의미가 궁금해진 나는 먀오족 남자 하나를 붙잡고 물어봤다.
- 아저씨 아저씨. 이거 매일 매일 하는 거에요?
- 노. 노. 이건 스페셜이에요.
아... 따리에서 봤던 횃불 축제처럼 1년에 한 번씩 하는 건가부다... 오늘은 참 운 좋은 날이구먼...
먀오족 공연에 덧붙여 프랑스, 중국, 한국 사람들의 노래까지 이어지던 흥겨운 열기는 오후 10시가 넘어서자 이제 파장 분위기... 각자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다시 마을은 원래의 모습대로 조용해지고 우리는 행복한 마음과 부른 배를 안고 잠들게 되었다.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한 저녁식사...
먀오족 공연
다음날 아침.... 마을은 돼지도 새로 잡고 거기다가 개까지 한 마리 잡아서 털을 뽑는 등 활기에 넘친다.
음냐... 중국에서도 개를 심심찮게 먹는 모양이구먼.... 목이 반쯤 잘라진 개가 축 늘어진 채 담겨져 있는 대야 앞에는 그 개의 새끼 인 게 분명한 작은 강아지가(두 놈이 똑같이 생겼다) 애처롭게 두 발 모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꽤 애처롭고 불쌍했다.
이궁... 어쩌겠어... 안됐지만 니 신세도 앞으로 그다지 달라질 거 같지 않구나...
숙소 주인아저씨에게 뭔가 보답을 하기로 맘먹은 우리는 술을 한 병 사서 줄까, 아니면 뭔가 다른 선물거리를 살까 하며 상점을 주의 깊게 들여다봤지만 이 작은 구멍가게들에서 뭔가를 얻어낼 수 있을 거 같지가 않다.
게다가 숙소 요금을 깍은 것이 너무 미안해서 목구멍에 닭 뼈가 걸린 거처럼 불편했던 나는 내일 이곳을 떠날 때 돈을 얼마간 더 내는 게 어떨지, 낸다면 얼마를 더 드려야 할지에 대해 갈등을 했다. 호의를 돈으로 대신 갚는 건 너무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에 이르러서 이내 그 생각을 포기 하긴 했지만...
오전 내내 마을을 돌아다니다 지친 나머지 한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더니 벌써 오후 4시.....
그동안 요왕은 노트북으로 한국 노래를 구워서 시디를 아저씨께 드렸단다. 참~ 잘했어요~ 라고 칭찬해 주고 인터넷을 하기 위해 숙소 카운터에 갔더니 아저씨가 지갑에서 뭔가를 꺼내 우리에게 보여준다.
- 아... 아마 한국 사람한테 받은 편지일꺼야... 우리한테 해석해 달라는 거겠지... 근데 중국말 모르는데 어케하지...
라고 생각하며 종이를 받아든 우리의 눈에 들어온 글씨는....
어제 저녁 먹은 값 - 40위엔
어제 쑈 본 값- 30위엔
인터넷 3시간 - 6위엔
합이 76 위엔 .....
이라는 글이 중문과 영문으로 쓰여져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저녁을 먹다’ 인 ‘have supper’를 ‘have suffer’ (고통을 당하다)로 써놓은 넌센스까지...
- 이게 ...도대체 뭐지....
- 민...우리 표정 관리 하자. 일단은 웃어....
어리둥절한 눈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웃음이 입가에 걸쳐지고, 머릿속은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 과부하 가 걸리기 직전이었다.
어제 저녁 대부분 그들이 먹어치운 식사의 한 귀퉁이를 우리가 장식한 요금이 40이였구나... 그리고 그 축제도 마을잔치가 아니라 공연이였고...
인터넷은 근데 왜 3시간이지...? 아저씨의 설명인즉 어제 1시간하고 오늘 오전에 30분(1분에선 60분 까지 동일한 가격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하고 지금 또 한 시간 할 예정이니까 합이 3시간이란다. 어제 한 돈은 어제 즉시 지불했는데, 그건 까먹으셨구먼... 이걸 설명하는데 또 한동안 와글와글...
어쨌든 즉석에서 74위엔의 돈이 지불되고, 그때는 우리나 아저씨나 표정 관리에는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동안 말이 없어졌다. 힘없이 인터넷을 한 시간 채운 후 밖으로 나가서 2위엔짜리 국수 두 그릇을 시켜놓고 앉은뱅이 의자 위에 앉아 처량히 젓가락질을 하며 요왕이 내게 묻는다.
- 넌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냐...? 그리고 왜 그렇게 순순히 주자고 그랬어?
- 나쁜 상황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냥 발 빼고 나오는 거야... 어제 가졌던 좋은 맘이랑 내내 서로 주고 받았던 웃음이 계산서 앞에서 일그러지는 모양새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냥 끝까지 웃으면서 준거지 뭐....
- 너무 슬프다.....
어디서 어긋난 걸까... 어제 저녁 얼마냐고 묻는 우리에게 손사래를 치던 액션은 ‘지금 당장은 돈 안내도 된다’는 의미였었나.....? 헐...... 우리가 감격한 콧소리로 셰셰 라고 인사할 때 그는 왜 그냥 흐믓한 미소만 짓고 있었던 걸까....
의도적인게 아니라 분명히 뭔가가 어긋나버린 걸꺼야... 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운영하는데 서투를수도 있고.... 그런게야.... 라고 애써 생각하며 어제 저녁 행복했던 맘이 무색할 정도로 풀이 죽은 채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마음이 아까워 졌다. 신세를 지고 있다는 느낌, 뭔가 보답하고자 했던 마음의 무게가 아까울 따름... 훌훌 잊고 우리는 그 담날 새벽 이 마을을 떠난다.
구이저우 성의 성도인 구이양은 정말 볼거리도 별로 없고, 성 자체가 가난해서 그런지 도시 분위기나 사람들의 모습도 약간은 남루한 인상을 주는 도시였다. 하긴 뭐 명승고적지만이 볼거리라고 볼 수는 없지..... 사람 사는 모습 자체가 볼거리 이고 체험인걸......
중국을 전체적으로 뒤덮고 있는 건설현장 분위기에 발 맞춰서 도시 곳곳마다 고층 빌딩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바, 이 공사가 다 끝나고 나면 어느 정도 세련된 모습을 보여줄 듯 하기도 한데... 정확한 끝이야 우리 같은 이방인들이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이고....
하여튼 이곳을 거의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도시와는 한동안 이별하고... 광시성의 계림에 도착하기까지 계속된 소수민족 부락을 거쳐서 남하 해야만 했으므로 우리는 깡촌 시골로 들어가기 전에 잘 먹어 둬야 한다면서 훠궈 뷔페도 먹고(비록 입에 잘 안 맞긴 했지만...) 월마트 가서 한국산 컵라면을 몇 개 사두거나 하며 주로 먹는 걸 찾아다니는 걸로 구이양에서의 이틀을 보냈다.
그럼 먀오족의 최대 집성촌이라 알려진 시장西江으로 일단 출발.....
구이양에서 상태 괜찮은 버스를 타고 3시간을 달려 동쪽의 카이리에 도착, 여기서 1박한 뒤 약간 털털 대는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을 남쪽으로 달려 레이산으로 간 다음 레이산에서 다 쓰러져가는 버스를 타고 비포장 길을 달려 2시간을 달리니 드디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시장이다.
이 조그마한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지라, 마을로 들어서는 고개를 넘는 순간 이곳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특이한 검은 지붕의 집들이 산등성이에 빽빽한 이곳은 약 1,000개의 먀오족 집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논두렁에는 전통적인 복장과 틀어 올린 머리를 한 여인네들이 분주히 논에 물을 대고 있었다.
이곳을 흐르는 작은 개천은 다른 곳과는 달리 얕고도 깨끗해서, 동네 아줌마랑 아이들이 물장구치고 노는 걸 보자 우리도 함께 끼어들고 싶을 정도였다. 물에서 노는 아이들이야 많이 봐왔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저런 물에서 놀다가 피부병에라도 걸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역시 우리가 깊은 산골에 들어오긴 왔나 부다.
정직히 말하자면, 소수민족에 대한 깊은 이해나 관심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기보다는 다른 여행자들이 그러하듯이 그저 이들이 사는 모습을 한번 ‘관람’해 보고 싶은 맘이 거의 전부였다. 물론 다가오는 인연을 마다할 이유도 전혀 없고 누군가 다가오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하지만, 낯선 이방인에게 다가와 정겹게 말을 붙이는 사람들이란 늘 숙소에서 나온 삐끼님들일 뿐...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에게도 우리의 존재란 ‘흥미로운 눈알을 굴리며 잠시 머물다가 하루 이틀 뒤에 떠나버리는 사람들’ 일뿐인데 뭔 놈의 애정이 있어서 정겹게 말을 붙이랴... 암 것도 모르는 호기심 어린 애들이나 ‘헬로우~’ 할뿐이다.
중국에서 가장 큰 먀오족 마을, 시장
마을 옆에는 논이 펼쳐져 있다
먀오족 여자들은 머리를 올리고 장식을 한다
하여튼 버스에서 내려 두리번거리다가 게스트 하우스를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라 몇 발자국 걷다 보니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듯 한 숙소 발견~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인터넷을 하다가 벌떡 일어나 우리를 맞이해준다.
- 방 얼마에요?
- 두사람에 60 이요.
- 50에 해주셍....
커이커이~ 라는 아저씨의 대답과 함께 방에 짐을 내려놓고 마을 투어 시작~ 했는데, 어느 시골 마을이 다 그렇듯이 딱히 눈길을 끄는 건 없었지만, 논두렁 사이를 걷는 다거나 잘 놀고 있는 오리를 잡아먹을 듯이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노는 것도 나름 잼있다. 이런 류의 소수민족 마을은 그냥 그 자체가 볼거리 인 듯...
그나저나 저녁이 다 되가는데,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작은 컵라면 하나뿐이어서 우리는 아사직전...
아까 숙소 값을 깍은 게 못내 미안했던 우리는 저녁은 숙소에서 먹기로 결정하고 1층으로 내려갔더니만, 어째 뭔가 음식을 만들어 낼 거 같지가 않다. 서성거리고 있으니 숙소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말한다.
- 밥은 지금 안돼요. 이따 8시에 돼요. 8시에 와요. 5명이서 먹을 거 에요.
5명이라...? 다른 여행자들도 그때 먹을 라고 기다리고 있나...?
건 그렇고 지금이 5시인데 8시까지 기둘리라니... 알겠다고 그 시간에 다시 오겠다며 숙소에서 나오긴 했는데, 길가에 늘어서 있는 식당을 보자마자 우리 상태는 ‘마님 못 참겠구먼유~’ 같은 머슴 상태가 돼서 식당 안으로 돌진하고 말았다. 오직 계란 하나 만을 넣은 양 많은 볶음밥을 허겁지겁 들이키고 나니 후회가 밀려오고, 이따 8시에 또 밥을 먹어야 되는 약속이 부담스러워졌지만, 일단 한 번 말한 거 뒤집기도 뭐해서 방에서 부른 배나 가라앉히기로 했다.
약속된 8시... 마당으로 나가보니 다른 여행자들은 안보이고 이 숙소 주인 아저씨랑 일하는 일꾼 부부, 그리고 우리 이렇게 5명이 먹을 식사가 마련 되 있네.... 아아~ 이건 좀 부담스러운걸... 왠지 남의 집 단란한 식탁에 불청객스럽게 초대 된 듯한 이 불편한 느낌은 뭐람...
게다가 아직 배에서는 차오판이 떡~ 하고 버티고 있어서, 차려놓은 반찬의 대부분을 간만 보고 내려놓게 되었다. 한족인 주인아저씨는 칭다오에서 일하면서 많은 한국인들을 알게 되었다는데, 그 한국분들한테 좋은 인상이라도 받은 건지 우리에게 무척이나 잘해준다. 일하는 부부 역시 한족이라는데 이 먀오족 시골 마을까지 한족이 들어와서 제일 큰 사업을 하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페트병에 가득한 술을 꺼내오더니 마구마구 권하는데, 술이 잘 받진 않았지만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요왕은 연거푸 3잔이나 들이키게 되어버렸다.
- 이거 얼마나 내야 되는 걸까.....?
- 글쎄... 뭐 알아서 청구 하겠지 뭐... 그나저나 밥이 당췌 안 넘어간다...
- 나도 아까부터 꾸역꾸역 밀려 올라오는데 그래도 퍼주는 건 어떻게든 다 먹자....
우리가 알고 있는 몇 마디의 중국어가 밑천을 드러내자, 접시도 어느 정도 비워지고 마침내 식사는 끝나게 되었다. 식사가 끝나고 모두들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옮겨놓고 나자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서 어디론가 가려한다. 재빨리 뒤따라가서 계면쩍게 웃으며 물었다.
- 아저씨.... 저거 뚸샤오치엔? (이거 얼마에요?)
허걱! 그런데 아저씨의 반응은 손사래를 치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뿌스 뿌스~’ 라고 하는 게 아닌가...
역시 소수 민족 마을로 들어오니까 뭔가 다르구먼... 예상치 못했던 호의, 우리를 숙소 손님이 아닌 진정한 ‘손님’으로 대해주는 이 상황이 너무 고마운 나머지 우리는 어쩔 줄을 모르고 ‘셰셰(감사합니다)’를 연발 했다. ‘메이꽌시(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아저씨 또한 사람 좋게 웃는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한 단면만 본 게로군...역시 사람은 많이 겪어봐야 안다니까...
아~~그동안 약간 시달렸던 마음이 갑자기 노골노골 해지면서 감격한 맘을 추스르며 잠시 의자에 앉아 있으니 아저씨가 손짓을 하며 우리를 부르는 거다.
아저씨가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께요~~ 모드가 되어버린 우리는 그를 따라 어디론가 가게 됐는데, 오늘이 무슨 먀오족 축제가 있는 날인가?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전통 복장을 갖춰 입고 곱게 화장을 했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어디선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해서 의자는 금방 빈틈없이 채워졌다. 우리 숙소에 묵고 있던 프랑스 아이들도 뒤늦게 나타나 뒤늦게 자리를 잡고 나니, 먀오족 전통 춤과 무용이 이어졌다. 요왕이 그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내게 말을 건다.
- 이건 왠지 돈 내는 거 같지 않냐...? 아니면 그냥 이 사람들 축제인건가...?
- 설마... 돈 내는 거면 미리 말을 해줬겠지... 그냥 따라 오라고 했겠어...
- 그치? 아..오늘 정말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다 풀리는 거 같애... 넘 행복하다.
프랑스 아이들도 무대? 중앙에 나가서 오~ 샹제리제~ 를 부르고 그 중 누군가는 불쑈를 하기도 한다. 다른 중국인들도 한마디씩 노래를 뽑고, 급기야 코리아! 코리아! 라는 숙소아저씨의 부추김에 요왕까지 나가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이 축제의 의미가 궁금해진 나는 먀오족 남자 하나를 붙잡고 물어봤다.
- 아저씨 아저씨. 이거 매일 매일 하는 거에요?
- 노. 노. 이건 스페셜이에요.
아... 따리에서 봤던 횃불 축제처럼 1년에 한 번씩 하는 건가부다... 오늘은 참 운 좋은 날이구먼...
먀오족 공연에 덧붙여 프랑스, 중국, 한국 사람들의 노래까지 이어지던 흥겨운 열기는 오후 10시가 넘어서자 이제 파장 분위기... 각자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다시 마을은 원래의 모습대로 조용해지고 우리는 행복한 마음과 부른 배를 안고 잠들게 되었다.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한 저녁식사...
먀오족 공연
다음날 아침.... 마을은 돼지도 새로 잡고 거기다가 개까지 한 마리 잡아서 털을 뽑는 등 활기에 넘친다.
음냐... 중국에서도 개를 심심찮게 먹는 모양이구먼.... 목이 반쯤 잘라진 개가 축 늘어진 채 담겨져 있는 대야 앞에는 그 개의 새끼 인 게 분명한 작은 강아지가(두 놈이 똑같이 생겼다) 애처롭게 두 발 모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꽤 애처롭고 불쌍했다.
이궁... 어쩌겠어... 안됐지만 니 신세도 앞으로 그다지 달라질 거 같지 않구나...
숙소 주인아저씨에게 뭔가 보답을 하기로 맘먹은 우리는 술을 한 병 사서 줄까, 아니면 뭔가 다른 선물거리를 살까 하며 상점을 주의 깊게 들여다봤지만 이 작은 구멍가게들에서 뭔가를 얻어낼 수 있을 거 같지가 않다.
게다가 숙소 요금을 깍은 것이 너무 미안해서 목구멍에 닭 뼈가 걸린 거처럼 불편했던 나는 내일 이곳을 떠날 때 돈을 얼마간 더 내는 게 어떨지, 낸다면 얼마를 더 드려야 할지에 대해 갈등을 했다. 호의를 돈으로 대신 갚는 건 너무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에 이르러서 이내 그 생각을 포기 하긴 했지만...
오전 내내 마을을 돌아다니다 지친 나머지 한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더니 벌써 오후 4시.....
그동안 요왕은 노트북으로 한국 노래를 구워서 시디를 아저씨께 드렸단다. 참~ 잘했어요~ 라고 칭찬해 주고 인터넷을 하기 위해 숙소 카운터에 갔더니 아저씨가 지갑에서 뭔가를 꺼내 우리에게 보여준다.
- 아... 아마 한국 사람한테 받은 편지일꺼야... 우리한테 해석해 달라는 거겠지... 근데 중국말 모르는데 어케하지...
라고 생각하며 종이를 받아든 우리의 눈에 들어온 글씨는....
어제 저녁 먹은 값 - 40위엔
어제 쑈 본 값- 30위엔
인터넷 3시간 - 6위엔
합이 76 위엔 .....
이라는 글이 중문과 영문으로 쓰여져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저녁을 먹다’ 인 ‘have supper’를 ‘have suffer’ (고통을 당하다)로 써놓은 넌센스까지...
- 이게 ...도대체 뭐지....
- 민...우리 표정 관리 하자. 일단은 웃어....
어리둥절한 눈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웃음이 입가에 걸쳐지고, 머릿속은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 과부하 가 걸리기 직전이었다.
어제 저녁 대부분 그들이 먹어치운 식사의 한 귀퉁이를 우리가 장식한 요금이 40이였구나... 그리고 그 축제도 마을잔치가 아니라 공연이였고...
인터넷은 근데 왜 3시간이지...? 아저씨의 설명인즉 어제 1시간하고 오늘 오전에 30분(1분에선 60분 까지 동일한 가격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하고 지금 또 한 시간 할 예정이니까 합이 3시간이란다. 어제 한 돈은 어제 즉시 지불했는데, 그건 까먹으셨구먼... 이걸 설명하는데 또 한동안 와글와글...
어쨌든 즉석에서 74위엔의 돈이 지불되고, 그때는 우리나 아저씨나 표정 관리에는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동안 말이 없어졌다. 힘없이 인터넷을 한 시간 채운 후 밖으로 나가서 2위엔짜리 국수 두 그릇을 시켜놓고 앉은뱅이 의자 위에 앉아 처량히 젓가락질을 하며 요왕이 내게 묻는다.
- 넌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냐...? 그리고 왜 그렇게 순순히 주자고 그랬어?
- 나쁜 상황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냥 발 빼고 나오는 거야... 어제 가졌던 좋은 맘이랑 내내 서로 주고 받았던 웃음이 계산서 앞에서 일그러지는 모양새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냥 끝까지 웃으면서 준거지 뭐....
- 너무 슬프다.....
어디서 어긋난 걸까... 어제 저녁 얼마냐고 묻는 우리에게 손사래를 치던 액션은 ‘지금 당장은 돈 안내도 된다’는 의미였었나.....? 헐...... 우리가 감격한 콧소리로 셰셰 라고 인사할 때 그는 왜 그냥 흐믓한 미소만 짓고 있었던 걸까....
의도적인게 아니라 분명히 뭔가가 어긋나버린 걸꺼야... 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운영하는데 서투를수도 있고.... 그런게야.... 라고 애써 생각하며 어제 저녁 행복했던 맘이 무색할 정도로 풀이 죽은 채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마음이 아까워 졌다. 신세를 지고 있다는 느낌, 뭔가 보답하고자 했던 마음의 무게가 아까울 따름... 훌훌 잊고 우리는 그 담날 새벽 이 마을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