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마음이 딱딱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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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마음이 딱딱해져 간다.

고구마 1 587

(2005년 글입니다.)



누군가의 여행기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태국에 가서 처음 절을 봤을 때는 꽤 신기하고 감흥이 있더만 그것도 도시 이동 할 때마다 계속 보니까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지겨운 절’ 일뿐이라고 했던 부분이 생각난다. 다른 사이트에서 살짝 봤던 유럽 여행기에서도, 여행 후반부로 갈수록 유럽의 성과 박물관들이 나중에는 다 그게 그거처럼 보인다며 심드렁~ 해 하던 구절을 본거 같은데.....

‘경치..? 다 그게 그거 지 뭐..특별한 게 뭐 있겠어...?’ 하는 느슨한 맘이 나에게도 찾아들기 시작했다.

아마 한 달 후 쯤 베트남에 들어가면 정신 바짝 차리고 눈을 반짝이며 돌아다니게 되겠지만, 지금 김빠진 맥주 마냥 약간 맛이 간 상태가 된 거 같다.

싱이에서 차로 4시간 반이 걸리는 이곳 황과수黃果樹 폭포 앞은 마치 유원지 모냥, 크고 작은 숙소들과 비싼 값을 받는 식당들로 들어차 있다. 쥬자이거우의 정문에 세워져 있던 대형 텔레비전과 비스므리 한 놈이 폭포 출입구 앞에 반짝이고 있는걸 보자 쥬자이거우에서의 데쟈뷰가 떠오르면서 우리는 흠칫 해버렸다.

놀란 맘을 진정하고 매표소 앞에 서니 일인당 입장료가 90위엔...... 그것도 황과수만 보는데 그 돈이고 주변에 있는 다른 볼거리들은 건건이 돈을 더 받는 식이다.

일단 오늘은 해가 다 저물려고 하니 내일 아침 일찍 봐야겠다며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담날 찾아간 매표소에서 ‘학생은 50% 할인’ 해준다는 걸 알게 되자

할인 받으려는 마음과 소심한 마음 사이에 약간의 갈등이 일었지만 결국은 할인의 승리~

나는 매표소로 가 당당히 학생표를 달라고 말하고는 우리의 주민등록증을 이번에는 떳떳하게 꺼내 들고야 말았다.

인생을 배우고 중국을 탐구하고 있으니 광범위한 의미로 우리도 학생이지 뭐... 이곳 식당 여급의 한 달 월급이 400위엔 정돈데 입장료가 저게 말이 되냐고... 이건 완전히 여행자를 등치고 배따는 행위이며 이런 입장료 고가 정책은 언젠가 꼭 사라져야 한다며 괜시리 분개하며 황과수 폭포 안으로 들어갔다.


구이저우 성 최고의 볼거리중 하나로 꼽히는 황과수 폭포 앞에서....우리는...

‘음... 너 폭포 구나...’ 하고 약간 무신경 하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던 거 같다.

아침 일찍 가야 중국인 단체 관광단과 같이 섞여 돌아다니지 않는다며, 아침 잠 설쳐 가며 새벽 같이 들어갔더니만 폭포가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망할노무 ‘역광현상’이 생기고야 말았다.

폭포 쪽에서부터 해가 뜨기 시작해서 정작 피사체가 되어야 할 폭포가 뒤쪽에 해가 떠올라 무슨 오뉴월 땡볕에 대머리 아저씨 두상처럼 번쩍번쩍 하는 바람에, 사진으로 찍어보니 온통 희뿌옇기만 하다.

그래도 물보라 맞아 가며 폭포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니 작은 무지개도 보고 커다란 폭포 뒤에도 들어가 보고 색다른 경험임에는 틀림없다.


계속 퍼마셔주는 술은 간을 딱딱하게 만들듯이, 계속된 경치 관람은 우리의 감흥 센서와 눈을 딱딱하고 건조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딱딱해진 맘의 상태는 꼭 경치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며, 굳이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는 거 같다.

여행 초기 중국 상인들의 불친절에 맘 졸이고 슬퍼졌던 우리는 이제 웬만한 구박에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게 되고, 차 안에서 피워 대는 담배 연기도 불평 없이 훨씬 잘 참아 낼 수 있게 됐다. 버스의 복도에 승객들이 뱉어놓은 후레쉬한 가래침을 즈려밟은 중국아저씨의 남루한 신발이 내 바지에 닿아도 그냥 ‘그러려니........’

며칠째 빨래할 곳을 못 찾아서 수건에서 쉰내가 나도 그러려니.., 운동화가 원래의 제 색깔을 알아볼 수 없을 만치 더러워지고 지금 신고 있는 양말이 언제 적 갈아 신은건지 기억이 안 나도 그냥 그러려니...

여기며 편안하고 평화롭게 잘 굴러다니고 있다.


황과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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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입장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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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과수 폭포. 오른쪽 중간쯤의 점 같은 사람과 비교하면 크기가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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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알뜰공주 2020.08.31 15:46  
황과수폭포의 위력이 느껴집니다.
이과수폭포의 일부분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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