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떠난 코타키나발루 - 2일
여행중엔 항상 일찍 일어나게 된다. 6시경에 일어나서 TV를 켜고 세수를 하고 공항에서 가져온 지도를 펴서 여행 루트를 간단히 짜고 아침 식사를 갔다. 조식은 객실만큼이나 우울했다. 어두컴컴한 식당에, 알 수 없는 몇 가지의 음식들이 놓여있고, 토스트는 저 구석에 우울하게 놓여있다. 여행중에는 특히나 아침식사를 잘 챙기는 편인데, 흔한 계란요리 하나 없는 조식에 급 실망하며, 토스트 두쪽과 진한커피 두잔, 수박과 파파야로 대충 아침을 챙기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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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을 챙겨 탄중아루 해변으로 향했다. 프론트에서 버스 타는곳을 물어보고 지도를 봐가며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너무나 여러대의 버스가 서 있어 어는 것을 타야할지 막막해 하는 찰라 지나가던 행인이 해변으로 가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16번 버스를 타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어 그 버스르 타고, 안내소년(?)에게 1RM 20Sen을 주고 한참을 버스를 타고 달렸다. 갑자기 어디서 내려야 할 지 막막해 지는 찰라 옆 자리 아주머니께 여쭈니 두어정거장만 더 가면 된다고 하셨고, 사실 버스가 해변 바로 앞에 내려줘서 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해변가는 대 실망이었다. 내가 일찍 도착한 것도 있지만 정말이니 한사람도 없었다. 모래도 곱지 않고 자갈이나 나뭇가지들이 많아 선탠하기에 좋지도 않고, 물도 서해안 수준이다.(사실 서해안에 가본지 오만년이라 서해안 수질이 어떤지 모르겠다만, 하여간 지저분했다) 하지만 해변가 앞에 조성된 필립왕자 공원(Prince Philip Park, 한글로 쓰니깐 웃기다…)은 정말로 판타스틱했다. 너무나 예쁘고 관리가 잘 되어 있고 규모도 크다.
공원을 좀 산책하다 해번으로 빠져서 선탠할 장소를 물색하고 있는데, 정말이지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자리를 잡는게 의외로 막막했다. 대량 중간쯤으로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펴고 바다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물이 너무 탁해서 급실망하고 더 이상 수영을 하고 싶지도 않아서 바로 선탠을 하러 모래로 올라왔다. 나무 그늘아래 자리를 잡고 누워서 책을 펴니 이건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리는 소리라곤 바람소기, 새소리 파도소리뿐이다. 갑자기 더러운 바닷물과 아무도 없는 해변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도 바다에 왔는데 한번 더 물어 들어갔는데 갑자기 온 한 무리의 누드의 지역 소년들이(?) 하이를 연발하며 나를 쫒아다니는데 귀찮다가도 나중에 무서워져서 발만 물어 담궜다가 바로 나와서 또 자리에 누웠다.
단연히 해변가 근처에 매점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사람이 없는 해변이다 보니 매점도 없고, 목은 마르고 해서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우선 공용 샤워실에서 2 RM을 주고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 입고 급 기분 업 되어 식당으로 갔다. 말레이시아식 국수 요리와 물 한병을 주문하고 바다가 내려 보이는 파라솔 아래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우아하게 사진도 찍고 책도 읽어가며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비가 오더니 점점 빗발이 굵어져서 결국은 내부로 피신해야 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쉽게 움직일 수도 없고, 비가 그칠 때까지 식당에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음식값은 예상외로 착했다. 국수와 물을 합쳐 11RM 정도였으니, 바닷가 근처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먹은 음식값 치곤 아주 맘에 들었다.
비가 그치고 식당을 나와 탄중아루 플라자로 걸어갔다. 탄중아루 플라자에는 폴로 매장이 있는데 매우 저렴하단 귀한 정보를 이미 습득한 나로서는 지나칠 수 없었다. 10분정도 슬렁슬렁 걸어가니 쇼핑몰이 나왔는데 가게문이 다 닫혀 있었다. 생각해보니 금요일은 이슬람교의 휴일이고 그래서 문이 닫은 듯 하다. 근처 편의점에 언제 문을 여는지 물어보니 우물쭈물 해서 걍 택시를 잡으러 나왔다.
이런….택시가 없다. 안습니다. 수영도 하고 밥 먹고 걷고 어제 잠도 잘 못잔데다 손엔 선탠한다고 갖가지 물건들을 한아름 들고 나와 팔도 아픈데 버스정류장도 못찾겠고 흔한 택시도 안보인다. 한참을 기달려 겨우 택시를 잡고 우선 호텔로 향했다.
호텔 앞에 있는 은행에 환전을 하기 위해 먼저 들어갔다. 번호포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 내 순서가 왔는데 은행에서는 환전을 안해준다는 것이다. 쇼핑몰 안에 환전소에서만 환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여러나라 여행하면서 은행에서 환전 안해주는 나라는 말레이지아가 첨이다.
우선 방에 들어와 젖은 수건과 수영복을 말리고, 디카를 충전하려고 보니 콘센트가 맞지 않아 호텔 메인터넌스에게 부탁해서 디카를 충전하고 (신기하게도 콘센트에 드라이버를 한번 넣어다 빼니 220V가 들어갔다...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충전될 동안 한잠 잤다.
4시경 일어나서 이것저것 챙기고 호텔 길 건너에 있는 위스마 쇼핑센터에 환전을 하러 갔다. 환전소를 찾기 전 내 눈에 띈 건 에그타르트집… 한 개 1RM밖에 안한다. 따끈따끈한 푸딩과 바삭거리는 페이스트리가 한동안 내 입을 즐겁게 하던 중 환전소를 찾았고 미화 100불을 환전했다. 한국에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작은 미화권은 안좋은 환율을 적용 받는다고 되어 있어서 일부러 100불짜리 지폐로 환전을 해갔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들어온 김에 쇼핑이나 해볼까 하고 한바퀴 돌면서 수박주스도 사마시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왠 산만한 덩치를 가진 한 남자가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아니면 이 남자도 그냥 쇼핑중이었을까? 그렇담 난 도끼병 환자?) 급 무서움을 느끼고 한 옷가게로 들어가 쇼핑 하는척 한참을 시간을 보내고 나오니 남자도 사라지고 그길로 바로 쇼핑몰을 나와 센터포인트 쇼핑몰로 향했다.
거리엔 보슬비가 오고 있고 바람도 선선히 불어 기분 좋은 시내 구경을 하면서 길거리에서 파는 와플도 사먹고 열심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 이상해졌다. 오른쪽 조리가 빠져버린 것이다. 순간 너무나 당황스러워 우선 오른쪽 조리를 벗어 손에 들고 가장 가까운 신발가게를 향해 약 5분간을 걸어가는데, 사람들은 쳐다보고 발도 불편하고, 정말 긴 5분이었다. 갑자기 축구용품점을 발견하고 들어가서 슬리퍼를 70RM이나 주고 사서 신었는데 너무나 속이 쓰리다. 사실 원해 신고 있던 신발도 그리스 여행중 원래 신던 슬리퍼가 너무나 강력한 햇살에 본드가 녹아버려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산 신발인데, 이번 신발도 너무나 급작스런 상황속에서 사게 되버린걸 보니, 다음에 사게 될 슬리퍼도 같은 운명이지 않을까 싶다.
비싸게 주고 산 그닥 맘에 들지 않는 슬리퍼가 의외로 편해 그나마 위로를 삼고 센터포인트로 향했다. 위스마에 못지않게 센터포인트도 실망의 극치이다. 조잡한 가게들만 즐비하고 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급좌절하던 중, 4층에 도달해서 드디어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 VINCCI라는 신발가게에서 신발 3개나 지르고 (3개 해봤다 4만원 밖에 안하지만) 그 옆 팩토리아울렛이라는 가게에서 (미제옷들을 굉장히 싸게 팔았다) 남친 줄 아베크롬비 서핑바지 두벌(한벌에 15RM씩, 완전 거저다) 홀리스터티 두개 묶어서 33RM, 나랑 엄마가 입을 티 두개 묶어서 22RM에 사고선 완전 좋아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던 ELLE 매장에서 너무나 예쁜 검정 블라우스를 4만원 정도에 구입하고선 급 기분 업되어서 지하에서 산미구엘 한병을 사서 호텔로 향했다. 원래는 센터포인트 근처 워터프론트에서 맥주라도 한캔 마실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말을 걸면서 쫒아와서 무섭기도 하고 기분도 나빠져서 바로 택시타고 호텔로 향했다.
샤워 하는 동안 맥주를 냉동칸에 넣어두고 개운하게 씻고 나와서 TV를 틀고 맥주는 마시니 완전 내세상이다. 내일은 하야트로 호텔을 바꾸기 떄문에 짐을 정리하고 책장을 넘기다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