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는 8박9일 여행기 3편...
미 테러 사건의 충격에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글을 올립니다. 그새 저의 글을 기다리는 분들이 계셨군요. 어쩌나...오늘 피피아일랜드 빌리지 들어간 얘기까지 쓸 수 있으려나...노력해 보도록 하지요.
셋째날 낮버전입니다. 이날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수상시장-로즈가든-악어농장을 아우르는 일일투어를 새벽같이 나갔어야 했지만...이미 전날 계획도 상당부분 엉망진창이 되게 했던 우리는 자랑스럽게 저녁5시까지 잤습니다. 아까운 아침 쿠폰 썩히고 점심도 굶고. 아, 태사랑 드나들며 그토록 계획했던 모든 일을 포기하고. 전 제가 먹을 태국 음식의 리스트까지 꼼꼼히 마련해 갔는데 말입니다. 여기서 사족인데 여행을 떠날 때는 함께 계획하고 함께 공부해 가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경우 남편은 미리 일해놓구 가느라 정신없이 바빴고 여행지 선정과 정보공부, 계획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제가 도맡아서 했거든요. 그 결과 남편은 이 여행이 얼마나 소중한 여행인지 실감을 잘 못했구, 저 또한 혼자서 다 아는 체 하며 남편을 질질 끌고 다닌 결과가 되었으니까요. 어쨌든 결혼하고 나서 과감히 중도포기한 대학원 학비로 온 여행인데 밤새 그 수모를 겪은 것은 둘째 치고라도 이렇듯 호텔 방안에서 잠이나 자고 있으려니 자는 와중에도 무지하게 화가 나더군요. 전날 샹그릴라 호텔에서 하는 호라이즌 디너크루즈 예약해 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는 더이상 참을 수 없어 일어나 남편을 깨웠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뚜~ㅇ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제가 전날 토해가며 아파했는데 여지껏 굶기고 있느냐며 상황을 유리하게 몰아가자 이내 옷을 갈아입고 나서더군요. 저는 또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로비를 통과할까 하고 말이죠.(챙피해서리...나참.) 그래서 저는 남편 손에 100밧을 쥐어주며 말했습니다. 어제 호텔 직원들 앞에서 나를 얼마나 무안하게 했는지 생각해 봐라, 두고두고 한국인에 대한 나쁜 인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제 나를 도와 '서'까지 동행했던 그 직원을 만나면 팁으로 주고 아내를 도와줘서 감사했다고 말해라, 이제는 아무 문제 없이 화해한 커플이라는 점을 확실히 각인시켜 달라. 남편도 양심은 있는지 알았다고 하더군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자 뭐, 찾을 것도 없이 바로 그 직원이 서비스 데스크에 떡하니 앉아 있다가 대번에 저희 부부를 알아보고 웃더군요. 그리하여 호텔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은 대충 무마시켰답니다. 택시를 타고 샹그릴라로 갔습니다. 택시비는 80밧 정도.
호텔에 도착하니 좋은 호텔이라 다르더군요. 특히 수영장이. 수영장 옆의 야외 식당도 근사하구요. 수영장 가로질러서 보트가 한척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한눈에 고급 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게 과연 400밧 밖에 안할까? 아, 무슨 소리냐구요. 헬로태국에는 1150밧인가 써있던데 남편이 예약 전화했을 때 400밧이라고 하더라구요. 왠일인가 싶었죠. 하지만 나중에 계산을 할 때 보니 그럼그렇지...400도 1150도 아닌 1,400밧. 남편이 1,400을 400으로 잘못 들은 거였죠. 참고로 1인당 1,400밧 요금 외에도 음료(맥주, 와인 1잔씩), 서비스, 세금 포함 총 3317밧(2인)이나 나왔답니다. 진짜 비싸죠. 그래도 뭐, 호텔에서 잠만 잔 덕분에 많은 돈이 굳어서 이정도쯤 가뿐하게 지출 할 수 있었답니다. (자랑이다~) 그런데 돈은 그렇다 치고 호라이즌 디너크루즈, 돈아깝지 않을 만큼 근사하던걸요. 저희는 예약할 때 야외석으로 부탁했는데 2층이더군요. 1층은 에어콘 나오는 캐빈이구요. 2층에 올라가니 겨우 8개 정도의 테이블이 띄엄띄엄 놓여져 있었습니다. 테이블 세팅은 특급호텔의 그것 답게 흔들거리는 양초와 함께 멋지게 장식되어 있었구 미리 예약했다고 남편이름이 적힌 명패도 근사하게 척 올려져 있구요. 어젯 밤까지 생쇼를 펼쳤던 사람들 답지 않게 갑자기 왕자와 공주가 된 듯 우아한 기분으로 자리에 착석. 직원들의 서비스도 정중하고 1층에 마련된 부페음식을 가져다 먹는데 음식도 정말 맛있었어요. 나중에 메리엇 카페도 갔었는데 거기보다 더 맛있었어요. 초밥도 싱싱하고 태국 음식도 우리 입맛에 맞게 조리되어 있고...디져트로 나오는 케익도 많던데 제가 좋아하는 치즈케익은 금방 동이나 버리더군요. 전날 많이 토하고 종일 굶어 속이 말이 아니었는데 크램차우더 스프 맛도 정말 좋아서 굿이었구... 잃어버린 카메라 덕분에 멋진 야경과 배안의 모습, 조명발 받은 사원들의 독특한 전경도 찍을 수 없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습니다. 분위기는 너무나 조용하고 낭만적이었습니다. 음악만이 잔잔하게 깔려서 마치 서양 영화에 나오는 분위기 있는 요트 여행의 한장면 같았죠. 한번쯤 누려볼 만한 사치더군요. 다만, 식사가 다 끝나갈 때쯤 아랫층에 있던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갑자기 위로 올라오면서부터 이 분위기는 깨졌죠. 배 앞머리로 가서 사진찍고 빈 테이블 점령해서 자리에 신발 벗고 두다리 올리고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너무 시끄럽더군요. 갑자기 아수라장이 된 것처럼 웃고 떠들고 박수치고 소리지르며 이름부르고 무슨 유머 시리즈같은 거 얘기하며 좋아하는데 즐거운 모습이야 보기 좋지만, 또 여행왔으니까 서로들 들뜬 기분인 것도 좋지만 진짜 민망할 정도로 시끄러웠거든요. 앞쪽 테이블에서 아직 식사를 못끝냈거나 차를 마시고 있는 서양인 노부부 테이블 틈으로 기어코 끼어들어가서 (그쪽이 앞쪽이라 전망은 최고였거든요) 후레쉬 팡팡 터뜨리며 사진찍고 한마디 미안하다거나 실례한다는 말조차 없자 찌푸려지는 그들 부부의 표정을 저희 부부도 똑똑히 보고야 말았습니다. 덕분에 한층 낭만적인 분위기에 화해 노선을 걷던 저희 부부도 다시 입다물고 각자 시선을 다른 곳에 고정시킨 채 바늘방석처럼 앉아 있었죠. 크루즈가 끝나고 많은 비용을 지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참 좋은 시간이었고 나중에 늙으신 부모님 모시고 와서 꼭 한번 호강시켜 드리고 싶은 그런 크루즈였습니다. 돌아올 때는 호텔 옆 어두운 골목으로 200미터쯤 가면 있는 싸판딱신 역에서 BTS를 탔습니다. 싸얌에서 내려 일회용카메라부터 한대 구입했죠. 디너크루즈하면서 사진기가 없어 정말 안타까웠거든요. 우리는 싸얌센터 등을 돌며 밤거리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 때 보니 국립경기장 역에서 내리면 바로 마분콩과 연결이 되더군요. 우리는 내일 이곳에 와보자고 합의하고 그 유명한 브라운 슈가를 향해 출발합니다. 원래 전날 밤에 갈 코스였는데 싸우느라 못갔었죠. 남편이 헬로태국 책 겉표지 한번 안보고 태국에 왔는데 그 밤에 호텔까지 걸어서 찾아오느라 스쿰윗과 빠뚜남, 월텟 인근 지역을 무지하게 헤메다닌 모양입니다. 이날은 자기만 따라오라고 큰 소리 치더군요. 방콕 시내 지리를 다 알아버렸다나... 암튼 남편 말이 브라운 슈가는 걸어가긴 힘든 거리라며 택시를 타자고 하더군요. 택시비 60밧 가까이 주고 브라운 슈가 앞에 내려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더 작고 어두컴컴한 곳. 소문대로 연주는 훌륭합니다. 남편이 음악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라 만족하더라구요. 여기서 나와 잠깐 그 랑쑤언 거리를 잠시 걸었죠. Inn도 하나 있고 여행사 많고 아담한 씨푸드레스토랑(살아있는 새우와 게 등이 어항속에 잔뜩 들어있는), 예쁜 카페들이 있어 여행자들에겐 참 좋은 거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는 전날 밤의 여파로 밤낮이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에 어디 다른 데를 더 가보기로 했죠. 저는 허리우드, 남편은 차이나타운의 야시장에서 해산물을 먹자고 했죠. 저는 오랜만에 남편의 의견을 따라주기로 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사람 좋은 웃음을 웃는 나이든 기사분께 차이나타운이라고 하자 못알아듣더군요. 난감해져서 차이나타운 이라고 여러번 얘기하자 웃으며 아는 척을 하고 출발하길래 안심하고 있었죠. 그런데 아무리 가도 짜장면 글씨가 안나오는 겁니다. 이상타, 내 많은 차이나타운을 가봤지만 빨간색과 한자가 나와야 차이나타운인데....아저씨는 다왔다는 시늉을 하는데 도저히 차이나타운이라고 믿어지질 않아 그냥 있었더니 골목으로 들어가더군요. 아항, 저 골목으로 들어가면 차이나타운이 나오는구나....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몇몇 포장마차 만이 불을 밝힌 어두운 거리. 그래 거기서 내려 무작정 걸었습니다. 아직도 여기가 차이나타운이라는 일말의 믿음을 버리지 않고...조금 더 걸어가면 빨간 간판이 나오겠지, 하구요. 그런데 한참을 걸어가자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싸얌베버리 호텔. 그렇습니다! 우리는 차이나타운으로 내려가기는 커녕 공항쪽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목적지는 허리우드로 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 택시로 불과 5분 거리였으니까요. 허리우드 바로 옆에 댄스피버가 있어 잠시 선택에 혼란을 느꼈지만 손님이 훨 많아 보이는 허리우드로 들어섰죠. 귀가 찢어질 듯한 음악. 이미 꽉찬 좌석. 눈요기로 충분한 가수들의 춤과 노래. 전 평소엔 가무를 그리 즐기지 않지만 이렇게 멍석이 깔아지면 서슴지 않고 뛰어들어 놉니다. 그러나 이 둔팅한 남편은 마시던 맥주도 그대로 다 남겨둔채 그저 나가자고만 하더군요. 남편은 브라운슈가의 재즈는 맘에 들어도 이런 아그들 뮤직은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전 백지영의 데쉬가 한국어로 안무까지 카피되어 불려지고 있는 한참 신나는 장면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와야 했죠. 순식간에 700밧만 날리구요. 신나게 놀고 싶었는데...어젯밤의 스트레스도 날릴겸...그런데 아쉽고 뭐하고 할 틈도 없이 또 황당한 경우가 생겼습니다. 남편 성화에 나오기는 했는데 그만 화장실 가는 걸 깜박하고 떠밀려 나온 겁니다. 연애 시절부터 남편은 화장실매니아였어요. 제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화장시일~ 하면 전방 500미터 내에 있는 화장실을 기차게 찾아내서 해결해주곤 했죠. 그곳이 KFC든 맥도날이든 상관 않고 남편은 주문 하나 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2층으로 곧장 올라간 뒤 천연덕스럽게 저를 화장실에 밀어넣고 기다리는 편이죠. 그래서 제가 또 화장실을 찾자 그 화장실에 관한 한 예민한 레이다를 작동시키며 한없이 걷기 시작했죠. 불켜진 건물이나 돈내고 들어가는 화장실 부쓰 같은걸 찾아서요. 그런데 허사였어요. 저는 더욱 급해져가고, 남편에게도 그 느낌이 전이가 되어 둘다 얼굴 노래져서 걸음이 빨라졌죠. 그러나 어디에도 없는 화장실. 남편은 그때부터 저에게 이상한 요구를 하더군요. 약간 후미진 길 (외지긴 해도 틀림없이 사람 지나다니는 길입니다)에서 일을 보라는 거예요, 자기가 망을 본다고. 전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럴 수 없다고 맞섰죠. 망을 보면 뭐합니까. 오는 사람을 어찌 막는단 말입니까. 저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품위를 지켰습니다. 사람은 그렇다치고 길바닥에 서식하는 각종 벌레들 때문에 안돼! 하고 버텼죠. 제가 벌레를 얼마나 무서워 하는지 아는 남편은 그 이상한 요구를 거두고 택시를 잡더군요. 그리고 아까 그 싸얌베버리 호텔로. 남편은 진정한 화장실매니아의 자세로 돌아와 유유히 로비를 가로질러 들어가 저를 화장실에 밀어넣고 자기도 급하게 뛰더군요. 화장실에서 나온 저는 늘 그렇듯이 민망해 하면서 우리 저기 베이커리에서 뭐라도 사먹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했죠. 남편 역시 저를 실망시키지 않고 그냥 나가면 돼. 하더군요.
이리하여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새벽 2시 가까이 되었지만 잠은 오지 않고 우리는 호텔 옆 편의점 있는 골목으로 갔죠. 포장마차들이 파장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즐비하더군요. 이곳에서 우리는 볶음 국수를 사먹었습니다. 당면 같은 거요. 가격은 40밧. 세븐일레븐에서 딤섬 10밧 곁들여서요.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 국수. 태국 와서 태국 음식이라고 제대로 맛있게 먹은 건 이게 처음이었습니다.
이 날의 마감 역시 화려하게 했습니다. 호텔에 들어와서 안건데 호텔 키를 방안에 두고 나왔더군요. 그래서 호텔 방 문 열어달라고 또 직원을 부려먹었죠. 그 사람들 그게 일이고 또 팁도 받으니 좋겠지만 그 호텔 직원들 사이에서 너무 유명해질까봐 우리는 가슴 졸였습니다. 지난번에 얘기한 그 노두리안 노코리안 얘기를 하면서 킬킬대고....
그날 새벽까지 잠이 안오더군요. 그래서 이런 저런 얘기로 화해를 했습니다. 남편에게 다 좋은데 화난다고 실종되는 것만은 이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했죠. 남편은 순순히 그러마 하더군요. 좋은 분위기에서 아침은 밝아오고 배가고파진 저는 6시가 되기만을 기다려 식당으로 뛰어갔습니다. 어제 썩혀버린 아침 티켓을 들고. 직원이 다행히 날짜 찍힌 것을 자세히 안보고 받아주면 9시쯤 내려가서 오늘 날짜 쿠폰 남은 걸로 한번 더. 즉 아침을 두번 먹자는 용의주도한 계획을 품고서. 그러나 아침먹고 들어와서 9시까지 잠깐이라도 눈붙이자던 우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정오 가까이 겨우 눈을 뜬 우리는 급히 체크아웃을 해야했습니다. 부상~
셋째날 낮버전입니다. 이날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수상시장-로즈가든-악어농장을 아우르는 일일투어를 새벽같이 나갔어야 했지만...이미 전날 계획도 상당부분 엉망진창이 되게 했던 우리는 자랑스럽게 저녁5시까지 잤습니다. 아까운 아침 쿠폰 썩히고 점심도 굶고. 아, 태사랑 드나들며 그토록 계획했던 모든 일을 포기하고. 전 제가 먹을 태국 음식의 리스트까지 꼼꼼히 마련해 갔는데 말입니다. 여기서 사족인데 여행을 떠날 때는 함께 계획하고 함께 공부해 가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경우 남편은 미리 일해놓구 가느라 정신없이 바빴고 여행지 선정과 정보공부, 계획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제가 도맡아서 했거든요. 그 결과 남편은 이 여행이 얼마나 소중한 여행인지 실감을 잘 못했구, 저 또한 혼자서 다 아는 체 하며 남편을 질질 끌고 다닌 결과가 되었으니까요. 어쨌든 결혼하고 나서 과감히 중도포기한 대학원 학비로 온 여행인데 밤새 그 수모를 겪은 것은 둘째 치고라도 이렇듯 호텔 방안에서 잠이나 자고 있으려니 자는 와중에도 무지하게 화가 나더군요. 전날 샹그릴라 호텔에서 하는 호라이즌 디너크루즈 예약해 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는 더이상 참을 수 없어 일어나 남편을 깨웠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뚜~ㅇ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제가 전날 토해가며 아파했는데 여지껏 굶기고 있느냐며 상황을 유리하게 몰아가자 이내 옷을 갈아입고 나서더군요. 저는 또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로비를 통과할까 하고 말이죠.(챙피해서리...나참.) 그래서 저는 남편 손에 100밧을 쥐어주며 말했습니다. 어제 호텔 직원들 앞에서 나를 얼마나 무안하게 했는지 생각해 봐라, 두고두고 한국인에 대한 나쁜 인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제 나를 도와 '서'까지 동행했던 그 직원을 만나면 팁으로 주고 아내를 도와줘서 감사했다고 말해라, 이제는 아무 문제 없이 화해한 커플이라는 점을 확실히 각인시켜 달라. 남편도 양심은 있는지 알았다고 하더군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자 뭐, 찾을 것도 없이 바로 그 직원이 서비스 데스크에 떡하니 앉아 있다가 대번에 저희 부부를 알아보고 웃더군요. 그리하여 호텔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은 대충 무마시켰답니다. 택시를 타고 샹그릴라로 갔습니다. 택시비는 80밧 정도.
호텔에 도착하니 좋은 호텔이라 다르더군요. 특히 수영장이. 수영장 옆의 야외 식당도 근사하구요. 수영장 가로질러서 보트가 한척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한눈에 고급 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게 과연 400밧 밖에 안할까? 아, 무슨 소리냐구요. 헬로태국에는 1150밧인가 써있던데 남편이 예약 전화했을 때 400밧이라고 하더라구요. 왠일인가 싶었죠. 하지만 나중에 계산을 할 때 보니 그럼그렇지...400도 1150도 아닌 1,400밧. 남편이 1,400을 400으로 잘못 들은 거였죠. 참고로 1인당 1,400밧 요금 외에도 음료(맥주, 와인 1잔씩), 서비스, 세금 포함 총 3317밧(2인)이나 나왔답니다. 진짜 비싸죠. 그래도 뭐, 호텔에서 잠만 잔 덕분에 많은 돈이 굳어서 이정도쯤 가뿐하게 지출 할 수 있었답니다. (자랑이다~) 그런데 돈은 그렇다 치고 호라이즌 디너크루즈, 돈아깝지 않을 만큼 근사하던걸요. 저희는 예약할 때 야외석으로 부탁했는데 2층이더군요. 1층은 에어콘 나오는 캐빈이구요. 2층에 올라가니 겨우 8개 정도의 테이블이 띄엄띄엄 놓여져 있었습니다. 테이블 세팅은 특급호텔의 그것 답게 흔들거리는 양초와 함께 멋지게 장식되어 있었구 미리 예약했다고 남편이름이 적힌 명패도 근사하게 척 올려져 있구요. 어젯 밤까지 생쇼를 펼쳤던 사람들 답지 않게 갑자기 왕자와 공주가 된 듯 우아한 기분으로 자리에 착석. 직원들의 서비스도 정중하고 1층에 마련된 부페음식을 가져다 먹는데 음식도 정말 맛있었어요. 나중에 메리엇 카페도 갔었는데 거기보다 더 맛있었어요. 초밥도 싱싱하고 태국 음식도 우리 입맛에 맞게 조리되어 있고...디져트로 나오는 케익도 많던데 제가 좋아하는 치즈케익은 금방 동이나 버리더군요. 전날 많이 토하고 종일 굶어 속이 말이 아니었는데 크램차우더 스프 맛도 정말 좋아서 굿이었구... 잃어버린 카메라 덕분에 멋진 야경과 배안의 모습, 조명발 받은 사원들의 독특한 전경도 찍을 수 없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습니다. 분위기는 너무나 조용하고 낭만적이었습니다. 음악만이 잔잔하게 깔려서 마치 서양 영화에 나오는 분위기 있는 요트 여행의 한장면 같았죠. 한번쯤 누려볼 만한 사치더군요. 다만, 식사가 다 끝나갈 때쯤 아랫층에 있던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갑자기 위로 올라오면서부터 이 분위기는 깨졌죠. 배 앞머리로 가서 사진찍고 빈 테이블 점령해서 자리에 신발 벗고 두다리 올리고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너무 시끄럽더군요. 갑자기 아수라장이 된 것처럼 웃고 떠들고 박수치고 소리지르며 이름부르고 무슨 유머 시리즈같은 거 얘기하며 좋아하는데 즐거운 모습이야 보기 좋지만, 또 여행왔으니까 서로들 들뜬 기분인 것도 좋지만 진짜 민망할 정도로 시끄러웠거든요. 앞쪽 테이블에서 아직 식사를 못끝냈거나 차를 마시고 있는 서양인 노부부 테이블 틈으로 기어코 끼어들어가서 (그쪽이 앞쪽이라 전망은 최고였거든요) 후레쉬 팡팡 터뜨리며 사진찍고 한마디 미안하다거나 실례한다는 말조차 없자 찌푸려지는 그들 부부의 표정을 저희 부부도 똑똑히 보고야 말았습니다. 덕분에 한층 낭만적인 분위기에 화해 노선을 걷던 저희 부부도 다시 입다물고 각자 시선을 다른 곳에 고정시킨 채 바늘방석처럼 앉아 있었죠. 크루즈가 끝나고 많은 비용을 지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참 좋은 시간이었고 나중에 늙으신 부모님 모시고 와서 꼭 한번 호강시켜 드리고 싶은 그런 크루즈였습니다. 돌아올 때는 호텔 옆 어두운 골목으로 200미터쯤 가면 있는 싸판딱신 역에서 BTS를 탔습니다. 싸얌에서 내려 일회용카메라부터 한대 구입했죠. 디너크루즈하면서 사진기가 없어 정말 안타까웠거든요. 우리는 싸얌센터 등을 돌며 밤거리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 때 보니 국립경기장 역에서 내리면 바로 마분콩과 연결이 되더군요. 우리는 내일 이곳에 와보자고 합의하고 그 유명한 브라운 슈가를 향해 출발합니다. 원래 전날 밤에 갈 코스였는데 싸우느라 못갔었죠. 남편이 헬로태국 책 겉표지 한번 안보고 태국에 왔는데 그 밤에 호텔까지 걸어서 찾아오느라 스쿰윗과 빠뚜남, 월텟 인근 지역을 무지하게 헤메다닌 모양입니다. 이날은 자기만 따라오라고 큰 소리 치더군요. 방콕 시내 지리를 다 알아버렸다나... 암튼 남편 말이 브라운 슈가는 걸어가긴 힘든 거리라며 택시를 타자고 하더군요. 택시비 60밧 가까이 주고 브라운 슈가 앞에 내려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더 작고 어두컴컴한 곳. 소문대로 연주는 훌륭합니다. 남편이 음악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라 만족하더라구요. 여기서 나와 잠깐 그 랑쑤언 거리를 잠시 걸었죠. Inn도 하나 있고 여행사 많고 아담한 씨푸드레스토랑(살아있는 새우와 게 등이 어항속에 잔뜩 들어있는), 예쁜 카페들이 있어 여행자들에겐 참 좋은 거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는 전날 밤의 여파로 밤낮이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에 어디 다른 데를 더 가보기로 했죠. 저는 허리우드, 남편은 차이나타운의 야시장에서 해산물을 먹자고 했죠. 저는 오랜만에 남편의 의견을 따라주기로 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사람 좋은 웃음을 웃는 나이든 기사분께 차이나타운이라고 하자 못알아듣더군요. 난감해져서 차이나타운 이라고 여러번 얘기하자 웃으며 아는 척을 하고 출발하길래 안심하고 있었죠. 그런데 아무리 가도 짜장면 글씨가 안나오는 겁니다. 이상타, 내 많은 차이나타운을 가봤지만 빨간색과 한자가 나와야 차이나타운인데....아저씨는 다왔다는 시늉을 하는데 도저히 차이나타운이라고 믿어지질 않아 그냥 있었더니 골목으로 들어가더군요. 아항, 저 골목으로 들어가면 차이나타운이 나오는구나....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몇몇 포장마차 만이 불을 밝힌 어두운 거리. 그래 거기서 내려 무작정 걸었습니다. 아직도 여기가 차이나타운이라는 일말의 믿음을 버리지 않고...조금 더 걸어가면 빨간 간판이 나오겠지, 하구요. 그런데 한참을 걸어가자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싸얌베버리 호텔. 그렇습니다! 우리는 차이나타운으로 내려가기는 커녕 공항쪽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목적지는 허리우드로 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 택시로 불과 5분 거리였으니까요. 허리우드 바로 옆에 댄스피버가 있어 잠시 선택에 혼란을 느꼈지만 손님이 훨 많아 보이는 허리우드로 들어섰죠. 귀가 찢어질 듯한 음악. 이미 꽉찬 좌석. 눈요기로 충분한 가수들의 춤과 노래. 전 평소엔 가무를 그리 즐기지 않지만 이렇게 멍석이 깔아지면 서슴지 않고 뛰어들어 놉니다. 그러나 이 둔팅한 남편은 마시던 맥주도 그대로 다 남겨둔채 그저 나가자고만 하더군요. 남편은 브라운슈가의 재즈는 맘에 들어도 이런 아그들 뮤직은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전 백지영의 데쉬가 한국어로 안무까지 카피되어 불려지고 있는 한참 신나는 장면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와야 했죠. 순식간에 700밧만 날리구요. 신나게 놀고 싶었는데...어젯밤의 스트레스도 날릴겸...그런데 아쉽고 뭐하고 할 틈도 없이 또 황당한 경우가 생겼습니다. 남편 성화에 나오기는 했는데 그만 화장실 가는 걸 깜박하고 떠밀려 나온 겁니다. 연애 시절부터 남편은 화장실매니아였어요. 제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화장시일~ 하면 전방 500미터 내에 있는 화장실을 기차게 찾아내서 해결해주곤 했죠. 그곳이 KFC든 맥도날이든 상관 않고 남편은 주문 하나 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2층으로 곧장 올라간 뒤 천연덕스럽게 저를 화장실에 밀어넣고 기다리는 편이죠. 그래서 제가 또 화장실을 찾자 그 화장실에 관한 한 예민한 레이다를 작동시키며 한없이 걷기 시작했죠. 불켜진 건물이나 돈내고 들어가는 화장실 부쓰 같은걸 찾아서요. 그런데 허사였어요. 저는 더욱 급해져가고, 남편에게도 그 느낌이 전이가 되어 둘다 얼굴 노래져서 걸음이 빨라졌죠. 그러나 어디에도 없는 화장실. 남편은 그때부터 저에게 이상한 요구를 하더군요. 약간 후미진 길 (외지긴 해도 틀림없이 사람 지나다니는 길입니다)에서 일을 보라는 거예요, 자기가 망을 본다고. 전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럴 수 없다고 맞섰죠. 망을 보면 뭐합니까. 오는 사람을 어찌 막는단 말입니까. 저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품위를 지켰습니다. 사람은 그렇다치고 길바닥에 서식하는 각종 벌레들 때문에 안돼! 하고 버텼죠. 제가 벌레를 얼마나 무서워 하는지 아는 남편은 그 이상한 요구를 거두고 택시를 잡더군요. 그리고 아까 그 싸얌베버리 호텔로. 남편은 진정한 화장실매니아의 자세로 돌아와 유유히 로비를 가로질러 들어가 저를 화장실에 밀어넣고 자기도 급하게 뛰더군요. 화장실에서 나온 저는 늘 그렇듯이 민망해 하면서 우리 저기 베이커리에서 뭐라도 사먹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했죠. 남편 역시 저를 실망시키지 않고 그냥 나가면 돼. 하더군요.
이리하여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새벽 2시 가까이 되었지만 잠은 오지 않고 우리는 호텔 옆 편의점 있는 골목으로 갔죠. 포장마차들이 파장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즐비하더군요. 이곳에서 우리는 볶음 국수를 사먹었습니다. 당면 같은 거요. 가격은 40밧. 세븐일레븐에서 딤섬 10밧 곁들여서요.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 국수. 태국 와서 태국 음식이라고 제대로 맛있게 먹은 건 이게 처음이었습니다.
이 날의 마감 역시 화려하게 했습니다. 호텔에 들어와서 안건데 호텔 키를 방안에 두고 나왔더군요. 그래서 호텔 방 문 열어달라고 또 직원을 부려먹었죠. 그 사람들 그게 일이고 또 팁도 받으니 좋겠지만 그 호텔 직원들 사이에서 너무 유명해질까봐 우리는 가슴 졸였습니다. 지난번에 얘기한 그 노두리안 노코리안 얘기를 하면서 킬킬대고....
그날 새벽까지 잠이 안오더군요. 그래서 이런 저런 얘기로 화해를 했습니다. 남편에게 다 좋은데 화난다고 실종되는 것만은 이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했죠. 남편은 순순히 그러마 하더군요. 좋은 분위기에서 아침은 밝아오고 배가고파진 저는 6시가 되기만을 기다려 식당으로 뛰어갔습니다. 어제 썩혀버린 아침 티켓을 들고. 직원이 다행히 날짜 찍힌 것을 자세히 안보고 받아주면 9시쯤 내려가서 오늘 날짜 쿠폰 남은 걸로 한번 더. 즉 아침을 두번 먹자는 용의주도한 계획을 품고서. 그러나 아침먹고 들어와서 9시까지 잠깐이라도 눈붙이자던 우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정오 가까이 겨우 눈을 뜬 우리는 급히 체크아웃을 해야했습니다. 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