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는 8박9일 여행기 5 - 피피아일랜드빌리지.
사진을 첨부하려고 연구해봤는데 어렵네요. 아쉬운대로 저희 홈피에서 피피아일랜드빌리지의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만드는 중이라서 어수선하지만 여행 방으로 들어가서 방콕피피 선택하면 사진보기를 눌러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완성이긴 하나 보라카이와 괌 여행기, 사진도 보실 수 있습니다. 위에 있는 단추를 누르시면 바로 가실 수 있구요. 주소는 http://myhome.hananet.net/~ganggoon 입니다.
여러 분들의 관심에 감사드리며 여행기를 계속하지요. 5편입니다.
선착장에서 제일 먼저 피피아일랜드빌리지로 가냐고 묻더군요. 여행사에서 준 티켓에 그렇게 써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하자 빌리지 로고가 새겨진 스티커를 저희 가슴과 짐짝에 붙여줬습니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행선지에 따라 스티커를 하나씩들 붙이고 있더군요.
제트크루즈라고 안다만 선박회사에서 운영하는 배였는데 쏭썸 선박회사의 배와 같은 선착장을 쓰는 배죠. 저희도 갈 때는 제트크루즈를 타고 빌리지로 갔고 나올 때는 톤싸이에서 쏭썸의 배를 타고 나왔어요. 표는 왕복으로 한번에 샀지만 서로 호환이 된다 이거죠.
저흰 뙤약볕 아래서 오래 대화를 나눈 뒤라 무척 목이 말랐어요. 점심까지 굶었으니 배도 고프구. 그래서 배를 타면 준다는 음료와 과일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죠.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호사는 없더군요. 일일투어 하는 아침 배에만 해당되는 얘긴가 봐요.
1시간쯤 갔을까, 창문 너머로 피피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음이 설레더군요. 그동안 방콕 밤거리, 호텔 방안, 푸켓 터미널 앞 우중충한 공사장에서 아까운 여행을 다 망쳤으니 아쉬움과 함께 피피에선 진짜 자알 지내 봐야쥐, 하는 굳은 다짐이 교차했어요.
피피섬 톤싸이 부두가 가까워졌다 싶은데 배가 서더니 사람들이 줄지어 밖으로 나가길래 첨엔 우린 피피아일랜드빌리지까지 가니까 그냥 앉아 있으면 돼, 싶었어요. 그러나 눈치를 보아하니 전부 다 내려야 하는 분위기. 그래서 선실을 나와보니까 빌리지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피켓을 들고 애타게 아일랜드빌리지! 하고 소리를 지르며 서있더군요. 저희는 손을 번쩍 들었어요. 그리고 하얗고 작은 보트로 옮겨 탔죠. 이 때부터 다들 사진 찍고 감탄하고...서양인들은 그 새를 못참고 뱃머리에 드러누워 선탠하기 바쁘고. 나참, 그 새 수영복 차림으로 싹 바뀌어서 말예요.
빌리지에 가까이 가자 비치가 한눈에 들어왔어요. 높은 건물 없이 방갈로들만 있어서 그런지 첫눈에는 그저 그런게...저기 뭐가 있을까 싶더군요. 곧이어 아주 작은 나무 배가 우리를 실어 날랐습니다. 짐 실은 배 한척, 사람 실은 배 한척.
배에서 내리자마자 여러 직원들이 일렬로 서서 우리를 환영해주었습니다. 웬 꽃한송이씩을 주더라구요. 빌리지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이국적인 꽃한송이에 첫인상부터 100점 이었죠. 알고보니 꽃이 주가 아니라 물수건이 주인공이었습니다. 물수건 사이에 꽃을 둘둘 말아 건넨 것이었죠. 작은 것이지만 멀고먼 길을 달려 온 사람에게는 참 정성스러운 배려로 느껴졌습니다.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테이블에 앉자 체크인을 해주었습니다. 역시 그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파인쥬스 한잔과 함께. 우리는 서울에서 가져온 인터넷 바우쳐를 내밀었죠. 곧장 아침쿠폰을 주더군요. 체크아웃 할 때 몇시 배를 이용할 건지 묻던데 배는 7시반, 11시반 두번 있어요. 저희는 11시 배로 톤싸이까지 가겠다고 했습니다.(무료 서비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객실로.
우리 방갈로는 두번째 줄이었고 마사지샵이 있는 쪽이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엔 뭐, 빌딩으로 된 호텔만 들어가 봐서 그런지 여기 원시인 나라 아니야, 했는데 방갈로라는 게 사생활 보호되고 무지하게 좋더군요. 꼭 둘만의 별장에 온 것 같았어요.
두번 째 줄이지만 첫번째 줄과 어긋나게 앉아 있어서 바다 전망 끝내주요. 방갈로 현관은 전면 유리로 되어 있는데 커튼도 있고 서로 현관 각도가 다 달라서 남들이 들여다 볼 염려 없고 방에 들어가 현관 쪽을 바라보자 그 통유리 너머로 파란 바다가 넘실~ 아! 탄성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방갈로와 비치 사이의 길쭉한 정원은 어찌나 잘 정돈되어 있는지, 줄맞춰 심어 놓은듯한 코코넛 트리와 함께 그 너머 보이는 푸름은 진짜 한폭의 그림이었답니다. 방갈로와 방갈로 사이의 뒷편 정원에도 이국적인 꽃들이 활짝 피어 어디 한군데 그림 아닌 곳이 없더군요.
방갈로의 모습을 그려보자면 우선 입구에는 나무와 항아리들로 장식되어 있는 나무 계단이 있어요. 이 계단을 올라서면 넓은 데크가 있고 비치의자 두개가 놓여있죠. 코코넛트리를 잘라 만든 작은 탁자 두개와 함께. 거기서 또 3-4개의 계단을 오르면 이번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또다른 의자와 테이블 세트. 그리고 현관이 있습니다.
방은 넓은 편이고 옷장 문을 열면 목욕 가운과 짚새기로 만든 것 같은 아주 특이한 실내화 두켤레. 이건 판매용인데 신고 사진 좀 찍었죠. 실내에 놓여진 티테이블 위에도 과일 바구니가 놓여져 있는데 망고스틴이랑 포도, 바나나 등등. 물 두병이 무료로 제공 되구요. 화장실 쪽은 서양 사람들 취향에 맞게 손씻는 세면대 코너가 따로 있고 그 양 옆으로 문이 두개 있는데 한 쪽 문을 열면 샤워 부쓰, 한쪽 문을 열면 볼일 보는 곳. 모두 넓고 창 밖으로 풍경을 바라 볼 수 있게 되어 있구요. 여기서 도자기 병에 담아 주는 목욕 용품은 코코넛 향이 너무나 향기롭답니다. 별하나짜리 호텔에서 여관용 일회용 샴푸 쓰다가 이걸 보니 행복하더군요.
오후 배로 들어갔기 때문에 시간이 정말 아까웠어요. 싸움만 안했어도 일찌감치 들어와 바다 속에 있을텐데. 얼른 나와서 사진을 안찍을래야 안찍을 수 없는 풍경을 담느라 바빴습니다. 자동카메라는 잃어버렸지만 비장의 무기로 들고 간 수동카메라를 썼죠.
그리고 바다에 뛰어들었어요. 제가 생각한 잔잔하고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바다는 아니었지만 (아마도 우기라서 그렇겠지요) 무엇보다 깊이가 완만해서 가족이 함께 오기에는 그만이란 생각이 들었어여. 800미터 전방까지 어른 허리께 오는 바다가 쭈욱 펼쳐져 있죠.
롱비치는 아니지만 비치의 모양도 길쭉하게 되어 있어 참 끝내 주는 곳을 전세내서 빌리지를 지었구나 싶었어요. 바다에서 얼마 놀지도 못했는데 저녁시간, 무지하게 굶은 우리는 허기를 못이기고 밥을 먹기로 합의합니다.
정말 분위기 내고 싶은 맘이 간절해 수개월 만에 첨으로 립스틱도 바르고 (전 맨얼굴파. 특히 여행 중엔) 예쁜 탑이랑 스커트도 입고 레스토랑으로 진격.
입구에 진열된 해물들을 보고 큰 새우 세마리는 갈릭페퍼 소스로, 파란 색 도는 게는 뿌팟뽕커리로 주문하고 옐로우치킨커리 라는 것을 추가했죠. 밥이랑. 맥주랑 칵테일도 한잔씩 하구요. 1,100밧 정도 나오더군요. 맛있고 분위기도 좋고. 그런데 커리는 약간 먹기 힘들었어요. 화장품 냄새와도 흡사한 향 때문에. 저녁을 먹고 샵을 구경했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이색적인 가게 안에 각종 기념품, 옷 들이 있지만 아시죠? 비싸요.
식당 뒷편으로 작은 분수, 오솔길처럼 정겨운 길들, 다이브샵, 그리고 밤바다. 아무도 없는 밤바다의 비치의자에 누워 그냥 파도 소릴 들었습니다. 좋더군요. 여긴 의자도 아주 띄엄띄엄 있어서 혹 누구 하나 있더라도 서로서로에게 전혀 방해가 안됩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한잔 할 수 있는 바에 가서 맥주를 마셨죠. 신선 된 듯한 기분으로.
그런데 말이져, 좋은 호텔들은 어디가나 식당만 가면 룸넘버? 하고 묻던데 왜 그런거죠? 우리는 이렇게 해석했어요. 방번호 별로 얼마치나 먹었는지, 특히 팁은 얼마나 내놓았는지 다 꼼꼼히 기록해 둔 다음 손님 등급을 가리는 게 아닐까. 히히. 저희 첨 방갈로 들어올 때 포터에게 팁을 100밧이나 주었기 땜에 밀리지 않을 자신 있었다 이겁니다. 우등 손님이야, 우등 손님. 우리는 뿌듯해졌져. 큭큭. 방에 들어와서 알았는데 포터에게 팁 줄 잔돈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저는 동전을 모아서 15밧 정도 만들었는데 울 신랑이 동전은 팁으로 주는 거 아주 실례야. 하더군요. 아이고, 아는 것도 많으셔라. 그러고 보니 저라도 기분 나쁠 것 같기에 그냥 에라 모르겠다, 여기까지 픽업도 공짜로 해줬는데, 하고 100밧을 쐈습니다. 제 생각에 태국은 필리핀등 다른 여행지에 비해 무리하게 팁을 요구하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더군요. 주면 받고 안줘도 언짢은 내색은 안합디다. 필리핀에선 아주 칠듯이 당당하게 요구하던데.
바에서 나와 피곤했지만 이 밤이 너무나 아까워 우리는 아까 들어올 때부터 제일 탐나던 방갈로 앞 데크의 긴의자에 누워 서비스과일과 함께 가방 속의 맥주를 꺼내 마셨습니다. 멋진 별장에 놀러와서 편안히 휴식하는 여름밤의 기분이라 할까요. 구름 위에 누워 있는 것처럼 참 좋더군요. 사람이 가까이 가도 여전히 첨들어 보는 이쁜 목소리로 뾰로롱 뾰로롱 노래를 불러주는 새소리. 잊을 수 없는 시원한 바람. 에어콘도 필요없지요. 멀리 파도 소리와... 무엇보다 사람들 소리가 안들리니까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까지 다 들리고 평온합니다.
임신 하면 꼭 다시 한번 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임산부들은 몸도 힘들지만 스트레스에도 약하다면서요. 저희가 보기엔 스트레스를 한번에 날려버리기에 그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몸도 맘도 지쳤을 때 와서 한 며칠 여기 이 의자에 누워서 하루종일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그러다보면 병 같은 거 있었어도 다 나아서 갈 것 같지 않아? 언제 우리가 사람들 틈에서 소음에 시달리면서 부대꼈는지 아주 영영 잊어버리게 될 것 같아.... 소근소근.
담날 아침 부페에서도 좋았어요. 음식도 맛있고, 깔끔하고. 짜장면 맛 나는 볶음(혹은 비빔)국수가 특히 맛있었어여.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서둘러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바다로 다시한번 돌진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얕아서 수영 재미는 못느끼겠더라구요, 그래서 준비해 간 튜브공을 가지고 수구라는 것을 단 둘이서 했죠. 그러다가 수영하고 싶어 근질근질 하길래 수영장으로.
수영장은 작은 편인데 그래도 손님이 워낙 적어서 놀기엔 그만입니다. 여기 손님 정말 적었어요. 비수기라 그런지. 손님 수보다 직원 수가 더 많아 보이더라구요. 그리고 여기 직원들 정말 친절합니다. 아침에 만나면 누구든지 인사하고, 심지어 같은 직원들 끼리도 여기저기서 굿모닝. 굿모닝 아닐 수가 없게 되어 있더군요. 아침 일찍 직원들이 정원 손질하고 곳곳에 청소 하러 다닙니다. 자전거를 타고. 그것마저도 한가로운 풍경으로 보이더군요. 비수기라 그런지 한 쪽에서 방갈로 하나를 수리하고 있는데 어찌나 조용조용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얼마 안되는 투숙객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입니다.
수영장에서 3살 남짓한 꼬마가 엄마랑 놀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또 친절한 직원 하나가 나타나 튜브공 하나를 수줍게 선사하고 갑니다. 꼬마는 그 공 하나 가지고 참 오랫동안 신나게 놀더군요. 손님이 적다보니 서로 눈인사 한번씩 하고나면 대번에 친구처럼 어울려서 놉니다. 우리도 이 꼬마 덕분에 자연스럽게 서로 웃고 함께 놀았죠.
떠날 시간이 다가올수록 아쉬운 마음. 저희는 다음에 꼭 다시 오기 위해서 스노클링이나 그밖에 빌리지에서 참가 가능한 투어의 종류, 마사지등 편의시설에 대해 꼼꼼히 노트하고 짐까지 싸둔 뒤에 비치로 다시 나갔습니다. 정원에는 바닷가에서 바베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시설도 있고 우리 시골 원두막 같은 평상도 한쪽에 놓여져 있는데 여기에 대자로 누워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다시 한번 정말 좋구나 하는 느낌이 확 들더군요.
그 넓은 비치에 사람도 어쩌다 한두명. 한 폭의 그림 속에 불쑥 들어와 있는 것 같아 다시는 나가고 싶지 않은 그런 곳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빌리지를 나오면서 보니 대부분 사람들은 저희가 반한 그 방갈로 앞 의자에 누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그도 아님 비치에 나가 의자에 누워 자거나, 수영장 썬베드에서 책읽기...다들 참 단조로운 일들에 심취해 있는데 그걸 보면서 정말 부러웠습니다. 꼭 다시 가야쥐!!!
배를 타고 나오는 길에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여자와 남자 커플이 동행했습니다. 배를 오르내릴 때 남자가 안아서 돕는데 불편한 몸으로도 전혀 일반인과 다르지 않게 여행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니 아, 우리나라 장애우들도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사족입니다만.
암튼 다들 빌리지를 뒤로 하고 떠나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또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아마도 일상에서 결코 누릴 수 없는, 그저 꿈만 꿔오던 그 자유와 휴식을 향해서겠죠......
ps. 이 곳에 가시는 분은 반드시 맥주와 간식, 과일 정도 사가시면 좋겠더군요. 안에서는 살 데도 마땅치 않고 비싸니까요.
여러 분들의 관심에 감사드리며 여행기를 계속하지요. 5편입니다.
선착장에서 제일 먼저 피피아일랜드빌리지로 가냐고 묻더군요. 여행사에서 준 티켓에 그렇게 써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하자 빌리지 로고가 새겨진 스티커를 저희 가슴과 짐짝에 붙여줬습니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행선지에 따라 스티커를 하나씩들 붙이고 있더군요.
제트크루즈라고 안다만 선박회사에서 운영하는 배였는데 쏭썸 선박회사의 배와 같은 선착장을 쓰는 배죠. 저희도 갈 때는 제트크루즈를 타고 빌리지로 갔고 나올 때는 톤싸이에서 쏭썸의 배를 타고 나왔어요. 표는 왕복으로 한번에 샀지만 서로 호환이 된다 이거죠.
저흰 뙤약볕 아래서 오래 대화를 나눈 뒤라 무척 목이 말랐어요. 점심까지 굶었으니 배도 고프구. 그래서 배를 타면 준다는 음료와 과일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죠.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호사는 없더군요. 일일투어 하는 아침 배에만 해당되는 얘긴가 봐요.
1시간쯤 갔을까, 창문 너머로 피피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음이 설레더군요. 그동안 방콕 밤거리, 호텔 방안, 푸켓 터미널 앞 우중충한 공사장에서 아까운 여행을 다 망쳤으니 아쉬움과 함께 피피에선 진짜 자알 지내 봐야쥐, 하는 굳은 다짐이 교차했어요.
피피섬 톤싸이 부두가 가까워졌다 싶은데 배가 서더니 사람들이 줄지어 밖으로 나가길래 첨엔 우린 피피아일랜드빌리지까지 가니까 그냥 앉아 있으면 돼, 싶었어요. 그러나 눈치를 보아하니 전부 다 내려야 하는 분위기. 그래서 선실을 나와보니까 빌리지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피켓을 들고 애타게 아일랜드빌리지! 하고 소리를 지르며 서있더군요. 저희는 손을 번쩍 들었어요. 그리고 하얗고 작은 보트로 옮겨 탔죠. 이 때부터 다들 사진 찍고 감탄하고...서양인들은 그 새를 못참고 뱃머리에 드러누워 선탠하기 바쁘고. 나참, 그 새 수영복 차림으로 싹 바뀌어서 말예요.
빌리지에 가까이 가자 비치가 한눈에 들어왔어요. 높은 건물 없이 방갈로들만 있어서 그런지 첫눈에는 그저 그런게...저기 뭐가 있을까 싶더군요. 곧이어 아주 작은 나무 배가 우리를 실어 날랐습니다. 짐 실은 배 한척, 사람 실은 배 한척.
배에서 내리자마자 여러 직원들이 일렬로 서서 우리를 환영해주었습니다. 웬 꽃한송이씩을 주더라구요. 빌리지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이국적인 꽃한송이에 첫인상부터 100점 이었죠. 알고보니 꽃이 주가 아니라 물수건이 주인공이었습니다. 물수건 사이에 꽃을 둘둘 말아 건넨 것이었죠. 작은 것이지만 멀고먼 길을 달려 온 사람에게는 참 정성스러운 배려로 느껴졌습니다.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테이블에 앉자 체크인을 해주었습니다. 역시 그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파인쥬스 한잔과 함께. 우리는 서울에서 가져온 인터넷 바우쳐를 내밀었죠. 곧장 아침쿠폰을 주더군요. 체크아웃 할 때 몇시 배를 이용할 건지 묻던데 배는 7시반, 11시반 두번 있어요. 저희는 11시 배로 톤싸이까지 가겠다고 했습니다.(무료 서비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객실로.
우리 방갈로는 두번째 줄이었고 마사지샵이 있는 쪽이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엔 뭐, 빌딩으로 된 호텔만 들어가 봐서 그런지 여기 원시인 나라 아니야, 했는데 방갈로라는 게 사생활 보호되고 무지하게 좋더군요. 꼭 둘만의 별장에 온 것 같았어요.
두번 째 줄이지만 첫번째 줄과 어긋나게 앉아 있어서 바다 전망 끝내주요. 방갈로 현관은 전면 유리로 되어 있는데 커튼도 있고 서로 현관 각도가 다 달라서 남들이 들여다 볼 염려 없고 방에 들어가 현관 쪽을 바라보자 그 통유리 너머로 파란 바다가 넘실~ 아! 탄성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방갈로와 비치 사이의 길쭉한 정원은 어찌나 잘 정돈되어 있는지, 줄맞춰 심어 놓은듯한 코코넛 트리와 함께 그 너머 보이는 푸름은 진짜 한폭의 그림이었답니다. 방갈로와 방갈로 사이의 뒷편 정원에도 이국적인 꽃들이 활짝 피어 어디 한군데 그림 아닌 곳이 없더군요.
방갈로의 모습을 그려보자면 우선 입구에는 나무와 항아리들로 장식되어 있는 나무 계단이 있어요. 이 계단을 올라서면 넓은 데크가 있고 비치의자 두개가 놓여있죠. 코코넛트리를 잘라 만든 작은 탁자 두개와 함께. 거기서 또 3-4개의 계단을 오르면 이번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또다른 의자와 테이블 세트. 그리고 현관이 있습니다.
방은 넓은 편이고 옷장 문을 열면 목욕 가운과 짚새기로 만든 것 같은 아주 특이한 실내화 두켤레. 이건 판매용인데 신고 사진 좀 찍었죠. 실내에 놓여진 티테이블 위에도 과일 바구니가 놓여져 있는데 망고스틴이랑 포도, 바나나 등등. 물 두병이 무료로 제공 되구요. 화장실 쪽은 서양 사람들 취향에 맞게 손씻는 세면대 코너가 따로 있고 그 양 옆으로 문이 두개 있는데 한 쪽 문을 열면 샤워 부쓰, 한쪽 문을 열면 볼일 보는 곳. 모두 넓고 창 밖으로 풍경을 바라 볼 수 있게 되어 있구요. 여기서 도자기 병에 담아 주는 목욕 용품은 코코넛 향이 너무나 향기롭답니다. 별하나짜리 호텔에서 여관용 일회용 샴푸 쓰다가 이걸 보니 행복하더군요.
오후 배로 들어갔기 때문에 시간이 정말 아까웠어요. 싸움만 안했어도 일찌감치 들어와 바다 속에 있을텐데. 얼른 나와서 사진을 안찍을래야 안찍을 수 없는 풍경을 담느라 바빴습니다. 자동카메라는 잃어버렸지만 비장의 무기로 들고 간 수동카메라를 썼죠.
그리고 바다에 뛰어들었어요. 제가 생각한 잔잔하고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바다는 아니었지만 (아마도 우기라서 그렇겠지요) 무엇보다 깊이가 완만해서 가족이 함께 오기에는 그만이란 생각이 들었어여. 800미터 전방까지 어른 허리께 오는 바다가 쭈욱 펼쳐져 있죠.
롱비치는 아니지만 비치의 모양도 길쭉하게 되어 있어 참 끝내 주는 곳을 전세내서 빌리지를 지었구나 싶었어요. 바다에서 얼마 놀지도 못했는데 저녁시간, 무지하게 굶은 우리는 허기를 못이기고 밥을 먹기로 합의합니다.
정말 분위기 내고 싶은 맘이 간절해 수개월 만에 첨으로 립스틱도 바르고 (전 맨얼굴파. 특히 여행 중엔) 예쁜 탑이랑 스커트도 입고 레스토랑으로 진격.
입구에 진열된 해물들을 보고 큰 새우 세마리는 갈릭페퍼 소스로, 파란 색 도는 게는 뿌팟뽕커리로 주문하고 옐로우치킨커리 라는 것을 추가했죠. 밥이랑. 맥주랑 칵테일도 한잔씩 하구요. 1,100밧 정도 나오더군요. 맛있고 분위기도 좋고. 그런데 커리는 약간 먹기 힘들었어요. 화장품 냄새와도 흡사한 향 때문에. 저녁을 먹고 샵을 구경했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이색적인 가게 안에 각종 기념품, 옷 들이 있지만 아시죠? 비싸요.
식당 뒷편으로 작은 분수, 오솔길처럼 정겨운 길들, 다이브샵, 그리고 밤바다. 아무도 없는 밤바다의 비치의자에 누워 그냥 파도 소릴 들었습니다. 좋더군요. 여긴 의자도 아주 띄엄띄엄 있어서 혹 누구 하나 있더라도 서로서로에게 전혀 방해가 안됩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한잔 할 수 있는 바에 가서 맥주를 마셨죠. 신선 된 듯한 기분으로.
그런데 말이져, 좋은 호텔들은 어디가나 식당만 가면 룸넘버? 하고 묻던데 왜 그런거죠? 우리는 이렇게 해석했어요. 방번호 별로 얼마치나 먹었는지, 특히 팁은 얼마나 내놓았는지 다 꼼꼼히 기록해 둔 다음 손님 등급을 가리는 게 아닐까. 히히. 저희 첨 방갈로 들어올 때 포터에게 팁을 100밧이나 주었기 땜에 밀리지 않을 자신 있었다 이겁니다. 우등 손님이야, 우등 손님. 우리는 뿌듯해졌져. 큭큭. 방에 들어와서 알았는데 포터에게 팁 줄 잔돈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저는 동전을 모아서 15밧 정도 만들었는데 울 신랑이 동전은 팁으로 주는 거 아주 실례야. 하더군요. 아이고, 아는 것도 많으셔라. 그러고 보니 저라도 기분 나쁠 것 같기에 그냥 에라 모르겠다, 여기까지 픽업도 공짜로 해줬는데, 하고 100밧을 쐈습니다. 제 생각에 태국은 필리핀등 다른 여행지에 비해 무리하게 팁을 요구하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더군요. 주면 받고 안줘도 언짢은 내색은 안합디다. 필리핀에선 아주 칠듯이 당당하게 요구하던데.
바에서 나와 피곤했지만 이 밤이 너무나 아까워 우리는 아까 들어올 때부터 제일 탐나던 방갈로 앞 데크의 긴의자에 누워 서비스과일과 함께 가방 속의 맥주를 꺼내 마셨습니다. 멋진 별장에 놀러와서 편안히 휴식하는 여름밤의 기분이라 할까요. 구름 위에 누워 있는 것처럼 참 좋더군요. 사람이 가까이 가도 여전히 첨들어 보는 이쁜 목소리로 뾰로롱 뾰로롱 노래를 불러주는 새소리. 잊을 수 없는 시원한 바람. 에어콘도 필요없지요. 멀리 파도 소리와... 무엇보다 사람들 소리가 안들리니까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까지 다 들리고 평온합니다.
임신 하면 꼭 다시 한번 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임산부들은 몸도 힘들지만 스트레스에도 약하다면서요. 저희가 보기엔 스트레스를 한번에 날려버리기에 그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몸도 맘도 지쳤을 때 와서 한 며칠 여기 이 의자에 누워서 하루종일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그러다보면 병 같은 거 있었어도 다 나아서 갈 것 같지 않아? 언제 우리가 사람들 틈에서 소음에 시달리면서 부대꼈는지 아주 영영 잊어버리게 될 것 같아.... 소근소근.
담날 아침 부페에서도 좋았어요. 음식도 맛있고, 깔끔하고. 짜장면 맛 나는 볶음(혹은 비빔)국수가 특히 맛있었어여.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서둘러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바다로 다시한번 돌진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얕아서 수영 재미는 못느끼겠더라구요, 그래서 준비해 간 튜브공을 가지고 수구라는 것을 단 둘이서 했죠. 그러다가 수영하고 싶어 근질근질 하길래 수영장으로.
수영장은 작은 편인데 그래도 손님이 워낙 적어서 놀기엔 그만입니다. 여기 손님 정말 적었어요. 비수기라 그런지. 손님 수보다 직원 수가 더 많아 보이더라구요. 그리고 여기 직원들 정말 친절합니다. 아침에 만나면 누구든지 인사하고, 심지어 같은 직원들 끼리도 여기저기서 굿모닝. 굿모닝 아닐 수가 없게 되어 있더군요. 아침 일찍 직원들이 정원 손질하고 곳곳에 청소 하러 다닙니다. 자전거를 타고. 그것마저도 한가로운 풍경으로 보이더군요. 비수기라 그런지 한 쪽에서 방갈로 하나를 수리하고 있는데 어찌나 조용조용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얼마 안되는 투숙객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입니다.
수영장에서 3살 남짓한 꼬마가 엄마랑 놀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또 친절한 직원 하나가 나타나 튜브공 하나를 수줍게 선사하고 갑니다. 꼬마는 그 공 하나 가지고 참 오랫동안 신나게 놀더군요. 손님이 적다보니 서로 눈인사 한번씩 하고나면 대번에 친구처럼 어울려서 놉니다. 우리도 이 꼬마 덕분에 자연스럽게 서로 웃고 함께 놀았죠.
떠날 시간이 다가올수록 아쉬운 마음. 저희는 다음에 꼭 다시 오기 위해서 스노클링이나 그밖에 빌리지에서 참가 가능한 투어의 종류, 마사지등 편의시설에 대해 꼼꼼히 노트하고 짐까지 싸둔 뒤에 비치로 다시 나갔습니다. 정원에는 바닷가에서 바베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시설도 있고 우리 시골 원두막 같은 평상도 한쪽에 놓여져 있는데 여기에 대자로 누워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다시 한번 정말 좋구나 하는 느낌이 확 들더군요.
그 넓은 비치에 사람도 어쩌다 한두명. 한 폭의 그림 속에 불쑥 들어와 있는 것 같아 다시는 나가고 싶지 않은 그런 곳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빌리지를 나오면서 보니 대부분 사람들은 저희가 반한 그 방갈로 앞 의자에 누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그도 아님 비치에 나가 의자에 누워 자거나, 수영장 썬베드에서 책읽기...다들 참 단조로운 일들에 심취해 있는데 그걸 보면서 정말 부러웠습니다. 꼭 다시 가야쥐!!!
배를 타고 나오는 길에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여자와 남자 커플이 동행했습니다. 배를 오르내릴 때 남자가 안아서 돕는데 불편한 몸으로도 전혀 일반인과 다르지 않게 여행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니 아, 우리나라 장애우들도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사족입니다만.
암튼 다들 빌리지를 뒤로 하고 떠나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또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아마도 일상에서 결코 누릴 수 없는, 그저 꿈만 꿔오던 그 자유와 휴식을 향해서겠죠......
ps. 이 곳에 가시는 분은 반드시 맥주와 간식, 과일 정도 사가시면 좋겠더군요. 안에서는 살 데도 마땅치 않고 비싸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