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는 8박9일 여행기 4편...
체크아웃 하고 나서 우리는 짐을 호텔에 맡기고 5시까지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5시에 돌아와서 남부터미널로 이동, 999버스를 타고 푸켓으로 떠날 생각이었죠.
그리고 어제 약속한 대로 마분콩을 구경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사실 시간적으로 어딜 따로 구경 가보기도 빠듯했고... 점심을 씨즐러에서 해결하고 근처에 있는 마분콩에나 가서 구경하자 , 였는데 여기서 잠깐. 이여자 역시 쇼핑광이었어, 하실 분들을 위해, 그리고 예산 짜실 분들을 위해, 태국 여행중 쇼핑 품목과 가격에 대해 상세히 밝히겠습니다.
1.나라야가방 디자인별로 110밧,100밧, 나라야 손수건 5장 100밧.
2.와코루 여자 속옷. 젠에서 10서 샀는데도 450밧 정도 샀거든요. 바로 앞 빅씨에서 똑같은 거 20-30밧씩 싸게 팔고 있더군요. 여러분, 와코루는 할인점에서!
3.뿌리는 모기퇴치약 65밧
4.피피에서 기념티 2장, 350밧
5.남자 수영복과 여자 츄리닝 한벌씩. 글구 운동화 바닥에 까는 면 깔창을 아디다스에서 팔더군요, 남편 발냄새 때문에 3장이나 구입. 총 794.5밧
6.타이거밤 작은거 45밧
7.피피아일랜드빌리지에서 반했던 향기로운 코코넛 샴푸린스를 부츠에서 150밧정도.
8.교육용 어린이 영어책 몇권 150밧.
9.우리 신랑을 특히 괴롭힌 망고. 너무나 망고를 좋아하는 저는 100그램에 얼마, 하는 망고를 거의 키로씩 사다 먹었는데...그러니까 가게에 남아있는 노랑 망고는 싹쓸이...먹다 남아서 한국 올때 싸들고 오기까지 했고. (한국에서 망고 하나에 2,300원. 그것도 쬐끄만 게. 그래서 5개를 슬쩍 가지고 와서...) 넘 자주 많이 사먹어서 가격이 다 기억나질 않음. 글구 싱, 창 맥주도 무지하게 사다 날랐죠. 우리 둘다 맥주를 좋아한답니다. 전 맛 진한 창이 더 맛있더라구요. 값도 더 싸더군요. 헤헤.
이외에 태국 라면도 10개 묶음짜리로 사왔고, 주로 이렇게 값나가는 것도 아니면서 가방도 많이 차지하고 무겁기도 한 것들을 주로 샀죠.
남자들에겐 짐꾼이 되니 짱 나겠지만 아이쇼핑 좋아하는 여자분덜 제 맘 이해하실런지. 전 어디 외국에 나가면 젤루 맘에 들고 젤루 자주 가는 곳이 쇼핑센타예요. 딱히 뭘 사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어느나라에 딱 도착하면 일단 쇼핑센타부터 가봐야, 현지 젊은이들이 많고, 깔끔하고 대중적인 음식들도 많고...그 나라의 분위기가 한눈에 확 들어오면서...가장 중요한 것. 외부의 날씨가 어떻든지 항시 유지되는 쾌적한 습도와 온도!
얘기가 옆구리로 샜는데 마분콩으로 가기로 한 우리는 배가 고파서 점심부터 먹기로 하고 씨즐러로 갔어요.
500밧에 둘이서 음료와 스테이크, 샐러드부페 실컷 먹었죠. 그리고 돌아서 나오다가...잘 기억은 안나는데 뭔가 사소한 일로 또 투덜투덜하다가...제가 국립경기장 역까지 가려고 BTS표를 사는 동안 남편이 또 사라진 거예요.
저는 악몽의 밤이 떠올라 <무조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우왕좌왕 하는데 남편이 나타났어여. 물론 저는 또 사라지면 어떡하냐고 핀잔을 줬죠.
그런데 이 말에 이상하리만큼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남편은 진짜로 어디론가 걸어가버리는거예요. 뭐, 잠깐 저쪽에 가 있었을 뿐이라나...
저는 역에 딸린 매점에서 맛없는 카푸치노를 먹으면서 남편을 기다려봤죠. 2-30분 지나자 다시 나타난 남편, 저를 찾는 눈치더니 저를 보자 곧바로 다른 데로 가버리더군요.
나참, 어쩌자는 건지, 이제 그간 구경도 못다녔으니 마지막으로 마분콩이나 잠깐 보고 터미널로 가자는 건데 끝까지 방콕 여행을 망쳐야 되나...
더구나 '사라지는 비행'만은 저지르지 않겠다고 그렇게 굳게 약속한지 채 12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말이쥐이.
저는 이때 만큼은 정말 심각했어여, 저 인간이 내 남편 하겠다는 인간 맞아? 했으니깐요. 돌아가면 도장 찍으리라. 아니다, 돌아갈 때 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여기서 짜지자!
저는 한참을 더 기다리기도 하고 직접 남편을 찾아나서기도 하면서 대화를 시도했어요.
마침내 길거리에서 남편을 맞닥뜨리는 순간 단호히 말했습니다. 여권과 뱅기표, 신용카드와 얼마의 현금을 호텔 프론트에 맡기고 난 나대로 떠날테니 돌아가라고. 화나서인지 당황해서인지 남편은 절 붙잡지도 않더군요.
그래서 저도 냉정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마음이 복잡해 로비 라운지에 잠시 앉아 수박쥬스를 한잔 마시고 짐을 찾아 나오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남편이 (걸어서 왔을텐데 금방 왔군.) 제 어깨를 잡더니 잘못했다고 빌기 시작하더군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거죠. 자기도 그간 저지를 게 있으니.
암튼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듯 뿌듯해 지더군요. 사실은 이러한 상황이 평소 9년 가까이 계속 되어온 저희 싸움 패턴이거든요. 저는 화내고 남편은 빌고. 일방적으로 깨지니까 사실 싸움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뭐한 게 평소 우리의 대결 구도지요.
사안에 따라서 쉽게 용서해주기도 하지만 그 죄가 중할 때는 상당 시간 뜸을 들이며 남편의 애타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 역시 저에게는 중요한 애정 확인 작업이었습니다.
암튼 이번엔 제 쪽으로 주도권이 넘어온 게 확실한 것 같군요.
그 날도 사안은 중한 편이었습니다. 방콕에 오기전 쌓인 것을 자기가 방콕에 와서 터뜨렸다면 나도 방콕 오고 나서 당한 것에 대해 충분히 쌓이고 쌓여 있다 이거쥐.
저는 이쪽에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 때 협력하고 이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신경을 썼어야지, 분에 넘치게 거만을 떨더니 이제와서 빌면 뭐하냐며 찢어질 것을 강력히 요구했죠.
"나는 너와 헤어지기로 이미 맘 굳혔고 따라서 머리 식히기 위해 남은 여행을 계속할테니 너는 나랑 찢어져서 갈길 알아서 가라..."
아니, 남자들은 이런 어설픈 거짓말을 어쩜 그렇게 잘 믿나요?
9년이면 나에 대해서 알만큼 알텐데 매번 속는 우리 남편.
그게 말이 되나여? 진짜 이혼을 할 상황이면 여행은 무슨 여행이람. 남편 속옷이며 수영복 다 들어있는 짐짝을 끌고 저 혼자 남은 여행을 하겠다니...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건지...
그런데도 세상에서 젤 순진한 우리 남편은 아주 엉엉 울면서 호텔 앞 대로변에 무릎을 꿇고 앉아 1시간을 빌더라구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는 게 챙피했지만 저도 그 전에 밤에 너무 속탔던 게 분하고 머, 외국이니까 저 사람들은 한국에선 저러나보다, 하고 넘길거야, 하면서...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죠.
그런데 터미널에 가야할 마지막 시간이 자꾸 넘어가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별 수 있나여, 나는 늦어서 가는데 너는 따라오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 그치만 헤어지기로 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단지 늦었는데 자꾸 발목을 잡으니까 나는 내 갈길 가는 것 뿐이다, 했죠. 글구 한 택시를 탔답니다.
저는 이때부터 입을 꼭 다물었는데 평소 말없던 남편이 혼자 꾸역꾸역 떠들기 시작하더라구요. 내가 다 빌고 너한테 용서받을거니까 넌 그냥 듣기만 해, 로부터 시작해서요.
터미널에서 내리자 먼저 나서서 짐들고 창구로 찾아가서 표도 사고, 푸켓 도착하면 피피 들어갈 배편 미리 구한다고 이 여행사 저 여행사 기웃거리고....애는 쓰더라구요. 참.
그런데 여기서 배편을 구하지 못했어요. 다들 푸켓 가서 사라는 말뿐, 터미널 앞에 있는 여행사에서는 안팔더군요.
원래 푸켓 도착하면 아침 배로 피피 들어가서 톤싸이 시내에서 점심 먹고 피피아일랜드빌리지로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아침에 도착해서 표를 살 수 있을지...인터넷 정보에서는 하루 전에 사야 한다고 하던데.
암튼 우여곡절 끝에 7시 버스를 탔어여. 버스에 타자 마자 물과 빵, 커피(이건 담날 아침 타줘요.) 등을 주는데 저는 뿔나서, 남편은 미안해서 손도 못대고 그냥 앉아서 갔죠.
처음에는 제가 기대했던 바대로 버스에 타자마자 이런 저런 애기를 하면서 저에게 용서를 구하더군요. 저도 웬만큼 얘기가 되면 못이기는 척 용서하려고 했구요. 실은 아까 길바닥에 무릎꿇고 빌 때 이미 용서가 다 되었거든요.
그런데 이 남자 겨우 10여분 정도 그 주변머리 없는 말투로 띄엄띄엄 떠들더니... 조용하길래 보니깐 벌써 잠들어버린거 있죠. 아직 초저녁인데....
실컷 자다가 야식 먹으라는 휴게실에서 깨더군요. 버스에서 내렸지만 저희는 야식도 먹지 않았습니다. 맛있어 보이던데... 대신 이런 얘길 나눴죠. 아니 나눴다기 보다 저혼자 심각하게 열변을 토했는데... 그래도 기대하고 탔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자냐, 용서를 빌고 어쩌고 한다고 기어코 따라오더니 이거냐.....버스 놓칠 뻔 할 때까지 저의 볼멘소리는 계속되었습니다.
어쩌면 좋아요. 또 냉전 상태로 아침까지 버스안에서 보낸 우리, 푸켓 터미널에 내리자 마자 마치 '준비 땅' 총소리라도 울린듯이 살판 나서 싸우기 시작했죠. 9년 동안 이렇게 큰 싸움은 첨이었어요.
남편은 절 따라올 때의 약속과는 달리 풀릴 때까지 용서를 빌기는 커녕 내리자 마자 그래, 갈라서자, 갈라서. 하고 또 어디 다른 길로 혼자 가버리고 저는 계속되는 반복적인 형태의 싸움에도 지치고, 버스안에서 불편하게 온 몸이라 힘들기도 하고, 그냥 만사가 귀찮아져 드디어 참았던 그동안의 눈물을 펑펑 흘리며 터미널 앞 공터에 앉아 있었습니다.
남편은 곧 돌아왔고 우리의 싸움은 과격한 육탄전 끝에 마침내 소강상태를 맞이했고 남편은 다시 열씨미 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전날 저녁도 아침도 굶고 밤새 버스안에서 지치기도 했지만, 또 무엇보다 서로가 태국에 온 이후 서로에게 보여준 여러가지 상처에 질린 상태였지만 용기를 다시 내어 조금씩 조금씩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습니다.
다시는 얼굴도 보기 싫을 것 같더니만 진정 맘을 터놓고 서로의 다친 마음을 위로해 나가다 보니 여기서 저희의 길고 길었던 싸움은 진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답니다.
정말 서로의 사랑을 다시 확인한 소중한 대화와 경험이었죠. 저희에게는 나름대로...
하필 큰맘먹고 나간 외국 여행에서 싸움이 터지는 바람에 모처럼 온 여행을 이미 반 이상 망쳤고 몸과 마음에 상처도 많이 입었다고 볼 수 있지만 어쩌면 외국여행을 왔다는 점이 오히려 서로를 더 극단적으로 치닫게 한 환경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죠.
우리는 결국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을 풀고 다시 두손을 꼬옥 잡고 여행사를 찾아나섰습니다.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많은 호객꾼들과 여행사가 피피행이냐고 묻던데 저는 아침에 싸운 터미널 쪽으로 두번 다시 가고 싶지도 않았고... 태국와서 그동안 있었던 일은 다 잊고 이제부터 피피여행 새로 시작이다, 하고 큰 길로 나왔어여.
거기에도 여행사들이 일렬로 좌악 있더군요. 글구 시계를 보니 12시. 아침 배를 놓쳤지만 1시30분 배라도 타야 할텐데...
가까운 여행사에 들어가니 배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겠더라구여. 가격은 첨엔 왕복 900 부르더니 저희가 나가려 하자 계속 내려가서 700밧. 픽업서비스도 없이 말예요. 더 깎을 수도 있었지만 배 시간 놓칠까봐 ok했죠.
친절한 여행사 직원이 미니 버스 픽업 시간이 이미 지났다면서 뚝뚝을 잡아 흥정까지 해주더군요.
10분여를 달려 도착한 선착장에서 뚝뚝 기사 아저씨는 저희가 맞게 찾아왔는지 오래오래 서서 확인해보고 웃으며 돌아가더군요, 친절하기도 해라. 우리가 화해하고 나니 일이 다 잘 풀리나... 푸켓의 선착장이 세 개라서 선박회사에 따라 맞게 잘 찾아가야 하거든요.
저한테 피피아일랜드 빌리지에 대해서 메일로 문의하신 분이 워낙 많았거든요. 그래서 다음 편에 되도록 자세히 (지루할만큼 자세히 ^_^) 적으려고 해요. 오늘 내로 다시 올릴께여. 미리 말씀드릴 것은 그간 제 여행기를 읽어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지옥같은 싸움여행에서 불꺼진 방콕 밤거리와 호텔 방안, 우중충한 푸켓터미널 앞 공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고 마침내 진정한 화해를 한 뒤 꿈같은 빌리지로 들어가니...실제 이상으로 저희 눈에 그곳이 지상 낙원처럼 비춰졌을 수도 있다는 점 이해해 주세요. 그리고 저희는 개인적 취향이지만 복잡한 도시 보다는 자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만으로 이루어진 여행지가 더 체질에 맞는 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 어찌하다보니 빌리지에 대해 많은 답변도 드렸었는데 사실 저희는 그곳에서 1박 밖에 못했어요. 서울에서 미리 호텔 바우쳐를 다 가지고 갔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시간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 무척 컸지만 다음 행선지의 호텔 2박을 기냥 날려버리기에는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었거든요. (하긴, 나중에 그 호텔이란 곳에 직접 가보고 나서는 호텔 2박 비용 그냥 버려도 좋으니 다시 빌리지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아졌지만...)
1박만 하고 와서 제가 아는 척하는 이유는
1번, 너무 좋은 곳이니까 자랑도 하고 소개도 하고 싶은 마음에.
2번,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돈이 모이는 대로 꼭 다시 오려고 빌리지의 정보를 소상히 적어 왔기 때문이져.
그럼 곧 올릴께요.
그리고 어제 약속한 대로 마분콩을 구경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사실 시간적으로 어딜 따로 구경 가보기도 빠듯했고... 점심을 씨즐러에서 해결하고 근처에 있는 마분콩에나 가서 구경하자 , 였는데 여기서 잠깐. 이여자 역시 쇼핑광이었어, 하실 분들을 위해, 그리고 예산 짜실 분들을 위해, 태국 여행중 쇼핑 품목과 가격에 대해 상세히 밝히겠습니다.
1.나라야가방 디자인별로 110밧,100밧, 나라야 손수건 5장 100밧.
2.와코루 여자 속옷. 젠에서 10서 샀는데도 450밧 정도 샀거든요. 바로 앞 빅씨에서 똑같은 거 20-30밧씩 싸게 팔고 있더군요. 여러분, 와코루는 할인점에서!
3.뿌리는 모기퇴치약 65밧
4.피피에서 기념티 2장, 350밧
5.남자 수영복과 여자 츄리닝 한벌씩. 글구 운동화 바닥에 까는 면 깔창을 아디다스에서 팔더군요, 남편 발냄새 때문에 3장이나 구입. 총 794.5밧
6.타이거밤 작은거 45밧
7.피피아일랜드빌리지에서 반했던 향기로운 코코넛 샴푸린스를 부츠에서 150밧정도.
8.교육용 어린이 영어책 몇권 150밧.
9.우리 신랑을 특히 괴롭힌 망고. 너무나 망고를 좋아하는 저는 100그램에 얼마, 하는 망고를 거의 키로씩 사다 먹었는데...그러니까 가게에 남아있는 노랑 망고는 싹쓸이...먹다 남아서 한국 올때 싸들고 오기까지 했고. (한국에서 망고 하나에 2,300원. 그것도 쬐끄만 게. 그래서 5개를 슬쩍 가지고 와서...) 넘 자주 많이 사먹어서 가격이 다 기억나질 않음. 글구 싱, 창 맥주도 무지하게 사다 날랐죠. 우리 둘다 맥주를 좋아한답니다. 전 맛 진한 창이 더 맛있더라구요. 값도 더 싸더군요. 헤헤.
이외에 태국 라면도 10개 묶음짜리로 사왔고, 주로 이렇게 값나가는 것도 아니면서 가방도 많이 차지하고 무겁기도 한 것들을 주로 샀죠.
남자들에겐 짐꾼이 되니 짱 나겠지만 아이쇼핑 좋아하는 여자분덜 제 맘 이해하실런지. 전 어디 외국에 나가면 젤루 맘에 들고 젤루 자주 가는 곳이 쇼핑센타예요. 딱히 뭘 사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어느나라에 딱 도착하면 일단 쇼핑센타부터 가봐야, 현지 젊은이들이 많고, 깔끔하고 대중적인 음식들도 많고...그 나라의 분위기가 한눈에 확 들어오면서...가장 중요한 것. 외부의 날씨가 어떻든지 항시 유지되는 쾌적한 습도와 온도!
얘기가 옆구리로 샜는데 마분콩으로 가기로 한 우리는 배가 고파서 점심부터 먹기로 하고 씨즐러로 갔어요.
500밧에 둘이서 음료와 스테이크, 샐러드부페 실컷 먹었죠. 그리고 돌아서 나오다가...잘 기억은 안나는데 뭔가 사소한 일로 또 투덜투덜하다가...제가 국립경기장 역까지 가려고 BTS표를 사는 동안 남편이 또 사라진 거예요.
저는 악몽의 밤이 떠올라 <무조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우왕좌왕 하는데 남편이 나타났어여. 물론 저는 또 사라지면 어떡하냐고 핀잔을 줬죠.
그런데 이 말에 이상하리만큼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남편은 진짜로 어디론가 걸어가버리는거예요. 뭐, 잠깐 저쪽에 가 있었을 뿐이라나...
저는 역에 딸린 매점에서 맛없는 카푸치노를 먹으면서 남편을 기다려봤죠. 2-30분 지나자 다시 나타난 남편, 저를 찾는 눈치더니 저를 보자 곧바로 다른 데로 가버리더군요.
나참, 어쩌자는 건지, 이제 그간 구경도 못다녔으니 마지막으로 마분콩이나 잠깐 보고 터미널로 가자는 건데 끝까지 방콕 여행을 망쳐야 되나...
더구나 '사라지는 비행'만은 저지르지 않겠다고 그렇게 굳게 약속한지 채 12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말이쥐이.
저는 이때 만큼은 정말 심각했어여, 저 인간이 내 남편 하겠다는 인간 맞아? 했으니깐요. 돌아가면 도장 찍으리라. 아니다, 돌아갈 때 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여기서 짜지자!
저는 한참을 더 기다리기도 하고 직접 남편을 찾아나서기도 하면서 대화를 시도했어요.
마침내 길거리에서 남편을 맞닥뜨리는 순간 단호히 말했습니다. 여권과 뱅기표, 신용카드와 얼마의 현금을 호텔 프론트에 맡기고 난 나대로 떠날테니 돌아가라고. 화나서인지 당황해서인지 남편은 절 붙잡지도 않더군요.
그래서 저도 냉정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마음이 복잡해 로비 라운지에 잠시 앉아 수박쥬스를 한잔 마시고 짐을 찾아 나오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남편이 (걸어서 왔을텐데 금방 왔군.) 제 어깨를 잡더니 잘못했다고 빌기 시작하더군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거죠. 자기도 그간 저지를 게 있으니.
암튼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듯 뿌듯해 지더군요. 사실은 이러한 상황이 평소 9년 가까이 계속 되어온 저희 싸움 패턴이거든요. 저는 화내고 남편은 빌고. 일방적으로 깨지니까 사실 싸움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뭐한 게 평소 우리의 대결 구도지요.
사안에 따라서 쉽게 용서해주기도 하지만 그 죄가 중할 때는 상당 시간 뜸을 들이며 남편의 애타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 역시 저에게는 중요한 애정 확인 작업이었습니다.
암튼 이번엔 제 쪽으로 주도권이 넘어온 게 확실한 것 같군요.
그 날도 사안은 중한 편이었습니다. 방콕에 오기전 쌓인 것을 자기가 방콕에 와서 터뜨렸다면 나도 방콕 오고 나서 당한 것에 대해 충분히 쌓이고 쌓여 있다 이거쥐.
저는 이쪽에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 때 협력하고 이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신경을 썼어야지, 분에 넘치게 거만을 떨더니 이제와서 빌면 뭐하냐며 찢어질 것을 강력히 요구했죠.
"나는 너와 헤어지기로 이미 맘 굳혔고 따라서 머리 식히기 위해 남은 여행을 계속할테니 너는 나랑 찢어져서 갈길 알아서 가라..."
아니, 남자들은 이런 어설픈 거짓말을 어쩜 그렇게 잘 믿나요?
9년이면 나에 대해서 알만큼 알텐데 매번 속는 우리 남편.
그게 말이 되나여? 진짜 이혼을 할 상황이면 여행은 무슨 여행이람. 남편 속옷이며 수영복 다 들어있는 짐짝을 끌고 저 혼자 남은 여행을 하겠다니...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건지...
그런데도 세상에서 젤 순진한 우리 남편은 아주 엉엉 울면서 호텔 앞 대로변에 무릎을 꿇고 앉아 1시간을 빌더라구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는 게 챙피했지만 저도 그 전에 밤에 너무 속탔던 게 분하고 머, 외국이니까 저 사람들은 한국에선 저러나보다, 하고 넘길거야, 하면서...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죠.
그런데 터미널에 가야할 마지막 시간이 자꾸 넘어가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별 수 있나여, 나는 늦어서 가는데 너는 따라오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 그치만 헤어지기로 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단지 늦었는데 자꾸 발목을 잡으니까 나는 내 갈길 가는 것 뿐이다, 했죠. 글구 한 택시를 탔답니다.
저는 이때부터 입을 꼭 다물었는데 평소 말없던 남편이 혼자 꾸역꾸역 떠들기 시작하더라구요. 내가 다 빌고 너한테 용서받을거니까 넌 그냥 듣기만 해, 로부터 시작해서요.
터미널에서 내리자 먼저 나서서 짐들고 창구로 찾아가서 표도 사고, 푸켓 도착하면 피피 들어갈 배편 미리 구한다고 이 여행사 저 여행사 기웃거리고....애는 쓰더라구요. 참.
그런데 여기서 배편을 구하지 못했어요. 다들 푸켓 가서 사라는 말뿐, 터미널 앞에 있는 여행사에서는 안팔더군요.
원래 푸켓 도착하면 아침 배로 피피 들어가서 톤싸이 시내에서 점심 먹고 피피아일랜드빌리지로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아침에 도착해서 표를 살 수 있을지...인터넷 정보에서는 하루 전에 사야 한다고 하던데.
암튼 우여곡절 끝에 7시 버스를 탔어여. 버스에 타자 마자 물과 빵, 커피(이건 담날 아침 타줘요.) 등을 주는데 저는 뿔나서, 남편은 미안해서 손도 못대고 그냥 앉아서 갔죠.
처음에는 제가 기대했던 바대로 버스에 타자마자 이런 저런 애기를 하면서 저에게 용서를 구하더군요. 저도 웬만큼 얘기가 되면 못이기는 척 용서하려고 했구요. 실은 아까 길바닥에 무릎꿇고 빌 때 이미 용서가 다 되었거든요.
그런데 이 남자 겨우 10여분 정도 그 주변머리 없는 말투로 띄엄띄엄 떠들더니... 조용하길래 보니깐 벌써 잠들어버린거 있죠. 아직 초저녁인데....
실컷 자다가 야식 먹으라는 휴게실에서 깨더군요. 버스에서 내렸지만 저희는 야식도 먹지 않았습니다. 맛있어 보이던데... 대신 이런 얘길 나눴죠. 아니 나눴다기 보다 저혼자 심각하게 열변을 토했는데... 그래도 기대하고 탔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자냐, 용서를 빌고 어쩌고 한다고 기어코 따라오더니 이거냐.....버스 놓칠 뻔 할 때까지 저의 볼멘소리는 계속되었습니다.
어쩌면 좋아요. 또 냉전 상태로 아침까지 버스안에서 보낸 우리, 푸켓 터미널에 내리자 마자 마치 '준비 땅' 총소리라도 울린듯이 살판 나서 싸우기 시작했죠. 9년 동안 이렇게 큰 싸움은 첨이었어요.
남편은 절 따라올 때의 약속과는 달리 풀릴 때까지 용서를 빌기는 커녕 내리자 마자 그래, 갈라서자, 갈라서. 하고 또 어디 다른 길로 혼자 가버리고 저는 계속되는 반복적인 형태의 싸움에도 지치고, 버스안에서 불편하게 온 몸이라 힘들기도 하고, 그냥 만사가 귀찮아져 드디어 참았던 그동안의 눈물을 펑펑 흘리며 터미널 앞 공터에 앉아 있었습니다.
남편은 곧 돌아왔고 우리의 싸움은 과격한 육탄전 끝에 마침내 소강상태를 맞이했고 남편은 다시 열씨미 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전날 저녁도 아침도 굶고 밤새 버스안에서 지치기도 했지만, 또 무엇보다 서로가 태국에 온 이후 서로에게 보여준 여러가지 상처에 질린 상태였지만 용기를 다시 내어 조금씩 조금씩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습니다.
다시는 얼굴도 보기 싫을 것 같더니만 진정 맘을 터놓고 서로의 다친 마음을 위로해 나가다 보니 여기서 저희의 길고 길었던 싸움은 진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답니다.
정말 서로의 사랑을 다시 확인한 소중한 대화와 경험이었죠. 저희에게는 나름대로...
하필 큰맘먹고 나간 외국 여행에서 싸움이 터지는 바람에 모처럼 온 여행을 이미 반 이상 망쳤고 몸과 마음에 상처도 많이 입었다고 볼 수 있지만 어쩌면 외국여행을 왔다는 점이 오히려 서로를 더 극단적으로 치닫게 한 환경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죠.
우리는 결국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을 풀고 다시 두손을 꼬옥 잡고 여행사를 찾아나섰습니다.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많은 호객꾼들과 여행사가 피피행이냐고 묻던데 저는 아침에 싸운 터미널 쪽으로 두번 다시 가고 싶지도 않았고... 태국와서 그동안 있었던 일은 다 잊고 이제부터 피피여행 새로 시작이다, 하고 큰 길로 나왔어여.
거기에도 여행사들이 일렬로 좌악 있더군요. 글구 시계를 보니 12시. 아침 배를 놓쳤지만 1시30분 배라도 타야 할텐데...
가까운 여행사에 들어가니 배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겠더라구여. 가격은 첨엔 왕복 900 부르더니 저희가 나가려 하자 계속 내려가서 700밧. 픽업서비스도 없이 말예요. 더 깎을 수도 있었지만 배 시간 놓칠까봐 ok했죠.
친절한 여행사 직원이 미니 버스 픽업 시간이 이미 지났다면서 뚝뚝을 잡아 흥정까지 해주더군요.
10분여를 달려 도착한 선착장에서 뚝뚝 기사 아저씨는 저희가 맞게 찾아왔는지 오래오래 서서 확인해보고 웃으며 돌아가더군요, 친절하기도 해라. 우리가 화해하고 나니 일이 다 잘 풀리나... 푸켓의 선착장이 세 개라서 선박회사에 따라 맞게 잘 찾아가야 하거든요.
저한테 피피아일랜드 빌리지에 대해서 메일로 문의하신 분이 워낙 많았거든요. 그래서 다음 편에 되도록 자세히 (지루할만큼 자세히 ^_^) 적으려고 해요. 오늘 내로 다시 올릴께여. 미리 말씀드릴 것은 그간 제 여행기를 읽어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지옥같은 싸움여행에서 불꺼진 방콕 밤거리와 호텔 방안, 우중충한 푸켓터미널 앞 공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고 마침내 진정한 화해를 한 뒤 꿈같은 빌리지로 들어가니...실제 이상으로 저희 눈에 그곳이 지상 낙원처럼 비춰졌을 수도 있다는 점 이해해 주세요. 그리고 저희는 개인적 취향이지만 복잡한 도시 보다는 자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만으로 이루어진 여행지가 더 체질에 맞는 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 어찌하다보니 빌리지에 대해 많은 답변도 드렸었는데 사실 저희는 그곳에서 1박 밖에 못했어요. 서울에서 미리 호텔 바우쳐를 다 가지고 갔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시간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 무척 컸지만 다음 행선지의 호텔 2박을 기냥 날려버리기에는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었거든요. (하긴, 나중에 그 호텔이란 곳에 직접 가보고 나서는 호텔 2박 비용 그냥 버려도 좋으니 다시 빌리지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아졌지만...)
1박만 하고 와서 제가 아는 척하는 이유는
1번, 너무 좋은 곳이니까 자랑도 하고 소개도 하고 싶은 마음에.
2번,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돈이 모이는 대로 꼭 다시 오려고 빌리지의 정보를 소상히 적어 왔기 때문이져.
그럼 곧 올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