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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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4)

쇼너 5 1122
1999년 3월 1일(월) 공항에서

출발의 날이 밝았다…대장정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그렇지만.
늘상 그렇지만 운동회나 소풍가는 날은 일찍 일어나게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는 중에 레커가 도착했다. 다소 들뜬 모습.
말이 삼월이지 2월에서 하루지난 3월이다. 그리고 2월은 겨울이다.
짐을 줄이기 위해 얇게 입고 나왔더니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무지하게 춥다.
함께 지하철로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20정거장… 1시간은 걸릴 거리다. 혹시 라스트 콜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여유를 두고 출발했지만 역시 불안하긴 마찬가지… 모든 일은 나의 주도로 이루어지며 그 영향이 레커에게 까지 미친다는 생각에 점점 더 불안해지고… 내가 불안해하고 있음을 레커에게 눈치채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호들갑을 떠는 동안 공항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좀 여유가 있어서, 다이너스 라운지(나의 법인카드가 다이너스 카드라…)에 가서 레커에게 짐을 지키면서 음료수(공짜니까) 한 잔 마시라고 해놓고 병역신고를 하러 갔다. 앞으로는 필요없다는 도장을 여권에 꽝!
레커를 데리고 카운터에 데려가 보딩패스 받고 짐은 다 핸드캐리 한다고 말하고 나서 출국장으로…(오…의외로 간단한걸…역시 지난번 출장때 잘 봐두길 잘했어) 가려다가, 공항세 티켓(?)을 사지 않을 것을 기억해냈다.
그런데 어디서 파는지를 모른다!(이 정도 난관쯤이야 장난이지…푸헐헐) 지나가는 경찰을 붙잡고 물었더니 저쪽에서 사란다.
레커랑 다시 쫄랑쫄랑 공항세 티켓을 사러 가는 도중, 관광진흥기금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냥 공항세 9,000원 만을 생각한 것이다. 지금같으면 비즈니스상 나간다고 박박 우기고 나갔겠지만서도 그때는 ‘나는 관광을 가니까 꼭 내야해’라고 믿고 있었다(내가 좀 고지식한 편이다). 기억을 해낸 것까지는 좋았다.
지갑에 그걸 낼만한 원화 현금이 없다! 돌아올때는 지하철을 타고 올 요량이어서 지하철 패스만 믿고 생각을 못했다.(으앗! 왜 이러는 거야? 그래도 현금카드로 찾으면 되지 뭐..이때까지만 해도 여유만만했다)
자동현금인출기에 가져간 현금카드를 넣고 의기양양하게 현금인출을 눌렀다…. 화면에 뜨는 메시지… 잔액부족(쿠궁! 심장떨어지는 소리. 좀 당황되기는 한다.)

“어쩌지? 잔액부족이라는데…”
“이 바보야. 뭘 생각하고 다니는거야? 아~ 짜증나. 몰라몰라~”

물어본 내가 바보다. 그녀의 성격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하는 것을 잊었다. 감정의 기복이 무진장 심하다는 것. 내가 잘 해주면 천사 쌈싸먹을 정도로 잘하지만, 내가 뭔가 실수를 하면 온통 짜증으로 점철 및 범벅이된 Dark side of the Moon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성질 더럽다는 거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방안을 생각해낸다.
‘다시 바트화를 원화로 환전해? 아니야… 그건 너무 쪽팔려서 내가 도저히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 어쩐다… 그래 맞아! 폰뱅킹이 있었지’

“폰뱅킹이 괜히 있냐? 딴 통장에서 이체시키면 될것 아니냐. 도데체 첨단문명의 혜택을 받아봤어야 알지…하하하”

나름대로 반격을 시도한 후, 다시 레커의 구시렁거림을 귓전으로 흘리며 공중전화를 찾아가서 폰뱅킹을 시도한다. 그런데 거래은행의 폰뱅킹 번호가 생각이 안난다.(사은품 준다고 가입했는데 쓴 건 예전에 한 번 뿐이라…)
114에 전화를 건다. 모든 교환원이 통화중이란다. 뒤에 줄선 사람의 뜨거운 시선을 뒤통수로 느끼며 다시 시도한다. 다행이다. 걸렸다. 거래은행의 폰뱅킹 전화번호를 알아낸다. 더 이상 뒷사람의 시선을 견디기가 어렵다. 뒤통수 빵꾸날 것 같다.
다시 줄을 선다. 폰뱅킹 시도… 헉! 자금이체 비밀번호가 생각이 안난다.(눈길은 저쪽에서 노려보고 있는 레커를 향한다. 불안~ 초조~)
내가 즐겨쓰는 비밀번호를 눌러본다. 틀렸다. 앞으로 2번밖에 기회가 없다.(3번 틀리면 아예 폰뱅킹 사용이 불가능하다) 다시 두번째로 잘쓰는 번호를 누른다.
“자금이체가 성공적으로 처리되었습니다.” 목소리도 낭낭한 여성동지의 목소리. 자금이체 성공이다.

“레커야… 이러면 되잖아? 별거 아니었어.”

의기양양하게 말했으나 나의 심장은 정상맥박수를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은행으로 다시가서 돈을 찾고 공항세 및 관광진흥기금을 내고 하다보니 시간이 촉박하다. 너무 많은 시간을 현금을 찾는데 소비한 것이다.
차라리 바트화를 다시 원화로 환전하는 것이 나을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었다는 조바심에 호닥호닥 뛰며 출국심사를 받으러 갔다. 줄이 꽤 길다. 눈치를 살피니 우리와 같은 비행기에 타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 조금 안심했다. 아는 척좀 해보고 싶어서 레커에게 출국수속절차에 대해 설명도 했다.

“이건 말이쥐~ 나불나불~ 어쩌구 저쩌구~”

레커는 처음 받는 출국심사라 열심히 앞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뚫어지게 보면서 뭐 물어보는지 귀를 쫑긋쫑긋한다.
뭐 별일 있었겠는가? 행정절차가 다 그렇지… 그냥 무사히 통과.
출국도장 꽝꽝찍고 면세구역으로 나왔다. 이제 살 것같다. 과거 경험상 면세구역으로 나오면 끝이라는 걸 알고 있던 나는 비로소 해방감에 빠진다.
나의 해방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커는 내 여권에 찍힌 각국의 입출국 도장을 비교해보면서 한국도장이 가장 안 예쁘네, 자기 도장이 희미하게 찍혔네, 비뚤어졌네 별별 소리를 다하면서 투덜댄다.
슬슬 면세점 돌면서 디스 한 보루와 필름을 구입하고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시간맞춰 게이트 앞으로 가서 의자에 앉아 탑승을 기다렸다.
소변이 자주 마렵다. 긴장했나보다.
5 Comments
여인천하 1970.01.01 09:00  
와와와! 재미있어요~ 이 다음 글도 얼렁 올려주세요
ㅋㅋㅋ 1970.01.01 09:00  
ㅎㅎㅎ.. 누구하나 실려 갈 분위기당..<br>레커님 성질 죽이고 사세염.. 장수에 지장 있답니다.<br>혹시.. 주영훈과 같은병???
이수민 1970.01.01 09:00  
앗...조울증이랑 양극성 장애랑 똑같은 말이군요..헤헷..죄송
이수민 1970.01.01 09:00  
조울증은 아닌것 같은데...Bipolar라고 하죠. 양극성 장애..흑흑흑....저도 Bipolar라고 맨날 구박받아요..
배낭이 1970.01.01 09:00  
레커님이 저와 성격이 비슷하시군요~ 감정의 기복이 심한..^^ 혹자는 조울증이라고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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