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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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10)

쇼너 0 1127
1999년 3월 3일(화) 수상시장 일일투어

내가 아침 잠이 좀 많은데도 불구하고 자명종 소리에 눈을 떴다. 늦어서는 안된다는 강박감이 잠을 쫓았는지도 모른다. 레커도 졸음이 가득한 눈을 억지로 뜨고 일어났다. 어젯밤에 짐은 들고나가기만 하도록 챙겨놓았기 때문에 대충 씻고 약속된 투어 픽업장소로 나갔다.
어디나 유흥가의 새벽풍경은 비슷비슷하다.
지난 밤의 떠들썩함을 정리하는 가게들… 지난 밤의 들뜬 기분의 끝자락을 붙잡고 피곤과 알코올에 젖은 눈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려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 어디론가 바삐 가는 사람들… 이러한 것들이 어우러져 묘한 그리고 고유한 분위기를 낸다. 신촌에서 10년간 살아온 나에게는 이런 풍경이 낯선 것이 아니었다.
사람사는 곳이란 어찌 이리도 비슷한 것인가.

투어를 예약할 때 픽업장소를 몇차례 물어보았었다. 사실 카오산에 특별한 이정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여행사 앞에서 기다리라고 할 뿐이어서 내심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소심한 나…), 예정된 시간이 조금 지나서 봉고차 같은 것이 와서 사람들을 싣기 시작한다. 그 사람들 중에 나와 레커도 있었다.
투어에 참가한 사람중 한국사람은 나와 레커뿐이었다. 나머지는 프랑스 남자 하나와 외국인 커플 몇몇… 그 흔한 일본사람도 없다. 인원이 차자 투어가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배낭여행의 큰 재미는 하나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여행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해나가는 그 과정의 긴장과 그 와중에서 발생하는 일화들, 그리고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 간에 발생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수상시장 투어는 “별로 재미없었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트레킹처럼 사람들이 밀접하게 만날 기회나 이유도 별로 없고… 그냥 수상시장은 교통이 불편하니 타고간다는 측면이 많아서일까? 투어중에 말을 나누어본 사람은 내성적인 성격이 분명한 프랑스 남자와 레커뿐이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들 그랬다. 얘기를 나누어본 프랑스 남자는 혼자 왔는데 프랑스어 억양이 강한 영어는 내가 소화하기에는 좀 무리였고, 내 영어실력도 그다지 출중한 것이 아니라서 몇마디 얘기를 나누다가 머쓱해져서 그만두고 말았다.

어쨌든 출발하고 얼마나 갔을까? 차를 세운다. 내린곳은 코코넛 엿(?)공장. 코코넛을 깎아서 그걸로 엿을 고으고 있었다.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만들어진 엿을 관광객에게 팔고 있었다. 레커와 시식을 한 번 해보았는데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혀가 녹아버릴정도로 달다는 것 밖에 없었다.
별로 사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혹시 어머니들이 고추장을 담그는 것을 도와드린 적이 있다면 알지도 모르겠지만… 고추장 담그는 모습은 도시에서는 구경하기가 힘든 풍경이고 지방이라 할지라도 아파트에 산다면 보기 힘들어서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그렇다고 내가 늙었다는 것은 아니다. 난 아직 20대다)
내 고향은 대전(서울사람들은 항상 시골이라 부르는…)이고 단독주택에 살았기 때문에 어머님은 매년 가을 고추장을 담으셨고 난 어머니가 고추장 담그는 것을 항상 도와드려야만 했다. 내 역할은 불때기와 젓기였다. 솥을 걸고 밑에서 계속 불을 때고 고추장이 바닥에 늘어붙지 않도록 끊임없이 큰 나무주걱으로 저어주어야만 한다. 그 연기의 매캐함과 불의 열기, 젓는 작업의 지루함, 팔아픔등으로 상당히 신경이 많이 가고 힘든 노동이다.
나는 코코넛 엿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고추장 담그는 작업을 떠올렸다. 게다가 태국이란 나라가 좀 더운가? 그 더운 나라에서 불가에 붙어서 끊임없이 끈끈한 엿을 고으는 일이란 얼마나 힘들 것인가?
하지만 고작 그 일의 대가는 한 봉지에 몇 바트 안하는 코코넛 엿과 낯선 관광객들의 냉랭한 반응이다. 뭔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코코넛 엿은 별로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여기에도 어김없이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코코넛 엿 공장 한쪽 구석에 나란히 서있는 사각형의 녹색병들이 있었고 그 병들 사이에는 종이가 끼워져있었다. 기습적으로 호기심을 자극당한 나는 그 쪽으로 다가갔다. 병속에는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병속을 들여다보았더니 그 녀석들이 있었다.
바로 베타였다. 베타라는 녀석은 열대어의 일종으로 정확한 명칭은 베타 스필렌덴스, 수컷끼리 만나면 한쪽이 죽을때까지 싸우기 때문에 일명 Fighting Fish라고도 불린다. 이를 이용해서 동남아에서는 이 물고기를 가지고 도박도 한다고 들었다. 사마귀, 귀뚜라미, 닭처럼 말이다.
이 베타라는 녀석은 색깔이 흔히 볼 수 없는 파랑, 녹색, 자주색등으로 화려하고, 아가미 호흡뿐만 아니라 공기로 호흡이 가능해서 조그만 컵이나 병에서도 별도의 산소공급장치 없이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열대어이다. 원산지는 태국과 말레이시아이며 청계천 7가의 열대어 상가에 가면 쉽게 볼 수있다.
그런데 병들 사이에 있는 종이의 용도가 궁금했다. 종이를 빼 보았다. 종이가 사라지자 종이의 양쪽편에 있던 베타들이 지느러미를 곧추세우고는 전투태세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답고 신기해서 레커랑 보라는 코코넛 엿 만드는 것은 안보고 내내 그 장난만 하고 놀았다.
주위에 있던 외국인들도 코코넛 엿 만드는 것에 싫증이 난 듯 주섬주섬 모여들더니 신기한 듯 몇 마디씩 던지고, 나에게 몇가지를 묻기도 했다. 원래 투어의 기념품 가게 방문은 의례적인 것인지라 30분쯤 있다가 다시 차에 탑승해서 본 목적지인 수상시장으로 향했다.

가까울 것 같았던 수상시장은 꽤나 멀었다. 원래 현지인이 이용하는 수상시장은 아침 일찍 파하고 시간이 갈수록 관광객들을 위한 수상시장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있던 터라 마음이 그다지 편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쩔 것이냐? 편의를 위해서 투어를 선택한 것을…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는 안빈낙도의 자세를 가져야지.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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