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9)
전편에 이어 계속...1999년 3월 2일(화) 방콕 왕궁주변 도보여행
잠시 게스트 하우스에서 휴식을 취하고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나서(역시 카오산의 바였다) 원래 오늘 예정이었으나 내일로 미루어진 일일투어를 예약하기로 하였다. 일단 홍익여행사에 들러보았다. 내가 원래 관심이 있었던 투어는 그 이름도 유명한 1 Day 3 Place 투어였으나 아무래도 너무 많은 것을 겉핥기식으로 돌아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홍익측에서도 별로라는 얘기를 듣고 그냥 수상시장만 오전에 돌고오는 투어를 신청했다. 나머지 오후시간은 방콕을 좀 더 둘러보는 것으로 하고…
실제로 투어예약은 가격이 좀 더 쌌던 이름이 기억안나는 현지 여행사에서 했다.
다시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오니 레커는 땀띠를 좀 가라앉혀야 될 것 같아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좀 쉬라고 말해두고 나는 남부터미널로 내일 모래 끄라비로 가는 VIP버스를 예약하러 가기로 했다. 궂이 예약이 필요치 않다고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냥 가보기로 했다.
가이드 북을 보니 에어컨 11번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고 해서 복권청 건너편에서 기다렸다가 탔다. 2량이 고무호스같은 것으로 연결된 버스였다.
처음 타보는 일반버스다. 알고있던대로 차장이 동그란 필통으로 리드미컬한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20B짜리 지폐를 내밀며 말했다.
“서던 버스 터미널”
“???”
주위의 시선이 내게로 몰린다. 외국인이라고는 나 혼자다.
레커랑 같이 오지 않아서 않아서 다행이다. 태국어를 시도할 좋은 찬스.
“빠이 꼰썽 싸이따이”
발음이 웃겼는지 씩 웃으며 알았들었는지 거스름돈을 거슬러준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웃으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쎈딴 삔까오를 지나서 좀 가야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쎈딴 삔까오와 메이저 시네플렉스가 창밖으로 지나친다. 지도상으로는 이제 내릴때가 멀지 않은 것 같은데 감을 잡지 못해서 창밖을 두리번 거리는며 사람들에게 물어볼까 말까를 망설이는데… 거의 동시 다발적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얘기를 건다. 내릴 곳이라는 얘기같다. 모두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뭐라고들 한다. 참 착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웃으며 감사를 표한후 차에서 내렸다.
주위에 고가도로가 넓은 길가였는데 어디에 붙어있는 지를 몰라서 일단 약간 칙칙한 터미널 특유의 분위기가 나는 곳으로 가 보았다. 정확하다.
터미널은 옛날 내가 초등학교때 몇 번 가보았던 80년대 초반 우리나라 버스 터미널과 분위기가 흡사했다. 제복을 입고 안내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어서 끄라비가는 VIP버스표를 사는 곳을 물어보니 저쪽으로 가란다.
그래서 저쪽으로 갔다. 갔더니 VIP버스는 창구가 따로 있었다.
날짜까지 태국어를 말할 수 있는 내공이 되지 못했던 나는 일단 영어를 시도했다.
“끄라비, VIP, 데이 애프터 투마로, 투 퍼슨”
“끄라비… VIP… 투마로?”
내일 모레라는 영어를 못알아 듣는 다는 생각이 들어 날짜를 종이에 썼다.
1999.3.4. 이렇게…
하지만 못 알아본다. 아라비아 숫자는 세계 공통적으로 쓰는데 어찌 이 숫자들을 못 알아본다는 말이냐?
답답해진 나는 마침 매표원 옆에 걸려 있는 달력을 가리키며 손가락 4개를 폈다.
“데이”
그렇게 어려운 커뮤니케이션 끝에 원하는 티켓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항공권처럼 보라색과 파란색이 섞여있는 봉투에 넣어준다. 좌석도 지정할 수 있고… 좋다.
티켓을 받아들고 꼼꼼히 살펴본다. 날짜와 시간 좌석, 모든게 흡족하다. 날짜를 자세히 보고 이 사람들이 같은 아라비아 숫자를 못 알아본 이유를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쓰는 모양이 좀 달랐다. 가격은 2명이 1,000B가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남부터미널에서 다시 카오산으로 가려고 길을 건너려고 보니 시선이 닿는 곳에는 건널목이 없었다. 그래서 카오산 방향으로 한참을 가다보니 육교가 있다. 육교는 어디나 비슷했다. 육교를 내려가니 버스 서는 곳이 있고 사람들이 잔뜩 서있었다. 한참을 서있어도 에어컨11번 버스가 안와서 가이드북에 써 있는 일반버스를 탔다. 적어도 내릴 곳이 어디인지 헤멜 걱정은 안해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내내 그길을 되짚어 갔는데 카오산 부근에 도착해서 빛나는 D&D간판이 있는 곳까지 왔는데 이놈의 버스가 다시 골목으로 뺑뺑이질을 친다. 여기쯤 내리면 되겠다 싶어서 내렸는데 카오산에서는 조금 먼 곳이었다.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니 파쑤멘 요새 근처였던 것 같다. 어쩌랴… 걸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레커는 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자고 있다.
너무 무리하게 걸었나 싶어서 좀 더 자도록 내버려 둔 후, 배도 슬슬 고프고 지루하기도 해서 깨웠다.
“밥먹자” “뭐먹지?”
“그냥 대충 먹자” “난 이제 느글거려서 그 까페들에서 안 먹을래”
“그럼 노점 식당에 가보자” “차라리 그게 낫겠다”
카오산으로 나가니 이미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피크타임을 맞고 있는 길 양옆의 가게들은 넘치는 관광객으로 이미 분주함을 넘어 떠들썩함으로 가고 있었다.
카오산에서 주유소쪽으로 나가서 시장쪽으로 가니 노점식당이 많았다.
지나가다 보니 족발을 삶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게 바로 요술왕자의 음식추천에 들어있던 족발덮밥(카우 카 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먹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돼지족발이라는 것이 잘하면 맛있지만 잘못하면 냄새가 나는 법이라며 레커는 쌀국수를 먹겠단다. 그래서 그냥 족발덮밥하는 노점 테이블에 앉아서 나는 족발덮밥을 시키고 레커는 바로 옆 노점에서 쌀국수를 시켰다.
그래도 뭐라고 하는 사람 하나 없다. 우리나라같으면 주인눈치 깨나 봤어야 할텥데.
물론 빼먹지 않는 한마디.
“마이 싸이 팍치 캅”
역시 노점의 장점은 그 신속성에 있다. 밥을 접시에 담고, 능숙한 솜씨로 족발을 턱턱 썰은 다음 밥에 얹고 국물을 쭉 뿌리니 한 3분만에 완성이다. 쌀국수는 철망으로 만들어진 큰 국자같은 것 안에 국수를 넣고 잠시 끓는 물에 담궈서 익힌후 국물을 붓고 다른 재료를 얹어서 금방 완성되었다. 족발덮밥을 먹으려고 같이 나온 숟가락을 들어보고 그 참을 수 없는 숟가락의 가벼움에 놀랐다. 무게나 두께가 종이 숫가락 분위기다. 먹다가 혓바닥을 베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고기 한 점을 집어서 입에 넣었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구수한 족발의 맛… 우리나라 족발은 약간 고기가 쫄깃거리고 탱탱한 반면 태국식 족발은 부드러웠다. 다음은 밥을 한 숫가락 퍼서 먹어보았다. 자칫 그 국물에서 돼지냄새가 나거나 익숙치않은 향료냄새가 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쇼너야…맛있냐?”
“감동이야~”
이번에는 내가 물어보았다.
“쌀국수는 어때?”
“이것도 맛있어… 근데 양이 좀 작다”
“그럼 이따 길거리에서 뭐 좀 더 사먹지 뭐…”
서로 족발을 집어먹기도하고 국수국물을 빼앗아 먹기도 하면서 모처럼 포식을 했다. 실상 나는 입맛이 별로 까다롭지 않은 편이라 아무거나 잘 먹는데, 그래도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는게 좋지 않은가?
배를 채우니 다시 힘이 나는게 좋았다. 오늘 저녁에는 원래 차이나타운에 가려고 했으나 일정을 변경하여 WTC를 중심으로한 쇼핑센터 구경을 나가기로 했다.
시간이 좀 늦은 듯 했으나 물건을 살 것도 아니고 그냥 시내구경이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나갔다. 역시 우리의 주 교통수단은 버스… 황금의 노선 에어컨 11번을 타고 시내로 나갔다. 전자상가를 지나 WTC근처에서 내려 슬슬 구경하기로 했다. 근처에는 Zen과 WTC를 비롯한 백화점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었다.
태국의 백화점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위로 높지 않고 옆으로 길어서 돌아보는데 예상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저분하게 생긴 두명이 왔다갔다하니 별로 신경도 안쓰고 그 편이 우리도 구경하기 편했다.
백화점의 시설은 고급스럽고 현대적이었으며(백화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Zen과 WTC가 가장 좋았던 것을 기억된다. 백화점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다름아닌 안내방송…
‘어쩌구 저쩌구 카~…. 이러쿵 저러쿵 카~… 나불나불 카~’
내 귀에는 목소리 예쁜 태국여성의 카~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둘이 너무 재미있다면서 낄낄거렸다.
쇼핑센터에서 아무것도 안샀느냐? 그건 아니다. 식품매장에서 망고스틴을 1Kg쯤 샀다. 과일의 여왕이라는 망고스틴… 나는 예전 싱가폴 출장때 먹어봐서 그 맛(정말 맛있다)을 알고 있었지만 레커에게는 가이드북에서만 보았지 처음으로 접하는 과일이었다.
“(식품매장에서 망고스틴을 가리키며)레커야… 우리 이거 사먹자… 이거 진짜 맛있어”
“이게 뭔데?”
“망고스틴”
“아~ 그 가이드북에 나온 과일?”
“응”
“너무 많이 사지 마라… 맛없으면 처치 곤란이다”
“걱정 마셔… 너 안먹으면 내가 다 먹을께…”
WTC에서 망고스틴을 사가지고 나오니 앞에는 조그마한 공연장이 있었는데 마침 거기서 태국의 아마추어 밴드인지 프로밴드인지 모르는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어서 그걸 구경하면서 망고스틴을 까먹었다.
나보다 레커가 2배쯤 많이 먹었다.
내가 주머니칼을 꺼내서 두툼한 망고스틴 껍질을 벗겨내었다.
그리고 나서 속의 마늘같이 생긴 과육을 꺼내 레커에게 주었다.
“에게~ 그 두꺼운 껍질 다 버리고 고작 요거 먹는거야? 근데 이거 진짜 맛있다….와구와구.. .쩝쩝…”
그 순간부터 레커는 망고스틴 팬이 되었다. 지금도 자주 먹고 싶어한다.
이 근처에 볼거리로는 에라완 사원이 있어서 그곳도 들러보았다. 시간이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참배하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다. 모두 경건한 모습이었고 기도에 열심히었다. 우리도 잠시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지나가던 버스에서도 손을 모으는 모습이 심심치않게 보였고 현지인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곳이다.
원래 이것저것 둘러보는 것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이라… 시간이 꽤나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구경에 욕심이 난 우리는 걸어서 씨암스퀘에 가기로 했다. 지도상으로 보이는 바로 무척 가까웠기 때문이다.
지도로 방향을 잡아 걸어가는데 밤길인데다 다니는 사람도 드물어서 조금 겁이 났지만 그냥 걸었다. 걷다보니 해산물 식당같은 볼거리(?)가 나와서 게랑 새우, 랍스터 구경도 했다.
이 와중에 정말 볼거리가 나타났으니 어디선가 나타난 코끼리들… 관광객을 위한 것인지 주인같아 보이는 사람이 사탕수수를 사서 코끼리를 주라고 권유한다. 뭐 꼭 내가 줘야 맛인가? 그냥 코끼리만 구경했다. 그 뻣뻣해보이는 털이라니… 나는 예전에 코끼리는 털이 없는 줄 알았다. 동물의 왕국같은데서 보면 털이 없이 그냥 가죽으로 덮여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어두운 밤거리를 걷기를 잠시… 씨암스퀘에 도착했는데… 젊은이들의 활기를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우리를 반기는 건 썰렁하게 불꺼진 건물들 뿐이었다. 시간이 너무 늦은 탓이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생겼구나 한바퀴 휭 돌아보고 다시 카오산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버스가 다니지 않는 것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으나, 늦은 밤 인적도 드문 길에서 버스 기다리기도 그래서 그냥 택시를 잡아타고 카오산으로 돌아왔다. 이 여행에서 탄 유일한 택시였다.
다시 카오산에 돌아오니 거리가 들썩들썩하는 것이 좀전의 광경과는 전혀 딴판이다. 카오산은 역시 방콕의 별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양이 좀 부족했던 관계로 군것질이 필요했던 우리는 돼지꼬치를 하나씩 사서 먹었다.
설명이 필요없었다. 환상적인 맛이었다. 더군다나 무지하게 쌌다.
더 먹었다… ^^
내일은 투어가 있는 날이라 일찍 일어나야했다. 숙소에 들어가서 씻고 푹 잤다.
우리나라에서의 한 3일의 시간을 하루에 보낸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게스트 하우스에서 휴식을 취하고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나서(역시 카오산의 바였다) 원래 오늘 예정이었으나 내일로 미루어진 일일투어를 예약하기로 하였다. 일단 홍익여행사에 들러보았다. 내가 원래 관심이 있었던 투어는 그 이름도 유명한 1 Day 3 Place 투어였으나 아무래도 너무 많은 것을 겉핥기식으로 돌아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홍익측에서도 별로라는 얘기를 듣고 그냥 수상시장만 오전에 돌고오는 투어를 신청했다. 나머지 오후시간은 방콕을 좀 더 둘러보는 것으로 하고…
실제로 투어예약은 가격이 좀 더 쌌던 이름이 기억안나는 현지 여행사에서 했다.
다시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오니 레커는 땀띠를 좀 가라앉혀야 될 것 같아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좀 쉬라고 말해두고 나는 남부터미널로 내일 모래 끄라비로 가는 VIP버스를 예약하러 가기로 했다. 궂이 예약이 필요치 않다고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냥 가보기로 했다.
가이드 북을 보니 에어컨 11번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고 해서 복권청 건너편에서 기다렸다가 탔다. 2량이 고무호스같은 것으로 연결된 버스였다.
처음 타보는 일반버스다. 알고있던대로 차장이 동그란 필통으로 리드미컬한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20B짜리 지폐를 내밀며 말했다.
“서던 버스 터미널”
“???”
주위의 시선이 내게로 몰린다. 외국인이라고는 나 혼자다.
레커랑 같이 오지 않아서 않아서 다행이다. 태국어를 시도할 좋은 찬스.
“빠이 꼰썽 싸이따이”
발음이 웃겼는지 씩 웃으며 알았들었는지 거스름돈을 거슬러준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웃으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쎈딴 삔까오를 지나서 좀 가야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쎈딴 삔까오와 메이저 시네플렉스가 창밖으로 지나친다. 지도상으로는 이제 내릴때가 멀지 않은 것 같은데 감을 잡지 못해서 창밖을 두리번 거리는며 사람들에게 물어볼까 말까를 망설이는데… 거의 동시 다발적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얘기를 건다. 내릴 곳이라는 얘기같다. 모두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뭐라고들 한다. 참 착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웃으며 감사를 표한후 차에서 내렸다.
주위에 고가도로가 넓은 길가였는데 어디에 붙어있는 지를 몰라서 일단 약간 칙칙한 터미널 특유의 분위기가 나는 곳으로 가 보았다. 정확하다.
터미널은 옛날 내가 초등학교때 몇 번 가보았던 80년대 초반 우리나라 버스 터미널과 분위기가 흡사했다. 제복을 입고 안내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어서 끄라비가는 VIP버스표를 사는 곳을 물어보니 저쪽으로 가란다.
그래서 저쪽으로 갔다. 갔더니 VIP버스는 창구가 따로 있었다.
날짜까지 태국어를 말할 수 있는 내공이 되지 못했던 나는 일단 영어를 시도했다.
“끄라비, VIP, 데이 애프터 투마로, 투 퍼슨”
“끄라비… VIP… 투마로?”
내일 모레라는 영어를 못알아 듣는 다는 생각이 들어 날짜를 종이에 썼다.
1999.3.4. 이렇게…
하지만 못 알아본다. 아라비아 숫자는 세계 공통적으로 쓰는데 어찌 이 숫자들을 못 알아본다는 말이냐?
답답해진 나는 마침 매표원 옆에 걸려 있는 달력을 가리키며 손가락 4개를 폈다.
“데이”
그렇게 어려운 커뮤니케이션 끝에 원하는 티켓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항공권처럼 보라색과 파란색이 섞여있는 봉투에 넣어준다. 좌석도 지정할 수 있고… 좋다.
티켓을 받아들고 꼼꼼히 살펴본다. 날짜와 시간 좌석, 모든게 흡족하다. 날짜를 자세히 보고 이 사람들이 같은 아라비아 숫자를 못 알아본 이유를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쓰는 모양이 좀 달랐다. 가격은 2명이 1,000B가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남부터미널에서 다시 카오산으로 가려고 길을 건너려고 보니 시선이 닿는 곳에는 건널목이 없었다. 그래서 카오산 방향으로 한참을 가다보니 육교가 있다. 육교는 어디나 비슷했다. 육교를 내려가니 버스 서는 곳이 있고 사람들이 잔뜩 서있었다. 한참을 서있어도 에어컨11번 버스가 안와서 가이드북에 써 있는 일반버스를 탔다. 적어도 내릴 곳이 어디인지 헤멜 걱정은 안해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내내 그길을 되짚어 갔는데 카오산 부근에 도착해서 빛나는 D&D간판이 있는 곳까지 왔는데 이놈의 버스가 다시 골목으로 뺑뺑이질을 친다. 여기쯤 내리면 되겠다 싶어서 내렸는데 카오산에서는 조금 먼 곳이었다.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니 파쑤멘 요새 근처였던 것 같다. 어쩌랴… 걸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레커는 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자고 있다.
너무 무리하게 걸었나 싶어서 좀 더 자도록 내버려 둔 후, 배도 슬슬 고프고 지루하기도 해서 깨웠다.
“밥먹자” “뭐먹지?”
“그냥 대충 먹자” “난 이제 느글거려서 그 까페들에서 안 먹을래”
“그럼 노점 식당에 가보자” “차라리 그게 낫겠다”
카오산으로 나가니 이미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피크타임을 맞고 있는 길 양옆의 가게들은 넘치는 관광객으로 이미 분주함을 넘어 떠들썩함으로 가고 있었다.
카오산에서 주유소쪽으로 나가서 시장쪽으로 가니 노점식당이 많았다.
지나가다 보니 족발을 삶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게 바로 요술왕자의 음식추천에 들어있던 족발덮밥(카우 카 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먹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돼지족발이라는 것이 잘하면 맛있지만 잘못하면 냄새가 나는 법이라며 레커는 쌀국수를 먹겠단다. 그래서 그냥 족발덮밥하는 노점 테이블에 앉아서 나는 족발덮밥을 시키고 레커는 바로 옆 노점에서 쌀국수를 시켰다.
그래도 뭐라고 하는 사람 하나 없다. 우리나라같으면 주인눈치 깨나 봤어야 할텥데.
물론 빼먹지 않는 한마디.
“마이 싸이 팍치 캅”
역시 노점의 장점은 그 신속성에 있다. 밥을 접시에 담고, 능숙한 솜씨로 족발을 턱턱 썰은 다음 밥에 얹고 국물을 쭉 뿌리니 한 3분만에 완성이다. 쌀국수는 철망으로 만들어진 큰 국자같은 것 안에 국수를 넣고 잠시 끓는 물에 담궈서 익힌후 국물을 붓고 다른 재료를 얹어서 금방 완성되었다. 족발덮밥을 먹으려고 같이 나온 숟가락을 들어보고 그 참을 수 없는 숟가락의 가벼움에 놀랐다. 무게나 두께가 종이 숫가락 분위기다. 먹다가 혓바닥을 베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고기 한 점을 집어서 입에 넣었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구수한 족발의 맛… 우리나라 족발은 약간 고기가 쫄깃거리고 탱탱한 반면 태국식 족발은 부드러웠다. 다음은 밥을 한 숫가락 퍼서 먹어보았다. 자칫 그 국물에서 돼지냄새가 나거나 익숙치않은 향료냄새가 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쇼너야…맛있냐?”
“감동이야~”
이번에는 내가 물어보았다.
“쌀국수는 어때?”
“이것도 맛있어… 근데 양이 좀 작다”
“그럼 이따 길거리에서 뭐 좀 더 사먹지 뭐…”
서로 족발을 집어먹기도하고 국수국물을 빼앗아 먹기도 하면서 모처럼 포식을 했다. 실상 나는 입맛이 별로 까다롭지 않은 편이라 아무거나 잘 먹는데, 그래도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는게 좋지 않은가?
배를 채우니 다시 힘이 나는게 좋았다. 오늘 저녁에는 원래 차이나타운에 가려고 했으나 일정을 변경하여 WTC를 중심으로한 쇼핑센터 구경을 나가기로 했다.
시간이 좀 늦은 듯 했으나 물건을 살 것도 아니고 그냥 시내구경이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나갔다. 역시 우리의 주 교통수단은 버스… 황금의 노선 에어컨 11번을 타고 시내로 나갔다. 전자상가를 지나 WTC근처에서 내려 슬슬 구경하기로 했다. 근처에는 Zen과 WTC를 비롯한 백화점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었다.
태국의 백화점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위로 높지 않고 옆으로 길어서 돌아보는데 예상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저분하게 생긴 두명이 왔다갔다하니 별로 신경도 안쓰고 그 편이 우리도 구경하기 편했다.
백화점의 시설은 고급스럽고 현대적이었으며(백화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Zen과 WTC가 가장 좋았던 것을 기억된다. 백화점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다름아닌 안내방송…
‘어쩌구 저쩌구 카~…. 이러쿵 저러쿵 카~… 나불나불 카~’
내 귀에는 목소리 예쁜 태국여성의 카~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둘이 너무 재미있다면서 낄낄거렸다.
쇼핑센터에서 아무것도 안샀느냐? 그건 아니다. 식품매장에서 망고스틴을 1Kg쯤 샀다. 과일의 여왕이라는 망고스틴… 나는 예전 싱가폴 출장때 먹어봐서 그 맛(정말 맛있다)을 알고 있었지만 레커에게는 가이드북에서만 보았지 처음으로 접하는 과일이었다.
“(식품매장에서 망고스틴을 가리키며)레커야… 우리 이거 사먹자… 이거 진짜 맛있어”
“이게 뭔데?”
“망고스틴”
“아~ 그 가이드북에 나온 과일?”
“응”
“너무 많이 사지 마라… 맛없으면 처치 곤란이다”
“걱정 마셔… 너 안먹으면 내가 다 먹을께…”
WTC에서 망고스틴을 사가지고 나오니 앞에는 조그마한 공연장이 있었는데 마침 거기서 태국의 아마추어 밴드인지 프로밴드인지 모르는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어서 그걸 구경하면서 망고스틴을 까먹었다.
나보다 레커가 2배쯤 많이 먹었다.
내가 주머니칼을 꺼내서 두툼한 망고스틴 껍질을 벗겨내었다.
그리고 나서 속의 마늘같이 생긴 과육을 꺼내 레커에게 주었다.
“에게~ 그 두꺼운 껍질 다 버리고 고작 요거 먹는거야? 근데 이거 진짜 맛있다….와구와구.. .쩝쩝…”
그 순간부터 레커는 망고스틴 팬이 되었다. 지금도 자주 먹고 싶어한다.
이 근처에 볼거리로는 에라완 사원이 있어서 그곳도 들러보았다. 시간이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참배하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다. 모두 경건한 모습이었고 기도에 열심히었다. 우리도 잠시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지나가던 버스에서도 손을 모으는 모습이 심심치않게 보였고 현지인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곳이다.
원래 이것저것 둘러보는 것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이라… 시간이 꽤나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구경에 욕심이 난 우리는 걸어서 씨암스퀘에 가기로 했다. 지도상으로 보이는 바로 무척 가까웠기 때문이다.
지도로 방향을 잡아 걸어가는데 밤길인데다 다니는 사람도 드물어서 조금 겁이 났지만 그냥 걸었다. 걷다보니 해산물 식당같은 볼거리(?)가 나와서 게랑 새우, 랍스터 구경도 했다.
이 와중에 정말 볼거리가 나타났으니 어디선가 나타난 코끼리들… 관광객을 위한 것인지 주인같아 보이는 사람이 사탕수수를 사서 코끼리를 주라고 권유한다. 뭐 꼭 내가 줘야 맛인가? 그냥 코끼리만 구경했다. 그 뻣뻣해보이는 털이라니… 나는 예전에 코끼리는 털이 없는 줄 알았다. 동물의 왕국같은데서 보면 털이 없이 그냥 가죽으로 덮여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어두운 밤거리를 걷기를 잠시… 씨암스퀘에 도착했는데… 젊은이들의 활기를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우리를 반기는 건 썰렁하게 불꺼진 건물들 뿐이었다. 시간이 너무 늦은 탓이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생겼구나 한바퀴 휭 돌아보고 다시 카오산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버스가 다니지 않는 것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으나, 늦은 밤 인적도 드문 길에서 버스 기다리기도 그래서 그냥 택시를 잡아타고 카오산으로 돌아왔다. 이 여행에서 탄 유일한 택시였다.
다시 카오산에 돌아오니 거리가 들썩들썩하는 것이 좀전의 광경과는 전혀 딴판이다. 카오산은 역시 방콕의 별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양이 좀 부족했던 관계로 군것질이 필요했던 우리는 돼지꼬치를 하나씩 사서 먹었다.
설명이 필요없었다. 환상적인 맛이었다. 더군다나 무지하게 쌌다.
더 먹었다… ^^
내일은 투어가 있는 날이라 일찍 일어나야했다. 숙소에 들어가서 씻고 푹 잤다.
우리나라에서의 한 3일의 시간을 하루에 보낸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