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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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5)

쇼너 2 1100
1999년 3월 1일(월) 비행기에서

드디어 게이트가 열렸다. 게이트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우루루 줄을 서기 시작한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대부분이다. 외국인들이나 외국 꽤나 나가봤을 법하게 보이는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TV만 보고 있다.
명절에 입석 기차표 끊고 가는 것도 아닐진대, 일찍타면 뭐가 그리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짐을 먼저 넣을 수 도 있겠고, 희귀한 신문(우리나라 항공사의 경우 스포츠 신문은 뒤에 타면 없다)을 구할 수도 있겠지만…
각각 좌석 다 있겠다, 짐 안들어가면 예쁜 언니야들이 다 도와주겠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예쁘기로 소문난 타이항공 스튜어디어스들의 환영을 받으며 탑승. 비행기의 주익부근 왼쪽 창가 자리다. 내가 창가, 레커가 가운데, 중국계인듯한 할머니 혹은 아주머니가 복도쪽에 앉았다.
이륙전 의례하는 안전교육후 비행기는 활주로에 올랐다.
활주로를 질주하는 비행기. 나는 비행기 날개가 활주로를 달릴 때 위아래로 흔들흔들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가속이 점점 붙으면서 몸이 좌석안으로 빠져드는 느낌… 난 그 느낌이 참 좋다.
하지만 레커는 아닌가보다. 무지 쫄아서 손바닥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내 손을 꽉 붙잡고 있다. 손이 쪼끔 아프려고 그런다.

‘쯧쯧… 촌스럽긴…’

어쨌거나 비해기가 뜨고 어느정도 수평고도에 올라가자, 스튜어디스들이 음료수를 서브하기 시작했다. 잘생겼지만 약간 느끼하게 생긴 스튜어드가 우리 담당이다.(재수도 지지리 없어) 우리는 그 스튜어드에게 느끼하게 생겼다는 의미에서 오일리(Oily)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레커가 카트를 유심히 보더니 묻는다.
“뭐뭐 있어?” “술하고 음료수하고…”
“나 뭐 먹지?” “ 달라면 다 주니까 아무거나 먹어”

나중에 소변이 자주 마려운 단점이 있지만 역시 비행기에서 제일 먹을만한 음료수는 맥주라고 나는 생각한다. 칵테일은 영 꽝이고. 양주는 좀 부담되고 음료수는 왠지 손해보느 느낌 때문에. 난 맥주를 달라고 한다.
발음 주의해서 혀굴리며 말했다. “비~어, 플리즈”
레커는 토마토 주스를 달라고 한다. 단절음 구조를 가진 발음… “토-마-토-주-스”
태국 스튜어드에게서 즉각 반응이 온다. 그런 발음에도 불구하고…
태국에서 영어는 발음 걱정을 안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했다.
하지만 토마토 주스의 맛은 영 아니었다고 레커나 나중에 말해주었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가이드북 좀 읽고 하니까 어느덧 앞쪽부터 식사를 나눠준다. 레커는 기내식에 대해서 대단한 환상을 가지고 있나보다. 무지 좋아한다. 하긴 즐거운 여행길에 뭔들 안좋아하랴마는.
난 기내식을 정말 싫어한다. 일단 주니까 먹지만 좁은데서 먹는 것도 불편하고 결정적으로 맛이 없다. 더군다나 먹고 가만히 있으니 소화가 안되는 듯한 느낌이 너무 맘에 안든다.
여기서 여행중에 끊임없이 벌어졌던 쇼너와 레커의 크고 작은 교전 중 1회전이 발발했다.
발단은 갑자기 카트가 3칸 정도 앞에 왔을 때, 레커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야되겠다는 것이었다.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가운데 좌석에 레커가 앉았기 때문에 레커가 화장실에 가려면 중국계 할머니를 지나가야하는데 그 할머니는 이미 식판? 식탁? 아무튼 그걸 이미 내려놓고 기내식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레커가 지나가려면 그걸 다 치우고 지나가야 했다. 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레커에게 말했다.

“밥 먹고 가라. 쫌만 참어” “안 돼. 밥 편하게 먹어야 돼”
“그럼 얼릉 갔다와라. 이 할머니 앞에 밥 놓이기 전에…식사는 하나씩 시켜놓을께” “알았어”

오기는 뭘 온단 말인가. 한참 있다 레커가 나타났다. 옆의 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좁은 이코노미에서 식판을 들고 어쩌구 하면서 레커를 겨우겨우 앉혔다.
뭐 내가 손해본 건 없었지만 옆의 할머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상황이 좀 짜증스럽기도 하고 해서 인상을 확 긁고 한마디 퍼부었다.
하지만 레커가 누구냐? 초사이언인 상태의 트랭크스를 능가하는 전투력의 소지자가 아니더냐? 칼빈소총 두어방 땅땅 갈기고 박격포 포격 받았다.
그래도 대한민국 땅개의 자존심을 걸고 M60 경기관총으로 바꾸어서 총신 벌겋게 달궈질때까지 연사했다. 네이팜탄 융단폭격 받았다.

기내식 내밀면서 말했다.

“이것도 한 번 먹어볼래?”

비행기는 한 번 홍콩에서 Transit을 했다. 홍콩공항에서 대기하는 동안 레커랑 창밖을 쳐다보며 저기 어디엔가 유덕화랑 주윤발, 양조위, 주성치, 장만옥등등.. 우리가 알고있는 홍콩배우들이 있겠지라며 언제 한번 홍콩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어서 Transit Area를 빙빙 돌아도 흡연구역이 도데체 없다. 물어보니까 원래 그런 것 없단다. 으… 괴로운 것.
다시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향했다. 기내식이 한 번 더 나왔다. 충분히 주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까랑 똑같은 상황을 레커가 다시 연출했다.
레커의 뇨의조절 자율신경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엔 용서 못해… 불끈’

빨콩 더블 파이어로 초반에 죽였다(뭔 말인지 모르시면 포트리스를 좀 해보시라). 하하하. 나의 승리 ^^V
그렇게 아웅다웅하다는 사이에 방콕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2 Comments
레커 1970.01.01 09:00  
제가 매너가 뭔지는 아는데(긁적) 그땐 비행기를 첨 타봐서 긴장되니 자꾸만 오줌이 마렵더군요~ 저도 되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쇼너가 자꾸만 옆에서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냠~
ㅋㅋ.. 1970.01.01 09:00  
여성분 매너가 뭔지 모르는 분이신가염?? ^^::<br>담편부턴 태국에서의 얘기가 올라오겠군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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