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왓디 무앙타이(4)
- 만남의 광장 -
앞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방콕의 카오산거리에는 배낭여행자를 위한 숙소들이 즐비하다.(이런 곳을 게스트하우스라 부른다) 내가 찾은 이 곳 [만남의 광장]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인데, 떠나기 전에 알아본 바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가운데에는 [홍익인간]이란 곳과 쌍벽을 이룰만한 지명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문 앞에 서서 보니.. 약간은 실망스러웠다고나 할까?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본 것보다는 솔직히 많이 초라했다. 하지만 뭐 어떠랴? 이국의 밤거리를 헤맨 우리 부부에게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존재인데.. 안으로 들어가니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준다.(여기서는 사장님이란 호칭대신 대장님이라 부르는데 사실 그 편이 더 정감 있게 느껴지지 않냐?) 암튼 성함은 하 대호란 분이고, 덥수룩한 수염에 머리가 좀 벗어져서 연세를 짐작하긴 힘들었지만 어쨌든 나보다는 연배가 위로 뵈는 털털한 인상의 아저씨였다. 숙소에는 하대장님말고도 몇몇 분이 모여서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시간이 2시가 넘은지라 술자리는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 미리 한국에서 예약도 하고 숙박비까지 지불하고 떠났지만, 그 시간까지 우리 부부를 기다리셨나.. 하는 생각에 모든 것이 너무 고맙기만 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우리는 거기서 일하는 소년인 듯한 태국소년을 따라 방을 배정받으러 2층으로 올라갔다. 건물 전체는 나무로 지어졌고, 아무래도 공간이 협소해서 그런지 복도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는데, 무슨 미로찾기를 하듯 태국소년을 따라간 끝에 구석진 곳의 방 하나를 안내받았다.
"자기야.. 여기서 자는 거야?"
아내가 아주 실망스런 목소리로 묻는데, 허허허...
애당초 우리가 예약한 곳은 2인용 룸. 사실 둘이 자기에 비좁거나 하진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욕실이 없고, 벽은 그냥 널빤지를 못질해서 이어 붙인데다, 침대도 널빤지에 그냥 매트리스를 올려놓은 것이었다. 게스트하우스란 곳이 처음인 아내가 실망하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저 웃음만 나오는 상황이었으니까.
이 방은 1박에 5천원쯤 하는 곳.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다.(너희들이야 공부하는 학생이니 아직 여관방 값을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리 싸구려 여인숙이라도 아마 2만원은 할걸?) 기본적으로 짠돌이인 나는 솔직히 싼 가격에 우선 마음을 뺐겼었고, 무엇보다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처음하면서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었다. 가격에 대해서도 그냥 태국은 물가가 싼 모양이군... 이렇게 생각했을 뿐...하하!!
하루종일 이동하느라 비행기와 길바닥에서 시달렸으니 샤워를 좀 하고 싶은데, 여기서는 욕실이 공동이니 방밖으로 나갈 수밖에... 아내는 아까부터 완전히 풀죽은 얼굴로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데... 그렇지만 나 혼자라도 좀 살아야겠기에 화장실로 갔다. 하하하!!
화장실은 더욱 가관이었다. 덮개가 없는 것은 그렇다쳐도 깔판이 부서진 것은 좀 심했다.(가만히 있던 깔판이 혼자 부서질리는 없으니, 속상한 일이 있는 누군가가 화장실에서 울분을 해소한 모양..) 엉덩이가 큰 서양여자들이야 그런대로 일을 보겠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권 사람들은 엉덩이를 들고 다리 힘으로 지탱해야 할 판. 하하!! 변기 옆에는 샤워꼭지가 붙어있긴 한데 0.2평이나 될법한 이 공간에서는 옷을 입고 벗는 것조차 힘겹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샤워를 마치고 나니 한결 마음은 산뜻해진다. 이제 시각은 새벽3시가 넘었다. 이제부터는 아직도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의 아내를 달래야하는데...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까? 스스로 마음의 안정을 찾도록 조용히 기다리는 수밖에..
그렇지만 생각할수록 지금의 상황이 우습기만 해서 난 연신 히죽히죽거렸다. 내가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우리 학교의 많은 선생님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은 우리 부부의 [지금]을 상상이나 할까? 하하하!!! 또한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 함께 올 계획이었던 류지원이란 친구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고, 부인되는 사람은 너희들의 선배(3회 졸업생)인데, 나하고는 대학생 때 함께 야학을 했던 친구이다. 아무튼 막판에 계획이 어긋나서 이 친구부부와 함께 오지 못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같이 왔어봐라! 내가 짐작컨대, 공주암 말기환자인 친구부인은 이런 환경에선 절대 적응 못한다. 결국 욕이란 욕은 내가 혼자 다 먹을 것이 자명한 이치... 하하!!
사실 나는 조금이라도 누워서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뱃속 편하게 잠까지 자면, 한쪽 구석에 쳐 박힌 아내를 더욱 화나게 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그저 조용히 새벽4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 시각은 캄보디아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야할 때였으니까...
사족:
1) 숙소 때문에 생긴 해프닝은 우리 부부가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얼마나 태국에 대해 모르고 떠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가격은 태국에서도 엄청 저렴한 수준이었으며, 태국을 잘 아는 분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우리가 묵은 [만남의 광장]이 비슷한 가격의 다른 숙소에 비하면 그나마 좋은 편이었다.
2) 태국이라고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 이곳에도 엄청난 규모의 특급호텔들이 즐비하다. 보통 그런 호텔들에는 당연히 수영장은 기본이고 각종 위락시설이 딸려 있다. 비싼 것은 당연.. 따라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욕실 딸리고, 에어컨 돌고, 침대 좀 깨끗한 방은 만 오천원쯤 줘야한다. 그래도 한국과 비교하면 역시 싼 편...
3) 내 글을 읽으면서 [만남의 광장]에 대해 너희들이 어떤 느낌을 갖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사실 남자들이 지내기엔 그런대로 괜찮다. 다만 깔끔떠는 여자들이 문제... 그리고 여긴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배낭여행으로 와서 많이들 묵는 곳이란 점도 알아두기 바란다. 따라서 편견은 금물. 단, 여기에 만원 정도 더 주면 훨씬 좋은 곳으로 갈 수는 있다. 물론 판단은 각자가 하는 것!!
4) 오늘부터는 보다 현장감 있는 여행기를 만들어보려고 사진까지 동봉한다. 오늘 사진은 이 글의 주제인 [만남의 광장]의 방안에서 찍은 모습이다.
앞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방콕의 카오산거리에는 배낭여행자를 위한 숙소들이 즐비하다.(이런 곳을 게스트하우스라 부른다) 내가 찾은 이 곳 [만남의 광장]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인데, 떠나기 전에 알아본 바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가운데에는 [홍익인간]이란 곳과 쌍벽을 이룰만한 지명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문 앞에 서서 보니.. 약간은 실망스러웠다고나 할까?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본 것보다는 솔직히 많이 초라했다. 하지만 뭐 어떠랴? 이국의 밤거리를 헤맨 우리 부부에게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존재인데.. 안으로 들어가니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준다.(여기서는 사장님이란 호칭대신 대장님이라 부르는데 사실 그 편이 더 정감 있게 느껴지지 않냐?) 암튼 성함은 하 대호란 분이고, 덥수룩한 수염에 머리가 좀 벗어져서 연세를 짐작하긴 힘들었지만 어쨌든 나보다는 연배가 위로 뵈는 털털한 인상의 아저씨였다. 숙소에는 하대장님말고도 몇몇 분이 모여서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시간이 2시가 넘은지라 술자리는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 미리 한국에서 예약도 하고 숙박비까지 지불하고 떠났지만, 그 시간까지 우리 부부를 기다리셨나.. 하는 생각에 모든 것이 너무 고맙기만 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우리는 거기서 일하는 소년인 듯한 태국소년을 따라 방을 배정받으러 2층으로 올라갔다. 건물 전체는 나무로 지어졌고, 아무래도 공간이 협소해서 그런지 복도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는데, 무슨 미로찾기를 하듯 태국소년을 따라간 끝에 구석진 곳의 방 하나를 안내받았다.
"자기야.. 여기서 자는 거야?"
아내가 아주 실망스런 목소리로 묻는데, 허허허...
애당초 우리가 예약한 곳은 2인용 룸. 사실 둘이 자기에 비좁거나 하진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욕실이 없고, 벽은 그냥 널빤지를 못질해서 이어 붙인데다, 침대도 널빤지에 그냥 매트리스를 올려놓은 것이었다. 게스트하우스란 곳이 처음인 아내가 실망하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저 웃음만 나오는 상황이었으니까.
이 방은 1박에 5천원쯤 하는 곳.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다.(너희들이야 공부하는 학생이니 아직 여관방 값을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리 싸구려 여인숙이라도 아마 2만원은 할걸?) 기본적으로 짠돌이인 나는 솔직히 싼 가격에 우선 마음을 뺐겼었고, 무엇보다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처음하면서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었다. 가격에 대해서도 그냥 태국은 물가가 싼 모양이군... 이렇게 생각했을 뿐...하하!!
하루종일 이동하느라 비행기와 길바닥에서 시달렸으니 샤워를 좀 하고 싶은데, 여기서는 욕실이 공동이니 방밖으로 나갈 수밖에... 아내는 아까부터 완전히 풀죽은 얼굴로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데... 그렇지만 나 혼자라도 좀 살아야겠기에 화장실로 갔다. 하하하!!
화장실은 더욱 가관이었다. 덮개가 없는 것은 그렇다쳐도 깔판이 부서진 것은 좀 심했다.(가만히 있던 깔판이 혼자 부서질리는 없으니, 속상한 일이 있는 누군가가 화장실에서 울분을 해소한 모양..) 엉덩이가 큰 서양여자들이야 그런대로 일을 보겠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권 사람들은 엉덩이를 들고 다리 힘으로 지탱해야 할 판. 하하!! 변기 옆에는 샤워꼭지가 붙어있긴 한데 0.2평이나 될법한 이 공간에서는 옷을 입고 벗는 것조차 힘겹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샤워를 마치고 나니 한결 마음은 산뜻해진다. 이제 시각은 새벽3시가 넘었다. 이제부터는 아직도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의 아내를 달래야하는데...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까? 스스로 마음의 안정을 찾도록 조용히 기다리는 수밖에..
그렇지만 생각할수록 지금의 상황이 우습기만 해서 난 연신 히죽히죽거렸다. 내가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우리 학교의 많은 선생님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은 우리 부부의 [지금]을 상상이나 할까? 하하하!!! 또한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 함께 올 계획이었던 류지원이란 친구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고, 부인되는 사람은 너희들의 선배(3회 졸업생)인데, 나하고는 대학생 때 함께 야학을 했던 친구이다. 아무튼 막판에 계획이 어긋나서 이 친구부부와 함께 오지 못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같이 왔어봐라! 내가 짐작컨대, 공주암 말기환자인 친구부인은 이런 환경에선 절대 적응 못한다. 결국 욕이란 욕은 내가 혼자 다 먹을 것이 자명한 이치... 하하!!
사실 나는 조금이라도 누워서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뱃속 편하게 잠까지 자면, 한쪽 구석에 쳐 박힌 아내를 더욱 화나게 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그저 조용히 새벽4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 시각은 캄보디아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야할 때였으니까...
사족:
1) 숙소 때문에 생긴 해프닝은 우리 부부가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얼마나 태국에 대해 모르고 떠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가격은 태국에서도 엄청 저렴한 수준이었으며, 태국을 잘 아는 분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우리가 묵은 [만남의 광장]이 비슷한 가격의 다른 숙소에 비하면 그나마 좋은 편이었다.
2) 태국이라고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 이곳에도 엄청난 규모의 특급호텔들이 즐비하다. 보통 그런 호텔들에는 당연히 수영장은 기본이고 각종 위락시설이 딸려 있다. 비싼 것은 당연.. 따라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욕실 딸리고, 에어컨 돌고, 침대 좀 깨끗한 방은 만 오천원쯤 줘야한다. 그래도 한국과 비교하면 역시 싼 편...
3) 내 글을 읽으면서 [만남의 광장]에 대해 너희들이 어떤 느낌을 갖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사실 남자들이 지내기엔 그런대로 괜찮다. 다만 깔끔떠는 여자들이 문제... 그리고 여긴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배낭여행으로 와서 많이들 묵는 곳이란 점도 알아두기 바란다. 따라서 편견은 금물. 단, 여기에 만원 정도 더 주면 훨씬 좋은 곳으로 갈 수는 있다. 물론 판단은 각자가 하는 것!!
4) 오늘부터는 보다 현장감 있는 여행기를 만들어보려고 사진까지 동봉한다. 오늘 사진은 이 글의 주제인 [만남의 광장]의 방안에서 찍은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