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왓디 무앙타이(14)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싸왓디 무앙타이(14)

이준용 2 1108
- 씨엡립 돌아보기 -

오전에 톤레삽과 악어농장에 다녀와서 먹은 점심은 비빔밥. 이제 더 이상 노점은 진절머리
가 난지라 글로벌에서 먹었는데, 음식이 나오자마자 아내가 한 말. "밥이 너무 적어!" 따라
서 당장에 한 그릇을 추가, 둘이 나눠서 비비니 그릇에 밥이 차고도 넘친다. 그 동안 점심은
늘 굶었던 아내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순간.

오후에 제일 먼저 들렀던 곳은 킬링필드 기념관. 원래 제대로 된 것은 다른 곳에 있고 이곳
은 근처에서 나온 해골바가지로 대충 만든 것인데, 기념관 세울 돈이 없는지라 지금은 절의
한쪽에 유리관을 만들어 사람 뼈다귀를 전시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사람의 유해
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막상 안을 들여다보면 소름이 끼친다. 이건 모형이 아니라 실제
니까. 가로와 세로는 1M 높이는 2M 정도인 유리관의 절반이 해골더미이니 상상은 각자 해
보길... 이 유해는 주변의 논밭에 널려 있는 것들을 주워 온 것이다.

그 다음에 간 곳은 지뢰박물관. 재미있는 것은 지뢰가 영어로 뭔지를 몰라서... 하하!! 가고
는 싶은데, 말을 못하니... 고민 끝에 생각한 것은 바디랭귀지. 먼저 프롬에게 음? 음? 해서
주의를 집중시킨 후, 손으로 발목 자르는 흉내를 내며 "빵!!" 이렇게 했지. 그랬더니 알아듣
더군.
여기도 이름은 박물관이지만 번듯한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풀로 울타리를 세우고
가건물을 지은 곳. 내부에는 근처에서 채취한 지뢰와 각종 폭탄들이 쌓여있고, 벽에는 폴포
트정권이 저지른 만행을 그림으로 설명해 주고 있었다. 뜰에는 해골마크가 찍힌 빨간 표지
가 붙어 있는 가운데 땅에 박혀 있는 지뢰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 모습을 보니 저절로 숙
연해진다.

캄보디아 민초들의 생활상을 가장 실감나게 보여주는 곳. 재래시장으로 갔다. 길가에는 옷가
게와 기념품가게들이 늘어서 있고, 안에는 채소부터 시작해서 각종 생선과 고기 등을 파는
데 상당히 지저분하다. 시장 안을 구경하는데 언뜻 눈에 비친 것은 좌판에 앉아 음식을 먹
는 사람의 등에 씌어진 글씨. KOREA!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니 바로 어제 이곳에 오
신 분. 점심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앉아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눴다. 사실 어제 노점
에서 점심을 먹다가 이곳 사람들이 비위생적인 모습을 본지라 앞으로는 노점식사를 안 하겠
다고 마음먹었으나 뭐 어떠랴?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병에 걸려서 죽은 것도 아닌데...
하지만 어제 노점에서 본 이 사람들의 설거지하는 모습은 쇼킹했었다. 물이 귀해서 그러는
지 양동이에 물을 담아 놓고선 거기서 모든 그릇을 닦아대니 설거지하는 물은 거의 구정물.
하하!! 밥맛이 뚝 떨어진다. 그러나 이왕 내친김에 밥 먹고 음료수까지 마셨다. 얼음을 담은
컵에 계란 노른자를 넣고 우유를 부은 후 이것저것을 넣었는데, 맛이 괜찮다. 물론 이 컵도
구정물로 씻었겠지만...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기념품 가게. 앙코르 유적지로 가는 길에 있는데, 밖에서 보아도 으리
으리하더니 안에 들어가니 없는 게 없다. 1층은 기념품 가게이고, 2층은 슈퍼마켓. 점원들은
우리를 보고 대번 한국인임을 아는지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신기하다... 가난한 캄보디아라
고 해서 물건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깨끗한 표지의 노트와 연필, 볼펜 등등..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이 거기에도 있었다. 다만 문제는 돈인 모양. 하긴 태국산 과자 3봉지 샀는데도 2불
이니 꽤 비싸다.


- 내일을 기다리며 -

시내구경을 마치고 다시 글로벌로 왔다. 이제는 저녁시간. 배가 고프지 않은 나는 그냥 깍두
기로 끼고 아내만 특별히 라면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그 맛은 정말 환상적이다. 특히 첫 젓
가락을 입에 넣으니 국물이 목구멍을 넘어가면서 속이 싸-하게 풀린다. 평소에도 좋아했지
만 라면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밥까지 엄청 많이 말아서 국물 한방울 남김없이 해치웠
다. 가격은 라면 하나 밥 한 그릇에 3불이니 조금 비싸다. 비행기 타고 건너 온 것이니 그럴
수밖에...

프롬에게 3일 동안의 차비를 지불했다. 하루에 20불씩이니 모두 60불인데, 우리가 어제 반테
이스레이를 다녀온 관계로 10불 추가해서 모두 70불. 내일은 다시 방콕으로 돌아가는 날이
니 일찍 숙소에 들어와서 쉬었다. 차편은 글로벌에서 마련해 준 미니버스를 이용하기로 했
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나?


사족:
1) 내가 처음 캄보디아를 알게 된 것은 영화 [킬링필드]를 통해서였다. 1987년 12월의 어느
날, 다음날이 대통령 선거일이었는데 테레비에서 특선 영화라고 이걸 보여줬다. 당시 나는
대학교 1학년. 아주 어린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이런 영화를
보여주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산치하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 후보였던 노태우 후보를 돕고 싶었던 언론의 의도가 숨어있
었던 것도 같은데...
2)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캄보디아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주인공이 미군의 품에 안기는
모습. 배경음악은 존 레논의 Imagine.
3) 당시 캄보디아에서 학살을 자행한 폴포트 정권은 1975년에 베트남이 공산화되던 시기에
캄보디아에서 권력을 장악했는데 중국(당시는 중공)의 지원을 받는 순수 공산주의단체로 서
구와 자본주의의 배척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물든 사람들에 대한 대대
적인 숙청을 자행했는데, 그 방법은 과격하고 잔인하며 무자비하였다. 예를 들어 영어를 한
마디라도 할 줄 안다거나 단지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이유로 또는 너무 유식하다는 이유로
도 사람을 죽였는데, 이렇게 죽은 사람의 수가 200만명. (당시 캄보디아의 인구는 600만) 이
학살극은 당연히 국제사회의 문제로 대두되었고, 영화 [킬링필드]에 나오는 미군은 이 문제
를 해결하겠다고 투입된 병력. 폴포트의 이런 만행은 5년간 지속되다가 1979년 베트남의 침
공으로 정권이 붕괴되면서 종식되었다. 베트남이 침공한 이유는 캄보디아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 중 베트남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요청으로 진입한 것. 패
주한 폴포트의 잔당들은 산악지방으로 도주하여 이후에는 현재까지 게릴라전을 펴고 있는
데, 우리는 이들을 크메르루즈라 부른다. 2년전인가 배낭여행을 하던 서양인들이 산악지방에
서 죽었는데, 이 사건의 가해자도 크메르루즈.
4) 프롬의 할아버지와 누나도 폴포트 시절에 죽임을 당했다. 전 인구의 1/3을 죽였으니 집집
마다 피해자가 있는 것은 당연.
5) 오늘의 사진은 지뢰박물관의 모습이다.
2 Comments
이준용 1970.01.01 09:00  
하하!! 아닙니다. 물리 가르칩니다.
효숙 1970.01.01 09:00  
혹시 세계사 새임???? ^^;; 잘봤습니다...넘 잼나요...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