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왓디 무앙타이(12)
- 앙코르와트 -
어제처럼 점심식사 후에는 취침. 그리고 다시 3시쯤 되어 차에 올랐다. 이제부터 가는 곳은
이번 관광의 하이라이트라 할 [앙코르와트]. 새벽에 일출을 보러 가면서 잠깐 들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맛뵈기였을 뿐.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앙코르와트는 앙코르유적지 중에서
가장 큰 사원이며 또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크메르 건축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역사적인
예술품이다. 또한 이 사원은 구성, 균형, 설계 기술, 조각과 부조 등의 완벽함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곳. 넒은 호수와 나란히 달리던 차는 마침내 입
구에서 정지. 멀리 앙코르와트가 보이는 이곳에는 호숫가에 벤치까지 조성되어 있어서 보기
에 평화롭기 그지없었고, 캄보디아 사람들은 가족단위로 소풍을 나와 단란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정문을 향해 나있는 약 250미터에 이르는 입구 통로의 바닥은 사암으로 만들어졌는데, 넓은
이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앞으로 한발씩 내 딛을 때마다 새벽 어둠 속에서는 느낄 수 없
었던 앙코르와트의 거대한 위용이 점차 눈앞에 확대된다. 보면 볼수록 그저 감탄, 또 감탄...
사원 전체는 크게 3개의 층으로 구분되어 있고, 맨 위층에는 5개의 큰 탑이 세워져 있는데,
전체 높이는 지면으로부터 213미터이니 아파트 70층 높이에 해당!!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광장(새벽에 일출 본 곳)이 나오고, 한참을 더 걸어 들어가면 1층인
데, 1층 전체에는 멋진 부조회랑이 나타난다. (혹시나 해서 한마디... 부조는 조각의 주체는
남겨두고, 그 주변을 파내는 것으로 양각이라고도 한다) 이 회랑의 높이는 2M이고, 폭은
600M! 당연히 회랑 주변을 돌며, 그곳에 새겨진 조각을 감상하는 데에도 한세월이 걸린다.
물론 뭘 조각했는지는 무식하므로 알 수 없으나, 여행자가이드에 의하면 크게 인도의 전설
과 경전 그리고 앙코르시대의 전승기록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회랑을 한바퀴 돌아
다시 정문에 서면 2층으로 오르는 통로가 있고, 2층에도 역시 가로, 세로가 각각 100여 미터
에 달하는 회랑이 있는데, 이곳에는 아름다운 천상의 무희라는 압살라들이 조각되어 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실제로 압살라 춤을 보면 하품이 나오는 것이 문제...
다시 중앙으로 와서 계단을 오르면 3층이 나오고, 갑자기 눈앞에 가파른 계단이 나오면서
위로 우뚝 솟은 탑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중앙탑!!
- 공포의 계단 -
3층에 올라 중앙탑을 보니 탑에 오르는 계단은 까마득하고, 경사는 장난이 아니었다. 일단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으니 주변이나 한바퀴 둘러보자. 휴... 어찌하나... 대부분의 사람
들은 아래에 있는데 몇몇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당연히 네발로 기면서... 저 위에 올라가
면 뭐가 보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보이긴 뭐가 보이겠는가! 경관이야 다 그렇지... 어제
처음에 도착했던 [팍세이참크롱]에서는 반도 못 올라가고 벌벌 떨었는데... 저길 올라 말아?
갈등에 갈등... 생각에 생각... 주저주저... 고민고민... 아내는 극구 말리는데 그냥 못이기는 척
하고 돌아서? 하지만...
오르자!!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저기 계단이 있으므로... 하하!! 그건 아니고, 여기
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면 후회될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여자들도 오르는데, 뭐... 설마
죽기야 하겠어? 이처럼 생명에 대해 초연해지자 괜한 용기까지 생기고, 간뎅이가 부어올랐
다. 으하하하!!!! (사실은 내가 여길 올랐기 때문에 이 여행기도 더욱 재밌어진 셈)
자료에 따르면 계단 높이는 40미터. 아파트 13층 높이다. 경사각은 70도. 혹시 글을 읽는 사
람들 중에 경사각 70도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한마디! 내가 지금
처럼 여행을 좋아하기 전에는 사실 등산을 좀 다녔었다. 그렇다고 암벽을 했던 건 아니고,
그냥 능선을 타는 것. 아무튼 내가 오른 산 가운데 급경사는 지리산에 갔을 때 장터목산장
에서 천왕봉 오르는 코스. 물론 정상부근에는 국립공원답게 쇠말뚝이 박혀 있지만, 가끔 용
기 있는 사람들은 그 암벽을 그냥 오르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 분명 이 계단이 그 암벽보다
훨씬 급경사이다. 즉, 이런 급경사는 난생 처음... 더욱이 지리산엔 쇠말뚝이란 마음의 고향
이 있지만, 여기는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으니 각자의 목숨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40미터는
떨어져 죽기엔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 넉넉한 높이. 하하!!
아래쪽부터 한걸음씩 오르기 시작. 그런데 조금 오르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경사가 문제가
아니라 계단의 폭이 너무 좁은 것. 내 발 길이가 남자로선 아주 작은 245mm인데도 발이 반
만 걸려서 뒷꿈치는 공중에 뜨네? 아... 이런 사실이야 아래서 보아서는 알 수가 없지... 더욱
이 재미있는 것은 사람의 심리. 이런 경우엔 절대 아래를 보지 말고 위만 보고 올라야 하는
것은 상식. 그러나 거의 모든 인간들은 꼭 아래를 본다. 그리고선 무서워서 덜덜 떨지. 하
하!! 당연히 나 역시도 그런 범주의 인간적인 또는 미련한 인간... 무서워지니까 더 빨리 오
르기 마련. 숨이 차단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다람쥐처럼 꼭대기에 올랐다. 그러나...
어느 누가 이곳의 전망이 좋다고 했는가! 정상에 섰을 때의 첫 느낌. '괜히 올라왔구나' 올
라오는거야 어떻게 했다고 해도 내려가는 건 도저히 불가능... 계단 앞에 똑바로 설 수가 없
는데 뭐... 참고로 이 글을 읽는 인터넷 독자들을 위한 부연설명. 내 제자들은 익히 알고 있
지만, 난 겁이 많아서 애들하고 소풍을 가면 자이로드롭을 못 탄다. 물론 그와 비슷한 다른
놀이기구도. 하하!! 그러면 애들이 놀리고 그럴 것 같지만, 사실은 안 그렇다. 오히려 불쌍하
다고 같이 안 무서운 거 타면서 놀아준다. 하하!! (더 웃기는 건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여고
다. 하하하!!!)
이런 내가 이 꼭대기에 오른 것은 무모함 그 자체였다. 일단 밑에서 보고 있는 아내를 사진
기로 찰칵! 찍은 이유는 얼마나 작게 보이는지를 기념으로 남기려고... 이어서 조금 있다가
죽게 되더라도 내 사진은 남겨야겠기에 사진 찍어줄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허허 이런...
생각보다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다들 어디 갔지? 하지만 여기 올라와 있는 것도 기념인데, 아
무한테나 부탁을 해야지. 뭐... 해서 현지인처럼 생긴 청년에게 사진을 부탁. 그..러..나...
사진을 찍어준 이 친구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돈 가진 거 있으세요?"
"..................................... (놀라움과 황당)"
"저를 좀 도와주세요"
"(정신을 차리고) 노우!!"
그냥 평지에서 같았으면 별로 겁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긴 그게 아니잖는가? 또한
아까 올라와서부터 아니 오를 때부터 이미 나는 겁을 먹고 있었는데... 또 사람들은 다 어디
로 가고, 이렇게 조용한가? 내가 분명한 거절의사를 밝히자 녀석은 내게서 떨어졌는데 그렇
다고 녀석이 어디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조금 떨어져서 나를 지켜볼 뿐... 빨리 내
려가서 이 불안감에서 탈출하고 싶은데, 내려갈 엄두는 안 나고... 허허허...
일단 아내가 있는 쪽으로는 도저히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내가 보고 있다는 것도
내겐 엄청난 부담. 다행히 계단은 모두 네군데. 그 중 처음에 봤던 입구 쪽 계단을 선택했
다. 이유는? 앞서 내려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기 때문. 그것도 여자. (내가 이렇게 살았다우)
그 사람이 어떻게 내려가는지를 유심히 본 다음, 나도 결행! 태양은 어느덧 내 눈 높이만큼
내려와 있는데, 자꾸 몸은 아래로 쏠리는 느낌. 계단의 가장자리에 붙어서 손으로는 벽을 꼭
잡으며 아주 천천히 내려오는데, 절반쯤 내려오니 무서움이 1/10로 감소. 먼저 내려갔던 여
자는 아래에 서서 내가 내려오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봐줬다. 마침내 바닥 도착!! 그 아
가씨는 내 얼굴을 보며 아주 다행스럽다는 듯이 뭐라고뭐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일본말...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내 말을 듣더니 그 아가씨도 자기 동족이 아닌 줄을 아는 듯. 다소 무안한 얼굴로 떠나갔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랴? 나는 진정 고마왔을 뿐인데...
나는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아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아내가 내 얼굴을 보고 반가와
하는 것은 당연. 사실은 웃기지도 않는 꼴로 내려왔지만 마치 장한 일이라도 하고 온 듯이
금방 신이 나서 무용담을 펼쳐놓으니 어허... 이 양반도 오르겠대네? 근데 내가 내려온 쪽의
반대로 가보니 즉 올라간 쪽에서 1/4만큼 더 가니 쇠난간이 설치되어 있네? 어허... 이럴 수
가... 내가 조금만 침착했으면 이리로 내려올 수 있었는데... (쇠난간의 유무는 하늘과 땅 차
이) 흔히 하는 말로 '호랑이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 듯
했다. 아... 나의 경박함이여...
드디어 아내도 오르기 시작. 조금 있으니 멀리서 보아도 다리를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역력.
하하!! 거의 끝까지 올랐는데 뜻밖의 문제 발생. 문제란? 난간은 계단 왼쪽에 있는지라 오른
쪽으로 오르는 아내는 계단을 가로질러야 하는 것. 방금 올라가 본 나는 그 계단의 폭이 얼
마나 좁은지를 아는데... 혹시라도 굴러 떨어지면 받아보겠다고 (그런다고 살겠냐마는 아무
튼... 그건 지금 생각이고) 계단 앞까지 가서 손에 땀을 쥐며 바라보는데... 다행히 무사히 이
동. 아래로 내려 온 아내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사족:
1) 그래도 내가 "노우"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녀석의 체격이 왜소했기 때문. 만약 미국 사
람처럼 우람했다면 훨씬 더 겁났을텐데... 하하!! 내가 볼 때 일대일로 붙으면 충분히 해 볼
만했다. 싸움도 잘 못하는 내가 이럴 정도니까 웬만한 한국 사람이면 걔네들 세명이 한번에
덤벼도 너끈!
2) 아울러 창피하지만 하나 더. 만약 한국에서 그랬다면 창피함을 무릅쓰고라도 119구급대
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그런 게 있기나 하겠는가? 또한 설령 있더라도 이 가난한
나라에 고가사다리차가 있겠어?
3) 글을 읽는 우리반 애들에게... 선생님이 겁이 많아서 그렇지 꼭 그렇게 무섭진 않단다. 재
작년에 이곳을 다녀갔던 선생님 친구는 여기서 앙코르와트 전체를 조망하며 감격에 겨워했
다니까... (물론 선생님은 그럴 여유가 없었지만)
4) 다녀온지 이제 불과 한달 지났는데도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이 글을 쓰면서는 [트레블게
릴라]에서 발행된 [Angkor Ruins]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였다.
5) 오늘 올리는 사진은 당연히 그 공포의 계단. 기대하시라...
어제처럼 점심식사 후에는 취침. 그리고 다시 3시쯤 되어 차에 올랐다. 이제부터 가는 곳은
이번 관광의 하이라이트라 할 [앙코르와트]. 새벽에 일출을 보러 가면서 잠깐 들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맛뵈기였을 뿐.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앙코르와트는 앙코르유적지 중에서
가장 큰 사원이며 또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크메르 건축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역사적인
예술품이다. 또한 이 사원은 구성, 균형, 설계 기술, 조각과 부조 등의 완벽함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곳. 넒은 호수와 나란히 달리던 차는 마침내 입
구에서 정지. 멀리 앙코르와트가 보이는 이곳에는 호숫가에 벤치까지 조성되어 있어서 보기
에 평화롭기 그지없었고, 캄보디아 사람들은 가족단위로 소풍을 나와 단란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정문을 향해 나있는 약 250미터에 이르는 입구 통로의 바닥은 사암으로 만들어졌는데, 넓은
이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앞으로 한발씩 내 딛을 때마다 새벽 어둠 속에서는 느낄 수 없
었던 앙코르와트의 거대한 위용이 점차 눈앞에 확대된다. 보면 볼수록 그저 감탄, 또 감탄...
사원 전체는 크게 3개의 층으로 구분되어 있고, 맨 위층에는 5개의 큰 탑이 세워져 있는데,
전체 높이는 지면으로부터 213미터이니 아파트 70층 높이에 해당!!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광장(새벽에 일출 본 곳)이 나오고, 한참을 더 걸어 들어가면 1층인
데, 1층 전체에는 멋진 부조회랑이 나타난다. (혹시나 해서 한마디... 부조는 조각의 주체는
남겨두고, 그 주변을 파내는 것으로 양각이라고도 한다) 이 회랑의 높이는 2M이고, 폭은
600M! 당연히 회랑 주변을 돌며, 그곳에 새겨진 조각을 감상하는 데에도 한세월이 걸린다.
물론 뭘 조각했는지는 무식하므로 알 수 없으나, 여행자가이드에 의하면 크게 인도의 전설
과 경전 그리고 앙코르시대의 전승기록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회랑을 한바퀴 돌아
다시 정문에 서면 2층으로 오르는 통로가 있고, 2층에도 역시 가로, 세로가 각각 100여 미터
에 달하는 회랑이 있는데, 이곳에는 아름다운 천상의 무희라는 압살라들이 조각되어 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실제로 압살라 춤을 보면 하품이 나오는 것이 문제...
다시 중앙으로 와서 계단을 오르면 3층이 나오고, 갑자기 눈앞에 가파른 계단이 나오면서
위로 우뚝 솟은 탑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중앙탑!!
- 공포의 계단 -
3층에 올라 중앙탑을 보니 탑에 오르는 계단은 까마득하고, 경사는 장난이 아니었다. 일단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으니 주변이나 한바퀴 둘러보자. 휴... 어찌하나... 대부분의 사람
들은 아래에 있는데 몇몇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당연히 네발로 기면서... 저 위에 올라가
면 뭐가 보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보이긴 뭐가 보이겠는가! 경관이야 다 그렇지... 어제
처음에 도착했던 [팍세이참크롱]에서는 반도 못 올라가고 벌벌 떨었는데... 저길 올라 말아?
갈등에 갈등... 생각에 생각... 주저주저... 고민고민... 아내는 극구 말리는데 그냥 못이기는 척
하고 돌아서? 하지만...
오르자!!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저기 계단이 있으므로... 하하!! 그건 아니고, 여기
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면 후회될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여자들도 오르는데, 뭐... 설마
죽기야 하겠어? 이처럼 생명에 대해 초연해지자 괜한 용기까지 생기고, 간뎅이가 부어올랐
다. 으하하하!!!! (사실은 내가 여길 올랐기 때문에 이 여행기도 더욱 재밌어진 셈)
자료에 따르면 계단 높이는 40미터. 아파트 13층 높이다. 경사각은 70도. 혹시 글을 읽는 사
람들 중에 경사각 70도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한마디! 내가 지금
처럼 여행을 좋아하기 전에는 사실 등산을 좀 다녔었다. 그렇다고 암벽을 했던 건 아니고,
그냥 능선을 타는 것. 아무튼 내가 오른 산 가운데 급경사는 지리산에 갔을 때 장터목산장
에서 천왕봉 오르는 코스. 물론 정상부근에는 국립공원답게 쇠말뚝이 박혀 있지만, 가끔 용
기 있는 사람들은 그 암벽을 그냥 오르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 분명 이 계단이 그 암벽보다
훨씬 급경사이다. 즉, 이런 급경사는 난생 처음... 더욱이 지리산엔 쇠말뚝이란 마음의 고향
이 있지만, 여기는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으니 각자의 목숨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40미터는
떨어져 죽기엔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 넉넉한 높이. 하하!!
아래쪽부터 한걸음씩 오르기 시작. 그런데 조금 오르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경사가 문제가
아니라 계단의 폭이 너무 좁은 것. 내 발 길이가 남자로선 아주 작은 245mm인데도 발이 반
만 걸려서 뒷꿈치는 공중에 뜨네? 아... 이런 사실이야 아래서 보아서는 알 수가 없지... 더욱
이 재미있는 것은 사람의 심리. 이런 경우엔 절대 아래를 보지 말고 위만 보고 올라야 하는
것은 상식. 그러나 거의 모든 인간들은 꼭 아래를 본다. 그리고선 무서워서 덜덜 떨지. 하
하!! 당연히 나 역시도 그런 범주의 인간적인 또는 미련한 인간... 무서워지니까 더 빨리 오
르기 마련. 숨이 차단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다람쥐처럼 꼭대기에 올랐다. 그러나...
어느 누가 이곳의 전망이 좋다고 했는가! 정상에 섰을 때의 첫 느낌. '괜히 올라왔구나' 올
라오는거야 어떻게 했다고 해도 내려가는 건 도저히 불가능... 계단 앞에 똑바로 설 수가 없
는데 뭐... 참고로 이 글을 읽는 인터넷 독자들을 위한 부연설명. 내 제자들은 익히 알고 있
지만, 난 겁이 많아서 애들하고 소풍을 가면 자이로드롭을 못 탄다. 물론 그와 비슷한 다른
놀이기구도. 하하!! 그러면 애들이 놀리고 그럴 것 같지만, 사실은 안 그렇다. 오히려 불쌍하
다고 같이 안 무서운 거 타면서 놀아준다. 하하!! (더 웃기는 건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여고
다. 하하하!!!)
이런 내가 이 꼭대기에 오른 것은 무모함 그 자체였다. 일단 밑에서 보고 있는 아내를 사진
기로 찰칵! 찍은 이유는 얼마나 작게 보이는지를 기념으로 남기려고... 이어서 조금 있다가
죽게 되더라도 내 사진은 남겨야겠기에 사진 찍어줄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허허 이런...
생각보다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다들 어디 갔지? 하지만 여기 올라와 있는 것도 기념인데, 아
무한테나 부탁을 해야지. 뭐... 해서 현지인처럼 생긴 청년에게 사진을 부탁. 그..러..나...
사진을 찍어준 이 친구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돈 가진 거 있으세요?"
"..................................... (놀라움과 황당)"
"저를 좀 도와주세요"
"(정신을 차리고) 노우!!"
그냥 평지에서 같았으면 별로 겁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긴 그게 아니잖는가? 또한
아까 올라와서부터 아니 오를 때부터 이미 나는 겁을 먹고 있었는데... 또 사람들은 다 어디
로 가고, 이렇게 조용한가? 내가 분명한 거절의사를 밝히자 녀석은 내게서 떨어졌는데 그렇
다고 녀석이 어디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조금 떨어져서 나를 지켜볼 뿐... 빨리 내
려가서 이 불안감에서 탈출하고 싶은데, 내려갈 엄두는 안 나고... 허허허...
일단 아내가 있는 쪽으로는 도저히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내가 보고 있다는 것도
내겐 엄청난 부담. 다행히 계단은 모두 네군데. 그 중 처음에 봤던 입구 쪽 계단을 선택했
다. 이유는? 앞서 내려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기 때문. 그것도 여자. (내가 이렇게 살았다우)
그 사람이 어떻게 내려가는지를 유심히 본 다음, 나도 결행! 태양은 어느덧 내 눈 높이만큼
내려와 있는데, 자꾸 몸은 아래로 쏠리는 느낌. 계단의 가장자리에 붙어서 손으로는 벽을 꼭
잡으며 아주 천천히 내려오는데, 절반쯤 내려오니 무서움이 1/10로 감소. 먼저 내려갔던 여
자는 아래에 서서 내가 내려오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봐줬다. 마침내 바닥 도착!! 그 아
가씨는 내 얼굴을 보며 아주 다행스럽다는 듯이 뭐라고뭐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일본말...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내 말을 듣더니 그 아가씨도 자기 동족이 아닌 줄을 아는 듯. 다소 무안한 얼굴로 떠나갔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랴? 나는 진정 고마왔을 뿐인데...
나는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아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아내가 내 얼굴을 보고 반가와
하는 것은 당연. 사실은 웃기지도 않는 꼴로 내려왔지만 마치 장한 일이라도 하고 온 듯이
금방 신이 나서 무용담을 펼쳐놓으니 어허... 이 양반도 오르겠대네? 근데 내가 내려온 쪽의
반대로 가보니 즉 올라간 쪽에서 1/4만큼 더 가니 쇠난간이 설치되어 있네? 어허... 이럴 수
가... 내가 조금만 침착했으면 이리로 내려올 수 있었는데... (쇠난간의 유무는 하늘과 땅 차
이) 흔히 하는 말로 '호랑이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 듯
했다. 아... 나의 경박함이여...
드디어 아내도 오르기 시작. 조금 있으니 멀리서 보아도 다리를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역력.
하하!! 거의 끝까지 올랐는데 뜻밖의 문제 발생. 문제란? 난간은 계단 왼쪽에 있는지라 오른
쪽으로 오르는 아내는 계단을 가로질러야 하는 것. 방금 올라가 본 나는 그 계단의 폭이 얼
마나 좁은지를 아는데... 혹시라도 굴러 떨어지면 받아보겠다고 (그런다고 살겠냐마는 아무
튼... 그건 지금 생각이고) 계단 앞까지 가서 손에 땀을 쥐며 바라보는데... 다행히 무사히 이
동. 아래로 내려 온 아내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사족:
1) 그래도 내가 "노우"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녀석의 체격이 왜소했기 때문. 만약 미국 사
람처럼 우람했다면 훨씬 더 겁났을텐데... 하하!! 내가 볼 때 일대일로 붙으면 충분히 해 볼
만했다. 싸움도 잘 못하는 내가 이럴 정도니까 웬만한 한국 사람이면 걔네들 세명이 한번에
덤벼도 너끈!
2) 아울러 창피하지만 하나 더. 만약 한국에서 그랬다면 창피함을 무릅쓰고라도 119구급대
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그런 게 있기나 하겠는가? 또한 설령 있더라도 이 가난한
나라에 고가사다리차가 있겠어?
3) 글을 읽는 우리반 애들에게... 선생님이 겁이 많아서 그렇지 꼭 그렇게 무섭진 않단다. 재
작년에 이곳을 다녀갔던 선생님 친구는 여기서 앙코르와트 전체를 조망하며 감격에 겨워했
다니까... (물론 선생님은 그럴 여유가 없었지만)
4) 다녀온지 이제 불과 한달 지났는데도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이 글을 쓰면서는 [트레블게
릴라]에서 발행된 [Angkor Ruins]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였다.
5) 오늘 올리는 사진은 당연히 그 공포의 계단.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