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왓디 무앙타이(8)
- 포이펫 -
캄보디아로 들어서자 이번엔 동냥하는 애들 말고도 트럭기사들이 달라붙는다. 그들은 앙코
르와트가 있는 씨엡립을 연신 외쳐대는데, 참고로 말하자면 캄보디아에는 대중교통수단이
없다. 즉, 버스나 택시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광하고 싶은 사람들은 천상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타야 하는데, 당연히 따로 정해진 가격은 없고, 관광객이 운전사와 직접 흥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달라붙는 기사들은 한국에서 거의 폐차 직전이었던 차들을 가지고 영
업하는 사람들이다. 차종은 봉고차나 미니버스도 가끔씩 보이긴 하지만 주종을 이루는 것은
픽업트럭이다.
우리 부부와 동행하는 선생님들 포함 모두 여섯은 짐을 끌고 국경을 넘어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부터 마주치는 것은 캄보디아 쪽 국경도시 포이펫. 시각은 정오를 지난지라 새벽에 방
콕을 출발한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씨엡립으로 떠난 후였고, 그래선지 거리엔 관광객이 생각
처럼 많지 않았다. 이제 한창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열대의 태양.. 시내의 주변 건물들은 모
두 초라한 행색으로 땟국에 절은 모습으로 서 있고, 포장한 곳이 여기저기 볼썽사납게 떨어
져나간 도로에선 먼지만 풀풀 날린다. 조금 걸으니 넓은 광장.. 광장 한켠에 서있는 미니버
스와 픽업트럭들은 거의 텅 비다시피한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저런 차들 가운데 어느
것을 타야 하는데... 우리 여섯이 빈자리를 메운다해도 남은 빈자리는 또 누가 채워주겠는
가... 자리가 다 차야 차가 떠날 것은 뻔한 이치이니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나 일행 중
에 제일 연세 많으신 분이 영어선생님이셨는데, 이 분께서 열심히 알아보신 결과로 우리 여
섯은 봉고차를 탈 수 있었다. 그것도 다른 손님 없이 우리끼리만. 게다가 중간에 시소폰이란
곳에 내려서 다른 차로 바꿔타지도 않고 직접 씨엡립까지 가는 것. 요금도 엄청 싼 가격인
일인당 6,300원
- 캄보디아에 대한 첫인상 -
모든게 만족스러운 상태에서 차에 오르니 드디어 츨발! 덜컹덜컹하며 움직이는 차안에서 조
금 전에 가게에서 산 콜라를 마시며 밖을 내다보니 기분 만점!! 콜라값은 캔 하나에 700원
이니 비싼 편. 흙먼지를 날리며 출발하는데 듣던 것과는 달리 차는 곧 포장도로로 접어들었
다. 지난 99년에 이곳에 왔던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면 지금 이 길을 파리-다카르 랠리와 비
교하여 포이펫-씨엡립 랠리라 부르고 있었다. 비포장에 진흙탕길. 포이펫-씨엡립의 실제 거
리는 152킬로니까 서울-대전 정도인데, 당시 소요시간은 빨라야 10시간. 그러나 그후 캄보
디아 정부의 대대적인 도로건설 사업으로 지금은 이렇게 제법 속도도 내고 있으니 여행자들
이 고속도로라 부르는 것도 이해할 만 하다.
조금 달리자 차는 포이펫 시내를 빠져 나왔고, 나는 편한 자세로 경치를 감상하기 시작한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넓은 들판. 주위에 산이 하나도 없으니 시야의 끝은 지평선이다. 산이
많은 우리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이런 장면도 참 특별해 보일 것 같은데... 하지만 자세
히 보면 이런 풍광들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우선 지금 이곳이 비가 내리지 않는 계절(건
기)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들판은 너무 메말라 있었다. 논에 심은 벼들도 누렇게 시든 모
습으로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고, 논인 것 같긴 한데 그냥 버려져서 잡초만 무성한 곳도 많
았다. 재작년 8월에 본 베트남의 시골은 이렇지 않았었는데... 우기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
나, 논에 심은 벼들은 한창 푸르름을 뽐내며 다들 생기 있는 모습이었는데... 들판을 따라 흐
르는 강물도 누런 흙탕물.. 그 흙탕물에도 고기가 사는지 그물을 던지는 몇몇의 모습이 보인
다. 아이들 몇몇이 보이기도 하는데 더러는 신발도 없이 맨발로 뜨거운 태양아래서 어디론
가 떠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논에서 일하는 소의 모습. 사실 일을 하는 건지 풀을 뜯는 건지는 자세
히 알 수 없었으나 등짝부터 시작해서 허리까지 앙상하게 드러나는 갈비뼈... 소가 저렇게도
바짝 마를 수 있는가? 난 정육점에 걸려 있는 갈비는 본 적이 있으되, 살아있는 소가 갈비
뼈만 남은 채 앙상한 모습은 처음 본다. 비록 싱싱함은 없어도 들판엔 풀이 가득한데, 쟤는
왜 저런 모습일까...
하지만 마주 오는 또는 앞서가는 트럭들을 보는 것은 참 재미있다. 트럭내부는 물론 짐칸에
도 사람이 빼곡이 타서 발디딜 틈이 없으니, 차를 탔다기 보다는 매달려 가는 형국.. 모두들
머리에는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아마도 흙먼지를 막으려는 모양이다. 가끔은 트럭에
짐을 산더미처럼 싣고 가는 차도 있는데, 그 짐의 꼭대기에도 사람들이 앉아 있다. 하하!!
또 재미있는 것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서양인들. 포이펫에서 빌린 것 같은데, 차를 마다
하고 오토바이로, 그것도 직접 운전하며 달리고 있으니 그저 가상하다. 열대의 강렬한 태양
으로 얼굴은 뻘겋게 달아올라 있고, 코와 입을 가린 마스크에는 흙먼지가 두껍게 앉았는데
도 열심히 오토바이를 몰아 달린다. 직접 체험을 중시하는 그들의 여행방식을 보여주는 단
면이다.
차는 열심히 달리는데, 한시간이 지나니 점차 풍경 보는 것도 지루해지고, 무엇보다 너무 피
곤하여 슬며시 잠이 들었다. (여행기의 진도가 늘어져서 그렇지 지금은 이곳에 온지 이틀째
임. 죄송..) 허나 자리가 불편하니 다리가 저리고, 무엇보다 의자에 쿠션이라곤 없어서 나중
엔 엉덩이에 붕가붕가를 맞는 느낌이 들었다. (붕가붕가? 헤헤.. 다른 말로는 X침)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다깨다 자다깨다하며 비몽사몽간에 달릴 수밖에... 이런 가운데에도 운전기사
는 차를 계속 몰더니 마침내 우리에게 다 왔다며 모두 내리라고 한다. 밖을 내다보니 야자
수 두 그루가 보기 좋게 서 있고, 울타리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는 그럴싸한 집이었다. 문패
도 달려있었는데 [Global Home Stay]. 아이고.. 드디어 도착한 모양이네.. 출발할 때 내가
명함을 보여주며 이곳으로 가자고 했었다. 이 명함은 방콕의 만남의 광장에서 얻은 것으로
이렇게 씌어 있다. [Global Family Cambodia. 수영장 딸린 게스트하우스, 정원식 한국음식
점, 여행가이드와 정보 제공. 이 수 보]
안으로 들어가서 주인장을 찾으니 반갑게 맞아주는데,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 모양.
명함 뒤에 있는 약도를 보며 운전사가 데려온 것은 잘 했는데, 여기는 [장원가든식당]이라는
이름의 글로벌의 분점 같은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아직은 공사중이었지만, 아주 예쁘
고 깨끗했다. 종업원이 내온 찬물 한잔으로 더운 가슴을 달랬으나 목적지가 아니니 다시 길
을 떠나야 할 입장.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차에 시동이 안 걸리네? 우리가 타고 온 차는 현
대에서 만든 이스타나. 주행거리는 33만 킬로. 사실 그 동안도 바퀴가 구르긴 했으나 꽤 위
태위태했는데... 결국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제 노력봉사의 시간. 운전사가 시동을 걸면 우리 여섯은 차를 힘껏 밀며 달려야 한다. 그
러나.. 1차시기 실패! 가쁜 숨을 몰아쉬고 전열을 정비한 다음 2차시기에 도전. 젖먹던 힘까
지 다해 달려보지만 역시 실패!! 정말 난감하다... 배는 고픈데... 이제껏 먹은 음식이라고는
한 젓가락도 안 되는 꿰이띠오와 괴상한 향기의 카우팟이 전부. 안 그래도 입에 안 맞는 태
국음식으로 뱃속이 이글거리는데, 이제는 팔자에 없는 힘까지 쓰고 있으니...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흐를 열대의 태양아래서 그후로도 두어번 더 용틀임을 했고, 결국
은 기진맥진 포기. 운전기사는 말 한마디 없이(어차피 해도 안 통하지만) 아예 차를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뙤약볕을 피해 그늘에 앉은 우리는 주인과 함께 캄보디아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한참 후... 반가운 아저씨가 또 다른 이스타나를 몰고 나타났다. 우하
하!! 차에 오르면서 보니 아까보다 새차였다. 27만 킬로..
- 씨엡립 -
오후4시가 넘은 시각에 드디어 글로벌 도착.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크고, 지붕이 높다. 마
당에는 식탁이 죽 놓여있고, 정면에는 테레비가 놓여 있는데 테레비 옆에는 한국인들이 가
져왔을 여행자 가이드. 소설책. 잡지 등이 쌓여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여행자 숙소이
고, 옥상에는 도미토리가 있는 모양.. 식탁에는 대부분 한국인들인 관광객이 앉아 얘기를 나
누고 있었다. "와 주시는 건 참 고맙지만, 방이 없는데요" 목에 주황색 스카프를 두른 젊은
주인장이 아주 미안한 얼굴로 얘기를 꺼낸다.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숙소가 없는 것은 우리부부만의 문제가 아닌지라 함께 간 선생님들과 다른 숙소를 알아보러
나섰다. 제일 먼저 간 곳은 글로벌의 바로 옆에 있는 그린 게스트하우스. 침대만 달랑 하나
놓여 있는 3불짜리부터 10불하는 트윈까지. 가격은 싸서 좋은데, 문제는 공동욕실. 아내가
방 구하러 떠나는 내 등뒤로 "자기야! 욕실만은 꼭 있어야 돼"라고 했던 것을 떠올리니 저
절로 발걸음이 돌아선다. 그 다음에 간 곳은 역시 방 없음. 연말연초라 관광객이 많긴 많은
모양.. 결국 자리를 잡은 곳은 [앙코르톰 호텔]
이름이 호텔이니 엄청 좋을 듯 싶지만, 말만 그럴 뿐 실제로는 게스트하우스보다 딱 한등급
높은 수준이다. 욕실 딸리고, 에어컨 돌고, 침대시트 매일 갈아주는 곳. 가격은 1박에 15불.
비싸도다... 그냥 아까 3불 불렀던 그린으로 갈까? 하는 유혹도 솔직히 잠시나마 느꼈었다.
아내한테는 "다 다녀봐도 방이 이것밖에 없더라구" 이렇게 뻥칠까... 하지만... 아내를 상대로
한 그런 거짓말은 남편으로서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그냥 눈물을 머금고 눌러 앉기로 한
것.
주인장은 중국인 여자인데 친절하다. 다만 처음에 우리가 들어서자 자기 동포인줄 알고, 매
우 반가워하며 중국말로 인사를 건넸는데, 그게 아니니 조금 민망한 듯.. 방콕에서 숙소 때
문에 고생했던 아내는 사실 별 것 아닌 시설임에도 대만족!! 여장을 풀고 글로벌로 달려가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로 저녁식사를 했다. 하나에 3불씩 모두 6불이니 음식값은 비싼 편이나,
재료를 대부분 한국에서 가져온 점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 하다.
이제 씨엡립에도 밤이 찾아왔다. 가로등 하나 변변치 않은 이곳의 밤은 유달리 깜깜하지만,
이국에서 맞이하는 사실상의 첫날밤을 그냥 보낼 수 있나? 저녁을 맛있게 먹은 우리는 강변
으로 갔다. 말은 강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개천. 날이 어두웠으니 경치구경을 간 것은 아니었
고 강변에 늘어선 노점이 목표였다. 길게 늘어서 있는 과일가게들... 한국에서도 과일을 엄청
좋아하는 아내가 이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당연.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모든 과일들
을 다 맛보기로 그 자리에서 합의! 원래는 비닐봉지에 담아 킬로그램에 얼마씩 파는 것인
데, 우리는 아예 비닐봉지를 얻어서 한국에서 봤던 수박이나 바나나, 사과 같은 것은 빼고
처음 보는 것들로만 전부 두어개씩 담았다. 사실 이름을 몰라서 그렇지 종류는 별의별것이
다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 보는 과일이니 먹는 법을 모르는 것. 그렇다고 노점에서 영
어가 통하는 것도 아니고... 허허...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만국공통어라는 바디
랭귀지가 있지 않은가? 내가 먼저 과일 먹는 흉내를 내고, 다음에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여
봤지. 그러자 주인아줌마는 깔깔대고 웃으며 그 중 하나를 직접 깎아서 맛을 뵈준다. 하하!!
과일맛보다 더 좋은 건 바디랭귀지하는 재미!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인데도 이렇게 자연
스러울수가... 여기에 재미를 붙인 나는 계속 읏으며 이런 저런 연기를 보여줬고, 아줌마는
그때마다 척척 알아듣고... 하하!! 과일값으로 2불을 주고 돌아서는데 얼마나 유쾌한 기분이
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일 한봉지에 2불은 터무니없이 비싸지만..) 숙소로 돌아
오는 길엔 잠깐 가게에 들러 물과 음료도 샀다. 물은 큰 것 여섯병에 1불이고, 음료는 코카
콜라 같이 한국에서 먹던 것 말고 처음 보는 이름의 태국산 과일캔이었는데, 두병에 1불. 침
대에 누우니 곧바로 잠이 쏟아진다. 8시20분 취침.
사족:
1) 여행을 준비하며 내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국경넘기. 캄보디아 현지인들과 함께
차를 끼어 타고 가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여러 군데서 읽은 픽업트럭 운전사들의
횡포도 솔직히 두려웠다. 횡포란? 차에 타면서 먼저 요금을 받고, 내려주면서 다시 또 돈을
요구하는 정도는 기본. 포이펫에서 태운 손님을 씨엡립 가는 중간에 있는 시소폰이란 마을
에서 다른 차로 옮겨 태우고 다시 돈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 씨엡립에 도착해서도 손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기들이 커미션을 먹는 숙소에 강제로 묵게 하는 것까지도 참는다고 치
자. 가장 무서웠던 건... 트럭기사와 현지인들이 짜고 여행자를 엉뚱한 곳으로 데려간 다음,
여권과 돈을 빼앗고 사람은 죽인다는 얘기... 물론 이런 일이 흔하진 않겠지만, 솔직히 얼마
나 많이 걱정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뜻밖에도 같은 한국인들을 그것도 네분이나 한꺼번
에 만났으니 어이 기쁘지 아니했겠는가! 사실 난 이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국경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작정이었다...
2) 포이펫-씨엡립간 도로에 대해 진짜 고속도로를 상상할까봐 진실을 말하는데, 차선이 그
려지지 않은 왕복 2차선 도로이다. 구태여 우리 나라와 비교하면 국도만도 못함
3) 캄보디아에는 거의 집집마다 개를 기르고, 그래서 길에도 개가 엄청 많이 나와 돌아다닌
다. 그런데 아까 본 소 모양으로 이곳의 개들도 갈비뼈가 앙상한 모습들이 흔하다. 늘 배고
픈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인데... 신기한 건 그래도 사람한테 달려들거나 물거나 하진
않는다는 것. 사실 이 나라 사람들도 그랬는데...
4) 개 얘기가 나와서 또 한마디만 보탠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개를
기르는 이유는 도둑을 막기 위해서라고 함. 사실 훔쳐갈 것도 없는데...
5) 이 여행을 아내와 오지 않았다면 15불짜리 숙소는 언감생심. 글로벌의 도미토리에서 잤
겠지... 가격은 딱 10분의1인 1.5불
6) 아래 그림은 캄보디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점의 모습이다. 다음날 점심식사 때인데,
사진에 나온 아이들은 물건을 팔아달라고 내내 조르다가 지금은 잠시 쉬면서 바나나를 먹는
아내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하하!!
캄보디아로 들어서자 이번엔 동냥하는 애들 말고도 트럭기사들이 달라붙는다. 그들은 앙코
르와트가 있는 씨엡립을 연신 외쳐대는데, 참고로 말하자면 캄보디아에는 대중교통수단이
없다. 즉, 버스나 택시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광하고 싶은 사람들은 천상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타야 하는데, 당연히 따로 정해진 가격은 없고, 관광객이 운전사와 직접 흥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달라붙는 기사들은 한국에서 거의 폐차 직전이었던 차들을 가지고 영
업하는 사람들이다. 차종은 봉고차나 미니버스도 가끔씩 보이긴 하지만 주종을 이루는 것은
픽업트럭이다.
우리 부부와 동행하는 선생님들 포함 모두 여섯은 짐을 끌고 국경을 넘어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부터 마주치는 것은 캄보디아 쪽 국경도시 포이펫. 시각은 정오를 지난지라 새벽에 방
콕을 출발한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씨엡립으로 떠난 후였고, 그래선지 거리엔 관광객이 생각
처럼 많지 않았다. 이제 한창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열대의 태양.. 시내의 주변 건물들은 모
두 초라한 행색으로 땟국에 절은 모습으로 서 있고, 포장한 곳이 여기저기 볼썽사납게 떨어
져나간 도로에선 먼지만 풀풀 날린다. 조금 걸으니 넓은 광장.. 광장 한켠에 서있는 미니버
스와 픽업트럭들은 거의 텅 비다시피한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저런 차들 가운데 어느
것을 타야 하는데... 우리 여섯이 빈자리를 메운다해도 남은 빈자리는 또 누가 채워주겠는
가... 자리가 다 차야 차가 떠날 것은 뻔한 이치이니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나 일행 중
에 제일 연세 많으신 분이 영어선생님이셨는데, 이 분께서 열심히 알아보신 결과로 우리 여
섯은 봉고차를 탈 수 있었다. 그것도 다른 손님 없이 우리끼리만. 게다가 중간에 시소폰이란
곳에 내려서 다른 차로 바꿔타지도 않고 직접 씨엡립까지 가는 것. 요금도 엄청 싼 가격인
일인당 6,300원
- 캄보디아에 대한 첫인상 -
모든게 만족스러운 상태에서 차에 오르니 드디어 츨발! 덜컹덜컹하며 움직이는 차안에서 조
금 전에 가게에서 산 콜라를 마시며 밖을 내다보니 기분 만점!! 콜라값은 캔 하나에 700원
이니 비싼 편. 흙먼지를 날리며 출발하는데 듣던 것과는 달리 차는 곧 포장도로로 접어들었
다. 지난 99년에 이곳에 왔던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면 지금 이 길을 파리-다카르 랠리와 비
교하여 포이펫-씨엡립 랠리라 부르고 있었다. 비포장에 진흙탕길. 포이펫-씨엡립의 실제 거
리는 152킬로니까 서울-대전 정도인데, 당시 소요시간은 빨라야 10시간. 그러나 그후 캄보
디아 정부의 대대적인 도로건설 사업으로 지금은 이렇게 제법 속도도 내고 있으니 여행자들
이 고속도로라 부르는 것도 이해할 만 하다.
조금 달리자 차는 포이펫 시내를 빠져 나왔고, 나는 편한 자세로 경치를 감상하기 시작한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넓은 들판. 주위에 산이 하나도 없으니 시야의 끝은 지평선이다. 산이
많은 우리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이런 장면도 참 특별해 보일 것 같은데... 하지만 자세
히 보면 이런 풍광들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우선 지금 이곳이 비가 내리지 않는 계절(건
기)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들판은 너무 메말라 있었다. 논에 심은 벼들도 누렇게 시든 모
습으로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고, 논인 것 같긴 한데 그냥 버려져서 잡초만 무성한 곳도 많
았다. 재작년 8월에 본 베트남의 시골은 이렇지 않았었는데... 우기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
나, 논에 심은 벼들은 한창 푸르름을 뽐내며 다들 생기 있는 모습이었는데... 들판을 따라 흐
르는 강물도 누런 흙탕물.. 그 흙탕물에도 고기가 사는지 그물을 던지는 몇몇의 모습이 보인
다. 아이들 몇몇이 보이기도 하는데 더러는 신발도 없이 맨발로 뜨거운 태양아래서 어디론
가 떠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논에서 일하는 소의 모습. 사실 일을 하는 건지 풀을 뜯는 건지는 자세
히 알 수 없었으나 등짝부터 시작해서 허리까지 앙상하게 드러나는 갈비뼈... 소가 저렇게도
바짝 마를 수 있는가? 난 정육점에 걸려 있는 갈비는 본 적이 있으되, 살아있는 소가 갈비
뼈만 남은 채 앙상한 모습은 처음 본다. 비록 싱싱함은 없어도 들판엔 풀이 가득한데, 쟤는
왜 저런 모습일까...
하지만 마주 오는 또는 앞서가는 트럭들을 보는 것은 참 재미있다. 트럭내부는 물론 짐칸에
도 사람이 빼곡이 타서 발디딜 틈이 없으니, 차를 탔다기 보다는 매달려 가는 형국.. 모두들
머리에는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아마도 흙먼지를 막으려는 모양이다. 가끔은 트럭에
짐을 산더미처럼 싣고 가는 차도 있는데, 그 짐의 꼭대기에도 사람들이 앉아 있다. 하하!!
또 재미있는 것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서양인들. 포이펫에서 빌린 것 같은데, 차를 마다
하고 오토바이로, 그것도 직접 운전하며 달리고 있으니 그저 가상하다. 열대의 강렬한 태양
으로 얼굴은 뻘겋게 달아올라 있고, 코와 입을 가린 마스크에는 흙먼지가 두껍게 앉았는데
도 열심히 오토바이를 몰아 달린다. 직접 체험을 중시하는 그들의 여행방식을 보여주는 단
면이다.
차는 열심히 달리는데, 한시간이 지나니 점차 풍경 보는 것도 지루해지고, 무엇보다 너무 피
곤하여 슬며시 잠이 들었다. (여행기의 진도가 늘어져서 그렇지 지금은 이곳에 온지 이틀째
임. 죄송..) 허나 자리가 불편하니 다리가 저리고, 무엇보다 의자에 쿠션이라곤 없어서 나중
엔 엉덩이에 붕가붕가를 맞는 느낌이 들었다. (붕가붕가? 헤헤.. 다른 말로는 X침)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다깨다 자다깨다하며 비몽사몽간에 달릴 수밖에... 이런 가운데에도 운전기사
는 차를 계속 몰더니 마침내 우리에게 다 왔다며 모두 내리라고 한다. 밖을 내다보니 야자
수 두 그루가 보기 좋게 서 있고, 울타리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는 그럴싸한 집이었다. 문패
도 달려있었는데 [Global Home Stay]. 아이고.. 드디어 도착한 모양이네.. 출발할 때 내가
명함을 보여주며 이곳으로 가자고 했었다. 이 명함은 방콕의 만남의 광장에서 얻은 것으로
이렇게 씌어 있다. [Global Family Cambodia. 수영장 딸린 게스트하우스, 정원식 한국음식
점, 여행가이드와 정보 제공. 이 수 보]
안으로 들어가서 주인장을 찾으니 반갑게 맞아주는데,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 모양.
명함 뒤에 있는 약도를 보며 운전사가 데려온 것은 잘 했는데, 여기는 [장원가든식당]이라는
이름의 글로벌의 분점 같은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아직은 공사중이었지만, 아주 예쁘
고 깨끗했다. 종업원이 내온 찬물 한잔으로 더운 가슴을 달랬으나 목적지가 아니니 다시 길
을 떠나야 할 입장.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차에 시동이 안 걸리네? 우리가 타고 온 차는 현
대에서 만든 이스타나. 주행거리는 33만 킬로. 사실 그 동안도 바퀴가 구르긴 했으나 꽤 위
태위태했는데... 결국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제 노력봉사의 시간. 운전사가 시동을 걸면 우리 여섯은 차를 힘껏 밀며 달려야 한다. 그
러나.. 1차시기 실패! 가쁜 숨을 몰아쉬고 전열을 정비한 다음 2차시기에 도전. 젖먹던 힘까
지 다해 달려보지만 역시 실패!! 정말 난감하다... 배는 고픈데... 이제껏 먹은 음식이라고는
한 젓가락도 안 되는 꿰이띠오와 괴상한 향기의 카우팟이 전부. 안 그래도 입에 안 맞는 태
국음식으로 뱃속이 이글거리는데, 이제는 팔자에 없는 힘까지 쓰고 있으니...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흐를 열대의 태양아래서 그후로도 두어번 더 용틀임을 했고, 결국
은 기진맥진 포기. 운전기사는 말 한마디 없이(어차피 해도 안 통하지만) 아예 차를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뙤약볕을 피해 그늘에 앉은 우리는 주인과 함께 캄보디아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한참 후... 반가운 아저씨가 또 다른 이스타나를 몰고 나타났다. 우하
하!! 차에 오르면서 보니 아까보다 새차였다. 27만 킬로..
- 씨엡립 -
오후4시가 넘은 시각에 드디어 글로벌 도착.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크고, 지붕이 높다. 마
당에는 식탁이 죽 놓여있고, 정면에는 테레비가 놓여 있는데 테레비 옆에는 한국인들이 가
져왔을 여행자 가이드. 소설책. 잡지 등이 쌓여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여행자 숙소이
고, 옥상에는 도미토리가 있는 모양.. 식탁에는 대부분 한국인들인 관광객이 앉아 얘기를 나
누고 있었다. "와 주시는 건 참 고맙지만, 방이 없는데요" 목에 주황색 스카프를 두른 젊은
주인장이 아주 미안한 얼굴로 얘기를 꺼낸다.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숙소가 없는 것은 우리부부만의 문제가 아닌지라 함께 간 선생님들과 다른 숙소를 알아보러
나섰다. 제일 먼저 간 곳은 글로벌의 바로 옆에 있는 그린 게스트하우스. 침대만 달랑 하나
놓여 있는 3불짜리부터 10불하는 트윈까지. 가격은 싸서 좋은데, 문제는 공동욕실. 아내가
방 구하러 떠나는 내 등뒤로 "자기야! 욕실만은 꼭 있어야 돼"라고 했던 것을 떠올리니 저
절로 발걸음이 돌아선다. 그 다음에 간 곳은 역시 방 없음. 연말연초라 관광객이 많긴 많은
모양.. 결국 자리를 잡은 곳은 [앙코르톰 호텔]
이름이 호텔이니 엄청 좋을 듯 싶지만, 말만 그럴 뿐 실제로는 게스트하우스보다 딱 한등급
높은 수준이다. 욕실 딸리고, 에어컨 돌고, 침대시트 매일 갈아주는 곳. 가격은 1박에 15불.
비싸도다... 그냥 아까 3불 불렀던 그린으로 갈까? 하는 유혹도 솔직히 잠시나마 느꼈었다.
아내한테는 "다 다녀봐도 방이 이것밖에 없더라구" 이렇게 뻥칠까... 하지만... 아내를 상대로
한 그런 거짓말은 남편으로서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그냥 눈물을 머금고 눌러 앉기로 한
것.
주인장은 중국인 여자인데 친절하다. 다만 처음에 우리가 들어서자 자기 동포인줄 알고, 매
우 반가워하며 중국말로 인사를 건넸는데, 그게 아니니 조금 민망한 듯.. 방콕에서 숙소 때
문에 고생했던 아내는 사실 별 것 아닌 시설임에도 대만족!! 여장을 풀고 글로벌로 달려가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로 저녁식사를 했다. 하나에 3불씩 모두 6불이니 음식값은 비싼 편이나,
재료를 대부분 한국에서 가져온 점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 하다.
이제 씨엡립에도 밤이 찾아왔다. 가로등 하나 변변치 않은 이곳의 밤은 유달리 깜깜하지만,
이국에서 맞이하는 사실상의 첫날밤을 그냥 보낼 수 있나? 저녁을 맛있게 먹은 우리는 강변
으로 갔다. 말은 강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개천. 날이 어두웠으니 경치구경을 간 것은 아니었
고 강변에 늘어선 노점이 목표였다. 길게 늘어서 있는 과일가게들... 한국에서도 과일을 엄청
좋아하는 아내가 이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당연.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모든 과일들
을 다 맛보기로 그 자리에서 합의! 원래는 비닐봉지에 담아 킬로그램에 얼마씩 파는 것인
데, 우리는 아예 비닐봉지를 얻어서 한국에서 봤던 수박이나 바나나, 사과 같은 것은 빼고
처음 보는 것들로만 전부 두어개씩 담았다. 사실 이름을 몰라서 그렇지 종류는 별의별것이
다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 보는 과일이니 먹는 법을 모르는 것. 그렇다고 노점에서 영
어가 통하는 것도 아니고... 허허...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만국공통어라는 바디
랭귀지가 있지 않은가? 내가 먼저 과일 먹는 흉내를 내고, 다음에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여
봤지. 그러자 주인아줌마는 깔깔대고 웃으며 그 중 하나를 직접 깎아서 맛을 뵈준다. 하하!!
과일맛보다 더 좋은 건 바디랭귀지하는 재미!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인데도 이렇게 자연
스러울수가... 여기에 재미를 붙인 나는 계속 읏으며 이런 저런 연기를 보여줬고, 아줌마는
그때마다 척척 알아듣고... 하하!! 과일값으로 2불을 주고 돌아서는데 얼마나 유쾌한 기분이
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일 한봉지에 2불은 터무니없이 비싸지만..) 숙소로 돌아
오는 길엔 잠깐 가게에 들러 물과 음료도 샀다. 물은 큰 것 여섯병에 1불이고, 음료는 코카
콜라 같이 한국에서 먹던 것 말고 처음 보는 이름의 태국산 과일캔이었는데, 두병에 1불. 침
대에 누우니 곧바로 잠이 쏟아진다. 8시20분 취침.
사족:
1) 여행을 준비하며 내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국경넘기. 캄보디아 현지인들과 함께
차를 끼어 타고 가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여러 군데서 읽은 픽업트럭 운전사들의
횡포도 솔직히 두려웠다. 횡포란? 차에 타면서 먼저 요금을 받고, 내려주면서 다시 또 돈을
요구하는 정도는 기본. 포이펫에서 태운 손님을 씨엡립 가는 중간에 있는 시소폰이란 마을
에서 다른 차로 옮겨 태우고 다시 돈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 씨엡립에 도착해서도 손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기들이 커미션을 먹는 숙소에 강제로 묵게 하는 것까지도 참는다고 치
자. 가장 무서웠던 건... 트럭기사와 현지인들이 짜고 여행자를 엉뚱한 곳으로 데려간 다음,
여권과 돈을 빼앗고 사람은 죽인다는 얘기... 물론 이런 일이 흔하진 않겠지만, 솔직히 얼마
나 많이 걱정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뜻밖에도 같은 한국인들을 그것도 네분이나 한꺼번
에 만났으니 어이 기쁘지 아니했겠는가! 사실 난 이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국경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작정이었다...
2) 포이펫-씨엡립간 도로에 대해 진짜 고속도로를 상상할까봐 진실을 말하는데, 차선이 그
려지지 않은 왕복 2차선 도로이다. 구태여 우리 나라와 비교하면 국도만도 못함
3) 캄보디아에는 거의 집집마다 개를 기르고, 그래서 길에도 개가 엄청 많이 나와 돌아다닌
다. 그런데 아까 본 소 모양으로 이곳의 개들도 갈비뼈가 앙상한 모습들이 흔하다. 늘 배고
픈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인데... 신기한 건 그래도 사람한테 달려들거나 물거나 하진
않는다는 것. 사실 이 나라 사람들도 그랬는데...
4) 개 얘기가 나와서 또 한마디만 보탠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개를
기르는 이유는 도둑을 막기 위해서라고 함. 사실 훔쳐갈 것도 없는데...
5) 이 여행을 아내와 오지 않았다면 15불짜리 숙소는 언감생심. 글로벌의 도미토리에서 잤
겠지... 가격은 딱 10분의1인 1.5불
6) 아래 그림은 캄보디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점의 모습이다. 다음날 점심식사 때인데,
사진에 나온 아이들은 물건을 팔아달라고 내내 조르다가 지금은 잠시 쉬면서 바나나를 먹는
아내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