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왓디 무앙타이(7)
- 국경넘기 -
우리가 뚝뚝에서 내린 곳은 커다란 시장바닥. 모두 단층건물에 초라한 모습이지만, 옷부터
시작해서 온갖 생필품이 없을 것이 없어 보일 만치 규모는 엄청나게 컸다. 이런 곳에 이렇
게 큰 시장이 있을까 싶을 정도... 당연히 오가는 사람들도 많다. 길바닥에 좌판을 놓고 과일
을 파는 아주머니들.. 지뢰를 밟았는지 발목이 잘려나간 채 지나가는 이들에게 힘없이 손을
벌리는 거지들.. 온몸에 무언가가 잔뜩 돋아나 곧 숨질 것 같은 모습으로 아무렇게나 누운
병자들.. 그저 할 일없이 길바닥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들.. 나무로 만들어서 자체무게만도 꽤
될법한 수레에 짐은 어울리지 않게 조금 싣고 어디론가로 향하는 남자들.. 이들 모두는 아침
8시에 국경이 열리면 캄보디아보다는 그래도 형편이 나은 이곳 태국으로 건너와 이제 한창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열대의 태양아래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국경이라고는 유일하게
휴전선을 보며 자란 우리들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이곳엔 철조망도 군인도
총칼도 없었다. 그저 힘겨운 삶이 있을 뿐...
뚝뚝에서 내려서 걷자마자 캄보디아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는데, 그 중 하나가 내게 우산
을 씌워 주며 잰걸음으로 따라붙는다. 난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본 척도 안하고 걷는데, 같이
가던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걔네들 얼른 쫓아보네요. 안 그러면 우산씌워주고 돈 달래요! 아
무 생각도 없다가 불현듯 정신이 든 나는 No! No! No! 하며 소리쳤다. 그랬더니 그 애도
내게 뭐라고 하며(욕을 했겠지) 물러나는데, 그럼 곧바로 다른 애가 달라붙는다. 그 애도 쫓
고 나면 또 다른 애... 사정이 이렇다보니 짐은 무거워도 엄청 빨리 걷게 되는데, 문득 혼자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선 뒤를 돌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내도 주변에 빙 둘러선 애
들 때문에 어쩔줄 몰라하며 고생하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곳은 태국이민국. 간단하게 출국심사를 받고, 조금 걸어서 국경을 넘으니 캄보
디아 이민국이다. 비자는 이미 한국에서 받아왔으니 그냥 입국심사만 받으면 되는데, 여기서
골치 아픈 문제는 검역확인서. 즉, 말라리아 예방접종을 맞았다는 확인서를 제시해야하는 것
이다. 물론 그런 확인서는 없다. 우리가 가는 곳은 캄보디아 시골마을이 아니라 앙코르와트
가 있는 관광지이니 그런 주사는 필요도 없었으니까.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확인서가 없는
경우엔 1,500원을 내야 한다는 것. 그러면 주사를 놔주거나 약을 주느냐? 그건 아니다. 그냥
통과시켜 주는 것.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벌금을 낸 사람은 말라리아 모기가 안 무는가? 허
허.. 그저 캄보디아 정부직원이란 사람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는 수법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당연히 이런 돈을 주진 않는다. 그럼 어떻게 했느냐? 간단하다. 입국
심사를 받고 나면 검역확인을 하는 바로 옆 창구로 가야하는데, 그냥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하하!! 그 정도쯤이야... 그렇다고 뛰었느냐? 그건 아니지. 양반 체면에... 그냥 유유히 자연스
럽게...
사족:
1) 한국에서 비자를 받던 얘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신청은 전날 아내가 했기에 나는 다음
날 비자를 받으러 아내와 함께 캄보디아 대사관엘 갔다. 근데 지하철 이태원역에서 내려 순
천향대 병원 쪽으로 대로를 따라 걷더니 곧 꼬불꼬불 골목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는데, 아내
가 웬 가정집 앞에 선다. 바로 이 집이란다. 허허.. 한쪽 담벽에 축 늘어진 채로 국기가 달려
있긴 했으나 난 그저 어이가 없을 뿐...
그전까지 [대사관]이라 하면,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비자 때문에 갔었던 미국대사
관을 떠올렸었다. 광화문 대로변에 으리으리한 자태를 뽐내고 솟은 아메리카 대사관의 위
용!! 난 각국의 모든 대사관들이 다 그런줄 알았는데...
대궐문처럼 커다란 정문은 굳게 봉쇄된 채 군경이 삼엄하게 지켜주는 가운데, 이곳에 온 많
은 한국인들은 흡사 쥐색기마냥 쪽문으로 드나들었던 미국 대사관과는 달리 여긴 그래도 대
문으로 당당히 들어섰다.
작게 꾸며진 정원을 지나, 동네 슈퍼에 있는 드르륵하고 옆으로 당겨서 여는 문을 열고 들
어가니 직원이 앉아 있는데, 무척 반갑게 맞아준다.
비자찾으러 왔는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호호..
안으로 부산하게 들어가더니 이윽고 여권 두 개를 들고 나온다.
여기 있어요. 호호..
화장을 해서 나이를 짐작하긴 힘들지만, 나보다는 윗 연배로 보이는 이 분은 아까부터 계속
호호! 호호! 하신다.
어머 두 분 다 선생님이시네요?
예. 그렇습니다.....
하긴 선생님들이 요즘은 많이들 가시더라구요. 호호!!
.................................
선생님들은 방학이라서 시간내기가 좋으시잖아요? 호호!!
.................................
이후에도 계속 웃어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정겹다.
아메리카 대사관에서 본 직원들의 태도는 전혀 이렇지 않았다. 쪽문으로 들어가면 흡사 은
행처럼 번호표 뽑는 기계가 있고, 표를 뽑은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죽치고 기다리는데, 열
개는 훨씬 넘을 창구들 가운데 문을 연 곳은 단 두어개... 미국가고 싶은 사람들의 수에 비
해서는 턱없이 적다. 순서에 따라 한명씩 불려가면 개인사정을 열심히 설명하는데, 차가운
얼굴로 듣던 직원이 그래도 [잘 다녀오세요!] 하면 그나마 다행. [안됩니다]라도 하게되면 밖
에 있는 사람은 거의 매달리듯 애원을 하고, 안에 있는 직원은 아예 들은 척을 않는다.
2) 캄보디아 국경에서 필요한 검역확인서 얘기를 좀 더 하겠다. 재미있어서... 나도 들은 이
야기인데, 거기서 돈을 주는지 안 주는지를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이 확실히 구별된다고 한
다. 즉, 일본인들은 겁이 많아서 캄보디아 관리들이 무서운 얼굴로 벌금을 요구하면 열이면
열 모두다 찍소리 않고 준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그렇지가 않다. 나처럼 줄행랑 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캄보디아 직원과 대면하게 되어도 기 하나도 안 죽고 그저 맞았다고 우
긴다는 것이다. 즉, 맞았다. 그럼 확인서 내놔라. 없다. 없다면 되냐? 벌금내라. 싫다. 맞았는
데 왜 내냐? 이런 식으로 계속 맞서서 싸우면 캄보디아 직원이 지쳐 떨어져서 나중엔 너 그
냥 가라. 이렇게... 해결들을 한단다.
3) 아래 사진은 국경의 모습이다.
우리가 뚝뚝에서 내린 곳은 커다란 시장바닥. 모두 단층건물에 초라한 모습이지만, 옷부터
시작해서 온갖 생필품이 없을 것이 없어 보일 만치 규모는 엄청나게 컸다. 이런 곳에 이렇
게 큰 시장이 있을까 싶을 정도... 당연히 오가는 사람들도 많다. 길바닥에 좌판을 놓고 과일
을 파는 아주머니들.. 지뢰를 밟았는지 발목이 잘려나간 채 지나가는 이들에게 힘없이 손을
벌리는 거지들.. 온몸에 무언가가 잔뜩 돋아나 곧 숨질 것 같은 모습으로 아무렇게나 누운
병자들.. 그저 할 일없이 길바닥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들.. 나무로 만들어서 자체무게만도 꽤
될법한 수레에 짐은 어울리지 않게 조금 싣고 어디론가로 향하는 남자들.. 이들 모두는 아침
8시에 국경이 열리면 캄보디아보다는 그래도 형편이 나은 이곳 태국으로 건너와 이제 한창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열대의 태양아래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국경이라고는 유일하게
휴전선을 보며 자란 우리들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이곳엔 철조망도 군인도
총칼도 없었다. 그저 힘겨운 삶이 있을 뿐...
뚝뚝에서 내려서 걷자마자 캄보디아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는데, 그 중 하나가 내게 우산
을 씌워 주며 잰걸음으로 따라붙는다. 난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본 척도 안하고 걷는데, 같이
가던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걔네들 얼른 쫓아보네요. 안 그러면 우산씌워주고 돈 달래요! 아
무 생각도 없다가 불현듯 정신이 든 나는 No! No! No! 하며 소리쳤다. 그랬더니 그 애도
내게 뭐라고 하며(욕을 했겠지) 물러나는데, 그럼 곧바로 다른 애가 달라붙는다. 그 애도 쫓
고 나면 또 다른 애... 사정이 이렇다보니 짐은 무거워도 엄청 빨리 걷게 되는데, 문득 혼자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선 뒤를 돌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내도 주변에 빙 둘러선 애
들 때문에 어쩔줄 몰라하며 고생하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곳은 태국이민국. 간단하게 출국심사를 받고, 조금 걸어서 국경을 넘으니 캄보
디아 이민국이다. 비자는 이미 한국에서 받아왔으니 그냥 입국심사만 받으면 되는데, 여기서
골치 아픈 문제는 검역확인서. 즉, 말라리아 예방접종을 맞았다는 확인서를 제시해야하는 것
이다. 물론 그런 확인서는 없다. 우리가 가는 곳은 캄보디아 시골마을이 아니라 앙코르와트
가 있는 관광지이니 그런 주사는 필요도 없었으니까.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확인서가 없는
경우엔 1,500원을 내야 한다는 것. 그러면 주사를 놔주거나 약을 주느냐? 그건 아니다. 그냥
통과시켜 주는 것.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벌금을 낸 사람은 말라리아 모기가 안 무는가? 허
허.. 그저 캄보디아 정부직원이란 사람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는 수법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당연히 이런 돈을 주진 않는다. 그럼 어떻게 했느냐? 간단하다. 입국
심사를 받고 나면 검역확인을 하는 바로 옆 창구로 가야하는데, 그냥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하하!! 그 정도쯤이야... 그렇다고 뛰었느냐? 그건 아니지. 양반 체면에... 그냥 유유히 자연스
럽게...
사족:
1) 한국에서 비자를 받던 얘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신청은 전날 아내가 했기에 나는 다음
날 비자를 받으러 아내와 함께 캄보디아 대사관엘 갔다. 근데 지하철 이태원역에서 내려 순
천향대 병원 쪽으로 대로를 따라 걷더니 곧 꼬불꼬불 골목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는데, 아내
가 웬 가정집 앞에 선다. 바로 이 집이란다. 허허.. 한쪽 담벽에 축 늘어진 채로 국기가 달려
있긴 했으나 난 그저 어이가 없을 뿐...
그전까지 [대사관]이라 하면,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비자 때문에 갔었던 미국대사
관을 떠올렸었다. 광화문 대로변에 으리으리한 자태를 뽐내고 솟은 아메리카 대사관의 위
용!! 난 각국의 모든 대사관들이 다 그런줄 알았는데...
대궐문처럼 커다란 정문은 굳게 봉쇄된 채 군경이 삼엄하게 지켜주는 가운데, 이곳에 온 많
은 한국인들은 흡사 쥐색기마냥 쪽문으로 드나들었던 미국 대사관과는 달리 여긴 그래도 대
문으로 당당히 들어섰다.
작게 꾸며진 정원을 지나, 동네 슈퍼에 있는 드르륵하고 옆으로 당겨서 여는 문을 열고 들
어가니 직원이 앉아 있는데, 무척 반갑게 맞아준다.
비자찾으러 왔는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호호..
안으로 부산하게 들어가더니 이윽고 여권 두 개를 들고 나온다.
여기 있어요. 호호..
화장을 해서 나이를 짐작하긴 힘들지만, 나보다는 윗 연배로 보이는 이 분은 아까부터 계속
호호! 호호! 하신다.
어머 두 분 다 선생님이시네요?
예. 그렇습니다.....
하긴 선생님들이 요즘은 많이들 가시더라구요. 호호!!
.................................
선생님들은 방학이라서 시간내기가 좋으시잖아요? 호호!!
.................................
이후에도 계속 웃어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정겹다.
아메리카 대사관에서 본 직원들의 태도는 전혀 이렇지 않았다. 쪽문으로 들어가면 흡사 은
행처럼 번호표 뽑는 기계가 있고, 표를 뽑은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죽치고 기다리는데, 열
개는 훨씬 넘을 창구들 가운데 문을 연 곳은 단 두어개... 미국가고 싶은 사람들의 수에 비
해서는 턱없이 적다. 순서에 따라 한명씩 불려가면 개인사정을 열심히 설명하는데, 차가운
얼굴로 듣던 직원이 그래도 [잘 다녀오세요!] 하면 그나마 다행. [안됩니다]라도 하게되면 밖
에 있는 사람은 거의 매달리듯 애원을 하고, 안에 있는 직원은 아예 들은 척을 않는다.
2) 캄보디아 국경에서 필요한 검역확인서 얘기를 좀 더 하겠다. 재미있어서... 나도 들은 이
야기인데, 거기서 돈을 주는지 안 주는지를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이 확실히 구별된다고 한
다. 즉, 일본인들은 겁이 많아서 캄보디아 관리들이 무서운 얼굴로 벌금을 요구하면 열이면
열 모두다 찍소리 않고 준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그렇지가 않다. 나처럼 줄행랑 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캄보디아 직원과 대면하게 되어도 기 하나도 안 죽고 그저 맞았다고 우
긴다는 것이다. 즉, 맞았다. 그럼 확인서 내놔라. 없다. 없다면 되냐? 벌금내라. 싫다. 맞았는
데 왜 내냐? 이런 식으로 계속 맞서서 싸우면 캄보디아 직원이 지쳐 떨어져서 나중엔 너 그
냥 가라. 이렇게... 해결들을 한단다.
3) 아래 사진은 국경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