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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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21)

쇼너 2 975
이틀치 올렸습니다.
재미있다는 칭찬 송구스럽습니다. 그럼 다음편을 또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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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8일(월) 다시 편안하게 쉬다.

사실 피피에서 해보고 싶었고 하기로 했었던 것은 레커 수영가르치기, 뷰포인트에서 경치보기, 스노클링 해보기였다. 첫번째 것은 본인의 강력한 거부에 의해 에어 메트리스(일명 쥬부)로 대치되었고, 두번째, 세번째 것은 해보았다.
일정상의 피피에서의 마지막 풀데이는 그냥 쉬는 것이 원래 목표였다.
아침 느지막히 일어났는데 날이 좀 꾸무레하게 흐리고 바람이 부는 것이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다. 어제 밤에는 바람이 꽤나 불었는지 포치에 올려져있던 꽃병이 바람 때문에 바닥에 떨어져 깨져있었다. (흑흑… 바람 때문에 깨진건데 체크아웃할 때 배상했다. 무려 40B… 아무리 바람 때문에 깨진거라고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원래 그런건지…)

여느때와 같이 레커의 랩스커트를 해변에 깔고 에어 메트리스를 옆에 세워놓고 피피에서의 천국처럼 한가롭고 평화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물에서 노는 것도 재미있지만 한가로운 해변에 누워서 아무 생각안하고 누워서 뒹굴거리는 재미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절대로 우리나라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름 바캉스철만되면 만원지하철을 연상케하는 해수욕장에서는 절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 않은가?

그림같은 해변에서 그냥 현상태를 즐기면서 누워있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불과 2주일 전만해도 프로젝트에서 목에 핏대를 올리고, 사람들을 다그치고, 다그침을 당하고, 스트레스에 담배만 뻑뻑 태우던 내가 이렇게 아무생각없이 누워있다니…
그 시공간의 차이를 나는 잘 인식할 수 없었다. 그냥 그 때의 일은 먼 꿈같이 생각되는 이상한 상태를 난생 처음 피피에서 겪었다. 아마도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었을 때 이런 느낌이 되었을라나?

그렇게 레커와 나란히 누워서 레커와 내가 ‘엉금이’라 이름 붙인 피피 파빌리온 방갈로의 투숙객의 아기가 파도와 싸우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엉금이’는 항상 로다람만의 얕은 물속을 엉금엉금 기어다녔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이기 때문이다. 피피는 좁은 섬이라서 한 3~4일 정도만 있다보면 인연이 닿는 사람들은 하루에 2~3번도 마주치기 일쑤라서 엉금이의 부모를 만나서 잠시 인사와 간단한 얘기를 나눠본 적이 있었는데, 엉금이의 아버지는 영국사람이고 어머니는 일본사람이었다. 휴양차 놀러온 것이라고 했다.
엉금이가 좀 깊은(그래봐야 30Cm정도이지만) 곳으로 들어갈라 치면 그 영국인 아버지가 냅다 달려가서 건져오곤 했다.

‘엉금이’가 돌아가고나니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패러세일링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쇼너 : (패러세일링 하는 것을 가리키며)레커야… 저거 재미있겠지?
레커 : 응… 근데 난 안할래. 너 해.
쇼너 : 너 하라고 안해… 나 저거 오후에 해볼래.
레커 : 그래 해라.
쇼너 : 근데 우리 일정상으로 피피에서 내일 아침배로 나가서 푸켓에서 2박할거잖아… 근데 여기 너무 좋지 않냐? 푸켓은 좀 번잡하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하루 더있을까?
레커 : 그래…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일정을 수정하여 피피에서 하루 더 묵는 것으로 일정을 바꾸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패러세일링하는 곳으로 갔다. 바람이 좀 더 불고 있었다.

쇼너 : 패러세일링 얼마예요?
점원 : 500B이요…
쇼너 : 시간은 얼마나 되요?
점원 : 뭐 두어바퀴 돌아요…
쇼너 : 지금 돼요?
점원 : 지금은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안돼요.
쇼너 : 네… 안녕히 계세요 ㅡㅡ;

터덜터덜 돌아왔다. 오전에 할걸…
이날 오후는 내내 바람이 세게 불었고 바다도 첫날과 둘째날보다 많이 흐려졌다. 그래도 천국에 먼지가 좀 쌓였다고 해서 천국이 지옥이 될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피피에서 가장 신기하게 생각했던 한가지는 외국인은 왜 저렇게 땡볕을 좋아할까? 였다. 아무리 썬블록을 바르고 오일을 바르고 해도 태국의 살인적인 태양아래 1시간만 누워있으면 그대로 화상을 입고 밤에 등이 따가와서 잠도 제대로 못자는게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일텐데, 서양인(정확히 어느나라 사람인지는 모르겠다)은 우리가 그늘을 찾아 헤메일 때 일부러 햇빛을 찾아다니면서 선글라스 하나 달랑 쓰고 그 땡볓 아래서 두툼한 시드니 셀던이나 스티븐 킹 계열의 페이퍼 백 소설을 하루종일 읽어대다가, 낮잠을 자는데 그 시간이 족히 4시간은 더 된다는 사실이다.
피부가 무두질한 소가죽도 아닐진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아직도 그건 나에게 미스터리이다.

저녁에 피피섬 내를 왔다갔다하면서 머리땋은 가게에서 인사도 받고(이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사람끼리 아는척을 한다는 것), 사람구경도 하고, 피피 호텔앞의 조개로만든 기념품 구경도 하면서 느긋하게, 정말로 느긋하게 보냈다. 무엇을 해야만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그냥 발길닿는대로 서성거리렸다. 어느새 피피섬의 날들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득 아쉬워졌다.

1999년 3월 9일(화) 기억나지 않는 천국의 마지막 날

여전히 날씨가 약간 흐린채로 환하게 개지 않았다.
역시 우리는 할 일이 없었다.
오늘도 역시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패러세일링은 언제인지 모르는 다음 기회로 넘어갔다.
나는 할 일이 없으면 무료해하거나 할 일을 찾는 편이지만, 이곳에서만은 다르다. 할 일이 없다는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날이니 실컷 물놀이를 해야겠다라든지, 피피를 한바퀴 둘러봐야되겠다든지 그러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이 고즈넉함과 여유로움을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날은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왜나하면 그냥 모든 것을 잊고 쉬었으므로…
그냥 바나나 쉐이크가 맛있었다는 것과, 피피 안다만 쪽에는 조개가 많다는 것, 게도 꽤나 있다는 것, 수시로 정말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그런 단상만이 남아있다.

또한가지, 레커가 맨처음부터 5일있을거라고 말했으면 숙박료를 할인 받을 수 있었는데, 중간에 일정을 변경하는 바람에 할인을 못받았다고 투덜댄 것이 기억난다.

이날 밤에는 국내에서는 듣도보도 못했던 하이네켄 대병(670ml)짜리를 시켜서 그 엄청난 용량에(하이네켄임을 감안하면) 깔끔한 병 디자인에 감탄하면서 피피에서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했다.
2 Comments
쇼너 1970.01.01 09:00  
그래? <img src='./system/image/smile/cacofrog/caco0102.gif' border=0 alt='푸하하~' width=15 height=13> 고마워.(대책없이 칭찬만 좋아함)
요술왕자 1970.01.01 09:00  
쇼너 글솜씨가 많이 늘은거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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