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팔이의 2001년 태국원정 일기(1일차)-출국
드디어 2001년 9월 4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출정일이다.
그날 12시30분 비행기로 출발하는데, 공항에는 늦어도 2시간 전까지 가는것이 좋다고 해서 아침 일찍 인났다.
평소에는 일 안하는 날은 11시, 12시까지 퍼질러 자던 내가 그날 만큼은 6시에 자명종이 울리자 마자 벌떡 일어났다. 참 신기했다.
아침먹고 부모님께 작별인사 드리고, 7시30분경에 집을 나왔다.
9월 초순이지만, 그때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서 아침에도 상당히 더웠다.
분당 서현역에 나가서 공항버스 대기소 안에 들어가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동네는 버스회사
(경기고속)에서 공항버스 대기소에 여름에는 에어컨 나오고, 겨울엔 히터가 나오게 했다. 정류장에는 이른 아침이라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한시간 정도 기다리니까 성남 종점 에서 출발한 리무진 버스가 왔다. 좌석 열라좋다. 분당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한시간 정도 걸린거 같다. 그런데도 좌석은 우리나라 우등고속버스다. 에어컨도 빠방하고, 시설 좋다. 버스 기종도 상당히 좋다.(대우 로얄 크루저)
요금은 인천국제공항까지 12000원. 회사 - 경기고속
고속도로를 타고가니까 상당히 빨리 공항에 왔다. 난 그 시간이 출근 시간이라 엄청 막혀서 한 1시간 30분, 많이 걸리면 2시간 정도 생각하고 일찍 나온것인데...
그 시간에 공항에 가니까 엄청 한산하고, 할일도 없었다. 내가 내린 곳에서 한참떨어진 곳에 <전일본 공수> 카운터가 있어서 한 20분정도 걸어간거 같다.
그게 요금이 젤 싸다고 해서, ANA를 끊었다. 지금은 방콕-오사카 노선이 없어진데다 요금도 엄청 올라서 별 메리트가 없는 노선이 됐지만, 그 당시에는 인기 폭발이었다.
인천-오사카(간사이)-방콕 코스였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간 배낭이 부피가 너무 컸는지 기내에 못들고 간다구 거기 직원이 탁송화물 딱지를 부쳐줬다.
난 해외여행이 처음이어서 얼마나 짐을 싸는것이 적절한지 요령이 없어서 가지고 있는 옷들 이거저거 챙겨넣고 하다보니까 배낭 부피가 커졌다. 따로 요금을 물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공항이용권을 사고 출국장으로 들어서니까 드디어 해외로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 가격이 25000원 이었다는데, 외국인들은 15000원을 내는데 왜 내국인들은 25000원의 차별된 요금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생긴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인천국제공항 엄청 크고 깨끗했다.
내 친구가 하는 말이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하고 많이 닮은 꼴이라고 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 제주도 갈려고 김포공항 가봤는데, 거기하고는 시설이 비교가 안되는거 같다.
대합실 티비에서 뮤직비디오 채널 틀어주는거 보면서 빈둥빈둥 있다보니까 어느새 출발 시간이 됐다. 창밖에 보니까 이미 나를 태우고 갈 비행기가 대기중이었다.
고1때 비행기 타보고 처음 타는 것이라, 상당히 기분도 들떠있었다.
스튜어디스들이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국어로 기내 안전수칙을 설명하고, 입국신고서 카드를 승객들에게 나눠줬다.
난 처음 여행이라 그게 뭔지 모르고 다른 승객들이 다들 쓰길래 스튜어디스한테 볼펜 달라구 했다. 나 방콕간다구 했더니 트랜짓하는 사람들은 쓰지 말란다. 사소한 거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웃음이 나온다.
비행기안에는 거의다 일본으로 귀국하는 일본인들 뿐이었다. 한국어는 들리지 않았다. 12시 30분. 점심땐데 비행기 에서는 밥을 안준다. 오사카까지 1시간 30분 거리라 그런지 몰라도 밥 안주니까 상당히 배고팠다.
음료수하고, 땅콩하고 마른술안주 과자 비슷한거 조그만거 딸랑 한 봉지만 간식으로 줬다.(봉지에 ANA라고 써있음)
2시경에 우리 나라 동해 바다처럼 푸른 빛깔의 바다가 보이더니, 굉장히 큰 공항에 도착했다. 거기가 간사이 공항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린다음 모노레일 비슷한거 타고, 다른 사람들 가는 데로 따라갔다. 그 모노레일은 비행기 뜨는 풍경, 바다를 끼고 있는 공항 풍경을 한눈에 보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전망도 상당히 괜찮았다.
다른 일본인들은 전부 입국장으로 들어가고, 나는 트랜짓 코너로 넘어갔다. 거기 공항보안요원들이 트랜짓 티켓 있는지 철저하게 검사하더라.
거기서 저녁 6시까지 뻐대고 있다가, 다시 방콕으로 떠나는 것이다. 근데 누구 말대로 간사이 공항은 인천국제공항하고 생긴게 전체적으로 많이 비슷하다. 인천공항이 간사이공항 본떠서 만든거 같다. 그런데 바다물은 간사이공항쪽이 더 맑은거 같다.
제주국제공항을 연상케 한다. 거기도 바닷물이 엄청 푸른데...
인천공항 근처의 바다하고는 비교가 안된다. 창밖에 보니까 모터보트 왔다갔다하고, 수상스키 타는 놈들도 있더라.
하루종일 비행기 뜨는거 보는것도 한 시간 정도 지나니까 지긋지긋 하다.
배가 고파서 출국장 내에 있는 편의점에서(全日空 商社) 조그만 김초밥 세트하고, 멜론 소다 한컵을 사먹었는데, 800엔이나 깨졌다.
(울나라돈으로 8800원) 역시 듣던대로 일본은 물가가 상당히 비싼 나라다. 먹은거 얼마 돼지도 않는데, 거의 9000원 돈이라니...
웬지 사기 당한 느낌이 들었다. 하기사 공항이 원래 다른 곳보다 음식값이 비싸다고는 하지만...
별로 할거 없어서 공항 대합실에서 죽치고 있다가, 헬로 태국에 나와있는 생존 태국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숫자(쑨 능 썽 쌈 씨 하 혹 쨋 뺏 까오 씹... 러이 판 믄...)
컵쿤캅(감사합니다.),싸왓디 캅(안냐세염), 까올리(한국), 뭐 이런 간단한거는 죽치고 잇는 시간에 계속 외우다 보니까 대충은 외워졌다.
갑자기 맛사지가 밭고 싶어서 근처에 맛사지 실이 있어서 한번 이용해 봤더니 한 시간에 500엔 (5500원) 이란다. 그래도 맛사지 실은 그렇게 비싸지는 않은 듯 하다.
드디어 6시. 방콕으로 떠날 시간이 됐다. 어디 한국사람 없는 찾아 볼라고 해도 생긴건 같지만, 죄다 일본어만 들려와서 동행자 구하는건 포기했다.
내자리는 앞좌석이 없어서 바로 스튜어디스하고 마주 보면서 가는 맨 앞 자리였다. 내하고 마주보고 있던 스튜어디스가 한국계인데 상냥하고 이뻤다. 하지만 한국어는 안녕하세여 같은 간단한거 몇 마디 밖에 못한단다.
나는 영어도 못하고 일어도 못해서 스튜어디스가 말을 붙여도 대답도 못하고, 기냥 웃으면서 멀뚱 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비행기 이륙할때가 제일 스릴 있었다고 하니까 웃더라.
기내식을 주문하라고 스튜어디스가 계속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겠어서 기냥 메뉴판에 있는거 치킨 라이스만 손으로 가리키고 어렵사리 주문을 했다.
기내식은 양도 적은 편이었고, 자리가 자리인지라 식사하기도 불편했다. 맛은 그냥 무난한 편이었다. 샐러드를 소스에 찍어 먹을려는데, 소스가 포장이 안뜯어 져서 열라 낑낑 대고 있던 참에
옆좌석에 타고 있던 일본아저씨가 자기는 샐러드 안먹으니까 자기거 뜯어가지고, 나한테 주고, 샐러드도 나한테 덜어줬다.
참 친절한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는 방콕으로 사업차 출장가는 중이라고 했다. 젊어서 여행을 많이 다녀보라고 했다.
비행기 안에서 NHK 뉴스 끝나고, 닥터두리틀 이라는 영화를 틀어줬는데, 난 영화를 비디오 자막 없이 보는건 엄두도 못냈기 때문에 영화는 안보고 음악 CD만 들으면서 갔다.
스튜어디스 한테 부탁해서 ANA 마일리지 카드 신청서를 작성했다.
스튜어디스가 나중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른 승무원한테 제출하면 된다고 영어로 써서 줬다.
한 6시간 정도 지루한 비행 끝에 드디어 불빛이 휘황찬란한 도시가 보였는데 이제 방콕에 도착한 것이다.
그곳 현지 시간이 10시 정도 되었다. (한국, 일본과는 시차가 두시간)
스튜어디스한테 '사요나라'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출국 심사대로 갔다. 일본인들 틈에 섞여 있어서 그런지 출국 심사는 간단하고 형식적이었다. 여권만 보여주더니, 기냥 눈 웃음으로 통과하란다.
왕복티켓 끊었는지는 확인도 안했다.
탁송화물 찾는데서 한 15분 정도 기다리니까 저쪽에서 내 배낭이 보였다.
이런 저런 수속 다 마치고, 공항을 나와서 A2 공항버스를 타러 갔다.
공항버스 티켓 끊는 곳에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현지 아가씨가 있었는데 귀엽고 깜찍해 보였다. 그런데 분홍색 유니폼은 촌스럽다.
공항밖에 나오니까 가만히 있는데도 땀이 나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는 일본애들부터, 중국애들, 아프리카쪽에서 온 흑인들, 서양 코쟁이들 까지.. 인종 전시장 같았다.
버스가 첨에 출발할때 출입문을 안닫고 그냥 출발해서 되게 황당했다. 게다가 내가 앉은 자리가, 출입문 바로 옆이라, 조금 뜨끔했다.
고속도로를 지나서 한시간 정도를 달리니까 민주기념탑이 보였고, 거기 지나니까 카오산로드 종점에 도착했다.
카오산 로드에 오니까 드디어 내가 외국에 나왔다는게 실감이 났다. 여기 저기서 뚝뚝이들이 시끄러운 소음 소리를 내면서, 지나다녔다. 한국에 있을때도 마우라 달고 큰 소리로 달리는 차들을 많이 봤는데, 뚝뚝이 소리는 충분히 그것들을 능가하고도 남았다.
카오산은 밤중에도 흥청거리는 분위기였다. 죄다 서양 코쟁이들 뿐이었다.
가이드북 지도를 한참 보고, 현지인들한테 묻고 물어서 홍익인간을 찾아갔다.
DND를 중심으로 조금 밑으로 내려가서, 부츠 편의점 옆에 있는 조그만한 골목 구석진데 위치하고 있었다.
구석진 골목길은 밤중이라 조금 무서웠다. 그리구 길거리엔 왜 그렇게 개들이 돌아다니는지...
난 개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개를 싫어하는 편이다.
그것도 조그만한 강아지가 아니라, 도사견, 진돗개 처럼 큰개 들이라서 혼자 지나다니기 무서웠다. 그래도 사람지나다니는데 짖어 대지는 않았다.
홍익 인간에 들어가니까 말총머리 주인 아저씨(권찬우)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에어컨 도미토리가 1박에 70밧 이었다.이틀치 숙박비로 140밧을 내고, 짐을 풀었다. 어떤 도우미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서 방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장기체류자들이 많다고 했다. 어뜬 아저씨는 거기서 인도도 갔다오고, 네팔도 갔다오고, 베트남도 갔다왔다고 한다.
하루종일 일본사람들에, 외국인들 한테 말이 안통해서 답답해 하던 나는 한국에 온거 같아 마음이 편했다. 말도 통했고, 여행정보를 얻을 사람들도 있었고...
거기 1층 식당에는 태극기가 걸려져 있었다.
거기서 장기체류하던 사람들은 길게는 6개월, 짧게는 2달, 3달 정도 된다고 한다. 숙박객들은 전부 한국인 뿐이었다.
샤워를 하고 방에 들어가니가 어떤 여행자 아저씨 한 분이 친하게 지내자고 하면서, 모르는 것들 자기한테 물어 보란다.
대구에 사는 아저씬데, 3월초에 집을 나와서 인도,네팔을 여행하고, 이곳에 와서 장기체류하며,일을 도와주고 있단다. 모르는거 있으면 많이 물어보라고 했다.
괜찮은 음악좀 있냐고 해서 CD 2장을 음악 들으라고 빌려줬더니, 1층 식당에 있는 오디오에 넣고 음악을 틀어주셨다.
한 7,8월 쯤에 유행했던 대중 가요들인데, 맨날 임재범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만 지겹게 듣다가 이거 들으니까 좋다고 난리다.
하기사 장기간 한국을 떠나와 있던 사람들한테는 정말 새로운 느낌일 것이다. 그때 나왔던 노래들이 꿈을 모아서-Ses, 모든것을 너에게- Dbase, 짱가-김건모 뭐 이런것들 이었다.
내가 떠날때쯤엔 그것도 이미 좀 흘러간 노래들 이었다.
암튼 이렇게 해서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이날 하루는 장시간 비행 하느라 보낸 날이었다.
비행기 타보니까 별로 편하지도 않더라. 인천에서 오사카 갈때는 몰랐는데, 장시간 타보니까 엄청 엉딩이 아프고, 불편했다.
차라리 A2 공항버스 좌석이 더 편했던거 같다.
그날 12시30분 비행기로 출발하는데, 공항에는 늦어도 2시간 전까지 가는것이 좋다고 해서 아침 일찍 인났다.
평소에는 일 안하는 날은 11시, 12시까지 퍼질러 자던 내가 그날 만큼은 6시에 자명종이 울리자 마자 벌떡 일어났다. 참 신기했다.
아침먹고 부모님께 작별인사 드리고, 7시30분경에 집을 나왔다.
9월 초순이지만, 그때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서 아침에도 상당히 더웠다.
분당 서현역에 나가서 공항버스 대기소 안에 들어가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동네는 버스회사
(경기고속)에서 공항버스 대기소에 여름에는 에어컨 나오고, 겨울엔 히터가 나오게 했다. 정류장에는 이른 아침이라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한시간 정도 기다리니까 성남 종점 에서 출발한 리무진 버스가 왔다. 좌석 열라좋다. 분당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한시간 정도 걸린거 같다. 그런데도 좌석은 우리나라 우등고속버스다. 에어컨도 빠방하고, 시설 좋다. 버스 기종도 상당히 좋다.(대우 로얄 크루저)
요금은 인천국제공항까지 12000원. 회사 - 경기고속
고속도로를 타고가니까 상당히 빨리 공항에 왔다. 난 그 시간이 출근 시간이라 엄청 막혀서 한 1시간 30분, 많이 걸리면 2시간 정도 생각하고 일찍 나온것인데...
그 시간에 공항에 가니까 엄청 한산하고, 할일도 없었다. 내가 내린 곳에서 한참떨어진 곳에 <전일본 공수> 카운터가 있어서 한 20분정도 걸어간거 같다.
그게 요금이 젤 싸다고 해서, ANA를 끊었다. 지금은 방콕-오사카 노선이 없어진데다 요금도 엄청 올라서 별 메리트가 없는 노선이 됐지만, 그 당시에는 인기 폭발이었다.
인천-오사카(간사이)-방콕 코스였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간 배낭이 부피가 너무 컸는지 기내에 못들고 간다구 거기 직원이 탁송화물 딱지를 부쳐줬다.
난 해외여행이 처음이어서 얼마나 짐을 싸는것이 적절한지 요령이 없어서 가지고 있는 옷들 이거저거 챙겨넣고 하다보니까 배낭 부피가 커졌다. 따로 요금을 물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공항이용권을 사고 출국장으로 들어서니까 드디어 해외로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 가격이 25000원 이었다는데, 외국인들은 15000원을 내는데 왜 내국인들은 25000원의 차별된 요금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생긴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인천국제공항 엄청 크고 깨끗했다.
내 친구가 하는 말이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하고 많이 닮은 꼴이라고 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 제주도 갈려고 김포공항 가봤는데, 거기하고는 시설이 비교가 안되는거 같다.
대합실 티비에서 뮤직비디오 채널 틀어주는거 보면서 빈둥빈둥 있다보니까 어느새 출발 시간이 됐다. 창밖에 보니까 이미 나를 태우고 갈 비행기가 대기중이었다.
고1때 비행기 타보고 처음 타는 것이라, 상당히 기분도 들떠있었다.
스튜어디스들이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국어로 기내 안전수칙을 설명하고, 입국신고서 카드를 승객들에게 나눠줬다.
난 처음 여행이라 그게 뭔지 모르고 다른 승객들이 다들 쓰길래 스튜어디스한테 볼펜 달라구 했다. 나 방콕간다구 했더니 트랜짓하는 사람들은 쓰지 말란다. 사소한 거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웃음이 나온다.
비행기안에는 거의다 일본으로 귀국하는 일본인들 뿐이었다. 한국어는 들리지 않았다. 12시 30분. 점심땐데 비행기 에서는 밥을 안준다. 오사카까지 1시간 30분 거리라 그런지 몰라도 밥 안주니까 상당히 배고팠다.
음료수하고, 땅콩하고 마른술안주 과자 비슷한거 조그만거 딸랑 한 봉지만 간식으로 줬다.(봉지에 ANA라고 써있음)
2시경에 우리 나라 동해 바다처럼 푸른 빛깔의 바다가 보이더니, 굉장히 큰 공항에 도착했다. 거기가 간사이 공항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린다음 모노레일 비슷한거 타고, 다른 사람들 가는 데로 따라갔다. 그 모노레일은 비행기 뜨는 풍경, 바다를 끼고 있는 공항 풍경을 한눈에 보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전망도 상당히 괜찮았다.
다른 일본인들은 전부 입국장으로 들어가고, 나는 트랜짓 코너로 넘어갔다. 거기 공항보안요원들이 트랜짓 티켓 있는지 철저하게 검사하더라.
거기서 저녁 6시까지 뻐대고 있다가, 다시 방콕으로 떠나는 것이다. 근데 누구 말대로 간사이 공항은 인천국제공항하고 생긴게 전체적으로 많이 비슷하다. 인천공항이 간사이공항 본떠서 만든거 같다. 그런데 바다물은 간사이공항쪽이 더 맑은거 같다.
제주국제공항을 연상케 한다. 거기도 바닷물이 엄청 푸른데...
인천공항 근처의 바다하고는 비교가 안된다. 창밖에 보니까 모터보트 왔다갔다하고, 수상스키 타는 놈들도 있더라.
하루종일 비행기 뜨는거 보는것도 한 시간 정도 지나니까 지긋지긋 하다.
배가 고파서 출국장 내에 있는 편의점에서(全日空 商社) 조그만 김초밥 세트하고, 멜론 소다 한컵을 사먹었는데, 800엔이나 깨졌다.
(울나라돈으로 8800원) 역시 듣던대로 일본은 물가가 상당히 비싼 나라다. 먹은거 얼마 돼지도 않는데, 거의 9000원 돈이라니...
웬지 사기 당한 느낌이 들었다. 하기사 공항이 원래 다른 곳보다 음식값이 비싸다고는 하지만...
별로 할거 없어서 공항 대합실에서 죽치고 있다가, 헬로 태국에 나와있는 생존 태국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숫자(쑨 능 썽 쌈 씨 하 혹 쨋 뺏 까오 씹... 러이 판 믄...)
컵쿤캅(감사합니다.),싸왓디 캅(안냐세염), 까올리(한국), 뭐 이런 간단한거는 죽치고 잇는 시간에 계속 외우다 보니까 대충은 외워졌다.
갑자기 맛사지가 밭고 싶어서 근처에 맛사지 실이 있어서 한번 이용해 봤더니 한 시간에 500엔 (5500원) 이란다. 그래도 맛사지 실은 그렇게 비싸지는 않은 듯 하다.
드디어 6시. 방콕으로 떠날 시간이 됐다. 어디 한국사람 없는 찾아 볼라고 해도 생긴건 같지만, 죄다 일본어만 들려와서 동행자 구하는건 포기했다.
내자리는 앞좌석이 없어서 바로 스튜어디스하고 마주 보면서 가는 맨 앞 자리였다. 내하고 마주보고 있던 스튜어디스가 한국계인데 상냥하고 이뻤다. 하지만 한국어는 안녕하세여 같은 간단한거 몇 마디 밖에 못한단다.
나는 영어도 못하고 일어도 못해서 스튜어디스가 말을 붙여도 대답도 못하고, 기냥 웃으면서 멀뚱 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비행기 이륙할때가 제일 스릴 있었다고 하니까 웃더라.
기내식을 주문하라고 스튜어디스가 계속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겠어서 기냥 메뉴판에 있는거 치킨 라이스만 손으로 가리키고 어렵사리 주문을 했다.
기내식은 양도 적은 편이었고, 자리가 자리인지라 식사하기도 불편했다. 맛은 그냥 무난한 편이었다. 샐러드를 소스에 찍어 먹을려는데, 소스가 포장이 안뜯어 져서 열라 낑낑 대고 있던 참에
옆좌석에 타고 있던 일본아저씨가 자기는 샐러드 안먹으니까 자기거 뜯어가지고, 나한테 주고, 샐러드도 나한테 덜어줬다.
참 친절한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는 방콕으로 사업차 출장가는 중이라고 했다. 젊어서 여행을 많이 다녀보라고 했다.
비행기 안에서 NHK 뉴스 끝나고, 닥터두리틀 이라는 영화를 틀어줬는데, 난 영화를 비디오 자막 없이 보는건 엄두도 못냈기 때문에 영화는 안보고 음악 CD만 들으면서 갔다.
스튜어디스 한테 부탁해서 ANA 마일리지 카드 신청서를 작성했다.
스튜어디스가 나중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른 승무원한테 제출하면 된다고 영어로 써서 줬다.
한 6시간 정도 지루한 비행 끝에 드디어 불빛이 휘황찬란한 도시가 보였는데 이제 방콕에 도착한 것이다.
그곳 현지 시간이 10시 정도 되었다. (한국, 일본과는 시차가 두시간)
스튜어디스한테 '사요나라'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출국 심사대로 갔다. 일본인들 틈에 섞여 있어서 그런지 출국 심사는 간단하고 형식적이었다. 여권만 보여주더니, 기냥 눈 웃음으로 통과하란다.
왕복티켓 끊었는지는 확인도 안했다.
탁송화물 찾는데서 한 15분 정도 기다리니까 저쪽에서 내 배낭이 보였다.
이런 저런 수속 다 마치고, 공항을 나와서 A2 공항버스를 타러 갔다.
공항버스 티켓 끊는 곳에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현지 아가씨가 있었는데 귀엽고 깜찍해 보였다. 그런데 분홍색 유니폼은 촌스럽다.
공항밖에 나오니까 가만히 있는데도 땀이 나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는 일본애들부터, 중국애들, 아프리카쪽에서 온 흑인들, 서양 코쟁이들 까지.. 인종 전시장 같았다.
버스가 첨에 출발할때 출입문을 안닫고 그냥 출발해서 되게 황당했다. 게다가 내가 앉은 자리가, 출입문 바로 옆이라, 조금 뜨끔했다.
고속도로를 지나서 한시간 정도를 달리니까 민주기념탑이 보였고, 거기 지나니까 카오산로드 종점에 도착했다.
카오산 로드에 오니까 드디어 내가 외국에 나왔다는게 실감이 났다. 여기 저기서 뚝뚝이들이 시끄러운 소음 소리를 내면서, 지나다녔다. 한국에 있을때도 마우라 달고 큰 소리로 달리는 차들을 많이 봤는데, 뚝뚝이 소리는 충분히 그것들을 능가하고도 남았다.
카오산은 밤중에도 흥청거리는 분위기였다. 죄다 서양 코쟁이들 뿐이었다.
가이드북 지도를 한참 보고, 현지인들한테 묻고 물어서 홍익인간을 찾아갔다.
DND를 중심으로 조금 밑으로 내려가서, 부츠 편의점 옆에 있는 조그만한 골목 구석진데 위치하고 있었다.
구석진 골목길은 밤중이라 조금 무서웠다. 그리구 길거리엔 왜 그렇게 개들이 돌아다니는지...
난 개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개를 싫어하는 편이다.
그것도 조그만한 강아지가 아니라, 도사견, 진돗개 처럼 큰개 들이라서 혼자 지나다니기 무서웠다. 그래도 사람지나다니는데 짖어 대지는 않았다.
홍익 인간에 들어가니까 말총머리 주인 아저씨(권찬우)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에어컨 도미토리가 1박에 70밧 이었다.이틀치 숙박비로 140밧을 내고, 짐을 풀었다. 어떤 도우미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서 방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장기체류자들이 많다고 했다. 어뜬 아저씨는 거기서 인도도 갔다오고, 네팔도 갔다오고, 베트남도 갔다왔다고 한다.
하루종일 일본사람들에, 외국인들 한테 말이 안통해서 답답해 하던 나는 한국에 온거 같아 마음이 편했다. 말도 통했고, 여행정보를 얻을 사람들도 있었고...
거기 1층 식당에는 태극기가 걸려져 있었다.
거기서 장기체류하던 사람들은 길게는 6개월, 짧게는 2달, 3달 정도 된다고 한다. 숙박객들은 전부 한국인 뿐이었다.
샤워를 하고 방에 들어가니가 어떤 여행자 아저씨 한 분이 친하게 지내자고 하면서, 모르는 것들 자기한테 물어 보란다.
대구에 사는 아저씬데, 3월초에 집을 나와서 인도,네팔을 여행하고, 이곳에 와서 장기체류하며,일을 도와주고 있단다. 모르는거 있으면 많이 물어보라고 했다.
괜찮은 음악좀 있냐고 해서 CD 2장을 음악 들으라고 빌려줬더니, 1층 식당에 있는 오디오에 넣고 음악을 틀어주셨다.
한 7,8월 쯤에 유행했던 대중 가요들인데, 맨날 임재범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만 지겹게 듣다가 이거 들으니까 좋다고 난리다.
하기사 장기간 한국을 떠나와 있던 사람들한테는 정말 새로운 느낌일 것이다. 그때 나왔던 노래들이 꿈을 모아서-Ses, 모든것을 너에게- Dbase, 짱가-김건모 뭐 이런것들 이었다.
내가 떠날때쯤엔 그것도 이미 좀 흘러간 노래들 이었다.
암튼 이렇게 해서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이날 하루는 장시간 비행 하느라 보낸 날이었다.
비행기 타보니까 별로 편하지도 않더라. 인천에서 오사카 갈때는 몰랐는데, 장시간 타보니까 엄청 엉딩이 아프고, 불편했다.
차라리 A2 공항버스 좌석이 더 편했던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