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일기 ::: 2012년 6월 5일, 안녕, Starry night.
간밤의 짐싸기는 정말이지. 피곤하기 그지없는 그런...
결국 짐을 늘어놓고 인증샷만 띡 찍어놓고 짐은 아침에 싸겠어! 하며 세븐 달려가서 맥주사다 마시고 자버리는 그런 정도.
내 나이쯤 되면 여행에 있어 마이페이스 정도는 일도 아닌 그런거예요.
머지머지머지. 집에 가는 날은 왜 날씨가 항상 이런거지?
아침에 눈을 떠서 제일먼저 짐을 쌌느냐. 물론 그렇지 않다. 여행중에 부리는 진상중에 하나인 안씻고 밥먹기.
반곱슬이라 아침에 머리가 떡지면 수습불가능인데 그냥 그러고 내려가서 밥먹는다. 흠.
짐은 됐고 일단 밥. 이튼스마트호텔조식의 가장 좋았던 부분을 꼽자면 다름아닌 "자몽주스" ... !!!
생과일을 직접 스퀴이이이이이이즈으으으으으으 해서 주는지 충실한 자몽맛에 난 사랑에 빠졌나봐아아아. (집에 간다, 멘붕)
엘레베이터 안에서~♪
밥먹고 돌아와서 늦장부리면서 짐을 싸고나니 어느새 11시. 어젯밤에 확인한건데, 나 1시 50분 비행기로 철썩 같이 믿었는데-
알고보니 1시 10분 비행기였다는 뭐 그런 정도. 어머. 오늘도 늦는건가? 홍콩달러도 얼마 안남았는데 택시는 못탈듯 한데.
체크아웃 하면서 공항까지 가는 방법을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지금 11시 20분인데...택시가 가장 현명하다 생각해. 적어도 1시간은 걸리고, 네 비행기 1시라면 넌 이미 늦었는걸?"
"그러니? 역시 택시인거니? 택시 타면 얼마나 나오려나?"
"300달러 정도 나올텐데. 너 홍콩 달러 충분히 가지고 있니?"
"뭐 그렇긴 한데. 오우케이. 트라이 해보겠어. 고마워."
...라고 말해놓고 공항버스인 A버스를 타기위해 호텔에서 알려준 버스정류장에 서있는데,
이놈들. 내가 여기서 내렸는데 여기서 타라고 알려주면 난 어디로 가야 되는거니?
동물적인 감각으로 길을 건너서 공항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늦을 것 같은데 버스가 안온다. 아아 이건 첫날의 악몽과도 같아.
오늘의 날씨. 땡볕.
우야둥둥 도착한 버스를 타고 옥토퍼스카드 충전 안해놓은게 생각나서 현질을 하려 하는데 1달러가 부족하다. 젝일.
(네이선로드에서 공항까지 33달러. A21버스) 40달러 내고 "나 거스름돈!" 하면서 기다리는데. 홍콩버스엔 그런거 없단다. 아...
거스름돈 시스템 없냐...나 몰랐는데 그럼 옥토퍼스카드에 있는 디파짓 마이나스로 찍을테니 40달러 다시 줘. 이랬더니.
노아이디어라며 이걸 어찌 꺼내냐고. OMG. 집에가는 날 삽질 제대로 하는구나 케이트? 이런 사랑스런 상황이라니.
"그래 알았어. 어쩔 수 없지." 하면서 7달러에 치사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2층으로 올라가서 홍콩의 마지막 풍경을 감상한다.
버뜨.
나는 이미 늦고 있다며. 쥬디스가 너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거 맞냐며 비행기 몇신데 지금 버스냐며 어디야?! 하고 난리난리.
안그래도 나 조금 늦은거 같다고 하니 너 아직 호텔이면 콜 불러 줄테니 꼼짝 말고 있으라고 어찌나 걱정을 하는지 ...
나 나름 여행 많이 해서 노련한 편인데 홍콩에 처음이란 말에 쥬디스는 나를 뭔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이 걱정작렬!
나 지금 버스 안이고 비행기는 1시 10분이고 지금 어드메쯤 지나고 있다고 GPS찍어서 보내주니,
[홍콩 공항버스, 와이파이 팡팡 터집미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거기서 너 20분은 더 걸릴거야! 터미널 1에서 내려서 무조건 J카운터로 뛰어가! 전광판 확인할 시간 같은거 없을 거 같아서,
내가 아시아나 체크인 카운터 다 확인해 뒀으니 그냥 J카운터로 뛰어! 알겠지?"
으아니. 이런 무슨 감동적인 배려라니. 나 정말 친구하나 끝내주게 뒀네. ㅠㅠ?
가까스로 세이프 타임인 출발 40분전 도착. 한국에서 떠날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한산한 첵랍콕 공항 덕분에,
노련하게 첵인하고 짐도 스무스하게 부치고나니 왠걸, 시간이 남네. 면세점에서 술이라도 더 살까 두리번 거리다가,
환율계산 해보니 기내보다 비싼 가격에 안되겠다 싶어 그냥 말았다. 만날 경유만 하던 홍콩이고, 도착한 날도 정신이 저쯤 가있어서,
여유롭게 둘러볼 생각같은거 해본적 없는데. 막상 이렇게 둘러보고 있으니 이 곳, 과연 국제도시라 할만 하다. 멋진걸?
룰루랄라 한 5분전에 보딩 해야지, 하고 있는데 너무 티켓들고 여유작작 하고 있으니 아시아나 현지 직원들이,
"너 서울가니?! 빨리 게이트로 가!" 라며;;; 다섯명 한테는 그 얘기를 들은 거 같으네 (...여유부려서 미안해요이 ㅠㅠ?)
여유따위 순식간에 아웃오브마인드. 널찍한 3-4-3 seats의 4seats를 혼자 독차지하고 오는 길에도 맥주랑 비빔밥 먹으면서 ...
드디어 한국말을 한번 해볼 수 있는, 나의 소울시티에 도착.
나의 26인치 캐리어. 1인치에 1키로씩 들어간다 (...) 아놔 뭐 샀다고 또 이지경이니.
여유작작하고 있던 게이트 근처의 스타벅스. 이 사진찍고 있는데 너 인천가니! 언능 안갈래! 엉?! (...간다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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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타자~ ]
으힝? 뭔가 더 사려고 폼잡고 있었는데 술을 더 샀다간 엄마한테 귀싸대기 백만대 맞을거 같아서 쿨하게(...) 포기.
내가 나름 이쁘게 잘 비벼볼라고 아둥바둥 했는데 :( 비빔밥은 어쩔 수 없구나.
밥먹고 맥주 마시면서 영화보기. 나는야 어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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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을 그렇게 떠나왔다.
못가본 곳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은 말 그대로 "다음을 위한 기약"정도의 아쉬움으로 그 곳에 두고 왔다.
홍콩에 뭐 놓고 온거 없어? 아무래도 내 마음을 남겨놓고 왔을 뿐이지.
아무런 기대도 없었고, 아무런 디테일도 없었던 나의 홍콩.
누구나 한다는 어떤 do something 이라거나 must have item을 손에 넣는다거나 하는 그런 일반적인 즐거움과는
아주 많은 거리가 있었던 여행이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그 어떤 여행보다도 충실했고 즐거웠으며,
보물상자처럼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이 가득가득했던 짧고도 강렬했던 기억이 되었음을 자신할 수 있다.
갔던 곳을 또 가고, 또 가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내 최근의 여행패턴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완전히 새로운 풍경에 내가 녹아있음으로 여행이 주는 에너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던 홍콩여행.
당분간 잊기 힘들 것 같아...
그 곳의 반짝이던 별과 같은 간판들, 하버를 수놓았던 멋진 야경과 마음에 담아두고 싶던 낡은 건물들.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그 많은 풍경들, 아직 손에 넣지 못한, 눈에 담지 못한 미지의 풍경들마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도시. 또 돌아오게 될 거라는 강한 확신을 주었던, 내 생에 첫 홍콩여행.
마지막 밤에 이유조차 알수 없이 터진 눈물에 베개가 푹 젖어 버릴 정도로 울어버렸던, 반짝이던 도시.
떠나왔고 내가 있던 흔적을 남겨둔, 짧은 시간에 첫눈에 반해 눈을 뗄 수 없었던 그 사람처럼...마음에 남아버렸다.
bye, starry starry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