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새벽 일본스님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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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새벽 일본스님을 따라서...

국이랑영아랑 0 1976
사진과 함께 글을 읽고자 하시는 분들은 제 홈페이지 첫화면의 포토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03년 12월7일. 룸비니 5일째.

새벽 5시.
세상은 아직 어둠속에 잠겨있고, 매일 아침 세상을 자욱하게 뒤덮는 안개는 이곳 부처님의 탄생지
인 룸비니 동산을 아주 신비한 분위기로 감싸 앉는다.

달빛은 선명하고 이 이른 새벽길.
이 네팔의 시골 마을을 찾아 부처의 자비를 나누려는 두 구도자와 그들을 뒤따르는 10
살난 꼬마아이. 그리고 불청객인 2명의 여행자의 발걸음은 빠르기만 하다.

이들은 순례의 행렬을 나서지만, 또 한 아이는 절에 남아 계속해서 이 북소리를 멈추지 않기위해
북을 두드리고 있다.
아마도 이 순례의 의식이 끝나는 동안 저 북소리도 멎어서는 안된다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
다.
이들 순례자들의 발검음과 더불어, 하늘과 땅 그리고 물속의 모든 잠들어 있는 생명체들과 영혼을 깨워야 할 의무라도 있는듯, 북소리는 멎어서는 안되는 것 처럼 쉼없이 울리고 있다.

이들 두명의 순례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걷는다.
거의 경보 선수와 견주어도 느리지 않을 것이다.

그 뒤를 따르는 아이는 거의 뛰다 시피하여 따라가는 중이다.
다섯발자국 걷고 뛰고 다시 몇발자국을 걷지 않아, 벌어진 거리를 메우느라 뛰어야 한다.

행여나 이들을 놓칠세라 열심히 따라붙는 아이를 따라서 두명의, 짐을 잔뜩 멘 여행자도 숨을 헐
떡이며 뛰다시피 걷고있다.
(gps꺼내서 속도를 재어보니 거의 7km/h에 가깝다. 평소 우리 걸음의 두배 속도이다.)

따라오던 북소리는 언제 부터인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이 적막하고 고요한 시간, 스님들이 만들어
내는 작은 북의 비트와 만트라 소리만이 새벽의 모든 잠들어 있는 생명체들을 깨운다.
땀이나기 시작할 무렵 유일하게 이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이나 가게 주인들이 두손을 모아 이들 구
도자의 아침 순례길에 경의를 표한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나와서 인사를 한다.

이 이른 새벽, 미리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이들 구도자의 복덕을 가져 가려고 한다.
그 캄캄한 새벽, 집도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새벽.

엄마의 손을 잡고, 나마스테 하며 스님을 향해 웃는 아이의 자지러지는 듯한 웃음이 새벽의 정적을
깨트린다. 까르르 웃는 아이의 웃음 소리가 우리의 뒤를 따른다.

우리는 지금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인 '나무묘호렝게교'의 승려인 사토 스님을 따라서 순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스산한 안개덮인 새벽길을 따라 걷기를 한참.
영아와 조용히 애기를 나눠본다.

--- 괜찮아? 힘들지 않아?
--- 아 휴 더워. 너무 빨라서 정신이 없어.
--- 마을로 들어서면 속도가 좀 줄어들지 않을까?
--- 하여튼 너무너무 이상한 느낌이야.

온몸이 땀과 새벽의 습기로 흠뻑 젖을 무렵,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의 길로 들어선다.

이들 순례자의 행렬은 마을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이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이런 순례의 길을 따라가면서, 똥을 밟을 까봐 땅바닥을 살피는 세속적인 마음을 보라.
여전히 아이는 뛰다시피 하며, 만트라를 외며 열심히 두 순례자의 뒤를 쫓고 있다.

저 아이. 어느날 혼자서 절을 찾아왔다는 10살난 저 아이의 이름은 미나.
유달리 눈이 크고, 예쁘게 생긴 아이다.
뭔가를 물어보면, 수줍어서 대답을 하지 않지만 한번씩 우리와 눈이 마주칠때면 그냥 웃는다.
말없이 웃는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아이다.

어쩌면 영아의 말대로, 먹고 사는게 힘들어서 절을 찾아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유야 어떻든 저 10살짜리 조그만 여자 아이가 이 이른 새벽시간, 어른인 우리도 따라가기 힘든
속도의 순례 행렬속에 있다.
보채지고 않고 이 힘든 길을 뛰다시피 하며 북까지 치면서 이 순례 행렬의 일원으로써 참여하고 있
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렇게 순례의 행렬은 1년내내 계속이 된다고 한다.
대단한 고행의 길이다.


이상하다. 아이들이 뭘 알까?.

이 이른 새벽. 스님들의 북소리와 만트라 소리를 들었을까?
얼굴도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컴컴한 새벽.

흙벽으로 된 아주 초라한 집 앞에 아이들이 두손을 합장하고 순례의 행렬을 기다리고 있다.
저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나서 순례의 행렬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저 조그만 아이들이 말이다.

스님의 만트라를 받는 아이들의 표정과 예를 갖추는 모습은 아이답지 않게 너무나도 진지하고 경
건하다.

엄마가 시켜서 한 것일까?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순례자의 만트라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합장을 하고 서있고, 순례행렬의
우두머리는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어 그가 얻은 평화의 일부분을 아이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나마스테 인사하며 돌아서는 아이의 기쁨에 찬 눈빛을 봤다.

불빛도 없는 컴컴한 흙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

아이의 눈망울과 아이의 분위기와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남루하디 남루한 이들의 삶의 터전.
가난의 흔적.

그안에서 엄마인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님한테 인사했어.
--- 응, 했어. 스님이 "나무 묘 호 랜 게 교"라고 했어. 북도 쳤어.
--- 잘했다. 내 새끼.

비록 이들의 언어는 모르지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세상 어디나 사람사는 모습과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이 장면에서, 왜 예전 어머니 손에 이끌려 보러갔단 "벤허"라는 영화가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특히나, 주인공이 문둥병에 걸려 버려진 그의 어머니와 누이를 찾아 문둥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지
역을 방문했던 그 장면 말이다.

정말 상상도 못했고, 영화속에서도 이러한 장면은 본적이 없다.

우리는 방향을 틀었고, 지금은 마을로 난 길을 따라서 마을 안으로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곳. 아니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되는 시간.
하늘의 별빛과 달빛, 오른쪽 안개속에 펼쳐진 이 컴컴한 논둑길을 걷고 있는 지금 이순간.

아무런 생각이 없다. 이들의 삶이, 이 구도자들의 삶이.....
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결단코 평이한 삶이 아니란 것을 안다.

힘들고 고단한 삶일 것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스스로 선택한 삶의 형태.
세상이 원하는 가치기준으로 보면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이들이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도 풍요로
움을 가진 사람의 눈빛이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게 되면, 앞서가는 저들과의 간격이 벌어져 버린다.

--- 뛰어서 붙자.

서쪽으로 지는 달이 정면으로 보이는 지점 다시 이들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이들의 행렬은 잠시 멈추었고, 서쪽으로 기울고 있는 달의 정령에 경의를 표하는 것인지.
한동안 합장을 하고 서있던 이들은 다시 논둑길을 걷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우리끼리 였다면 이 시간에 이 길을, 절대 걸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저 컴컴한 새벽 안개속에서 들려오는 여우의 그리고 짐승들의 울음 소리들.
그 소리들을 뒤로 하고 들길을 걸어 조그만 길로, 더 조그만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일어날 시간이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크지 않은 북소리에 하나둘씩 불을 밝히는 집들도 있다.

힘들지만, 좋은 경험이고 색다를 경험이다.
구도자의 삶의 한 단면을 엿볼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365일 1년내내 비가오나 눈이오나 이들은 이길을 걸어 매일 새벽 아침 이곳의 사람들과 만난다고
한다.

저기 저 앞, 컴컴한 골목에서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의 소리가 들려 올때면, 나모 모르게 긴장이 된
다. 특히나, 중국에서 개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겅보고 놀란다고 했는데,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 먹어 보지만 어둠속에서
개들을 만나게 되면 부담스럽다.
매일아침 만나게 되는 순례의 행렬을, 개들도 아는지 짖기만 할뿐 그리 적대감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한마리의 덩치 큰 개가 순례 행렬의 마지막에 있는 나의 뒤를 집중 적으로 쫓는다.

새벽 동이 터 올 무렵. 다시 작지않은 마을로 들어섰다.
아이들이, 아이들이 나와있다.

아이들은 만트라를 받는것 뿐만이 아니라, 저마다 북을 쳐보려고 주위로 몰려든다.
알고 보니, 스님들이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북을 쳐 볼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그나마 익숙하게 북을 두드리며 만트라를 따라 하고, 어떤 더 작은 아이는 그냥 혼
자서 웅얼거리며 비트를 무시한채 자기만의 기분에 맞춰 북을 쳐댄다.

아이들의 심리는 어딜가나 비슷한 것일까?
혼자 나와서 스님의 행렬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수줍음을 타는 계집 아이 마냥 다소곳이 스님의 만
트라를 기다리는 반면.

여럿이 모여있던 아이들은 함께 라는 심리가 발동한 것인지, 웃고 떠들며 장난을 친다.
웃고 재잘거리며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한다.

오늘 보았다.
스님들을 보면서 알았다.
어떻게 복음이 전파가 되는 것이고, 어떻게 한 종교가 그 땅에 뿌리를 내리는 지를.
그리고 지금도 또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이 사토스님은 4년간 매일 아침 이시간, 북을 치며 이마을 저마을을 지나 다녔을 것이다.

맨 처음 이방인인 그가 이곳의 거리를 아침마다 지나 다녔을 때에는 무관심. 무반응으로 냉대 했겠
지. 하지만 이들 순례자의 행렬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한달, 두달, 세달, 네달,,,,,1년, 2년, 3년, 4년,,,,,

끊임없이 이어오게 되자, 이들은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나무묘 호렝 게 교. (namu myo ho ren ge gyo - 南无?法蓮華經) 라는 만트라를 외우고 따라하
게 되었겠지.

그리고 오늘보았던 것처럼 그 이른 시간, 사람들은 이들 순례자의 행렬을 기다리게 되었던 것이겠지?

사토스님은 어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언제까지 이곳에 계실것 같냐는 우리의 질문에,
-- 아마도 죽을때 까지 라며 웃으며 대답을 하셨다.

이 새벽 북소리와 함께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진을 찍어보려고 하지만, 조명이 전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컴컴한 사진밖에 나오질 않는다.
후레쉬를 터트리면, 이 경건한 분위기를 깨트리게 되는 것 같아. 아에 시도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또한 그러고 싶지도 않다.

동이 터올 무렵, 우리를 포함한 원래 다섯명 이었던 순례의 행렬은 하나 둘씩 따르는 아이들에 의해
어느새 길게 늘어지기 시작한다.

맨처음 스님에게서 만트라를 받고, 북과 스틱을 받은 여자아이 하나가 북을 치며 순례의 행렬을 따
르고 다른 아이들이 속속들이 가세했다. 어느덧 순례 행렬은 10명 가까이로 불어났고, 우리는 뒷전
으로 밀려난다.

스님은 혹시 자신이 못보고 지나친 사람들이 있을까봐 연신 뒤를 돌아 살핀다.
서서히 동이 터오고 있다.
이제는 사진을 찍을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제 스님에게 물어 보았다. 북을 치고, 쉴새없이 예불을 하는것이 개인의 득도를 위한 것이냐고?
스님은 '나 자신과 또한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이러한 의식을 행한다고 대답했다.

가장 가난한 마을을 찾아 다니며,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이 힌두교이기 때문일까, 너무나도 타 종교에 대해 개방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타 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대단하다.
눈으로 보고도 마을 사람들이 스님을 대하는 태도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하루 이틀에 걸쳐, 이렇게 된게 아니겠지!

행렬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마하대비 템플에 도착을 했다. 오늘있을 보름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있을 기도회에 참가하는 다른 나라 스님들이 속속들이 이곳에 도착을 하고 있다.

한달에 한번 있는 의식이기 때문일까?
각절에 있는 스님들이 절 안에서의 위계질서에 따라 걸어오는 사람, 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다
른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깨끗한 옷.
편안한 차림의 스님들.

그 한켠에 아침 순례를 마치고 먼지를 뒤집어 쓸대로 뒤집어 쓴, 이들 순례행렬은 따르는 한 무리
의 아이들을 데리고 마하데비 템플로 들어간다.

아주아주 특별한 아침. 특별한 경험이었다.



[룸비니] 어둔새벽 일본스님을 따라, 마을 순례를(2)

사진과 함께 글을 읽고자 하시는 분들은 제 홈페이지 첫화면의 포토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03년 12월7일. 룸비니 5일째.

새벽 5시.
세상은 아직 어둠속에 잠겨있고, 매일 아침 세상을 자욱하게 뒤덮는 안개는 이곳 부처님의 탄생지
인 룸비니 동산을 아주 신비한 분위기로 감싸 앉는다.

달빛은 선명하고 이 이른 새벽길.
이 네팔의 시골 마을을 찾아 부처의 자비를 나누려는 두 구도자와 그들을 뒤따르는 10
살난 꼬마아이. 그리고 불청객인 2명의 여행자의 발걸음은 빠르기만 하다.

이들은 순례의 행렬을 나서지만, 또 한 아이는 절에 남아 계속해서 이 북소리를 멈추지 않기위해
북을 두드리고 있다.
아마도 이 순례의 의식이 끝나는 동안 저 북소리도 멎어서는 안된다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
다.
이들 순례자들의 발검음과 더불어, 하늘과 땅 그리고 물속의 모든 잠들어 있는 생명체들과 영혼을 깨워야 할 의무라도 있는듯, 북소리는 멎어서는 안되는 것 처럼 쉼없이 울리고 있다.

이들 두명의 순례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걷는다.
거의 경보 선수와 견주어도 느리지 않을 것이다.

그 뒤를 따르는 아이는 거의 뛰다 시피하여 따라가는 중이다.
다섯발자국 걷고 뛰고 다시 몇발자국을 걷지 않아, 벌어진 거리를 메우느라 뛰어야 한다.

행여나 이들을 놓칠세라 열심히 따라붙는 아이를 따라서 두명의, 짐을 잔뜩 멘 여행자도 숨을 헐
떡이며 뛰다시피 걷고있다.
(gps꺼내서 속도를 재어보니 거의 7km/h에 가깝다. 평소 우리 걸음의 두배 속도이다.)

따라오던 북소리는 언제 부터인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이 적막하고 고요한 시간, 스님들이 만들어
내는 작은 북의 비트와 만트라 소리만이 새벽의 모든 잠들어 있는 생명체들을 깨운다.
땀이나기 시작할 무렵 유일하게 이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이나 가게 주인들이 두손을 모아 이들 구
도자의 아침 순례길에 경의를 표한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나와서 인사를 한다.

이 이른 새벽, 미리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이들 구도자의 복덕을 가져 가려고 한다.
그 캄캄한 새벽, 집도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새벽.

엄마의 손을 잡고, 나마스테 하며 스님을 향해 웃는 아이의 자지러지는 듯한 웃음이 새벽의 정적을
깨트린다. 까르르 웃는 아이의 웃음 소리가 우리의 뒤를 따른다.

우리는 지금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인 '나무묘호렝게교'의 승려인 사토 스님을 따라서 순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스산한 안개덮인 새벽길을 따라 걷기를 한참.
영아와 조용히 애기를 나눠본다.

--- 괜찮아? 힘들지 않아?
--- 아 휴 더워. 너무 빨라서 정신이 없어.
--- 마을로 들어서면 속도가 좀 줄어들지 않을까?
--- 하여튼 너무너무 이상한 느낌이야.

온몸이 땀과 새벽의 습기로 흠뻑 젖을 무렵,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의 길로 들어선다.

이들 순례자의 행렬은 마을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이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이런 순례의 길을 따라가면서, 똥을 밟을 까봐 땅바닥을 살피는 세속적인 마음을 보라.
여전히 아이는 뛰다시피 하며, 만트라를 외며 열심히 두 순례자의 뒤를 쫓고 있다.

저 아이. 어느날 혼자서 절을 찾아왔다는 10살난 저 아이의 이름은 미나.
유달리 눈이 크고, 예쁘게 생긴 아이다.
뭔가를 물어보면, 수줍어서 대답을 하지 않지만 한번씩 우리와 눈이 마주칠때면 그냥 웃는다.
말없이 웃는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아이다.

어쩌면 영아의 말대로, 먹고 사는게 힘들어서 절을 찾아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유야 어떻든 저 10살짜리 조그만 여자 아이가 이 이른 새벽시간, 어른인 우리도 따라가기 힘든
속도의 순례 행렬속에 있다.
보채지고 않고 이 힘든 길을 뛰다시피 하며 북까지 치면서 이 순례 행렬의 일원으로써 참여하고 있
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렇게 순례의 행렬은 1년내내 계속이 된다고 한다.
대단한 고행의 길이다.


이상하다. 아이들이 뭘 알까?.

이 이른 새벽. 스님들의 북소리와 만트라 소리를 들었을까?
얼굴도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컴컴한 새벽.

흙벽으로 된 아주 초라한 집 앞에 아이들이 두손을 합장하고 순례의 행렬을 기다리고 있다.
저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나서 순례의 행렬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저 조그만 아이들이 말이다.

스님의 만트라를 받는 아이들의 표정과 예를 갖추는 모습은 아이답지 않게 너무나도 진지하고 경
건하다.

엄마가 시켜서 한 것일까?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순례자의 만트라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합장을 하고 서있고, 순례행렬의
우두머리는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어 그가 얻은 평화의 일부분을 아이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나마스테 인사하며 돌아서는 아이의 기쁨에 찬 눈빛을 봤다.

불빛도 없는 컴컴한 흙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

아이의 눈망울과 아이의 분위기와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남루하디 남루한 이들의 삶의 터전.
가난의 흔적.

그안에서 엄마인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님한테 인사했어.
--- 응, 했어. 스님이 "나무 묘 호 랜 게 교"라고 했어. 북도 쳤어.
--- 잘했다. 내 새끼.

비록 이들의 언어는 모르지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세상 어디나 사람사는 모습과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이 장면에서, 왜 예전 어머니 손에 이끌려 보러갔단 "벤허"라는 영화가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특히나, 주인공이 문둥병에 걸려 버려진 그의 어머니와 누이를 찾아 문둥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지
역을 방문했던 그 장면 말이다.

정말 상상도 못했고, 영화속에서도 이러한 장면은 본적이 없다.

우리는 방향을 틀었고, 지금은 마을로 난 길을 따라서 마을 안으로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곳. 아니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되는 시간.
하늘의 별빛과 달빛, 오른쪽 안개속에 펼쳐진 이 컴컴한 논둑길을 걷고 있는 지금 이순간.

아무런 생각이 없다. 이들의 삶이, 이 구도자들의 삶이.....
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결단코 평이한 삶이 아니란 것을 안다.

힘들고 고단한 삶일 것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스스로 선택한 삶의 형태.
세상이 원하는 가치기준으로 보면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이들이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도 풍요로
움을 가진 사람의 눈빛이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게 되면, 앞서가는 저들과의 간격이 벌어져 버린다.

--- 뛰어서 붙자.

서쪽으로 지는 달이 정면으로 보이는 지점 다시 이들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이들의 행렬은 잠시 멈추었고, 서쪽으로 기울고 있는 달의 정령에 경의를 표하는 것인지.
한동안 합장을 하고 서있던 이들은 다시 논둑길을 걷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우리끼리 였다면 이 시간에 이 길을, 절대 걸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저 컴컴한 새벽 안개속에서 들려오는 여우의 그리고 짐승들의 울음 소리들.
그 소리들을 뒤로 하고 들길을 걸어 조그만 길로, 더 조그만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일어날 시간이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크지 않은 북소리에 하나둘씩 불을 밝히는 집들도 있다.

힘들지만, 좋은 경험이고 색다를 경험이다.
구도자의 삶의 한 단면을 엿볼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365일 1년내내 비가오나 눈이오나 이들은 이길을 걸어 매일 새벽 아침 이곳의 사람들과 만난다고
한다.

저기 저 앞, 컴컴한 골목에서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의 소리가 들려 올때면, 나모 모르게 긴장이 된
다. 특히나, 중국에서 개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겅보고 놀란다고 했는데,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 먹어 보지만 어둠속에서
개들을 만나게 되면 부담스럽다.
매일아침 만나게 되는 순례의 행렬을, 개들도 아는지 짖기만 할뿐 그리 적대감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한마리의 덩치 큰 개가 순례 행렬의 마지막에 있는 나의 뒤를 집중 적으로 쫓는다.

새벽 동이 터 올 무렵. 다시 작지않은 마을로 들어섰다.
아이들이, 아이들이 나와있다.

아이들은 만트라를 받는것 뿐만이 아니라, 저마다 북을 쳐보려고 주위로 몰려든다.
알고 보니, 스님들이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북을 쳐 볼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그나마 익숙하게 북을 두드리며 만트라를 따라 하고, 어떤 더 작은 아이는 그냥 혼
자서 웅얼거리며 비트를 무시한채 자기만의 기분에 맞춰 북을 쳐댄다.

아이들의 심리는 어딜가나 비슷한 것일까?
혼자 나와서 스님의 행렬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수줍음을 타는 계집 아이 마냥 다소곳이 스님의 만
트라를 기다리는 반면.

여럿이 모여있던 아이들은 함께 라는 심리가 발동한 것인지, 웃고 떠들며 장난을 친다.
웃고 재잘거리며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한다.

오늘 보았다.
스님들을 보면서 알았다.
어떻게 복음이 전파가 되는 것이고, 어떻게 한 종교가 그 땅에 뿌리를 내리는 지를.
그리고 지금도 또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이 사토스님은 4년간 매일 아침 이시간, 북을 치며 이마을 저마을을 지나 다녔을 것이다.

맨 처음 이방인인 그가 이곳의 거리를 아침마다 지나 다녔을 때에는 무관심. 무반응으로 냉대 했겠
지. 하지만 이들 순례자의 행렬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한달, 두달, 세달, 네달,,,,,1년, 2년, 3년, 4년,,,,,

끊임없이 이어오게 되자, 이들은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나무묘 호렝 게 교. (namu myo ho ren ge gyo - 南无?法蓮華經) 라는 만트라를 외우고 따라하
게 되었겠지.

그리고 오늘보았던 것처럼 그 이른 시간, 사람들은 이들 순례자의 행렬을 기다리게 되었던 것이겠지?

사토스님은 어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언제까지 이곳에 계실것 같냐는 우리의 질문에,
-- 아마도 죽을때 까지 라며 웃으며 대답을 하셨다.

이 새벽 북소리와 함께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진을 찍어보려고 하지만, 조명이 전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컴컴한 사진밖에 나오질 않는다.
후레쉬를 터트리면, 이 경건한 분위기를 깨트리게 되는 것 같아. 아에 시도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또한 그러고 싶지도 않다.

동이 터올 무렵, 우리를 포함한 원래 다섯명 이었던 순례의 행렬은 하나 둘씩 따르는 아이들에 의해
어느새 길게 늘어지기 시작한다.

맨처음 스님에게서 만트라를 받고, 북과 스틱을 받은 여자아이 하나가 북을 치며 순례의 행렬을 따
르고 다른 아이들이 속속들이 가세했다. 어느덧 순례 행렬은 10명 가까이로 불어났고, 우리는 뒷전
으로 밀려난다.

스님은 혹시 자신이 못보고 지나친 사람들이 있을까봐 연신 뒤를 돌아 살핀다.
서서히 동이 터오고 있다.
이제는 사진을 찍을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제 스님에게 물어 보았다. 북을 치고, 쉴새없이 예불을 하는것이 개인의 득도를 위한 것이냐고?
스님은 '나 자신과 또한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이러한 의식을 행한다고 대답했다.

가장 가난한 마을을 찾아 다니며,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이 힌두교이기 때문일까, 너무나도 타 종교에 대해 개방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타 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대단하다.
눈으로 보고도 마을 사람들이 스님을 대하는 태도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하루 이틀에 걸쳐, 이렇게 된게 아니겠지!

행렬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마하대비 템플에 도착을 했다. 오늘있을 보름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있을 기도회에 참가하는 다른 나라 스님들이 속속들이 이곳에 도착을 하고 있다.

한달에 한번 있는 의식이기 때문일까?
각절에 있는 스님들이 절 안에서의 위계질서에 따라 걸어오는 사람, 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다
른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깨끗한 옷.
편안한 차림의 스님들.

그 한켠에 아침 순례를 마치고 먼지를 뒤집어 쓸대로 뒤집어 쓴, 이들 순례행렬은 따르는 한 무리
의 아이들을 데리고 마하데비 템플로 들어간다.

아주아주 특별한 아침. 특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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