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피의 새로운 방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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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의 새로운 방문자들

고구마 0 630
(2003년 글입니다.)



올때마다 느끼는 점이긴 하지만 이번 여행에는 좀더 확연히 다가오는 사실...태국은 전지역이 공사중이라는 거다...
역시 쉴새 없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개발 도상국 답게, 많은 것이 바뀌고 새로 건설되며 낡고 지저분한 것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푸켓에서 내내 비와 함께 한 며칠을 보내고 나서 도착한 피피는 그야말로 지도를 새로 그려야 할 만큼 많은 것들이 바뀌어져 있었다. 2년 반이라는 시간의 갭이 큰 탓일까....
어쨌든 훨씬 더 산뜻해진 피피 의 모습에 절로 콧소리가 나오는 나와 달리, 지도를 그려야 하는 요왕의 입에서는 “ 아 정말 미치고 환장 하겠네..” 라는 소리가 무겁게 흘러나왔다.
“외국인들이 태국에서 돈을 많이 쓰긴 쓰나 부다...이거 다 여행자 들이 뿌린 돈으로 다 새단장 한거 아니겠어...”
“그러게... 우리도 거기에 일조를 했지만서두 말이야..”

피피의 많은 식당들 중 여행자들의 눈길을 잡아 끄는 곳중 하나인 ‘바이킹’에서 우리는 그곳의 주력 메뉴인 치킨 바비큐와 간단한 요리 한가지를 시켜 밥을 먹었다.
한국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탓인지 우리 외에도 세 쌍의 한국인이 식사를 하기 위해 들르기도 했다.
바이킹의 주방장은 간혹 사진기를 들이대는 여행자들을 향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거나, 팔을 모으고 웃기는 닭 흉내를 내면서 포즈를 취해 주었다.
헌데 요왕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시선을 아래로 돌리며 몸을 수그려 버린다.
“ 헉... 내가 찍을려고 하니까 저 아저씨 나를 외면하네...으...고구마야 나 상처 입었어..”
겸연쩍은 표정으로 돌아서는 요왕의 뒤로, 자신의 발아래 있던 커다란 생선을 꺼내들고 과장된 포즈를 취하려던 바이킹 아저씨의 멋쩍은 웃음이 보였다. 요왕의 카메라를 향해 길고  뚱뚱한 생선을 꺼내서 번쩍 들었는데, 카메라를 가진 이는 이미 뒤돌아서 터벅터벅 걸어가 버리고 말았으니.......  모든 일에서 타이밍은 역시 중요한 듯~~ 멀찍이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니 두 사람 다 웃기고도 안스럽다.
적어도 피피에선 아침 나절 에만 세차게 비가 오고 그 외에는 그럭 저럭 괜찮은 날씨가 이어졌다. 마야 베이에 가고 싶다는 요왕 덕택에 롱테일 보트를 반나절 빌리게 됐는데 운좋게도 다른 여행자 한명과 함께 비용을 나눌수 있었다.
“ 어디에서 왔어요?”
“ 한국에서 왔어요... 당신은 일본인 인가요?”
“ 네..한국이라면 작년에 월드컵 할때 가본적이 있어요. 그때 일본에서는 모든 표가 매진 이었는데 한국에선 경기를 볼수 있더라구요...”
대학에서 스페니쉬를 전공한다는 예쁘장한 일본인 아가씨는 전공 탓인지 영어가 꽤 부드럽고 능숙한 편이었다.
별로 수영할 맘이 없던 탓에 수영복도 챙겨 가지 않았던 우리는 , 그녀가 물에서 노는 동안 뭔가 놀거리를 찾아 좁은 해변을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뾰족한 놀거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 으으...한시간 동안 우리 여기서 뭐하냐...”
“ 사진 찍어야 한뎄으니까 사진 이나 찍으셔..”
“ 사진은 이미 다 찍었구,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수영복 가지고 오는건데...”

심심해 하는 요왕과 달리 나는 해변에서 기다란 작대기를 하나 발견해서 온 모래 사장을 헤집고 다니거나 모래 위에 이름쓰기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 어디선가 와글와글 대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아니나 다를까 한무리의 중국인 가족이 오솔길 사이에서 짜짠~ 등장했다. 이번 태국 방문에서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아주 크게 늘어난 것을 확실히 느낄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 수도 수이지만 등장할때의 그 요란한 사운드는 사람의 정신을 쏙 빠지게 만들 정도이다.
피피로 오는 배 위에서도 쉴새 없이 떠드는 중국인들의 입에서 튕겨져 나오는 침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녔던 우리는 정말로 그들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하긴 해외 여행 자유화 초창기의 우리 여행단의 모습도 지금의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으리라....누구나 처음에는 많은 시행 착오가 있기 마련인가 부다...
어쨌든 그들은 한동안 해변을 왁자지껄 하게 만들더니 갑자기 어디론가 휘리리릭~~ 사라져 버렸고 곧이어 해변은 다시 조용해 졌다. 무슨 만담가들이 왔다가 간거 같은 기분이다..
“ 근데 말이야..중국 사람들이 잘 안씻는 다는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인가봐...”
“ 왜? ” 내가 물었다.
“ 적어도 지금 해외 여행 할 정도의 사람이면 그래도 중국에서 살만큼 살 사람들일텐데도 남자들은 머리를 안 감는지 뒷머리가 수수 망태기처럼 부석부석 한 사람들이 꽤 있다.”
“으으....내년에 중국으로 장기 여행 갈 생각 하니 어째 마음이 즐거워 지지가 않는걸...”

마야 베이를 빠져나와 피피의 아름 다운 지형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진 뒤 롱테일 보트는 똔사이 만으로 향했다.
사실 우리 둘다 섬을 좋아하는 취향이 아니라서 연이은 푸켓과 피피에서의 체류는 우리를 다소 지치게 했다. 내일이면 끄라비로 나가게 된다고 생각하니 섬에 갇혀 있는 듯 느껴지던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사라지는 듯 하다.
피피 에서의 마지막날 밤...곤히 자는 새벽에 벌떡 일어난 요왕은 갑자기 “벌레가 있다” 라고 소리치며 인섹탄을 침대위로 마구마구 치이익~ 뿌려댔다. 몽롱한 의식 때문에 제대로 말도 못하고 훌훌 내려앉는 인섹탄을 가득 마신 나는  잔기침만 해대며 속으로 ‘ 요왕이 틀림없이 미친게야...’ 라고 불평하며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날이 밝자마자 요왕의 등짝을 한 대 때려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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