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게머리소녀의 처녀여행] - 0 - 힘들다..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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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게머리소녀의 처녀여행] - 0 - 힘들다.. 떠나볼까?

레게머리소녀 12 5355

[0] 힘들다.. 떠나볼까?


일에 대한 회의가 느껴진다. 권태롭고 허무하다.

아무래도 7년을 해온 업을 바꿔야 할 것 같아 학원 등록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쪽으론 감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라 등록했다.

설계일 이란게 정각에 퇴근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일주일에 두세번 새벽에 들어가는건 우습다)

수업시간에 늦는 건 예사고 가끔 졸기도 한다.

안되겠다 싶어 사표를 냈다. “그래.. 짧게, 빨리 끝내는 거야~!!“

하지만 웬걸.. 회사 그만뒀다는 얘기에 우리 여사님 가게와서 일하란다.

내키지는 않지만 쩐은 없는것 보단 있는게 좋으니깐...

보통 본점엔 일하는 분들이 고정적인데 직영은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아 자주 바뀌고,

사람구하기도 쉽지 않아 집에서 노.는. 내가 오후 5시부터 아침 8시까지 땜빵알바로 서빙본다.

당연히 낮엔 잠자고.. 학원 못갔다..

발목 잡혔다.. 덴장...

올해 초 연애를 시작했다.

나.. 연애 초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 준다는 건 기적이라 생각한다.

그 기적을 이룬 기쁜 마음에 너무 설례였었나 보다.

쭉 친하게 지내던 사람인데.. 알고보니 이사람 예전 애인과 아직 정리가 덜 끝난 상태다.

한달, 두달, 세달 기다려도 않온다.

연애관련 책과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런 남자, 절대 사귀지 말라 베스트]에 이 남자 다 해당된다.

그래도 나는 다를거란 생각에 미련하게 기다리다 결국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뻥” 차였다.

이사람 아닌 다른 사랑은 못할 거 같고, 이사람 없으면 죽을 거 같아 붙잡았다.

나중엔 사랑인지 집착인지 헷갈리더라.

나보다 이 사람을 더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아직은 나를 더 사랑하나보다.

사랑하는 나를 위해 보내줬다.

이렇게 스물여덜 첫사랑은 끝났다아~ T^T

나중에 지인에게 들은 얘긴데.. 이사람 일년전에 나 무지 좋아했었단다.

그땐 다들 내가 튕기고 있는 줄 알았다며.. 내 이별에 안타까워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란 말, 지대로 실감했다.


힘들어하는 내가 안되 보였던지 S양이(나보다 두 살 아랜데.. 호칭만 언니 동생이지 걍 친구 먹는다)

타로점 보러가잔다. 잘 아는 곳인데 정말 족집게라며 내 얼굴에 침 까지 튀겨가며 말한다.

거기서 운명의 그녀를 만났다. 내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준 그녀.. 나의 여신 이슬라.

이름도 어여쁘다 이.슬.라 (물론 닉넴이닷.. 스페인어로 섬이란 뜻이다)

몇일뒤 저녁 세뇨자 뭉쳐서 술한잔 하다, 여행 얘기가 나왔다.

우리 슬라 언니 여행매니아시다.

우리 S양 작년에 중국 다녀왔다.

나.. 26살까지 집이랑 학교, 회사 밖에 몰랐다.

부러운 마음에 여행을 꿈꾸고 있지만 용기가 없어 못가보고 있다고 말하니

대뜸 그럼 같이 여행 가잔다. 처음 여행으로는 태국이 좋다며...

덧붙이기를 친한 사람끼리 여행가면 의외로 맘 상하는 일 생긴다며 여행가서 몇일은 따로 떨어져 돌자고 한다.

(여기서 조금 당황했다. 혼자라뉘~ 내맘을 눈치챈 S양 “언니 우리는 같이 돌아요~“ 라며 내손을 꼭 잡아준다)

맞잡은 손에 용기 얻어 그러자 했다.

그리곤 두사람만 믿는다며 거듭 강조한는것도 빼먹지 않았다.

5월의 어느 밤 이렇게 나의 여행이 시작됐다.

그러나 한달 뒤 우리 S양 새로 시작한 알바 땜시 몬간단다.

대략 난감이다..

나.. 어리버리 방향치에 길치다.

일주일에 한번가는 연습실.. 갈때마다 헤멘다.

아직도 혼자 서울역가면 납치당하는 줄 알고 있다.

영어.. 말하기 싫다.

S양 붙잡고 징징거리니, 여행가서 길 잃어버리면 택시타고 무조건 대사관 가자고 하란다.

하루, 이틀 날짜는 왜이리 빨리 가는지..

여권 발급하러 갔다. 사진 진짜 맘에 안든다..

여권 신청시 비상연락망 쓰는곳이 있는데 아직 부모님껜 말 못한 상태라 막내동생 전화번호 적어넣었다.

솔직한 심정으론 말하지 말고 갈까 싶기도 하다.

고등학교때도 우리 아부지 위험하다고 안보내 주셔서 방학때 친구들과 놀러 한번도 못가봤다.

그리고 여자나이 스물여덜.. 참 애중간한 나이다.

직장 그만두고 부터는 연애할 능력은 안되니 선봐서 시집가라고 성화시다.

옛날 분이시라.. 남자직업은 공무원이 최고라 생각하신다.

친척집.. 25살 이후로 발 끊었다.

태국으로 열흘 여행 간다고 얘기하면 발목 부러질까 싶어 겁난다.

부모님 빼곤 친구이하 주위사람 나 여행가는거 다 안다.

심지어 가게 이모님들도 알고계신다..

(모두들 어찌나 겁을 주던지 범죄율이 높다니 유명연예인이 납치되었었다니, 여자들끼리 가기 위험하다는 둥.. 애기 듣고 많이 쫄았었다.)

지인들과 이모님들 고맙게도 가서 용돈하라고 얼마씩 챙겨주신다. (엔화도 받았다)

땡잡았다. 여기저기 얼추 받은 용돈만 20만원 넘는다.

날짜는 빨리 지나가고 가게 일 때문에 정신없어 여행준비를 하나도 못했는데..

다행이 떠나기 일주일전에 고정적으로 일할분이 구해져 자유를 얻었다.

적금탄 이자로 여행경비를 대체했는데 3만원 모자라는 2백만원이다.

많은 돈인 줄 알았는데.. 첫 여행이라 그런지 소소하게 돈 들어 가는게 많다.

홈쇼핑에서 디카도 새로 하나 장만하고.. 시내에서 여름옷도 몇 벌 구입하고.. 등등

(실제로 이때 산 옷 하나도 못 가져갔다. 사이즈가 작아서.. 그동안 나 살찐거 깜빡하고 살았답)

드디어 떠나기 이틀 전 밤...

아무래도 여사님껜 얘기하고 가야할 것 같아 같이 심야영화 보러갔다.

은근히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고싶은 나였으나 여사님의 의견을 존중 “괴물”로 초이스~

봤던 영화라 재미는 덜했으나 좋아하시는 여사님 뵈니.. 종종 같이 와야겠단 생각이 든다.

영화관람 후 “저 이틀 뒤에 태국으로 열흘 여행가요.“ 말하니 여사님 슥~ 돌아보시며

대뜸 하시는 말이 “간이부었네“답... 앙앙

그리곤 잘다녀 오라고 용돈 건네주신며 아부지껜 직접 얘기하란다..

OH~ MY GOD~!!

여행하루전날 밤

서점에서 포켓 영어회화 한권 사들고 집에왔다.

사실 물건 구입 말곤 여행에 대해 준비한거 하나도 없다.

내가 생각해도 대책안서는 성격이다.

이제야 은근히 걱정이 되는지 잠이 안온다.

예전 슬라언니에게 여행 싸이트 얘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아마 이름이 태사랑이였나 보다.

간만에 컴터에 앉아 찾아가보니 뭐가뭔지 상당히 복잡하다.

화면만 계속 노려보고 있으니 대충 감이온다.

우선 도보여행코스 프린트하고 태국말도 필요한것만 골라 프린트..

이것저것 주의할 점 읽어보니 시간이 금방간다.

많은 정보들에 하루만 일찍알았어도하는 안타까움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아뿔사 그러고 보니 홈쇼핑에서 주문한 디카.. 아직 박스도 뜯지 않았다..

부랴부랴 박스 뜯어 이것저것 챙기고 충전시켰다.

매뉴얼은 비행기 안에서 봐야겠다..

컴터에 앉아 꼼지락 거리다 보니 날샜다. 정신이 멍하다.

아침상 차려 들어가면서 아부지께 지금 말해야 되나 고민이다.

결국 아침 먹고 출근할 때 즈음..


나 : 저 오늘 여행가요오..

아부지 : 어디가는데?

나 : 그냥 가까운 곳에 몇일...

아부지 : 가까운 곳 어디?

나 : 태국이라고오...

아부지 : 누구랑?

나 : 아는 언니랑 둘이서요오..

아부지 : 그 언니 시집갔나?

나 : 도리도리..


아부지 영양가 없다며.. 흘겨보시곤 용돈 삼만원 쥐어 주신다.

순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 마음이 짠하다..

용돈을 쥐어주는 그 손이 괜스레 죄송스럽다.


약속장소로 출발하기 전 막내동생에게 내 계좌 비밀번호랑 비상금, 보험내용과 연락처까지 알려줬다.

동생, 죽으러 가냐며 화를 버럭낸다.

아구 깜딱이야~ 그래.. 나 주책인거 안다. 그래도 걱정되는걸 모..


배에 복대차고, 허리에 힙쎅차고, 등엔 배낭 메고.. 자 출발이닷~!!


배낭이 꼭 거북이 등껍질 같다..


12 Comments
걸산(杰山) 2006.09.20 03:30  
  그렇게 떠나는 거군요^^
레빈 2006.09.20 04:47  
  한국으로 들어가셨군요. 저 깐짠나부리에서 뵈었던 채시라 남편입니다..^^ 전 같이 다니던 동생은 푸켓으로가고 전 피피에 홀로 남아 다이빙중이랍니다. 암튼 혼자서도 즐겁게 여행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좋았습니다. 특히 경상도 처자라 더더욱....^^
레게머리소녀 2006.09.20 06:48  
  압.. 안녕하세요~ ^^ 너무 반가워요~
근데.. 전줄 어떻게 아셨어요? 오옷 신기하여라..
그렇군요.. 쭉 같이 다니실 줄 알았는데.. 헤어지셨구나..
피피섬이 그렇게 좋다면서요? 부러워요~ ㅜㅡ
여행기 이왕 읽으신거 끝까지 쭉~ 읽어주신 다면 감솨감솨~
중간에 두분 얘기도 나와요.. 냐하하
그리고 싸이 일촌 수락해 주시면 더할나위 없이 고맙겠습니당~ 히히
쭉~ 즐겁고 행복한 여행 되세요~  홧팅~!! o(^0^)o
espoir 2006.09.20 22:02  
  앙앙~ 너무 재미있어요.. 아버님과의 대화...
초죽음인데요..^^ 영양가..ㅋㅋ 시집갔나? ㅋㅋ
샤일라 2006.09.21 17:22  
  왠지 모를 동지감..ㅋㅋ
재밌게 읽을께요^^
감우성 2006.09.22 14:23  
  맞아여..저도 설계하고 있어요.. 정말 후회하고있습니다.. 별보며출근했다가 별보며퇴근하고..3달동안 하루 쉰적도 있습니다.. 설계..드라마에서보면..폼나지만..실제로는 인간 폐인 입니다...
고압선 2006.09.23 00:09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은듯... 잼있게 읽고갑니다~ ^^
레게머리소녀 2006.09.23 03:15  
  인간 폐인이란 말에 심하게 공감합니다.. ㅋㅋ

잼있게 읽어들 주셔서 고맙습니다. m(__)m
혼자여행 2006.09.25 14:35  
  저랑 동갑이신데요. 글을 읽는순간 너무 많은 것을 동감했어요, 특히 결혼의 압박! 안풀리는 연애!
예삐21 2006.10.01 15:45  
  여행의 시작은 그렇게 하는 궁요. 부럽습니당. 재미있게 읽을 겁니당.
순진무구녀 2006.10.15 13:21  
  ㅋㅋㅋ 읽는 재미가 솔솔하네요 +ㅁ+
엽기두나 2006.11.01 05:56  
  혼자 가셨다니...대단하세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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