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훌륭한 어부다. 꼬 따오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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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훌륭한 어부다. 꼬 따오에서는

고구마 3 691

(2003년 글입니다.) 

 

 

꼬 따오의 매핫 선착장에 내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모레 아침 우리는 이 섬을 떠나야 하므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단 이틀 뿐... 모든 것은 스피디하게 진행 되어야 한다. 유유자적 섬을 돌아다니거나 흥정을 위해 긴 시간을 밀고 당기기에는 이틀이란 시간은 매우 짧다.
결국 우리는 한 여행사에서 당일 오후의 낚시 투어와 내일의 스노클링 투어 모두를 한꺼번에 예약했고, 낙시 투어에만 총 3,500밧의 돈을 지불하기에 이르렀다. 약간 바가지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소 비싼 돈을 지불하더라도 시간을 아끼는 게 더 나을 듯 싶었다.
배위에서 먹을 샌드위치를 싸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태울 배가 어느 배인지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낡고 초라한 작은 배가 선착장 쪽으로 서서히 움직이며 들어왔다.
“ 설마 저배는 아니겠지? 그렇겠지? 설마....” 명님의 착잡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결국 잠시 후 우리 모두는 그 조그만 배에 올라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배에 시동이 걸리고 잠시 나아가자 물 색깔은 선착장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한층 더 맑아졌고 우리 모두는 신나서 환호성을 지르고 웃어댔다.
아마 그때가 우리의 낚시투어 중 가장 신나고 빛나는 순간이었으리라....
한 시간쯤 고기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지루한 항해를 하던 중, 선장이 드리워 놓은 릴낚시에 뭔가가 걸렸다. 선장의 표정으로는 뭔가 대단한 게 걸린 듯 했는데 이때부터 우리의 악몽 시작이다.
그 망할노무 물고기는 그냥 실실 끌어당기는 것만으로 배위로 올라올 녀석이 아니었던 것이다.
선장은 오직 그놈에게 정신이 팔려 우리에게 낚시대도 주지 않고 고기를 낚을 수 있는 포인트도 지나쳐 버린 채, 그 거대한 청새치 녀석만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좋게좋게 생각하다가, 슬슬 지겨워 지기 시작한 우리는 선장에게 말했다.
“우리도 낚시 할래요. 낚시대 줘요”
“지금 조금 이라도 이 낚시대 놓으면 고기가 팽~ 하고 줄 끊고 도망칠거요. 어차피 이 고기는 당신네들 건데 왜 그래요. 잡으면 당신들 거라구요. 그리고 댁들은 이 낚시대를 감당하지도  못한다구....”
서로 쳐다보며 “ 그것도 그렇네....흠흠...” 하던 우리는 할일 없이 도시락 꺼내 먹는 걸로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 우리 이러지 말고 회라도 쳐서 먹자...”
“ 초고추장 가져온 거 좀 꺼내놓고......그리고 칼이나 뭐 도구 같은거 없어..?”
오전에 선장에 잡아놓은 참치 한 마리를 아이스박스에서 꺼내와 명님이 회를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라는 게 그렇게 만만히 떠지는 게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우리에게 있는 도구라고는 5밧짜리 플라스틱 물통의 배를 갈라 편편하게 만든 손바닥만한 판때기와 요왕의 작은 맥가이버 칼뿐이었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 그 열악한 도구로 제법 뚱뚱한 참치의 회를 뜨겠다고 끙끙되던 명님과 옆에서 열심히 보조 역할을 하던 꽁님.......
“ 회 떠 놨어요.. 어서 먹으러 와요”
배 한구석에 널 부러져 있던 우리들은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 회(?)의 모습을 보고 한점만 먹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버렸고, 나머지 남은 뭉그러진 고기점 들은 곧 바다로 버려졌다. 명님의 실망한 모습과 한숨소리가 역력했지만 사실 너무 지쳐서 식욕도 거의 없었다.


낚시에 대한 열망과 이미 반쯤은 낚여진 물고기에(비록 우리가 잡은 건 아닐지라도...) 대한 기대감 사이에서 우왕좌왕 하는 2시간 반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물론 그 동안 우리라도 따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 청새치를 따라서 이리저리 배를 몰고 다니느라고 정작 우리가 떠있는 바다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따라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올라올 것은 없는 상황이며, 선장의 관심사는 오직 청새치뿐이었다.
“저놈의 낚시줄 확~끊어 버리라고 할까...?” 죤님이 말했다.
“이젠 늦었죠...내가 어부라도 이제는 줄 못 끊지.....” 명님이 이야기 했고 나머지 우리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우리는 지루함, 우울, 분노, 체념, 실망, 억울... 등등등 오만 좋지 못한 감정이란 감정은 골고루 맛보며 환불에 대한 이야기, 정작 환불 절차에 들어 갔을 때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간간히 했다. 으으으~~~ 환불절차에 이미 한번 크게 딘 나는 고개가 절로 떨구어 졌다.
내 감정은 이제 ‘ 환장해부려~~’ 단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나긴 사투 끝에 “ 이제 끝났다” 는 선장의 말이 들려왔고 그의 명령에 따라 죤님. 명님 그리고 요왕은 갈쿠리를 들고서는 이미 완전히 기절해버려서 꼼짝도 안하는 청새치를 일사분란한 동작으로 찍어 올리고 있었다.
망할 노무 생선 같으니라고....하필이면 선장의 낚시 바늘에 걸릴게 뭐람....
크기는 또 더럽게 컸다. 한시간 쯤 전에,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그 청새치는 우리의 배 밑에서 그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잠시 왔다 갔다 하기도 했는데 물밑의 그 그림자를 보고 있자니 뒷골이 오싹해지는게 저절로 죠스가 생각나며 무서워 졌다. 그랬던 위풍당당했던 놈인데 이제는 한낱 시체 신세라니.....
나는  사람들이 안보는 사이 살짝살짝 그놈의 투명한 눈을 찔러주고  뱃가죽을 뻥뻥~ 차거나 놈의 머리를 힘껏 밟아 주는 걸로 그동안의 분풀이를 대신했다.
“ 나 참...이거 뭐 낚시 투어 나와서 사진 한 장 건지겠구먼..”
“ 지금까지 투어 포스터에 붙어 있는 생선 중에서 우리 생선이 제일 커 보인다.... 이런건 꺼꾸로 매달아 놓고 사진 찍어야 뽀대가 나는데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그러고 보니 그 사람들이 들고 있는 생선도 절대로 그들이 직접 잡은 게 아닐 것이야. 아마 이런 식으로 선장이 잡아 줬을 걸....”
“맞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마 우리처럼 어이가 없어서 얼빠진 웃음을 짓고 있는 게 틀림없음이야..... 다들 우리 같은 피해자들이로구만...”
거대한 청새치를 싣고 GPS 시스템을 이용해 고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제 우리의 낚시가 시작되는 거다.


그 후 의 상황은 더 코미디였다. 나는 태어나서 릴낚시라고는 생전 처음해보는데, 한번 던졌다가 끌어올리기만 하면 길이 30센티미터 정도의 참치 서너 마리 쯤은 기본으로 줄줄 딸려 나왔다. 이건 뭐 뜰채로 고기 건져 올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릴낚시에 익숙치 않은 우리들은 2개의 낚시대 만으로 서로 돌려가며 했을 뿐인데도 한시간만에 완전히 기진맥진 해졌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고 나만이 “본전을 찾아야 해. 본전을...” 소리치는 통에 30분이 더 연장됐다.
“우리는 낚시 투어를 나온 게 아닌게야... 이건 악덕 선주한테 끌려와서 고기잡이 당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구....”
“오늘 투어의 적정 가격을 얼마로 보세여?”
“350밧.....” 죤님이 말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는 선장에 말에 다시 꼬 따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선착장에 도착하기 전 명님이 농담으로 “청새치랑 사진 찍는 값으로 100밧씩 받자”고 했고 우리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 쳐줬지만 선착장엔 사람은 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었다. 우리의 것이라던 그 커다란 청새치는 그냥 버려둔 채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어두워졌고 우리는 참치가 가득한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음식점을 찾아가 바비큐와 양념 생선 튀김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한 시간 후. 우리 앞에는 뚱뚱한 8마리의 생선이 놓여졌고 이제는 먹는 일만 남았다. 하루 종일 고생한 우리에게 참치 바비큐는 보잘 것 없는 보상이지만...... 내가 직접 낚은 고기를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이런 경험은 앞으로도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 5명은 입을 모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나는 서로 둘러 앉은 우리 모두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3 Comments
롤러캣 2021.02.17 16:24  
엄청난 크기의 청새치, 저걸 릴낚시로 잡았네요. 놀라고 갑니다.
나의사랑동남아 2021.04.08 17:43  
근데 선장이 회를 못 뜨니..
알뜰공주 2021.05.26 10:37  
회도 못뜨는 선장이 낚시꾼을 모집해서 낚시를 가다니 말도 안되네요.
칼이라도 있어야지 어이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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