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대학생들과 함께한 2박3일 야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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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대학생들과 함께한 2박3일 야영기 -- <1>

요술왕자 6 1731
많은 여행자들이 그렇겠지만 현지인과 같이 생활하며 그들과 함께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나도 그다지 많이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태국인들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즐겁고 기분 좋은 기억들이다.
이곳 푸끄라등Phu Kradung에서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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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간의 태국 동북부 여행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으로 러이에 있는 푸끄라등에 가기로 했다. 태국에서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유일한 곳, 독특한 경관과 생태계가 보존 되어있는 곳, 그리고 태국의 학생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는 말 때문에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곳이다.
몇 군데 가본 태국의 산들에게서 멋있다거나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카오야이Khao Yai’의 어떤 절벽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나, 깐짜나부리Kanchanaburi에서 쌍클라부리Sangkhlaburi 가는 도중에 보았던 석회암 지형의 산들이 조금 특색 있었을 뿐이었다. 때문에 산 자체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단지 ‘혹시 그곳에 가면 태국의 대학생들과 함께 등산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푸끄라등으로 끌었다.

푸끄라등으로 가기 전날, 캠핑 준비물을 사기 위해 러이 시내에 있는 한 슈퍼마켓에 갔다. 이곳에서 푸끄라등에서 막 내려온 서양 여자 두명을 만났다. 푸끄라등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 둘은 이구동성으로 'Fantastic!'이라고 탄성을 질렀다. 잘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둘은 흥분하면서 뭐라고 뭐라고 계속 나에게 말했다. 아마 푸끄라등에서 보거나 즐겼던 것을 설명해 준거겠지. 참치 캔 몇 개를 사들고 나왔다.

다음날 새벽, 푸끄라등을 가기 위해 '컨깬Khon Kaen'행 첫차에 올랐다. 출발을 기다리면서 어제 빵집에서 사둔 소세지 빵으로 차 안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버스 안은 이른 새벽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아마 인근 마을이나 도시로 출근하는 길인듯하다. 버스는 비교적 자주 서며 사람들을 내리고 실었다.

두시간 남짓 달린 버스는 푸끄라등으로 들어가는 어귀에 나를 내려주고 떠났다. 여기서 공원까지는 오토바이 택시로 갈아타야 했다. 포장도로를 달리다 다시 산길을 따라 쭉 들어가니 공원입구가 나왔다.

방문객 안내소에는 푸끄라등의 높이나 면적, 또는 어떤 동식물을 볼 수 있는지를 설명해 놓은 패널이 붙어 있었다. 유리 상자 안에 산의 모형도 만들어 놓아, 내가 가야할 등산로와 올라가서 둘러볼 곳, 그리고 야영장 위치 등을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카운터에서 텐트를 예약했다. 하룻밤에 40밧. 지도 한 장 받고, 입장료 25밧을 낸 다음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저울이었다. 전에 현지 신문에서 읽은 기사 생각이 났다. 푸끄라등을 등산하는 태국인들은 짐은 포터에게 맡기고 몸만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자연을 즐기는데 굳이 힘을 들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다행이었다. 배낭을 맡기고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푸끄라등은 산 모양이 아주 독특하다. 마치 국그릇을 엎어 놓은 모양으로 산 정상에는 엄청나게 넓은 평원이 있고 가장자리는 절벽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계속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중간쯤 갔을때, 젊은 태국 사람들과 함께 가게 되었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였는데 그 한 남자와 여자는 커플인 듯 했다. 올라가는데 숨이 차기 때문에 계속 얘기를 하진 못했고 가끔 한두마디씩 얘기를 하며 올라갔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피찟인지 펫차분인지 그쪽 어디의 교대 다니는 대학생들이었다.

“아참, 나 태국 이름 있어. 녹이야... bird... 새....”
“하하하, 녹은 여자 이름인데.... 아 나는 눔이야, 얘는 쏨이고, 얘는 꼽... ”
또 한참을 올라가다가....
“녹, 너 머리에 두른 거... 그거 TV에서 봤어 너네나라 대학생들 시위할 때 그거 하는 거잖아....”
“엥? 하하... 아.... 이거.... 땀 흐르지 말라고 두른거야....”
빨간색 손수건을 말아서 머리에 묶었는데 TV 뉴스에서 본 우리나라 학생들 데모하는 것을 떠올렸나보다. 눔은 한손을 휘저으면서 데모하는 흉내를 낸다.

예전에도 느낀 거지만 태국 사람들은 산을 탈 때 따로 준비하는 것은 없다. 그냥 평상시 그대로 입은채로 오고 심지어는 슬리퍼를 신고 산을 오르는 사람도 있다. 구두 때문에 발이 아픈지 쏨이 자꾸 뒤쳐져서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한다.
“그래 그럼 나중에 위에서 보자. 먼저 갈게”
아이들을 뒤로하고 속도를 붙여 정상을 향했다.

정상같지 않은 정상.... 그냥 평원이다. 숲도있고 풀밭도 있고.... 그리고 안쪽으로 계속 길이 연결되어있다. 아무튼 꼭대기에 올라왔어도 야영장까지 몇킬로미터를 더 가야한다. 가다가 길위에서 쉬고 있는 한무리의 여자애들을 만났다. 길은 알지만 괜히 한번 물어봤다.
“여기 야영장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해요?”
“아... 이 길 따라 쭉 가시면 돼요.”
자기네들끼리 웅성웅성대는 소리를 뒤로하고, 보조배낭 한번 추스르고 다시 걸었다.

야영장 관리소에 도착했다. 예약 쪽지를 건내고 텐트를 받았다. 짐은 언제 올라오냐고 물으니 이따 오후 늦게 도착한단다.
야영장은 숲으로 둘러쌓인 야영장에 들어선 뒤 텐트를 어디에 칠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까 그 여자애들도 왔는데, 보니까 눔 일행과 같은 팀이었다. 무슨 과 MT쯤 되나보다.
“어이~ 녹~ 올라오는데 힘들었지?”
“아니 별로.... 근데 좀 덥다. 쏨, 발은 괜찮아?”
“응... 괜찮아”
“녹, 너도 우리 옆에 텐트쳐”
“응 그래”
내 텐트는 1인용이라 무지 작다. 얘네들은 커다란 텐트 두개(남자텐트, 여자텐트)를 쳤다.
텐트를 다 치고 좀 피곤해서 들어가 누워 있었다. 조금 있으니 눔이 와서 말한다.
“녹~ 짐 올라왔어.”

내 배낭을 찾아서 돌아온 뒤 텐트 안에 풀어 놓았다. 아.... 근데 이불을 빌려야하는데....
눔에게 찾아갔다.
“눔, 이불은 어디서 빌려?”
“우리도 빌리러 가야해. 같이 가자”
이불은 관리소가 아닌 가게에서 빌려야 했다. 야영장을 가로질러 안쪽으로 들어가니 가게를 겸하는 식당들이 쭉 늘어서 있다. 한군데 들어가서 이불 두 장과 베개를 빌렸다. 트레킹때 쓰는 담요가 아니라 솜이 들어간 두꺼운 이불인 것이 우스웠다. 아무튼 잠자리는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

화장실은 찾았고 샤워장을 찾아보았다. 잘 안보여서 어떤 태국인에게 물어보니 저쪽 공터 건너편을 가리킨다. 그쪽에 방갈로 몇 채와 화장실 겸 샤워장이 있었다. 샤워장은 커다란 항아리에 물이 담겨 있어 바가지로 퍼서 쓰게 되어있다. 물은 뿌연데 뭐 이것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옷을 벽 위에 걸쳐 놓고 샤워를 했다. 밖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부실했기 때문에 휙 열리지나 않을는지 걱정이 많이 됐다. 다행히 무사히 샤워를 하고 텐트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는 간단하게 국수로 때웠다. 텐트 안에 누워 손전등 켜고 가이드북 보는데 눈에 잘 안들어 온다. 밖에는 아이들이 기타치며 놀고 있다. 텐트를 열고 비척비척 밖으로 나오는 나를 발견하고는 소리친다.
“녹, 일어났네.... 녹 이리와~”
내가 자고 있는줄 알았나보다... -_-;; 쩝... 쫌 일찍 나올걸...
지금보니 여자애들이 14명에 남자애들 5명이다. 같은 학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좀 나이들어 보였다. 가운데 모닥불 피워놓고 빙 둘러 앉아 한명이 기타치고 나머지는 불 쬐고 있다. 나도 한쪽에 자리잡고 앉았다.
옆에 앉은 여자아이가 물었다.
“녹, 집이 어디야?”
“으응.... 인천이라고.... 서울 알지? 그 근처야.”
“아~.... 음, 그럼.... 대학생이야?”
“응”
“몇 살이야?”
“25살”
“어 정말? 한 18살로 밖에 안보이는데?”
“쿠쿠.... 고마워, 너희들도 다 어려보인다... 고등학생 같애”
다른 아이가 말을 했다.
“내일은 어디가?”
“음...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무슨 연못이랑.... 저쪽에 멋진 절벽 있다는데 거기나 함 가볼라고”
“그럼 우리랑 같이 가자.”
“응, 좋아... 근데 너희들은 언제까지 여기 있을 꺼야?”
“이틀밤 자고 갈 거야. 너는?”
“어... 나도...”

모닥불 가에 앉아 있지만 다들 별말이 없었다. 피곤해보였다. 그중 제일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애가 말했다.
“피곤하니까 오늘은 이만 자자. 내일 아침 먹고 바로 출발할거야.”
나도 피곤했다. 아이들은 한두명씩 자리에 일어나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모닥불 옆에 아직 남아 있는 아이들의 두런두런 거리는 소리가 잦아들면서 잠이 들어버렸다.

(계속)
6 Comments
2002.11.16 00:13  
  아.. 요술왕자님이 대학생때의 25살이면 언제적 태국 여행이었는지 궁금해지네요.. 잼나네여 계속 기대함돠^^
리노 2002.11.16 02:44  
  쨈있다...^^
짱구 2002.11.19 15:57  
  마저저..."녹"은 여자애덜 이름인 디...ㅋㅋㅋ(아라야,깐자녹등등도 여자애덜이었는 데...개덜두 녹인 디)
가수 통차이도 녹이긴 한 데 쑥스러워서 Bird라고^^
...요왕님 이름 바꿔염..."녹 뚜어 푸"...라고
(2탄 가봐야쥐)
요술왕자 2002.11.19 16:20  
  흐흐.... 원랜 녹너이(작은새)라고 할라고 했는데... 세글짜밖에 안되는데도 못알아들어 걍 녹이라고.... ^^;; 근데... 녹 뚜어 차이가 아닌가염..
짱구 2002.11.19 16:41  
  내 이름은 "녹"이얌...하시고 조금 쉬셨다가 여자 이름
아녀? 하기 전에 재빨리..."뚜어 푸"(수컷)야 하면 박장대소,포복절도 할 꺼예염^^...암 컷은 "뚜어 미야"
요술왕자 2002.11.19 16:54  
  어... 정말이네... 사전보니 숫컷이 뚜어 푸로 나와 있군요... 뚜어 차이라고 해야 맞을것 같은데.... 또 하나 배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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