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바이디 라오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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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바이디 라오스(6)

이준용 2 909
- 푸시2 게스트하우스 -

어둠 속에 숙소 도착. 뚝뚝에서 내리니 운전사가 지붕에서 가방을 꺼내 주는데, 다른 사람들의 가방더미 속에서도 정확하게 우리 것을 찾아준다. 헛갈리지도 않나? 신기하군... 이 곳은 태사랑에서 어느 분이 강력 추천한 곳인데, 생각만큼 좋진 않았으나 듣던 대로 깨끗하다. 근데 가격은 11불을 부른다. 윗분은 7불에 이용했다고 했는데... 해서 좀 깎아 보겠다고 우겨봐도 종업원 지지배는 요지부동이다. 깎아주면 주인한테 죽는다고 시늉까지 보여주는데 얼마나 우스운지... 나도 웃으면서 오기를 우겨봤지만, 결국 실패! 하긴 방이라고는 이것 하나 남았으니 깎아줄 리가 있나? (1월초의 루앙프라방은 엄청 성수기더군요. 가는 데마다 Full..)

- 노천카페 -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오니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어서 걸어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데, 저 멀리서 반짝이는 오색전구가 우리를 부른다. 신이 나서 다가가 보니 [봉냐쑥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카페 겸 레스토랑. 테이블과 의자를 열 맞춰서 두 줄로 배열한 가운데, 테이블 위에는 빨간색 보가 정성스레 덮여 있고, 그 위에는 작은 양초가 빛나고 있다. 물론 주변에는 오색전구와 함께 청사초롱도 밝혀져 있으며, 바로 옆은 메콩강이다.

밤에 보이는 메콩강은 호수처럼 잔잔하고, 강 건너에는 불빛 몇 개만이 외롭게 빛나는데, 귓가에 들려오는 팝송이 참으로 감미롭다. (지금은 A-Ha의 Take on me 나온다) 메뉴를 뒤적이니 딱! 하고 눈에 들어오는 라오라오. 먼저 이것부터 한 잔 시켰다. 그 동안 읽었던 글엔 빠짐없이 나오던데, 도대체 무슨 맛일까? 나름대로 기대가 컸는데... 맛은... 엄청 독하다... (어떤 분은 라오스에 있는 동안 이것 한잔을 못 얻어먹었다며 볼멘소리 하시던데... 하하!! 술을 좋아하시는 분인 듯...) 한 잔에 200원하던데, 웬만하면 먹어보려 해도 술 못하는 나는 감당이 안 된다. 암튼 두 명이서 맥주 한 잔 곁들이며 배불리 식사하고, 나중엔 커피와 과일까지 디저트로 먹어도 오천원 나온다.

- 스님들 -

간밤에도 몇 번이나 잠에서 깨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6시30분..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담배나 한 대 피워볼까 해서 밖에 나갔는데, 이른 아침부터 소리내고 잠옷 바람으로 돌아다니니 너무 민망하고, 특히 상대방이 불편해 하는 것 같아서 그냥 들어왔다.

아침식사하러 다시 어제 저녁 먹은 카페로 갔다. 난 분명 생선죽을 시켰는데, 나온 건 돼지고기 죽. 팍치를 알맞게 넣어 돼지고기 냄새를 없앴는데 정말 맛있다. 국물까지 깨끗이 비웠더니 속도 든든하고 추위도 사라져서 기분이 좋다. (지금 여기 엄청 춥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번에도 숟가락조차 들지 않는다. 라오에 왔으면 라오 사람이 되어야지... 쯧쯧.. 나야 뭐 식사 때마다 2인분씩 먹어서 좋긴 하다만...

아침식사 후, 자전거를 한 대씩 빌려 시내관광에 나섰다. (자전거는 그냥 말만하면 빌려주더군요. 아무 것도 안 묻고... 하긴 뭐 자전거 훔쳐 타고 중국 지나서 집에 올 일 있나요?)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루앙프라방 박물관. 라오스 최초의 왕국이었던 '란쌍'의 왕궁이었던 곳을 개조한 것. 넓은 정원과 연꽃이 예쁘게 피어있는 연못, 멋들어지게 지어진 건물의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흡사 태국 왕궁을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모습... 다만 세월의 흐름과 그 동안의 무관심도 함께 느껴진다. (돈이 없는지 보수공사를 못했더군요)

박물관을 나와서는 바로 맞은편의 푸시사원에 갔다. 계단을 따라 꼭대기에 오르면 멀리 메콩강, 칸강과 함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것 말고, 사원 자체는 별로 볼 게 없다. 오히려 재미있는 것은 그 곳에서 만난 스님들. 스님이라고는 해도 우리나라에서처럼 근엄하고 수행하는 분으로서의 품격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좋게 말하면 친근하고 솔직히 말하면 거지사촌이나 날날이패로 보인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청하니 흔쾌히 승낙하는데, 사진을 찍고 나더니 내게 이것저것을 묻는다. 뭐.. 언제 어디서 왔느냐, 여기선 얼마나 머무를거냐, 어디어디를 다녀봤느냐 등등... 내가 정말 영어만 잘 했으면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을텐데...

- 학생들 -

푸시사원에서 내려와서는 몽족시장에 갔다. (몽족=고산족) 주로 수공예품을 파는데, 여름에 이불로 쓰면 좋을 넓은 천과 베갯잇은 30불이 넘는다. 아내는 그 값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엄청 싼 거라며 사자고 하는데, 난 좀 별로다. (여름에 이불이 없어서 못 자는 것도 아닌데...) 자전거는 그냥 몽족시장 입구에 세워두고 딸라시장으로 가는데, 웬 애들이 엄청 많다. 저기 들어가 보자!!

들어가면서 애한테 물으니 자기네 학교라고 하며, 저 분이 선생님이라고 일러준다. 내가 "싸바이디"하며 인사를 건네니 선생님도 "싸바이디"하며 받아준다. 학교는 허름하지만 꽤 넓은 규모이고, 교실-음악실-무용실-독서실 등의 표시판까지 붙어 있는 등, 나름대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그 중 무슨 악기인가가 연주되고 있는 음악실 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 보니, 아이들 셋이서 뭔가를 연주하는데 장단이 척척 잘도 맞는다.
갑자기 신이 난 아내는 북처럼 생긴 악기를 두드려 보며 엄청 좋아하고, 채까지 얻어서 실로폰처럼 생긴 악기(이름을 물어보니 [스끼야끼]라고 함)를 두드린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아내의 연주를 듣더니 아이가 다시 채를 잡는다. 그리고는 마치 연주는 이렇게 하는 것이란 투로 뭔가를 열심히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방인의 출현에 주위엔 애들이 점점 많아지고, 연주가 끝났을 때, 우리 둘은 힘껏 박수를 쳤다.

음악실에서 나와 학교 구경을 좀 더 하고 나니 사진이 찍고 싶다. 아이한테 촬영을 부탁하고 우리 둘이 포즈를 잡으니 주변엔 아이들이 자꾸 모여든다. 어쭈! 요 녀석들 봐라... "야! 사진 같이 찍자!!" 내가 소리를 치고 손짓까지 해대니, 주위의 애들이 얼씨구나! 하고 모여든다. 하하!! 아이가 두방, 내가 한방. 찰칵!!

- 흥정하기 -

학교에서 나와서는 딸라시장으로 갔다. 아까 몽족시장이 천막으로 대강 하늘을 가린 곳인데 비해, 이곳은 제법 건물이 들어서 있다. 티셔츠를 비롯한 의류에서 각종 생활용품에 과일까지 없는 게 없는데,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가전제품. 테레비, VTR 등도 다 있다.

나오는 길에 과일을 좀 샀다. 가게 아줌마는 화장을 짙게 한, 좀 야한 스타일인데 어찌 말을 잘 하는지... 우리가 리치 조금, 망고스틴 2개, 그리고 이름모를 과일(가르쳐 줬는데 까먹음. 무슨 뿌리 같은데, 무 같기도 하고, 감자? 고구마? 하여간 맛은 없음)을 조금 샀더니 2만낍을 부른다.
우리가 아무리 외국인이어도 그렇지, 누굴 졸로 보나?
"씹판낍!!"
내가 절반으로 후려치니 이 아줌마는 끄덕도 안 하고, 계속 "싸우판"을 외쳐 대네?
게다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계속 웃어대며 이야기를 한다.
그럼... "씹하판!!" (만오천)
이 아줌마는 또 뭐라뭐라 얘기하더니 덤이라고 사과 하나를 넣어 준다.
그럼... "씹쨋판!!" (만칠천)
그랬더니 이 아줌마는 계속 웃어대며, 너 망고 두 개가 얼만줄 알어? 뭐 이런 얘기를 하며 안 된다고 한다.
내가 궁리 끝에 얼른 여행자가이드를 보며 말했다.
"커.. 롯.. 다이... 버어..." (깎아주세요)
내가 이러니까 이 아줌마는 아주 웃겨서 뒤집어진다. 그러더니 "커 롯 다이 버어"라고 발음까지 교정해 주고는 다시 깔깔깔... 다시 한참을 웃더니 "씹까오판"이라고 한다. 결국 오랜 실랑이 끝에 100원을 깎은 거다. 참 재미있다... 이 협상은 사실 처음부터 내가 불리했다. 과일을 모두 봉지에 넣은 상태에서 값을 흥정했기 때문. 하하하!!!

사족:
1) 라오스에선 밤에 할 일이 없더군요. 이곳은 저녁7시만 되어도 서울의 밤12시와 비슷하고, 9시 넘어서 나와보면? 거의 야간 등화관제훈련하는 수준... (근데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등화관제훈련을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실까요? 이건 밤에 하는 민방위 훈련인데, 공습사이렌이 울리면 집안의 불을 모두 재빨리 끄는 것이 생명이죠... 헤헤... 해 보면 나름대로 재미있습니다)
2) 여기 사람들은 밤에 뭐하나 몰라요... 다 자나? 그래서 집집마다 애들이 많은 건가요?
3) 내내 궁금했는데, 밤에도 술 먹고 춤추는 데는 없나요? 사람 사는 곳에 그런 곳이 없을리는 없는데...
4) 밤 문화가 없으니까 틈틈이 하루를 정리하고 여행기 쓰기는 엄청 좋더군요.
5) 조언인데요... 라오스 가시면, 학교는 꼭 한번 가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6) 거듭 말하지만,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서 그들에게도 사진을 나눠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7) 박물관 입구에서 파는 대나무통에 든 찰밥과 말린 민물김(카이팬) 엄청 맛있습니다. 여기 음식에 적응 못하는 사람한테는 '베리 굳'이죠. 특히 이 김은 나중에 식당에 가서도 그냥 밥 시켜서 싸 먹으면 좋습니다.
8) 동봉한 사진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찍은 겁니다.
2 Comments
레아공주 2003.01.27 09:11  
  르왕프라방에서의 밤문화는 참으로 즐겁습니다. 나이트클럽도 있습니다. - 정보 부족인듯 싶습니다. - 그리고 르왕프라방은 1975년까지 왕궁에 실제 왕이 살았던 정말 고전적인 르왕프라방의 수도입니다. 그래서 르왕프라방의 음식문화는 정말 순준을 뛰어넘을 만큼 훌륭한 곳입니다. 그 맛있는 음식들을 까우냐우와 말린김비슷한것만  드셨다니... 매우 안탑깝습니다. 아시다시피 문화유산지정으로 되어있는 아름다운 수도이므로 르왕프라방의 숙소는 거의 full인 상태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준용님게서 만난 분들은 스님이 아니고 노위스트입니다.아시다시피  현재 라오스의 상황은 사회주의 국가입니다.오픈되지 않았던 라오스가 이제오픈되어가는 과정에 있고 지역적 특성상 가난한 나라인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여 르왕프라방박물관이 돈이 없어 증축내지는 개조를 못하엿다고 느꼈을지언정....저같은 경우는 아름다운 킹'room , 프린세스들의 공간... 참으로 검소한 생활이였구나..라는 생각들... 아름다운 국가간의 선물들을 보면서 이국에서 보는 각국의 문화들을 살펴 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준용님과의 시선이 저와는 참많이 틀린가 봅니다. 라오스는 조용하지만 아름다운 정과 자연이 있는 나라입니다.... 이상 저의 멘트가 거슬렸다면 리플 달아주십시요 삭제하겠습니다.
이준용 2003.01.27 11:10  
  레아공주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님의 글을 보니 제가 너무 정보가 부족한 상태로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다고 한건데... 아쉽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르쳐 주시니 고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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