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바이디 라오스(3)
- 농카이 -
아침 6시45분.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간밤엔 에어컨 찬바람 때문에, 그리고 진동 때문에 몇 번 눈을 떴었으나 만족스러운 밤이었다.
기차는 밤새워 달려왔겠건만 아직도 쉼없이 달리고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 전형적인 시골풍경... 민가라고는 찾아보기도 힘들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고, 간간이 빗발도 흩날린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쯤일까... 괜실히 마음마저 외로운 여행자가 되어 본다...
방밖을 나서서 복도를 따라 걸어가니 화장실 앞이 흡연구역이다. 담배를 피워 물고 밖을 내다보니 선로는 단선. 어허.. 이거 복선화 안 하나? (우리나라엔 이런 거 잘하는 건설업체 많은데...)
한참을 달리던 기차는 어딘가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더러 눈에 띈다.
"여기가 어딘가요?"
곁에 있던 승무원에게 물었다.
"우돈타니입니다."
그럼 농카이까지는 이제 한시간도 남지 않았겠구나...
다시 안으로 들어오니 아내도 부시시 눈을 뜬다. 그러더니 어제 카오산에서 한 레게머리가 너무 아프고 불편하다며 난리다. 허허... 그럼 모두 풀어버리는 수밖에... 무슨 변덕이 이리도 죽 끓듯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나 역시도 졸린 눈을 비비며 아내와 함께 머리를 풀기 시작한다. (하긴 내가 그 머리 할 때부터 알아봤다. 머리를 그렇게 하면 어떻게 감나? 쯧쯧...)
세면을 하고, 그때마다 홍수가 되는 바닥까지 깨끗이 닦은 후 벌여놓은 짐을 정리하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승무원이다.
"잠시 후 10분 후에는 농카이에 도착합니다."
참 친절하다...
(이 아저씨는 기차가 농카이에 도착했을 때도 다시 객실마다 찾아다니며 승객들에게 알려주었다)
- 노점 -
예정시간보다 한시간 이상 늦게 도착. 내리자마자 먼저 돌아갈 차표부터 끊는다. 그리고 역사를 빠져 나왔다.
농카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넓은 도로가 주는 황량함 뿐, 참으로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도로 건너에 줄지어 늘어선 노점들이 오히려 지금은 위로가 된다. 이곳은 라오스로 가는 길목이라는 것 말고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냥 흘려듣기로는 여기도 사원과 볼거리들이 꽤 많고, 예전엔 [아리랑게스트하우스]라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계속 따라붙으며 말을 거는 이는 역시 뚝뚝기사이다.
"라오스 가세요?"
아이구, 이 아저씨는... 지금 우리가 배고파 죽겠는데, 뚝뚝타게 생겼나? 쯧쯧...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노점들 중 하나에 들어서서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방콕에서 떠나올 때만 해도 후덥지근했는데, 이곳은 선선하다 못해 좀 춥다. 나는 카우팟을 시키고, 아내는 샌드위치를 시킨 후 맛나게 담배 한 대를 물어 본다.
어제 들렀던 카오산은 벌써 두 번째라고 익숙해져 버린 곳이었는데,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다시 시작이다...
이런 상념에 젖어드는데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카우팟...
작년에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아란야프라텟에 들렀을 때 처음 먹어 본 음식인데, 그 때는 팍치향이 너무 싫어서 먹기는 하였으되, 먹는 게 아니라 입안에 집어넣었던 음식이다. 그런데 오늘은 냄새도 향긋하고 무엇보다 참 맛있다. 1년 사이에도 식성이 이렇게 변하나?
그러나 내가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는 사이에 내 앞에서는 문제가 생겼다. 샌드위치라고는 해도 빵 안에 넣을 재료에 지레 겁먹고 그냥 맨빵을 시켰던 아내가 음식을 보더니 못 먹겠다고 나온 것이다. 안에 야채를 좀 넣어 달라고 하면서...
나 원 참!!
내가 하도 어이가 없고 난처해져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주인 아줌마는 조용히 빵을 거두어 간다. 그러더니 새 빵을 꺼내서 야채샌드위치를 만드는 게 아닌가!! 이것 참... 고맙고 미안해서...
- 뚝뚝 아저씨 -
아침식사를 마치고 국경으로 가기 위해 아까 그 뚝뚝 아저씨를 찾아본다. 다른 기사들도 있긴 하지만 그 아저씨는 기차에서 내릴 때부터 우릴 따라왔었고, 또 아침 먹고 나면 꼭 자기한테 오라고 부탁까지 했었다.
근데 주위를 둘러봐도 안 보이네? 그새 손님을 태우고 나가셨나? 천상 다른 뚝뚝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처음엔 40B을 부르는데 흥정을 해서 30B으로 합의를 본 후 출발!!
국경으로 가는 도중에 잠깐 멈춰서더니 비자 있느냐고 묻는다. 바로 옆 건물의 간판을 보니 VISA SERVICE이다. 없다고 하면 우릴 여기로 안내해서 약간의 커미션을 받을 모양. 난 없으면서도 그냥 "있다"고 대답했다. 근데 여태까지 영어라곤 한 마디도 안 하던 아내가 갑자기 "우리는 비자 없다"고 소리치고, 나한테까지 "우리 비자 없잖아?"라고 되묻는 바람에 정말 깜짝 놀랐다. (산통 깨질가봐) 내가 재차 "있다"고 강력하게 우겨서 겨우 출발... (이럴 땐 정말 마누라가 아니라 웬수다!!)
드디어(?) 국경 도착. 난 100B짜리를 내며 차비를 지불하려는데... 이런... 아저씨가 잔돈이 없네? 근데 가만 보니 잔돈만이 아니라, 돈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지금 시각은 아침 10시경 인데, 그럼 이때까지 마수걸이도 못한 건가?
아저씨 사정도 딱하긴 한데, 난감하긴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30B짜리를 100B으로 주나? 방금 도착한 옆 뚝뚝이 있길래 그리로 가봤는데 거기도 잔돈은 없다.
그러나 이 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방금 옆 뚝뚝에서 내린 손님들. 두 부부와 애들까지 모두 네 명인데, 이들 모두가 합심해서 잔돈을 모으더니 내게 20B짜리 지페 5장을 건네준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리하여 아저씨에게 차비로 40B을 드릴 수 있었다.
"10B은 더 주시는 겁니까?"하고 묻는데, 얼굴을 보니 참으로 주름살이 많다... 내가 웃으며 "예"라고 하자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는데, 뒷모습이 너무나도 정겹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도 "컵쿤"이란 말이 흘러나온다...
- 국경 -
국경에 와 보니 라오스로 들어갈 배낭여행자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대부분은 서양인들... 현지인말고 눈에 띄는 아시아계는 우리 바로 앞에 선 일본 아가씨 뿐. 가만 보니 동행인이 없는데, 매 순간마다 줄곧 뭔가를 열심히 수첩에 적는다. (BEST 여행자세!!) 여권 뒤적일 때 어깨 너머로 슬쩍 보니 도장이 엄청 많이 찍혀 있는데, 그 중엔 [대한민국]도 있다. 그래서 내가 반가운 마음에 말을 붙여 봤다.
"한국엔 언제 와 보셨어요?"
"아... 저 일본에서 왔는데요?" (내 영어가 잘못됐던지 걔가 잘못 알아들었던지 하여간)
"아... 그러십니까..."
그리고 나서 얘길 하는데, 한국에도 가봤다고 한다. 그것도 여러 번... 그러면서 나보고 일본에 온 적 있느냐고 하는데, 내가 없다고 하니까 걔는 나보고 한번 와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근데, 일본은 물가가 너무 비싸서요..."
여행자 가이드에 나온 절차를 따라가며 무사히 라오스에 입국. 우리 부부는 서양인들 따라 다니기 바빴는데, 재미있는 건 그들 중 누구도 우리처럼 가방을 끌고 다니지는 않는다는 것. 그들은 정말 배낭을 '메고' 다닌다. 쩝쩝... 특히 집채만한 가방을 메고 다니는 여자들 보면 존경심이 우러난다. 화장기 없는 얼굴, 검게 그을린 피부, 날씬하지만 강인해 보이는 다리... 그들에 비하면 우리 부부는... 모두... 허풍선이...
- 비엔티엔 -
원래 국경을 통과하면 14번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비엔티엔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몸도 피곤하고 또 가방도 무거워서 그냥 뚝뚝을 탔다. 그리고 아침시장으로 갈 것도 없이 그냥 "왓 미싸이!" 해 버렸다.
뚝뚝을 타고 부르릉-하며 달리니 절로 신이 난다. 이제부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꿈에 그리던 라오스이다! 조금 달리더니 잠깐 멈춰 섰고 할머니 한 분이 타신다. (여긴 정류장의 개념이 없으니까 아무데서나 타고 싶으면 타고, 내리고 싶으면 내린다. 하하!! 좋겠다...)
그나저나 첫 번째로 만나는 라오스 분인데, 뭘로 대접하나? 잠깐 생각한 끝에 담배를 권해 보는데,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 "컵짜이" 하신다. 여기 사람들은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하던데... 아닌가?
한 30여분을 달리니 사람이 많아지는 걸로 보아 시내에 도착한 듯 하다. 상상 속에서 생각했던 비엔티엔은 조용하고 인적도 드물고 그랬는데, 실제로 보니 그렇지도 않다. 특히 아침시장 앞 4거리는 사람, 자동차, 뚝뚝, 오토바이로 와글와글하다. 그렇겠지...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인데...
암튼 아침시장을 지나면서부터는 두 눈을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내릴 곳을 제대로 찾아야 하기 때문. 근데 난생 처음 와 보는 곳에서 지도도 없이 여행한다는 건 참 그렇다. (방비엔과 루앙프라방 지도는 트래블게릴라 홈피에서 얻었는데, 여기는 거기에도 없었다) 그렇게 긴장 속에 주의를 살피기를 몇 분... 드디어 눈이 번쩍 뜨이는 간판을 발견한다. 바로 R.D. 게스트하우스!!
사족:
1) 엊그제 테레비 보니까 연예인들이 그러는데, 레게머리하면 머리를 못 감는다네요? 그럼 서태지도? 에 헤이... 지저분하게...
2) 만일 한국식당에서 이렇게 행동했다면 어떻게 될까? 기껏 처먹는다고 해서 정성스레 구워 먹기 좋게 잘라 왔는데, 못 먹겠다고 나자빠지면... 그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주인이 있기나 할까?
3) 카우팟 시킬 때 재미로 하나 먹은 게 있는데 바나나 잎에 싼 고기. 가격은 5B. 비닐껍질을 벗기면 바나나 잎이 나오고, 그 잎을 여러 차례 벗겨내면 맨 속에 고기가 들어있던데... 이게 이름이 뭐죠? 맛은... 엄청 짜다. (그거 하나면 밥 한그릇 먹을 수 있음)
4) 비자를 대행할 경우 수수료는 두 당 150B 같더라구요. 그럼 둘이면 300B!! 아까 먹은 카우팟이 25B...
5) 현지에서 주워들은 얘기에 따르면, 태국사회는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랍니다.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거죠. 부자들은 뭘 해서 돈을 버느냐고 했더니 주로 부동산이래요. (이건 여기랑 똑같군요) 일반인들이 외국인들에 대해 다 잘 살거란 환상을 갖고 어떻게든 접근하려는데 비해, 이들 부자들은 외국인들도 무시해 버린다고 하네요.
6) 궁금해서 지금 찾아보니 R.D=Red Dream 이네요.
아침 6시45분.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간밤엔 에어컨 찬바람 때문에, 그리고 진동 때문에 몇 번 눈을 떴었으나 만족스러운 밤이었다.
기차는 밤새워 달려왔겠건만 아직도 쉼없이 달리고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 전형적인 시골풍경... 민가라고는 찾아보기도 힘들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고, 간간이 빗발도 흩날린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쯤일까... 괜실히 마음마저 외로운 여행자가 되어 본다...
방밖을 나서서 복도를 따라 걸어가니 화장실 앞이 흡연구역이다. 담배를 피워 물고 밖을 내다보니 선로는 단선. 어허.. 이거 복선화 안 하나? (우리나라엔 이런 거 잘하는 건설업체 많은데...)
한참을 달리던 기차는 어딘가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더러 눈에 띈다.
"여기가 어딘가요?"
곁에 있던 승무원에게 물었다.
"우돈타니입니다."
그럼 농카이까지는 이제 한시간도 남지 않았겠구나...
다시 안으로 들어오니 아내도 부시시 눈을 뜬다. 그러더니 어제 카오산에서 한 레게머리가 너무 아프고 불편하다며 난리다. 허허... 그럼 모두 풀어버리는 수밖에... 무슨 변덕이 이리도 죽 끓듯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나 역시도 졸린 눈을 비비며 아내와 함께 머리를 풀기 시작한다. (하긴 내가 그 머리 할 때부터 알아봤다. 머리를 그렇게 하면 어떻게 감나? 쯧쯧...)
세면을 하고, 그때마다 홍수가 되는 바닥까지 깨끗이 닦은 후 벌여놓은 짐을 정리하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승무원이다.
"잠시 후 10분 후에는 농카이에 도착합니다."
참 친절하다...
(이 아저씨는 기차가 농카이에 도착했을 때도 다시 객실마다 찾아다니며 승객들에게 알려주었다)
- 노점 -
예정시간보다 한시간 이상 늦게 도착. 내리자마자 먼저 돌아갈 차표부터 끊는다. 그리고 역사를 빠져 나왔다.
농카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넓은 도로가 주는 황량함 뿐, 참으로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도로 건너에 줄지어 늘어선 노점들이 오히려 지금은 위로가 된다. 이곳은 라오스로 가는 길목이라는 것 말고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냥 흘려듣기로는 여기도 사원과 볼거리들이 꽤 많고, 예전엔 [아리랑게스트하우스]라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계속 따라붙으며 말을 거는 이는 역시 뚝뚝기사이다.
"라오스 가세요?"
아이구, 이 아저씨는... 지금 우리가 배고파 죽겠는데, 뚝뚝타게 생겼나? 쯧쯧...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노점들 중 하나에 들어서서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방콕에서 떠나올 때만 해도 후덥지근했는데, 이곳은 선선하다 못해 좀 춥다. 나는 카우팟을 시키고, 아내는 샌드위치를 시킨 후 맛나게 담배 한 대를 물어 본다.
어제 들렀던 카오산은 벌써 두 번째라고 익숙해져 버린 곳이었는데,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다시 시작이다...
이런 상념에 젖어드는데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카우팟...
작년에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아란야프라텟에 들렀을 때 처음 먹어 본 음식인데, 그 때는 팍치향이 너무 싫어서 먹기는 하였으되, 먹는 게 아니라 입안에 집어넣었던 음식이다. 그런데 오늘은 냄새도 향긋하고 무엇보다 참 맛있다. 1년 사이에도 식성이 이렇게 변하나?
그러나 내가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는 사이에 내 앞에서는 문제가 생겼다. 샌드위치라고는 해도 빵 안에 넣을 재료에 지레 겁먹고 그냥 맨빵을 시켰던 아내가 음식을 보더니 못 먹겠다고 나온 것이다. 안에 야채를 좀 넣어 달라고 하면서...
나 원 참!!
내가 하도 어이가 없고 난처해져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주인 아줌마는 조용히 빵을 거두어 간다. 그러더니 새 빵을 꺼내서 야채샌드위치를 만드는 게 아닌가!! 이것 참... 고맙고 미안해서...
- 뚝뚝 아저씨 -
아침식사를 마치고 국경으로 가기 위해 아까 그 뚝뚝 아저씨를 찾아본다. 다른 기사들도 있긴 하지만 그 아저씨는 기차에서 내릴 때부터 우릴 따라왔었고, 또 아침 먹고 나면 꼭 자기한테 오라고 부탁까지 했었다.
근데 주위를 둘러봐도 안 보이네? 그새 손님을 태우고 나가셨나? 천상 다른 뚝뚝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처음엔 40B을 부르는데 흥정을 해서 30B으로 합의를 본 후 출발!!
국경으로 가는 도중에 잠깐 멈춰서더니 비자 있느냐고 묻는다. 바로 옆 건물의 간판을 보니 VISA SERVICE이다. 없다고 하면 우릴 여기로 안내해서 약간의 커미션을 받을 모양. 난 없으면서도 그냥 "있다"고 대답했다. 근데 여태까지 영어라곤 한 마디도 안 하던 아내가 갑자기 "우리는 비자 없다"고 소리치고, 나한테까지 "우리 비자 없잖아?"라고 되묻는 바람에 정말 깜짝 놀랐다. (산통 깨질가봐) 내가 재차 "있다"고 강력하게 우겨서 겨우 출발... (이럴 땐 정말 마누라가 아니라 웬수다!!)
드디어(?) 국경 도착. 난 100B짜리를 내며 차비를 지불하려는데... 이런... 아저씨가 잔돈이 없네? 근데 가만 보니 잔돈만이 아니라, 돈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지금 시각은 아침 10시경 인데, 그럼 이때까지 마수걸이도 못한 건가?
아저씨 사정도 딱하긴 한데, 난감하긴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30B짜리를 100B으로 주나? 방금 도착한 옆 뚝뚝이 있길래 그리로 가봤는데 거기도 잔돈은 없다.
그러나 이 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방금 옆 뚝뚝에서 내린 손님들. 두 부부와 애들까지 모두 네 명인데, 이들 모두가 합심해서 잔돈을 모으더니 내게 20B짜리 지페 5장을 건네준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리하여 아저씨에게 차비로 40B을 드릴 수 있었다.
"10B은 더 주시는 겁니까?"하고 묻는데, 얼굴을 보니 참으로 주름살이 많다... 내가 웃으며 "예"라고 하자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는데, 뒷모습이 너무나도 정겹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도 "컵쿤"이란 말이 흘러나온다...
- 국경 -
국경에 와 보니 라오스로 들어갈 배낭여행자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대부분은 서양인들... 현지인말고 눈에 띄는 아시아계는 우리 바로 앞에 선 일본 아가씨 뿐. 가만 보니 동행인이 없는데, 매 순간마다 줄곧 뭔가를 열심히 수첩에 적는다. (BEST 여행자세!!) 여권 뒤적일 때 어깨 너머로 슬쩍 보니 도장이 엄청 많이 찍혀 있는데, 그 중엔 [대한민국]도 있다. 그래서 내가 반가운 마음에 말을 붙여 봤다.
"한국엔 언제 와 보셨어요?"
"아... 저 일본에서 왔는데요?" (내 영어가 잘못됐던지 걔가 잘못 알아들었던지 하여간)
"아... 그러십니까..."
그리고 나서 얘길 하는데, 한국에도 가봤다고 한다. 그것도 여러 번... 그러면서 나보고 일본에 온 적 있느냐고 하는데, 내가 없다고 하니까 걔는 나보고 한번 와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근데, 일본은 물가가 너무 비싸서요..."
여행자 가이드에 나온 절차를 따라가며 무사히 라오스에 입국. 우리 부부는 서양인들 따라 다니기 바빴는데, 재미있는 건 그들 중 누구도 우리처럼 가방을 끌고 다니지는 않는다는 것. 그들은 정말 배낭을 '메고' 다닌다. 쩝쩝... 특히 집채만한 가방을 메고 다니는 여자들 보면 존경심이 우러난다. 화장기 없는 얼굴, 검게 그을린 피부, 날씬하지만 강인해 보이는 다리... 그들에 비하면 우리 부부는... 모두... 허풍선이...
- 비엔티엔 -
원래 국경을 통과하면 14번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비엔티엔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몸도 피곤하고 또 가방도 무거워서 그냥 뚝뚝을 탔다. 그리고 아침시장으로 갈 것도 없이 그냥 "왓 미싸이!" 해 버렸다.
뚝뚝을 타고 부르릉-하며 달리니 절로 신이 난다. 이제부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꿈에 그리던 라오스이다! 조금 달리더니 잠깐 멈춰 섰고 할머니 한 분이 타신다. (여긴 정류장의 개념이 없으니까 아무데서나 타고 싶으면 타고, 내리고 싶으면 내린다. 하하!! 좋겠다...)
그나저나 첫 번째로 만나는 라오스 분인데, 뭘로 대접하나? 잠깐 생각한 끝에 담배를 권해 보는데,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 "컵짜이" 하신다. 여기 사람들은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하던데... 아닌가?
한 30여분을 달리니 사람이 많아지는 걸로 보아 시내에 도착한 듯 하다. 상상 속에서 생각했던 비엔티엔은 조용하고 인적도 드물고 그랬는데, 실제로 보니 그렇지도 않다. 특히 아침시장 앞 4거리는 사람, 자동차, 뚝뚝, 오토바이로 와글와글하다. 그렇겠지...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인데...
암튼 아침시장을 지나면서부터는 두 눈을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내릴 곳을 제대로 찾아야 하기 때문. 근데 난생 처음 와 보는 곳에서 지도도 없이 여행한다는 건 참 그렇다. (방비엔과 루앙프라방 지도는 트래블게릴라 홈피에서 얻었는데, 여기는 거기에도 없었다) 그렇게 긴장 속에 주의를 살피기를 몇 분... 드디어 눈이 번쩍 뜨이는 간판을 발견한다. 바로 R.D. 게스트하우스!!
사족:
1) 엊그제 테레비 보니까 연예인들이 그러는데, 레게머리하면 머리를 못 감는다네요? 그럼 서태지도? 에 헤이... 지저분하게...
2) 만일 한국식당에서 이렇게 행동했다면 어떻게 될까? 기껏 처먹는다고 해서 정성스레 구워 먹기 좋게 잘라 왔는데, 못 먹겠다고 나자빠지면... 그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주인이 있기나 할까?
3) 카우팟 시킬 때 재미로 하나 먹은 게 있는데 바나나 잎에 싼 고기. 가격은 5B. 비닐껍질을 벗기면 바나나 잎이 나오고, 그 잎을 여러 차례 벗겨내면 맨 속에 고기가 들어있던데... 이게 이름이 뭐죠? 맛은... 엄청 짜다. (그거 하나면 밥 한그릇 먹을 수 있음)
4) 비자를 대행할 경우 수수료는 두 당 150B 같더라구요. 그럼 둘이면 300B!! 아까 먹은 카우팟이 25B...
5) 현지에서 주워들은 얘기에 따르면, 태국사회는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랍니다.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거죠. 부자들은 뭘 해서 돈을 버느냐고 했더니 주로 부동산이래요. (이건 여기랑 똑같군요) 일반인들이 외국인들에 대해 다 잘 살거란 환상을 갖고 어떻게든 접근하려는데 비해, 이들 부자들은 외국인들도 무시해 버린다고 하네요.
6) 궁금해서 지금 찾아보니 R.D=Red Dream 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