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캄보디아 여행기-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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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캄보디아 여행기-1월 7일

시나브로 0 826
1월 7일. 새벽 5시 10분. 자명종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평소 게을러서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잠을 즐기던 내가 신기하게도 눈을 떤 것이다. 아마 외국에 간다는 긴장감 때문이었으리라. 옆을 보니 천사는 쿨쿨 잠에 곯아 떨어졌고, 아들은 온 침대를 휘젓고 다녀서인지 한 쪽 모서리에 걸쳐서 자고 있다. 살포시 일어나서 아들을 바로 눕히고, 세면을 하니 벌써 5시 30분 나갈 시간이다. 곤히 자고 있는 천사를 깨우기가 좀 미안했지만, 장장 15일이나 떨어져 있을 사람에게 작별인사라도 해야겠기에 나직이 깨웠다. 그제야 천사는 눈을 비비면서 나와 살포시 안겼다. 작별 키스도 함께.

아니 근데 이게 웬일인가. 문제발생. 지하주차장에 내려가니 누군가 중복 주차를 해서 차를 뺄 수가 없었다. 사이드는 내려가 있었고 기아도 중립이었지만, 바퀴를 돌려놓아서 차를 밀 수가 없었다. 용을 써서 밀어도 보았지만 내차가 빠져나갈 공간은 나오질 않았다. 속으로 이X저X 하면서 투덜댔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사실 난 고2때 이후로 겉으로 욕을 하지 않는다) 갑자기 조급해졌다. 해운대까지 가서 일행의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늦을 것 같았다. 결국 경비실에다 연락을 취하고 비행기 시간이 늦는다고 하소연을 하였고, 경비아저씨가 인터폰으로 차주를 깨웠다. 눈을 비비면서 내려오시는 분에게 같은 아파트라 화낼 형편도 못 되었고, 나 때문에 단잠을 자는 사람을 깨워 조금은 미안하기까지 했다.

드디어 출발. 신나게 차를 몰아봤지만 약속시간에 10분 지각. 미안해 하는 나를 웃으면서 반겨주셨는 것까지는 다행이지만 또 다시 문제 발생.다른 일행 분을 태우러 갔는데 그만 길을 잘못 들어 20분간을 헤매게 만들었다. 결국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해 합류했지만 그 분들은 얇은 옷 때문에 추위에 떨다 입술이 파래지기까지 하셨다.

사건은 거기서 끝나질 않았다. 운전하시는 분이 김해공항으로 진입하는 나들목을 착각해서 놓쳐버리고, 김해까지 가서 차를 돌렸다.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 늦었다. 하지만 보딩을 받을 시간은 충분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비상구 자리를 이미 누군가가 차지해 버린 것이었다.(비상구 자리는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자리라서 항상 선호하는 자리이다. 게다가 덤으로 예쁜 승무원의 얼굴도 마주볼 수 있으므로 장거리 여행시에는 비상구 자리를 권한다.

출국수속을 받고서 면세점에서 담배를 샀다. 그리고 약 5시간 동안 끽연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흡연실에서 끽연을 한 후에 탑승. 어느 듯 비행기는 김해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여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대충 20대 중후반의 아가씨들인 것 같았다. 갑자기 무슨 말이 하고 싶어 졌다. 조용히 "배낭여행 가세요." 라고 하니 묵묵부답이었다. 내가 이상하고 실 없는 사람 같아 답을 안 해 준 것일까. '흐미 열 받어.' 잠시 후 다시 '배낭여행 가세요.'하고 조금 전보다 더 크게 물으니, 배낭도 아니고 패키지도 아니란다. 알고 보니 로얄 오키드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배낭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신상 명세 알기부터 시작해서 여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항목에서 정말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 만약 내가 남자라고 그 분들에게 꼬리를 쳤다면 난 집에 와서 천사에게 맞아죽었을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 퇴근한 천사가 갑자기 비행기에 혹 여자 세 명과 같이 앉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갑자기 눈이 핑돌며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그 분들 중에 한 분이 천사가 자취할 때 주인집 딸이었다.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그 분은 이미 비행기 안에서 나임을 짐작하고 있었다나. 그래서 직장에서 우리집 천사를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세상은 참 넓고도 좁다. 결혼하신 남자분들 항상 조심하세요.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드디어 4시간 50분을 비행한 끝에 방콕 도착. 그런데 또 다시 문제 발생. 우리는 방콕에서 출국수속을 하지 않고 푸켓으로 가는 국내선으로 갈아 타야 했다. 그런데 갈치 같은 내 눈으로 사방을 째려봐도 어디로 가야 국내선 청사로 가는지 보이질 않는다. 하긴 전부 영어로만 되어 있으니 이 짧은 영어 실력으로 알 수가 있나. 게다가 domestic이란 표지 하나만 봤어도 국내선 탑승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을 이 무식한 본인은 그 단어도 그냥 흘러 보냈던 것이다. 다른 분들은 아예 뒷짐이니, 어쩔 수 없이 무대포 정신이 발동되었다. 청소하는 아줌마에게 콩글리쉬로 푸켓가는 비행기 어디서 타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니 하는 멍한 표정이다. 그러다 어디서 푸켓이란 단어를 알아 듣고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그 방향으로 줄곧 걸었다. 가다보니 드디어 domestic이란 표지판이 보였다. 근데 도대체 국내선 발권하는 곳이 보이질 않았다. 또 다시 현지인 붙들고 콩글리쉬로 솰라솰라. 결국 엄청 걷고서야 푸켓으로 가는 국내선 발권을 할 수 있었다.

태국에 가 보신 분들은 어느 정도 아시겠지만, 방콕 근처에는 산이 거의 없다. 하지만 푸켓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남부에는 산이 연이어서 보였다. 그렇다고 아름답다는 느낌은 썩 들지 않는다. 너무나 아름다운 우리의 산에 익숙해 져 있어서 그럴까. 차라리 태국에서는 산보다는 해변의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해변들 간간히 보이는 황홀한 애머랄드 빛 바다. 이런저런 상념 끝에 오후 3시 20분 비행기는 푸켓 공항에 도착했고, 간단한 출국수속 후에 공항을 빠져나왔다.

후끈후끈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난 사방으로 눈을 돌렸다. 마중 나온 사람들 틈에서 내 이름 석 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첫날의 일정을 무난하게 하기 위해서 출국 전에 선라이즈에다 공항 픽업을 비롯한 이동용 봉고를 4시간 대여했었다. 그 결과를 알기 위해 부산에서 방콕으로 국제전화도 걸어 확인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난리인가. 아무리 둘러봐도 내 이름은 보이질 않았다. 평소 내가 덕을 쌓질 못해서인지 오늘 출발부터 시작해서 여러 군데에서 꼬이기 시작하더니 푸켓에서까지 꼬인다. 그래도 혹 차가 밀려서 늦게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30분을 돌아다녔다. 푸켓공항의 국내선과 국제선 도착의 총길이는 약 70미터 밖에 안 된다. 그 거리를 30분을 휘젓고 다녔으니 몇 바퀴를 돌았는지 아마 대충은 짐작이 될 것이다. 선라이즈에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해서 봉고를 기다리든지 아니면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든지 이제 가부간의 결정을 내릴 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선라이즈의 작은 죠이님을 공항에서 접선하는 데 성공했다. 사연은 이러했다. 죠이님이 착각을 한 것이었다. 나는 예약을 할 때 비행기 도착이 15시 20분이라고 했는데 죠이님은 오후 5시 20분으로 착각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아쿠아 운영자이신 챨리님께서 픽업을 요청하셨고, 그 비행기가 늦게 도착하는 관계로 공항에서 죠이님과 나랑 조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죠이님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셨고, 우리가 공항로비에서 먹는 음식값도 계산하려 하셨다. 나는 짜증을 잘 내지 않는다. 어떤 일이 닥치면 반성은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표출하지 않고 속상해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내 기분만 이상하게 되고 결국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분들의 얼굴 표정을 보니 다행히 화난 기색은 보이질 않고 용인하시는 분위기였다. 결국 시간지연으로 인해 선라이즈를 들르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바로 프롬텝(해지는 언덕)으로 향했다.

프롬텝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태국의 또 다른 이미지가 강하게 와 닿았다. 예전에 중국여행을 할 때 자전거 행렬이 중국의 이미지를 심는데 강하게 작용했는데, 이곳 태국에서는 모토(오토바이) 행렬이 장관이었다.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거리는 모토들로 넘쳐나고 있었으면 우리 나라에서는 서로 빨리 가려고 차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듯이 했을 것인데, 몇몇을 제외하곤 질서를 아주 잘 지켰다.

다행히 프롬텝의 일몰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프롬텝에 도착하니 일몰의 장관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넓고도 잔잔한 바다에 서서히 떨어져 내리는 빠알간 해. 무언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이 물밀듯 밀려왔다. 나는 동해 바닷가에 사는 관계로 일출을 볼 기회가 간혹 있었다. 그런데 그 일출에서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장관이 호수 같은 바다에서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연신 다들 셔터를 눌러댔다. 그리고 아낌 없이 포옹하며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 모두들 일몰이 주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광경에 흠뻑 젖어 있었다.

왠지 갑자기 우리 천사가 생각이 났다. 이 순간 그저 가만히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면서, 이내 이번 여행에 같이 올 걸 하는 마음이 일었다. 하긴 우리 천사의 직장 관계상 일년에 두 번이나 외국으로 간다는 것은 무리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애초부터 같이 가려 하질 못했다.

마지막 한 줌의 해가 바다속으로 사라질 때엔 모두들 아쉬웠는지 한 숨을 내쉬었다. 이내 사람들은 어둠 속으로 잠겨드는 프롬텝을 뒤로 두고 서서히 발길을 돌렸다. 오늘 하루 꼬이고 꼬인 일정에 짜증도 있으련만 이 한 장면으로 인해 모든 것이 사그러드는 것 같았다.

어두운 밤을 달려 숙소인 빠통스트리트인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였다. 하루 일박에 900밧. 생각보다 방이 깔끔하고 예뼜다. 비록 욕실에 욕조가 없었지만 욕조에서 목욕할 일이 무엇 있겠는가. 무드 잡을 일도 없이 이번 여행 내내 홀로 독방을 지켜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아니던가. 창문을 열고 발코니에서 보는 거리 풍경은 한산했다.

다들 간단한 샤워 후에 방라로드로 향했다. 빠통스트리트인 앞에는 늘 납짱(모토)과 툭툭이 대기한다. 우리 일행이 나갈려고 하니 툭툭이 흥정을 걸어왔다. "타올라이 캅"하니 100밧을 달랜다. 웃기지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50밧으로 불렀다. 결국 그 쪽에서 80밧까지는 내려갔지만 난 그 툭툭을 타지 않았다. 협상결렬을 선포하고 다른 툭툭을 타고 80밧을 불러 80밧에 왔다. 아마 50밧이 정상 요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5명이란 대식구를 길거리에 서 있는 것이 무엇해서 80밧에 탔다. 물론 나 혼자 모토를 이용할 때에는 20밧을 주었다. 나는 내가 스스로 돈을 주는 경우는 몰라도 알면서 바가지 쓰는 경우는 약이 올라 못견딘다. 그래서 툭툭도 바꿔 탔던 것이다.

방라로드는 과연 말 그대로 화려했다. 거리는 여행객들로 넘쳐 나고 있었으며, 유명 관광지가 다 그렇듯 태국인보다는 외국 관광객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단 오늘 하루 내내 변변한 식사를 못한 처지라 다들 추천하는 노천 해산물 식당으로 향했다.

방라로드 근처의 노천해산물식당은 우리의 굶주린 배를 황홀경으로 몰아 넣었다. 가장 싱싱해 보이는 해산물 식당에서 왕새우, 게, 카우팟, 그리고 음료수와 포도주를 시켰다. 물론 죠이님의 말씀대로 10% 가량 디스카운트를 하니 모두 2,000밧이 나왔다. 비록 랍스터는 못 먹었지만 우리는 맛있는 해산물을 마음껏 구겨 넣을 수 있었다. 다른 분들은 여기에 맛을 들여 다음날 내가 없을 때 다시 가서 2,650밧 나온 것을 2,000밧에 먹는 놀라운 저력을 발휘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천천히 빠통 비치를 즐겼다. 길거리에서 행해지는 게이들의 춤도 보고 노점에서 망고와 파인애플을 사서 먹으며 천천히 방라로드를 거닐며 거리 구경을 했다. 방라로드에서 빠통스트리트인가지 걸으니 대략 15분 정도 걸렸다. 물론 완보였기에 정상적으로 걷는다면 약 10분 정도가 걸릴 것이다.

다들 숙소에 들어 가서 취침을 하려 할 때 난 혼자 젊음(내 나이가 40인데 젊은 것 맞남? 하긴 다른 분들은 50대이니 그 중에서는 가장 젊었다)을 발산하러 다시 방라로드로 향했다. 플레쉬 아고고에도 들어가 보고, 소이 크로커다일로 들어 가서 게이들도 흠뻣 봤다. 다만 남정네 혼자 다니니 왠 여정네들이 찝쩍거리든지. 아마도 내가 돈 많은 동양 사람처럼 느껴졌나보다. 처음에는 기분이 묘해졌지만 나중에는 귀찮아 피해 다닐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에 바나나에 갔다. 입장료 200밧을 내니 음료권 2장을 주었다. 이 음료권으로 맥주나 칵테일, 콜라 등을 먹을 수 있다. 바나나는 생각보다 실망이었다. 빠통에서 잘 나간다는 디스코텍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북적대고 있었지만, 한국의 나이트에 비하면 시설이나 조명 등이 별로였다. 그곳에서 약 30분 동안 열심히 다른 사람의 춤을 구경하다가는 천천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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