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과캄보디아-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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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과캄보디아-<2>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Hong G. 0 1345
첫날 둘째날 그리고 그 이후의 날들.
여행하는 날들에 관한 여행기를 쓰기 앞서,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관하여 먼저 끄적여본다.

*은경언니와 유정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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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킹 이틀째날 코끼리 타면서 찍었던 사진.

치앙마이로 가는 밤 기차안에서 정말 우연히 마주친
한국 언니들 2명~ 언니들은 80년생이었다.
한국인 대학생 비수기 3월에 정말 만나기 힘든 우연이었다.
곤이와 내가 앉은 바로 옆 좌석에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앉길래
먼저 한국인이세요? 라고 말을 건 후에 친해지게 되었다.
정말 더더욱 웃긴것은 언니들은 기차칸을 잘 못 타는 바람에 우리와 마주친 것이었다.
나중에 다른 칸임을 알고 이동해서 나머지 시간에는 서로 얘기 못한 채 치앙마이로 향했지만
치앙마이에 도착해서 우린 함께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순전히 우리가 함께하기 위한 인연을 만들기 위해
언니들은 기차칸을 착각해서 우리 옆자리로 처음에 오게 된 것이 아닐까.
신기하지 않은가. 후훗.
그렇게 해서 치앙마이 트래킹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트래킹후에 같이 밤기차를 타고 우린 다시 방콕으로 돌아왔다.
언니들은 푸켓과 피피섬으로 가는 일정이었고, 나는 곤이와 함께 캄보디아로 떠나야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지 3일째에 연락처만을 교환한채 다시 언니들과 헤어짐을 고했다.)

치앙마이 트래킹때 만났던 사람들.

*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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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킹 첫날 고산족 마을로 가기위해 열심히 산을 오르며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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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에게 덥썩 팔짱을 끼고!>.< 사진 찍은 뒤에 마이크가 내 팔을 안 놓아줬다는. 훗^*^

치앙마이에서 트래킹할때 우리의 보스였던 가이드 마이크.
산을 오르는 내내 피곤해하는 사람들에게 각종 벌레를 들이대거나
산열매를 따주면서 즐거움을 선사해주던 장난재잉 마이크.
마지막까지 절대 나이를 밝히지 않으면서 10대를 주장했던 마이크.
우리나라 민요인 '아리랑'의 가락을 너무나도 능숙하게 불러 주었던 마이크.
장난 치던 마이크의 모습이 우리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던 요리하는 모습의 마이크가 보고싶다.

*아누샤.(사진 제공: 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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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째날 헤어지기 직전에 서로가 서로를 필름을 담아내랴 바쁘고 아쉬웠던 시간.

태국을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던 매너 좋고 성격 좋았던 태국인 아누샤.
태국에는 랭귀지 스쿨이 없다며 태국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안타까워하며,
나와 나쯔꼬에게 당신들이 와서 일어와 한국어를 태국 사람들에게 전파해달라고 말하던 아누샤.
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의 한 마디 한마디에 녹아 있었다.

*나쓰꼬.

계곡에서 내가 먼저 말을 건네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일본인 나쯔꼬.
내 나이또래로 착각할만큼 젊어보니는 나이 30의 겁없는 여자 여행자.
인도를 혼자 여행하고 태국으로 왔다는 그녀는 한국에도
자그만치 2번이나 여행 한 경력이 있었다.
김치를 너무 좋아해서 우리가 단체사진 찍을때마다
치즈도 아니고 '김치~~' 를 매번 외치며 우리들에게 정겹게 웃어주던 그녀.
일본인들이 '김치' 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정말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다까.

일본의 시골 마을에서 대학 교수를 한다던 미술작가 다까.
무언가 예술가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의 외모는 다분히 사람들의 호감을 살만 했다.
역시 예상대로 그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였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앞에서 그와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완벽하지 않은 우리둘의 영어실력은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이해가 안되면 흙 바닥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서로의 견해와 그림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는 깔끔하고 단순한 디자인의 사진과 그림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가 사는 마을은 치앙마이 고산족이 사는 마을 만큼 밤하늘의 별이 보인다고 했다.
그는 도시가 싫다고 했다. 그래서 시골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동경도 서울도 싫다는 나의 말에 서로 공감대를 찾아가면서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 작가 얘기부터 이것저것 자연과 죽음에 관한
추상적인 얘기까지 즐겁고 경쾌하게 나누었다.
그가 한 질문 중에 '너는 어떻게 다른 동양인들과 일본인을 구분해느냐?'
라는 질문이 있었는대,
내가 해준 답에 무척 재밌고 흥미로운 표정을 짓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야후에 가면 그의 작품을 몇점 볼 수 있다고 했는대 한번 찾아봐야 겠다.

*히로시.(사진 제공: 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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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고 수줍게 나온 히로시. 이튿날 헤어지기 직전 버스 안에서.

방학을 이용해 여해을 왔다던 (일본 학기 개강은 4월부터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갔을때에는 한국인 비수기였고 일본인들은 어딜 가나 많이 볼 수 있었다.)
대학생 히로시. 트래킹 중 내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히로시.
곤이 말로는 교토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이라고 하더라.
얌전하게 보이는 이 친구는 윤손하를 알고 있었고
윤손하가 꽤 유명하다고 말하며 초난강을 아냐며 초난강 얘기도 했었다.

*네덜란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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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연구목적으로 여행 왔다던 금슬 좋아 보이던 네덜란드 부부 딕과 마르조레인.

여행중에 부부나 연인들이 다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는대.
편한 곳도 아니고 동남아쪽으로 여행오는 서양인 커플들이 참 많았었다.
근대 동양인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더라.
아무튼 네덜란드 부부는 관광보다는 무슨 연구차 왔다고 했는대.
나중에 산을 오를때 부인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딕이 짐도 덜어주고 역시 연인의 애정이 힘을 발휘하더라.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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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우리의 드라이버! 뗏목 타고 있는대 날 물속으로
무참히 쳐 넣은 장본인! 후훗>.< 내 다리의 상처를 보고 괴로워했던 착한 태국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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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킹 이튿날째 아침 서로 돌아가면서 자기 카메라로 한장씩 사진 찍느라
똑같은 포즈로 우리들은 십여분을 사진찍는것에 신나했다.
룰루- 이건 내가 찍은 사진이라 나만빼고 다 있음. 훗.

트래킹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마지막에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치 수학여행때 마지막날 롤링페이퍼 돌리듯 설레는 마음들을
펜촉에 담아 서로의 이메일과 주소를 적어 교환했다.
물론 그 교환한 종이는 나와 곤이가 인사동에서 사가지고 온
한국의 전통 모습이 담긴 사진 엽서였다.
한국인으로서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또한 뿌듯했던 트래킹이었다.

*라따나와 마브.(왼쪽-마브,오른쪽-라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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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유적 둘러보던 첫째날, 아직은 서먹한 웃음으로 찰칵.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중 빼놓을 수 없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3일동안 나의 드라이버였던 라따나와
곤이의 드라이버였던 마브.

동갑내기라(나중에 그들이 81이고 우리가 82라는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친구다. 훗)
처음에 넷이서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하루에 5불이 오토바이료도 4불로 깎고 셋째날엔 라따나네집에서
점심까지 얻어먹고 추가료 없이 호수까지 다 보고 오고
돈은 돈대로 아끼고 덤으로 친구들까지 사귀고 현지인 집에 가서 점심까지 먹었으니.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고 참 여행을 할 수 있어 즐거웠던 캄보디아.
같은 나이 또래라고!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만약 드라이버가 30대거나 40대 이상의 아저씨였다면 결코 이런 경험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장담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거의 30대 이상의 드라이버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경우는 참 특이 케이스였다고 생각 되어진다.
한마디로 우리들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인연이었다!
국적은 달라도 세대의 공감대는 통하는 법.
3일간의 앙코르와트 유적의 감동은 드라이버들과의 쿵짝쿵짝에 비해 다소 재미없었다.
유적을 보는 재미가 사람과 부대껴 노는 재미를 뛰어 넘을 수는 없지 않은가.

*라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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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는 라따나. 앙코르 유적 보던 셋째날,
제법 친해진 우리들은 유적 관광을 마치고 열대 과일을 맛보며 신나게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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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따나랑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기 시작한 첫째날.
라따나 얼굴이 까매서 안보인다*_* 아 이런.

18살때부터 드라이버를 업으로 삼고 있는 그는 벌써 4년차 드라이버.
앙코르 유적은 그 크기가 너무 거대하여 유적과 유적 사이를 오가기에 너무 멀다.
그렇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택시나 오코바이 기사를 사게 된다.
그럼 그들은 원하는 유적지에 우릴 내려주고 우리가 구경하는 동안 기다렸다가
또 다른 유적으로 이도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라따나의 직업은 바로 그런 오토바이 드라이버.
그의 꿈은 호텔 매니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캄보디아는 어쩔 수 없이 모든 산업이 관광산업으로 치중되어 있는 나라이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캄보디아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등 여행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싶어한다.
라따나는 그래서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땐 영어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영어를 나보다 훨씬 잘했던 그는 1년동안 영어공부를 했다고 했다.
난 초등학교때 부터 10년 넘게 영어를 배웠다고 차마 말 못했다.-_=
이제 일어와 한국어 공부도 할거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보기 보다 참 성실히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친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나의 가족 관계를 물었을때 형제가 없고 나 혼자라고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직까지 캄보디아는 피임이나 중절 수술을 아직까지
불법으로 여기기 때문에 많은 캄보디아인들은 출산에 대한 제한을 하지 못한다.
임신하면 대부분 낳는 편인 것 같았다. 때문에 라따나의 가족도 상당히 많았다.
내가 그의 가족 관계를 물었을 때 몇명의 동생들과 형과 누나그리고 또 등등..
이러면서 얘기를 계속 이어나갔으니 말이다. 엄마 아빠 합쳐서 10명 정도 된 듯 보였다.
라따나와는 그외에도 무수한 말들을 나누었지만 이곳에 다 옮기는 것은 무리이고,
우린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3일동안 즐겁게 잘 놀았다.

*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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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유적 둘째날 라따나와 마브 모두 같이 유적지
안에 있는 산에 올라가서 석양을 보았다. 산 위에서 곤양과 마브군 찰칵.

마브 또한 곤이와 듬뿍 정이 들어버려 마지막날 헤어지는 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던 드라이버 친구.

이들에 대한 얘기는 구구절절 길어질게 뻔하다.
그만큼 여행 하는 동안 가장 신나게 놀았던 시간.
현지인과 이토록 친하게 될 수 있는것인가
나 스스로 계속해서 놀라워했던 이색적인 경험이었기 때문에
아마 두고 두고 평생 가져갈 추억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혀 있다.

이들을 절대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차차 캄보디아 여행기때 아주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끄적여 보겠다.^*^

여행을 다니며 오가다 마주쳤던 한국 사람들.

*한인업소 사람들
만남의 광장 사람들과 홍익인간 아저씨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캄보디아 가기 전날 방콕은행에서 환전 할때 도움을 받았던 한국인.
(방학때마다 동남아 가이드를 알바로 했다던 이 사람은 여자둘이 여행 하는
우리에게 뭐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싶었던지 이래저래 말을 많이 해주었지만 썩 내키진 않았다.)

*혼자 여행왔다던 아저씨.
국수집에서 만난게 인연이었는지 그 뒤로도 종종 보았다.
(태국과 캄보디아엔 한국 사람들도 많고 한국인 업소도
있기 때문에 만났던 사람들을 여러번 마주쳐서 보게 된다)

*카오산 거리에서 만났던 한국 여스님들.
(태국이 불교 문화권이기때문에 스님들이 종종 이렇게 보러 오시는 것 같다)

*헐레벌떡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헤매다가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던 한 한국인.

*카오산 거리 피씨방에서 만난 정신 나간듯이 보였던 어떤 미친 여자.
나와 곤이보고 레즈비언이라고 하질 않나.
전쟁 어쩌구 하면서 우리에게 회계하라고 하지 않나.
아무리 봐도 무언가 단단히 잘못꼬인 사이비 종교인같이 보였음.

그리고 여행 하는 내내 볼 수 있었던 거리의 사람들.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우리가 지나갈때마다 일어를 하던 방콕 택시 기사들.

*그런가하면 한국말 한마디도 안했는대 생김새만으로 한국인임을
알아채고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건네던 무서운 뚝뚝 기사들.
뒷부분엔 2인 좌석이 있고 앞엔 오토바이로 이은 개량 택시.
도저히 택시라고 보기 힘들지만 그 사람들은 택시라고 써 붙이고 다님-_-.

*홍콩 사람이냐고 묻던 택시 기사와 말레이시아 사람들이냐고 묻던 택시 기사-_-
여행 초반엔 일본 사람으로 오인 받았었지만 여행 막바지엔
얼굴이 동남아 사람이 되버린채 각 동남아 출신으로 오인 받고 다녔다는-_-
급기야 나중에는 아예 우리한테 영어대신 자기나라 말을 건네던 몇몇 태국인들.=_=
우리를 자국민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특히 곤양의 덕이 컸다. 나보다 더 타버린 곤양=_=.

*캄보디아 국경 휴게소에서 적극적으로 말을 건네던 17살 서버 남학생.
(너무 말라서 쳐다보기 민망했던=_=)
자신의 이름도 써주고 영어 공부하는 공책도 가져와 우리에게 보여주는 적극성을 발휘했던 남자임.

*앙코르와트에서 부조들 중에 여자 가슴 부분만 만지고
돌아다녔던 한국인 관광객 국가 망신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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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한국 아저씨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나 만져댔으면 부조상의 가슴부분만 새까맣게 바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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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부분만 까맣게 되버린 부조상 사진. 정말 보기 민망할 정도이다.

=_= 단연 한국인 아저씨들이 일등 공신. 정말 걸어다니는 망신들이다.

*앙코르 유적지를 둘러보는대, 선한 눈빛으로 다가와 하나 하나 문양에 관한 의미와
압싸라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씩 여느 가이드 뺨치게 잘 설명해 준 캄보디아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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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마지막에 돈을 요구하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이긴 했었지만,
설명 잘 듣고 (영어에 능숙한 캄보디아인들 태국인들보다 훨씬 영어를 잘한다.)
많고 거대한 유적들에 살짝 지쳐가고 있을때 매우 고마웠었다.

*캄보디아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구걸하는 어린 아이들.
혹은 앙코르 유적지에서 각종 기념품이나 음료를 팔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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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안에서 놀고 있거나 혹은 구걸하는 아이들.

특히 화장실앞에서 일 볼때 1달러 또는 자기네들 맘대로 가격을 책정해 부르며 돈을 달라고 떼를 쓴다. 정말 막무가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막무가내 구걸하는 어른들도 많이 보았다.
물론 매정한 나로서는 웃으면서 난 돈이 없어요 라며 씨익- 지나쳐버렸다-_-
앙코르 유적지에서도 어딜가나 있었던 구걸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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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반지를 해주는 아이.

또 재밌었던 것 중에 하나는 앙코르 유적 보던 셋째날,
여느날처럼 유적지를 돌아보고 나오는대 꼬마 여자아이들이
우리에게 달려나왔다. 손가락을 내밀어 보라며 이런 저런 모양으로 풀반지를 해주었다.
참 귀엽고 상냥한 아이들이었지만, 난 이미 그들이 내게 조금 있다가
돈을 요구할 것을 알고 있었다.
미처 기념품을 준비해오지 않은 나는 조금 후 돈을 요구하는
아이들을 뿌리칠 수 밖에 없었고.
곤이는 연필이나 거울 등을 주며, 공부를 열심히 하라며 조언을 해주었다.
돈 있는 여행자들은 이런 풀반지 전략에는 넘어갈 듯 하다.
상당히 귀엽고 센스있지 않은가.
아이들이 참 고 난이도 마켓팅을 펼치며 유적지를 활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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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유적 3일째날 롤로스유적 근처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진은 마브가 찍어준 것.

전 세계의 신비로운 관심을 받고 있는 최고의 유적지 앙코르와트는.
어쩌면 가난한 캄보디아 아이들에게는 별 볼일 없는 놀이터
또는 돈벌이가 썩 괜찮은 구걸 장소 정도밖에 안될 수도 있겠다 란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방콕 카오산 거리의 전 세계 수많은 배낭 여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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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이 카오산 거리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내 앞에 앉아 있던 한 장난스럽게 생긴 외국인이 말을 건넨다.
넌 예쁘고 난 잘생겼으니 우리 같이 배우를 해서 영화나 찍어볼까.
여행은 이렇듯 쌩판 모르는 사람이 쌩판 모르는 다른 한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은듯 농담을 거리에서 던지며 그냥 사심없이 웃어 줄 수 있는 여유를 부리는 것.
갑갑한 현실에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그런 얘기들과 감정들.
그리고 이어지는 여유와 미소들. 그것은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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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가이드 북. 등짝엔 엄청난 크기의 배낭을 메고
고단해진 몸을 이끌고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야하는 여행자의 잠시 찡긋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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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나라이니만큼 여행자들은 거의 옷을 걸치지 않는다.
덕분에 서양 남자들의 잘빠진 몸매가 훤히 드러나니 눈이 행복할 수 밖에.
살짝 도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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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여자 여행자들도 역시 대담하다. 사진은 양호하지만,
거의 탑 수준의 옷들만 걸치고 돌아다니는 여행자가 태반이었다.
마찬가지로 동양 남자들의 눈이 즐거울 만한 곳 바로 카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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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가 멀다하고 내 옆을 삭삭- 스치는 그 배낭 여행자들.

어쩌다 서로 마주치기라도 하면 씩- 웃어주는 그 웃음속에서
진정 내가 세계의 배낭 여행의 중심지
방콕 '카오산 로드'에 있다는 실감을 할 수 있었다.

책 '지구별 여행자'에서 류시화의 말을 인용하자면,
<내 생의 증거는 언제나 여행에 있었다.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잘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다닐 적엔 따로 책을 지니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내가 보는 모든 것,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
잠시라도 나와 눈이 마주쳤던 그 모든 여행자들의 눈 속에서
난 책의 지식보다 더 진한 무엇을 얻을 수 있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여행같아라-
그러면 얼마나 새롭고 모든것이 즐겁기만 하랴.
말처럼 일상이 여행같지만 않기 때문에 난 또 새로운 여행을 계획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줄곧 머릿속으론 또다른 여행을 계획했고
여행에서 돌아와서 또 다시 새로운 여행을 계획한다.
빠르면 여름 늦으면 가을, 적어도 겨울엔 또 다시 여행을 떠나리라.

그 곳에 가면 또 다시 만나게 될 사람들.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많은 새로운 '사람' 들을 만나겠지.
언제나 그렇듯 '내 삶의 스승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이들이다'
고등학교때 세운 나의 삶의 주제이다.
당분간은 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저 주제에 맞는 삶을 살아가야지.

보고싶은 사람들.
그리워서 더욱 소중한 추억들이여.
아아아-

다른 여행에서는 쉽게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새삼 이번엔 느끼게 되었다.
그건 바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여행자들,
그 여행자들의 숙명인 진한 그리움을 느끼게 해준 것.

보고싶다.
그때 그곳에 그렇게 서서 나를 보고 이야기 하던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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