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직장을 그만두다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필리핀]직장을 그만두다

Soohwan 0 1065
사실 이 여행기는 작년에 쓴 것인데 태국 여행기가 아니라
이곳에는 안올렸는데요, 그래도 동남아 주변국이니 한번 올려봅니다.


그러니까 재작년 6월이었다.(2001년)

은행에서 명예퇴직자 신청을 받고 있었고 난 집에 한마디 상의없이

덜컥 신청을 했고 6월30일자로 은행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어머니께는 7월1일날 말을 했는데 반응은 망연자실..

"너 미쳤냐? 왜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응?"

"아니..그냥 적성에 안맞아서.."

"적성 맞아서 직장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 살다보면 어쩌구 저쩌구...

그래, 너 이제 뭐 할꺼야?"

"저 동남아 여행가려구요"

"동남아는 무슨 동남아.설악산이나 며칠 다녀오면 되지. 아유, 내가 못살

아, 정말"

"저 내일 떠나거든요. 한 몇달 걸릴거예요"

"....(할말을 잊으심)...."

은행일이 그렇게 힘들었던 건 사실 아니었다.

지점에 있을때 정말 '고객'이라는 이름하게 이것저것을 다 요구하고

소리지르고 짜증내는 그런 사람들때문에 사람들에 진절머리가 났지만

다행히 본점 발령이 난 이후론 고객과 접촉이 없어서 편하긴 했지만

일할 수록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자주 듣게 되는 직장 선배들의 푸념들.

연봉은 많지만 그만큼 일의 강도가 높고 늦게 끝나고

퇴직이 빠르다는 것.  누가 은행업을 21세기의 제철사업이라고 했던가.

더 늦기전에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너무 각박하게 사람들틈에 부대끼며 살고 싶지 않았었다.

직장이라는 '안정'을 버리고 '자유'를 얻었지만 여기에는 또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수반되는법.

그러나 일단은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맑은날 점심을 먹고 난 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한두시간정도 저렇게 걸어봤으면 하고 바랬었던,

늘 그렇게 아쉽게 마음을 접고 사무실로 되돌아 갔을때

마음한켠에 남아 있었던 자유에 대한 목마름.

그 바램이 이제 내 눈 앞에 와 있는 것이다.


그 다음날 인천공항.

모든게 달라보였다.

처음 가보는 인천공항은 깨끗했고 널찍해서 좋았다. 단, 출국장 흡연실

은 여전히 비좁고 어두침침했지만.

면세품점에서 스위스 칼이랑 담배 샀다.

저녁 비행기였는데 공항에 2시쯤에 도착한 나는 계속 면세품점을 들락날

락 거렸다. 왜 이리고 마음이 들떴는지. 그리고 들뜬 마음은 왜 그리도

진정이 안되는지.

'느긋하게 여행하는거야. 시간은 많으니까.. '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은행 사무실 책상 콤퓨터에 바탕화면으로

깔아 놓았던 보라카이의 그 산호 바다만이 생각났다.

비행기의 탑승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탑승수속을 했다.

기대감이 큰 탓이었을까?

좀체로 흥분이 가라 앉지 않아서 숨을 길게 들여 마셨는데 누가 봤으면

왜 저렇게 한숨을 자주 쉬나 했을것 같다.
0 Comments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