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만난사람 3 - 왓매옌의 웃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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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만난사람 3 - 왓매옌의 웃는 얼굴

스따꽁 3 769
해지기 전, 빠이는 더웠다.
빠이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왓매옌에 가기로 했다.

인터넷가게총각이 10분거리라고 했다. 요왕님이 준 정보로는 30분이다.
내 느린걸음으로 거의 1시간은 걸린 것 같다.

끝은 보이지만, 까마득한, 좁은 계단이 왓매옌까지 직선으로 놓여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씩씩하게 계단을 올랐다.
숨은 턱에 찼는데, 남은 계단은 너무 많다.

고개 들어 고지를 보니, 그 곳에 왠 얼굴이 보인다. 그 옆에도 사람얼굴이 하나 보인다.
계단 끝의 얼굴이, 내게 어서 오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어주는 것 같다.
그 옆의 얼굴은, 마치, 전망좋은 커피숖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저 느낌이다. 너무 멀어, 사람얼굴인지 아닌지 분간도 안가는 거리였다.

나를 반겨주는 얼굴에 이끌려, 다시 씩씩하게 계단을 올랐다.
숨이 차면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곤 했다. 그 얼굴은 여전히 그곳에 그러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왓매옌이 아닌 그를 향해 올라갔다.

정상에 도착해서 그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지중 한쪽다리만이 의지대로 움직이는 중증뇌성마비였다.
거지였다.
숨을 헐떡이며 쉴곳을 찾는 나를, 계속 쳐다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정말 기뻐하는것
같았다. 그 옆에는 동그란 플라스틱 접시에 1밧이 놓여 있었다.
불심이 없는 내가, 언덕꼭대기의 절에 이르는 계단을, 즐겁게 오를 수 있게 해준
얼굴이기에,  기꺼이 1밧을 그 동그란 접시에 놓았다.
내가 계단을 다 올랐을때 기뻐해주던 얼굴보다 즐거워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소리없이 크게 웃고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린찌중 한줄기를 그에게 "줄까" 하는 제스츄어를 했다. 그는 접시쪽으로
얼굴을 흔들었다. 그는 계속 웃고 있었다.

스님이 내게 빠이가 내려다 보이는 의자에 앉아 쉬라고 했다.
커피숍에 앉아 있는듯했던 얼굴은, 가장 전망좋은 곳에 가부좌로 앉아서 참선하는 서양남자였다. 마주친 그의 얼굴을 보니, 내가 그의 참선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를 피해, 나뭇가지에 가린 빠이의 전경을 흘낏 본 후, 절을 둘러보았다.
부처님이 모셔진 법당에는 서양여자 하나가 기도(맞는 표현을 모르겠다)를 하고 있었다.
그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이상 둘러보지 않았다.
더이상 내가 방해할수 있는 사람도 없는듯 했다.

그 웃는 얼굴은 계속 나를 쳐다보면서 웃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그가 할수 있는 기술들을 보여주었다. 목에 걸려있던 가방을 한쪽 팔로 휙휙 돌린다던가 하는...
내가 웃어주면, 그는 더 크게 웃어주었다.

스님이 종을 쳤다. 무엇을 알리는 종소리인지 모른다.
종소리가 끝나자, 그 웃는 얼굴은, 한발로 벌떡 일어서서는, 깡총깡총 뛰면서 내 관심을 끌었다. 내가 지켜보는 것을 확인 한 후, 그는 한발로 총총총 계단을 내려갔다.
몇번 멈춰서서, 뒤돌아 내게 웃어주고는, 한발로 뛰다가, 앉아서 기다가를 반복하면서, 두발인 나보다 빠른 속도로 가버렸다.

그의 남겨진 동그란 접시에는, 1밧이 남아 있었다. 린찌는 가져가고 없었다.
그 남겨진 1밧이, 내가 준 1밧인지, 원래 있던 1밧인지, 고민했다.

그는, 부처님 만나러 오는 길을 즐겁게 해주라고 파견된, 부처님의 제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밧을 적선한걸 후회했다.
그리고, 내 알량한 이기심은, 그가 거지이길 바랬다.

그가 그렇게 나를 혼란에 빠뜨리고 사라진 후, 왓매옌은 더이상 재미가 없었다.
스님과 서양인커플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같이 걸으면서 심오한 득도의 세계에 대해 얘기라도 하는 듯했다. 그들의 얼굴은 심각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동그란 접시옆에 철푸덕 앉아있는 내게 강아지 한마리가 다가왔다. 더운듯 보였지만, 내게 몇가지 기술을 보여주었다. 그 강아지도 줄곳 나와 눈을 맞추면서, 커다란 나무껍질을 물어뜯으며 뒹굴기, 린찌 한알 굴리기 등등을 보여주었다.

빠이가 한눈에 들어오는 왓매옌에서 내가 찍은 사진은, 한발로 총총 내려가는 그의 먼 뒷모습과 강아지 뿐이다.
3 Comments
요술왕자 2003.06.18 16:01  
  흐흐...
레아공주 2003.06.18 17:50  
  따꽁언니 T_T 너무 소설같아요..... 이런여행기 간만인거가타요..어흑....
한마디 2003.06.21 19:24  
  개벽아~~난 니가 죽지 않은줄 알고 있었어..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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