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에 대한 단상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배낭여행에 대한 단상

Soohwan 9 1619
'배낭족'이란 말을 내가 처음 들은건 국민학교(내가 다닐땐 국민학교

였고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소학교란 말을 쓰는 것처럼 나도 '초등학교'

보단 국민학교말이 더 정겹다^^)5학년때인 1984년이었다.

당시 한 출판사에서 중앙대학교 재학중인 '박경우'씨가 '배낭족'이란

책을 펴낸게 그 효시라고 생각한다.

당시만해도 해외여행자유화 이전이라서 해외여행이란 일종의 '부르조아

의 사치품'으로 간주되던 때였다. 2권으로 된 이책에선 일본과 동남아를

여행한 이야기들이였는데 그 어느 여행기보다도 재밌게 읽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건 박경우씨가 김포공항으로(아,김포공항...) 가기전에

할머니께서 꼬깃꼬깃한 만원짜리를 용돈하라며 주신건데 결국 환전도

못하고 계속 갖고 있다가 파키스탄 국경을 넘을때 큰 몫을 했다고 한다.

당시 일정 금액 이상을 소지하지 않으면 입국이 허락되지 않았는데

만원짜리를 양말에서 꺼내 보여주자 화폐의 가치는 모른채 영이 네개

붙어있다는 것에 놀라면서 바로 입국을 통과 시켜 줬다나.

아무튼 우리나라에 배낭족이란 말이 그때 유입됐었다고 생각된다.


그이후.

1987년 김정미씨가 '배낭하나 달랑메고'란 유럽여행기(아주 재밌다!)를

내면서 배낭여행에 대한 인식을 많은 사람에게 심어주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김정미씨의 책에 자극을 받아 배낭여행을 꿈꿔왔다

고 하는 경우를 많이 들었었고 나도 고등학교때 이 책을 읽고 '대학에

가면...'하는 주문을 내 자신에게 걸었던 기억이 난다.


90년이후 어학연수와 한비야씨의 여행기는 현재 배낭여행 붐의 기폭제라

고 생각한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배낭여행은 여전히 요원했었

고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그런던것이 제대하고난 뒤 96년

이후에는 해외여행이 꽤 만만(?)한 것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인식이 돼었

고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가히 폭발적으로 그 인구가 급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배낭여행을 꿈꾸고 다니던 직장을 접고 과감히 떠난다.

1년여행정도 여행하는 사람도 꽤 되는 걸로 알고 있고 부부가 같이

모든걸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기도 한다.

왜일까?

개인적인 생각엔 다음 몇가지 이유가 그 저변에 깔려 있지 않나 싶다.

첫째는 삶의 가치관에 대한 변화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기성세대의

근면,의무감으로 대표되는 '희생적' 인생관에서 개인주의적 중심의

'즐기는'인생관으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90녀대들어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가라앉고 서태지가 나오면서 국가나

사회보다는 '개인'에 중점을 두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됐고 인생도 향유하

려는 욕구가 강해졌다고 본다.

둘째는 기존 기성세대 체제의 붕괴가 아닐까 싶다.

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연공서열제'와 '평생직장'의 개념속에

서 젊음을 사회와 직장에 바쳐왔던 많은 기성세대들이 경제위기를 겪으

면서 직장에서 가차없이 정리해고 된 점은 90년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더욱더 '즐기자'는 생각을 주입시킨것 같다. 대부분 '일단 직장들어

가면 꼼짝 못하고 미래도 보장되지 못하니 대학생때 해 볼 수 있는것은

후회없이 다해보자'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기성세대와 달리 살아

가겠다고 말하던 많은 사람들도(나 자신을 포함해서)일단 직장에

발을 디디면 '조직'에 동화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인터넷과 통신이 보급되면서 기존과는 다른 다양한 직업이 출현

한 것도 배낭여행을 널리 보급하게 만든 요인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배낭여행'이란게 아직도 존재할까?

배낭 맸다고 다 배낭여행은 아닐게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무임승차 해가면서 하는 여행이 배낭여행은 아니다.

예전에 배낭여행을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까닭은 배낭여행이 현지인들에

게 더 가깝게 다가가 문화를 한층 더 깊이 엿볼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

고 지역경제에도 이바지하며 본인자신도 개척자 정신의 자세로 여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무지'로 인한 현지인에 대한 '무시'와 '맹목'적 '짝사랑'사이의 중용적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다. 일단은 '즐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우선시 되다보니 돈을 펑펑 쓰거나 나쁜점들도 그냥 눈감아 넘어가는

일들이 허다하다.

작년 여행하면서 본 론리플래넛을 만든 저자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난다.

"현대에 배낭여행자란 없다. 단지 싸구려 숙소에서 잠만 잘 뿐 여행경로

나 여행을 즐기는 방법에선 호텔에 투숙하는 사람들과 전혀 다를게 없

다. 독자들은 순진한 양들처럼 여행책자에 나온 숙소만 골라 다니고

여행지도 가이드북에 나온 곳만을 찾아 다닐뿐 '가지 않은길'을 가는

여행자들은 드물다. 더 이상 현지인과  문화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

으며 관심조차 없다.배낭여행은 죽었다고 생각한다"


동남아시아 자체도 급속도로 상업화되고 있으며 사람들도 순박함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나나 읽는 분들 역시 이러한

오염에 한 몫 했다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한국에서 몇천원 하는 스타벅스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면서도 태국에

가면 10바트(300원정도?)에 목숨거는 우리들.

배낭여행 정신이고 뭐고, 그런것들이 이제 멸종된 지금, 적어도

동남아시아에서 만큼은 지나치게 옹졸하게 여행하지 말자.

유럽과 달리 동남아시아인들에게 10바트,20바트는 가족의 생계와 직관

되어 있으며, 유럽인들과 달리 이들은 무시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아닌

무시당하면서 살아온 사람들 아닌가.

인도에서 들은 얘기로는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이스라엘에 이어 '제일

싫어하는(재수없는) 여행자들'순위에서 2위라고 한다.

여행 가기에 앞서 할인항공권이니 싼숙소니 여행경로를 생각하기에

앞서 기본적 '소양상태'를 점검하자.

우리 이런거 학교에서 많이 해 본 사람들니 잘하지 않을까.

'동방예의지국','조용한 아침의 나라', 이런말들이 코미디가 되기전에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이켜 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부터 고쳐야 되긴 하지만...^^

9 Comments
time 2003.06.08 16:25  
  오랜만에 참좋은글 읽었읍니다  <br>
-생각은 같으나 마음이 못따르는사람올림-
부산까마구 2003.06.08 16:47  
  잘 읽었습니다...부러움이 앞섭니다  일상을 떨친 용기에 감탄하며  마음의 여유로움에 찬사를 보냅니다
Moon 2003.06.08 17:01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가는 부분도 많고, 스스로 부끄러운 점도 많이 느끼게 하네요. <br>
저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배낭을 꿈꾸는지라 더 더욱 좋은 본보기가 된 것 같습니다.
공감 2003.06.08 22:36  
  정말 공감가는글이네....
레아공주 2003.06.09 00:19  
  수완님 기억하고 있어염...사진언제 올리실꺼여염~ 우웅 AD 너무 궁금하네용 ㅋㅋ
M.B.K 2003.06.09 12:19  
  올리신 여행기 두시간에 걸쳐서 다시 첨부터 다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정말 저와 비슷한 생각 많이 가진분이란 생각이 드네요... 부럽기도 하구요...
상호 2003.06.10 16:30  
  떠날수 있는 용기가 부럽네요... 저도 언젠가는!! ^^
윤정현 2003.06.19 15:35  
  좋은 글입니다. 내용도 공감이 가고,,,
브랜든_Talog 2006.07.17 21:25  
  오랫만에... 정말 좋은 글 읽었습니다.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