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간의 태국 여행-깐짜나부리에서 보낸 사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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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간의 태국 여행-깐짜나부리에서 보낸 사흘

필리핀 4 1388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깐짜나부리이다. 깐짜나부리는 5년 전에 방콕에서 1일 투어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몇 개의 박물관과 유엔군 공동묘지, 콰이 강의 다리 횡단과 기차 탑승이 포함된 투어였다. 가격도 저렴(500밧)하고 수상 식당에서의 점심식사까지 제공되어서 꽤 만족했다.
  그 투어를 다녀오고 나는 깐짜나부리는 마스터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깐짜나부리는 갈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 요술왕자님에게 ‘태국에서 살고 싶은 곳이 어디에요?’ 라고 물었더니 ‘깐짜나부리’ 라고 하는 것이었다. 오잉? 태국 여행의 도사께서 저렇게 마음에 두고 있는 곳이라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곳이구나.
  카오산의 반스 다이빙 리조트 사무실에서 오픈워터 예약을 하고 나는 깐짜나부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남부터미널로 향했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버스는 현지인으로 만원이었다.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2시간 후 버스는 깐짜나부리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여느 도시처럼 뚝뚝과 썽태우 기사들이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헤이, 웨라 유 꼬잉~’을 외쳐댔다. 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정말 무식하게도 가르쳐줬다. ‘써’나 ‘미스터’ 까지는 안 바래도 ‘헬로우’ 정도로 부르면 안 되나? 게다가 내가 어디 가는지는 알아서 뭘 하려고? 뚝뚝 타요, 쏭태우 타세요, 라고 호객을 하면 안 되나?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시장을 향해 걸어갔다. 숙소 밀집지역은 버스터미널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배가 고파서 우선 요기부터 좀 해야 했다.
  버스터미널과 가까운 시장에 사람들이 버글버글한 식당이 하나 있었다. 말레샤 중국계 단골 메뉴인 치킨라이스와 비슷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치킨라이스는 삶은 닭고기와, 닭 삶은 물로 지어서 고슬고슬한 밥을 함께 주는 음식이다.
  한 그릇에 얼마냐고 물으니 10밧이란다. OK. 값도 싸도 맛도 있다. 그런데 양이 너무 적다. 국수 한 그릇을 추가로 시켰다. 그래봤자 총 25밧. 나는 깐짜나부리가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배를 채우고 나서 지나가던 썽태우를 타고 숙소 밀집지역으로 향했다.(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썽태우를 타면 택시로 돌변해서 1대 대절 요금을 줘야 한다. 그러나 지나가는 썽태우를 타면 버스 수준의 요금만 내면 된다.)
  버스터미널에서 숙소 밀집지역인 기차역까지의 썽태우 요금은 6밧이었다. 내가 5밧 만 내니까 운전사가 손가락을 하나 펴보였다. 나는 10밧을 내라는 소리인줄 알고 5밧을 더 주었더니 4밧을 거슬러 주었다. 태국에서 썽태우 기사에게 거스름 돈 받기는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썽태우 기사들은 외국인에게는 잔돈을 꿀꺽해 버린다. 나는 깐짜나부리가 점점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기차역에서 숙소 밀집지역으로 가는 길은 한가로웠다. 5분쯤 걸어가자 개구리가 배낭을 메고 있는 그림이 있는 ‘졸리 프록 게스트 하우스’ 간판이 보였다. 식당 계산대와 겸하고 있는 리셉션은 음식값 계산과 체크아웃 손님으로 분주했다.
  방 있냐고 물으니 어떤 방을 원하느냐고 했다. ‘싼방’을 원한다고 했더니 70밧이라고 했다. ‘70밧?!’ 너무 싸서 보나마나 허접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카운터의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는 끝내 물어보지 못했다.)는 어느새 종업원에게 방 열쇠를 건네주고 있었다. 시간도 많은데 일단 방이나 보자 싶어 그 종업원을 따라 갔다.
  방은 의외로 깔끔했다. 침대와 가구가 낡긴 했으나 시트는 깨끗했고 창밖으론 녹음이 우거진 숲이 보였다. 공동욕실도 마음에 들었다.
  체크인을 하고 정원으로 가자, 오 이런, 100만불짜리 정경이 눈에 펼쳐졌다. 100평은 될 듯한 넓은 정원에는 푸른 잔디가 쫙 깔려 있었다. 정원 곳곳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독서하거나 낮잠 자기에 딱 좋은 의자와 해먹이 여럿 있었다.
  탁 트인 정면에는 콰이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콰이 강 너머에는 수채화로 그린 것처럼 푸른 벌판이 펼쳐져 있었고, 저 멀리에는 수호신처럼 산들이 둘러서 있었다. 사이다를 마셨을 때처럼 가슴 한 구석이 싸~해지는 전망이었다.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비스듬히 눕자 시원한 강바람이 향수처럼 상큼하게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하루의 피로가 가시는 상쾌한 바람이었다. 저녁이 되자 졸리 프록의 정원에서 바라본 노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온 천지에 불이라도 난 듯 하늘과 강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사람의 넋을 앗아가는 그 황홀한 진경. 
  졸리 프록의 정원에서 보낸 시간만으로, 그 정원에서 맞이한 그때 그 노을만으로도 깐짜나부리는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곳이었다. 아쉬운 점은 이스라엘 여행자들에 의해 졸리 프록이 완전히 점령당해 있는 것과, 빡빡한 일정 때문이겠지만, 대부분의 한국 여행자들은 깐짜나부리에서 1박만 하느라 졸리 프록의 정원과 콰이 강의 노을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깐짜나부리에 머무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졸리 프록의 정원에서 빈둥거리면서 독서를 하거나 낮잠을 잤다. 해변에서의 빈둥거림 못지않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둘째 날에는 ‘헬로우 태국’에 추천 관광지로 소개되어 있는 에라완 국립공원에 가보았다. 에라완 국립공원은 투어로 많이 가지만 스스로 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큰 길(기차역 앞)에 나가 서 있으면 앞 유리창 위에 ‘ERAWAN’이라고 크게 써 붙인 버스가 지나간다. 손 흔들어 세워서 타면 된다. 그 버스는 에라완 국립공원이 종점이다. 버스가 매표소 앞에 정차하면 매표원이 승차하여 입장료를 받는다. 1인당 무려 200밧. 3년 전만 해도 25밧이었는데, 최근 태국의 모든 국립공원이 200밧으로 입장료가 올랐다. 그런데 이것은 외국인에만 해당되는 요금이고 태국인은 여전히 25밧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입장료 200밧은 너무 비싸다. 졸리 프록 3일치 숙박료다. 한화로 환산하면 6,000원이고, 태국 현지 물가로는 한국에서의 2만원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금액이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입장료가 1,000원 내외인 걸 간안하며 태국 정부가 돈독이 올라도 대단히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암튼 에라완 국립공원은 그 명성과 입장료에 비해서는 실망스러웠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7개의 폭포를 보는 것이 하이라이트였는데, 이 정도 폭포는 우리나라에서도 치악산이나 소백산 정도만 가도 실컷 볼 수 있다. 물에 석회 성분이 많아서 옥빛으로 보이는 걸 신비롭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던데, 오히려 물에서 냄새가 나고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나중에 하얗게 석회가 말라붙기 때문에 샤워를 해야 한다.(공원 입구에 샤워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싸이욕 너이 폭포를 구경하는 게 났다고 생각한다. 에라완은 폭포가 7개지만 싸이욕 너이는 1개다. 대신 입장료가 없다! 사실 에라완도 7개 중에서 볼만한 폭포는 2개 정도에 불과하다. 사이욕 너이는 깐짜나부리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으므로 콰이 강의 다리와 함께 관광할 수 있다.
  졸리 프록의 또 하나의 장점은 싸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다. 졸리 프록의 식당은 현지인들의 외식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때문에 식사 시간에는 투숙객과 현지인 손님으로 항상 북적댄다.
  70밧짜리 스테이크가 인기 메뉴이나 최근에는 약간 부실해졌다. 이곳에서 먹은 얌운센 탈레는 내가 태국에서 먹어본 것 중 최고의 맛이었다. 국수 종류를 비롯한 다른 태국 음식들도 맛있었다. 양식보다는 태국 요리를 권한다.
  깐짜나부리를 떠나면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나는 다이빙과 풀문 파티 참석을 위해 남부로 가야 했다. 졸리 프록을 나서며 언젠가 꼭 다시 들리겠다고 다짐했다. 정원 의자에 누워 빈둥거리며 읽을 책 한 보따리와 함께.


4 Comments
노란 손수건 2003.09.09 21:22  
  전 거길 가면 쫄리 프록 옆의 슈가케인에 머을렀드럤는데......그중간에 현지 수햑선생과 결혼해서 텔레비가 있는 조그만 카페를 하는 호주넘은 잘있는지.... <br>
골방 비슷한데서 닷트게임을 편갈라 하든 기억이..... <br>
빈둥 빈둥 ...난 이단어가 좀 부정적이었는데.... <br>
가장 좋은 휴식은 바로 빈둥 빈둥 이라는 걸 .....그때 느꼈답니다....칸차나부리.... 걍 휴식을 취하긴 좋은 곳이지요.........
아부지 2003.09.10 09:10  
  아..저도 슈가케인에서 묵었었는데..수상방갈로중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해 베란다의 의자에 앉아있으면 전망이 젤로 좋은 방...밤에 맥주한잔 걸치고있으면 예술이지여~ 크으~
노란 손수건 2003.09.11 15:32  
  지도 그방 이었는데..........배들의 소음만 빼면... <br>
 강위에 지어진 식당하며....괜잖은곳입니다.... <br>
참 ...슈가케인골목 입구의  식당에서  젖깔에 매운 고추 다진것 넣고서 비벼먹던 기억이....젖깔은 한국거랑 똑 같았읍니다......
할리 2012.05.23 02:15  
칸차나부리를 원데이투어로만 갔었는데 저도 한번 묶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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