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간의 태국 여행-내가 태국에서 안해 본 것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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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간의 태국 여행-내가 태국에서 안해 본 것 3가지

필리핀 1 1550
  내가 지금까지 태국에 5번 갔으면서도 한번도 안 해 본 것이 3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택시 타기이다. 택시는 버스로도 충분한데 굳이 돈 낭비할 거 없지 않느냐는 이유에서 일부러 안 타고 있다. 최근에는 BTS가 생겨서 더욱 택시 탈 일이 없어졌다. 서울에서도 가끔 택시 타면 차가 너무 막혀서 왕 짜증인데, 서울보다 교통 체증이 훨씬 심한 방콕에서 택시를 탔다가 성질 급한 사람은 울화통으로 사망해 버릴지도 모른다.
  태국에서 안 해본 것 중 또 하나는 한국 음식 먹기이다. 여행지에서 음식 트러블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을 종종 본 적이 있다. 싱가폴 여행 중에 만난 영국 여성 질은 영국 음식이 그리워서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웬만한 현지 음식에는 잘 적응하는 혀와 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외여행 중에 한국 음식이 그리웠던 적은 별로 없다.
  내가 태국에서 한국 음식을 안 먹은 결정적 이유는 음식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한국의 음식값과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이지만 현지 물가에 비하면 꽤 비싸다. 여행 왔으면 그 나라 물가와 입맛에 주머니와 혀를 맞춰야 한다는 게 나의 신조이다.
  마지막 하나는 여행자 버스 타기이다. 태국은 여행자만을 위한 교통편, 특히 버스가 많이 발달해 있다. 로컬 버스는 스스로 버스 터미널까지 찾아가서 예약하고, 버스 탈 때 다시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러나 여행자 버스는 숙소나 숙소 근처의 여행사에서 예약하면 되고, 카오산의 경우는 카오산에서 출발하고 다른 지방에서는 숙소로 픽업하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격도 로컬 버스에 비해 상당히 저렴하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버스 상태가 안 좋고 가끔 도난사고도 발생한다는 소문 때문에 나는 그동안 여행자 버스를 한번도 이용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도 버스를 타면 한숨도 자지 못하는 예민한 성격 때문에 태국에서의 버스 여행은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기차에서도 잠을 잘 자지 못하지만, 그나마 침대차는 조금 잘 수 있다. 때문에 지금까지 태국에서 장거리 이동은 주로 밤 기차 침대칸을 이용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여행자 버스에 도전해 보기로 진작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자신의 금기 한 가지를 깬다는 짜릿함을 맛보고 싶기도 했지만, 내가 여행자 버스를 타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가격 때문이었다. 치앙마이-방콕 간의 밤 기차 2등석 침대칸이 721밧(하단)인데 반해서 여행자 버스는 225밧에 불과했다.(사실 이 가격도 좀 오른 것이다. 한때 방콕-치앙마이 간 여행자 버스는 공짜로 운행하기도 했다. 물론 숙소나 트래킹을 함께 예약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그런데 이 치앙마이-방콕 여행자 버스에서 나는 최악의 경험을 했다. 저녁 6시경, 표를 예약한 여행사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썽태우가 나를 태우러 왔다. 이미 만원 상태인 썽태우를 보고 대충 짐작은 했는데, 방콕 행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주유소로 가니 버스는 이미 만원이었다.
  억지로 자리를 끼워 맞추었는데 내가 앉을 딱 한 자리가 부족했다. 미리 인원 체크도 안하고 무조건 표를 팔고 보는 무식함에 욕이 절로 나왔다.(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라서 나는 여행자를 상대로 일하는 태국인을 불신하는 편이다.)
  최종적으로 내게 배당된 자리는 운전사 옆, 그러니까 조수석이었다. 차라리 치앙마이에서 하루 더 묵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평소에 버스를 타면 전망 때문에 앞자리를 선호하는 성격 탓에 OK를 했다. 그것이 고생의 시작이었다.
  조수석은 의자 등받이가 고정되어 있어서 뒤로 젖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좌석도 좁아서 겨우 엉덩이를 얹을 수 있는 정도였다. 결국 나는 꼬박 12시간을 한숨도 못 자고 거의 부동자세로 그 좁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명의 운전사가 있긴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영어와 한국어를 할줄 몰랐고 나는 태국어를 할줄 몰랐다. 6시간 동안 운전한 운전사가 동료와 교대하고 운전석과 승객 좌석 사이에 마련된 간이침대로 가서 몸을 누일 때,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럽던지. 나는 운전사가 가속기를 한껏 밟아서 이 여행을 빨리 끝내주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새벽녘에 카오산에 도착했을 때 내 몸은 뻐근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숙소 침대 위에 몸을 누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배낭을 둘러메고 잰걸음으로 카오산의 게스트하우스를 훑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가는 곳마다 방이 없었다.
  2시간을 헤맸지만 나는 여전히 카오산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배는 고프고 눈꺼풀은 자꾸 내려앉고, 암튼 최악의 상태였다. 3시간여를 헤맨 끝에 마침내 ‘와일드 오키즈 인’의 선풍기 싱글 룸을 얻을 수 있었다.
  이곳도 3번이나 들른 끝에 용케 체크아웃 하는 사람이 생겨서 얻은 것이었다. 체크인을 하고도 방 청소가 끝날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 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오늘이 마침 토요일이었다. 그간의 여행 경험에 의하면 주말에는 대도시와 휴양지에서 방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대도시는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휴양지는 휴양지대로 주말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주말에는 이동을 삼가는 게 좋다.
  3시간여 동안 카오산을 헤매면서 웬만한 숙소는 한번씩 들려봤는데, 와일드 오키즈 인은 수준급의 숙소였다. 분위기는 ‘사와디~’ 계열의 숙소와 비슷해 보이지만 훨씬 차분했다. 나중에 나와 취향이 비슷해 보이는 어떤 서양 여성 여행자는 카오산에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숙소는 반 싸바이와 와일드 오키즈 인이라고 했다.
  ‘반 싸바이’는 한국 여성들에게 무척 인기가 높은 숙소였다. 내가 만난 거의 모든 한국 여성 여행자가 반 싸바이를 알고 있었고 다시 카오산에 가도 그곳에 묵겠다고 했다. 나는 반 싸바이는 묵지는 않고 객실 구경만 했는데 무척 깔끔하고 깨끗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내가 묵지 않은 결정적 이유는 가격에 비해 부대시설이 ‘디앤디 인’에 비해 딸린다는 사실이었다. 반 싸바이는 TV와 수영장이 없지만(디앤디 인은 둘 다 있다) 가격은 같았다. 대신에 반 싸바이는 창문이 있다. 그 창문으로 바라보이는 바깥 풍경도 괜찮다. 이 창문 때문에 반 싸바이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사실 카오산에서 바깥 풍경이 괜찮은 창을 가진 숙소는 거의 드물다.
  저렴하고 깔끔한 분위기로 소문난 ‘피치 게스트하우스’를 갔다가 불쾌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리셉션에서 ‘방 있냐’고 물었더니 그곳을 지키고 있던 40대 중반쯤의 여자가 갑자기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마치 이상한 벌레 보는 듯한 눈빛을 하며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아니, 방이 없으면 그냥 없다고 하면 되지 왜 이상한 눈빛을 하고 사람을 훑어보기까지 하는 거지?
  뒤에 만난 어떤 여행자 왈, 피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동양인을 받기 꺼려한다고 소문이 난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동양인들은 잘 안 간다고 했다. 참 재수 없는 게스트하우스가 아닐 수 없었다. 동양인이 동양인을 차별하다니!
  카오산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도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간 적이 없다. 일부러 한국인업소를 피한 건 아니다. 그 숙소들이 내가 원하는 시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시골에서는 공동욕실을 사용하는 선풍기 룸에 묵기도 하지만 도시에서는 가능하면 좋은 숙소, 에어컨에 TV를 갖춘 숙소를 선호한다. 특히 방콕은 덥고 매연도 심하기 때문에 숙소가 쾌적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인업소는 가난한 여행자를 위한 도미토리 위주여서 나하고는 맞지 않았다.
  여행 중에 카오산의 한국인업소 도미토리에 묵었던 여행자를 몇 만났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그곳에서 도난사고를 당하거나 목격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아직 학생이고 여행 경험이 적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도미토리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같은 한국인이어서 방심하고 지갑이나 귀중품 간수가 소홀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불행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샤워하러 갈 때는 물론이고 잘 때도 지갑과 귀중품은 항상 몸에 지녀야 한다. 리셉션에 보관할 수 있으면 보관하는 것이 좋다.
  와일드 오키즈 인의 싱글 룸은 정말 작았다. 내 몸집에 딱 맞는 침대가 방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을 벗고 배낭을 내려놓으니 방이 꽉 차버렸다. 하지만 시설은 깨끗했고 공동욕실도 깔끔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다시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나는 꼬 따오에서의 다이빙을 예약하기 위해서 반스 다이빙 리조트 방콕 사무소를 찾아 나섰다.


1 Comments
할리 2012.05.23 02:05  
고생이 무척 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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