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간의 태국 여행-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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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간의 태국 여행-방콕

필리핀 1 1358
  올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방콕만큼 신비한 도시도 드문 것 같다. 이렇게 혼잡하고 무질서하고 거대한 도시가 용케도 유지되는 걸 보면.
  2년 만에 발을 디딘 방콕에서 느낀 첫 인상은 공해가 무척 심해졌다는 것과 온 사방에서 풍겨오는 구린내, 두리안 냄새였다.
  2년 전만 해도 거리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즐거웠다. 낯선 나라에서 현지인처럼 스스럼없이 시내버스를 탄다는 것은 내가 여행을 잘 해내고 있구나 하는 증거이다. 게다가 현지인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바로 지척에서 느껴볼 수 있으니 이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방콕에서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일은 고역이었다. 보통 방콕에서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러시아워 때문에 30분 정도는 기다릴 작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바로 눈앞에서 수많은 버스들이 내뿜는 지독한 매연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현지인들은 아예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기도 하다. 암튼 방콕의 매연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2년 전보다 확실히 그 도가 심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두리안 냄새. 사실 나는 두리안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내 돈 주고 사 먹지는 않지만 공짜로 먹을 기회가 있으면 사양하지는 않는 편이다. 마침 8월은 두리안 철이어서 방콕 곳곳에서 두리안의 그 향기롭지 못한 냄새를 실컷 맡을 수 있었다. 게다가 태국은 두리안에 관한 예의(?)가 부족한 탓인지 시내버스에서도 두리안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싱가폴이나 말레샤 같은 나라에서는 호텔, 시내버스, 전철 등 공공장소에는 두리안 출입금지다. 그러나 방콕에서는 시내버스에 두리안을 소지하고(집에 가서 식구들과 맛있게 나눠 먹으려는 거겠지.) 버스에 탄 사람을 가끔 목격할 수 있었다. 다들 그 냄새에 고개를 돌리면서도 누구 하나 그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두리안은 구입한 그 자리에서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남에게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고, 또 자신이 묵는 숙소에서 그 지독한 냄새와 동거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방콕에서 처음 이틀 동안 묵은 숙소는 ROH로 구입한 바이욕 스위트 호텔이었다. ‘헬로 태국’을 보면 이 호텔에 대해 ‘스위트룸이란 걸 감안한다면 가격이 싸지만 그밖에 별다른 서비스는 기대하지 말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한 마디 추가하자면 ‘가능하면 가지 말 것!’이다.
  원래 ROH가 비싸지만 1박에 5만여 원(약 1,700밧)을 지불한 숙소치고는 정말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방은 귀신이라도 나올 듯 낡고 음산한 분위기였고 에어컨은 온도 조절이 안 되고(덕분에 매일 빨래 하나는 확실하게 말랐다.) 욕실 수도에서는 녹물이 찔찔 나왔다. 위치도 어수선한 시장통 한 구석에 있어서 드나들 때마다 기분이 유쾌하지 못했다.  아랍계 가족 단위 투숙객과 장기 투숙객들이 많아서 호텔 자체도 무척 어수선했다. 게다가 아침 뷔페는 최악이었다. 이미 호텔비에 포함되어 있어서 겨우 목구멍으로 넘겼지, 만약 이 음식을 그 자리에서 돈 내고 먹으라고 하면 단돈 10밧도 아까울 정도였다.
  그전에 로얄 벤자, 그랜드 호텔에 묵어본 경험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바이욕 스위트 호텔의 단점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딱 한 가지, 바이욕 스위트 호텔의 장점은 야경이었다. 내가 배정 받은 방은 32층이었는데, 대다수의 건물들이 발아래 있어서 마치 하늘의 별들이 내려와 있는 것 같은 야경은 그런대로 볼만 했다. 그러나 대낮에 다시 32층에서 바라본 방콕의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웬일인지 방콕에는 짓다만, 그래서 하이에나가 뜯어 먹다만 시체처럼 흉물스럽게 골조만 서 있는 건물들이 많았다. 금세 무너질 듯한 낡은 건물들, 그 사이로 언 듯 언 듯 보이는 빈민촌, 이런 황량한 풍경이 왠지 마음을 우울하게 했다.
  하룻밤을 자고 내가 내린 결론은 가능하면 빨리 방콕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가능하면 방콕에서 머무는 시간은 최대한 짧게 하자, 는 것이었다.
  물론 방콕은 관광지로써의 장점이 상당히 많은 도시이다. 시내의 유명 관광지를 대충이라도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사흘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 근교의 관광지까지 섭렵하려면 일주일로도 모자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다섯 번 이상 방콕을 드나든, 그리고 그때마다 최소 3,4일씩을 머물렀던 사람에게 방콕은 더 이상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나는 훨람퐁 역으로 가서 치앙마이 행 2등석 침대차 하단을 예매했다. 그리고 남은 1박 2일 동안 방콕에서 무얼 하고 보낼지 고민에 빠져 들었다.
1 Comments
할리 2012.05.23 01:24  
8월에 가면 두리안을 싸게 실컷 먹을 수 있겠네요.
저는 예전에는 모든 과일이 항상 다 있는 줄로 착각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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