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간의 태국 여행-꼬 사무이, 방콕, 팟타야,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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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간의 태국 여행-꼬 사무이, 방콕, 팟타야, 그리고...

필리핀 5 1593
  꼬 사무이에서 방콕까지 가는 배+버스 조인트 티켓은 450밧이었다. 배+열차는 700밧이 넘었다. 똑같은 조인트 티켓인데 여행사마다 50밧 정도씩 차이가 났다. 450밧은 차웽에서 가장 싼 가격이었다.
  아침에 바다에서 마지막 수영을 하고 있는데 웬 동양인이 다가왔다.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대만인이었다. 어제 에버 그린에 체크인해서 1,000밧짜리 에어컨룸에 묵고 있단다. 친구와 같이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혼자 왔다고 한다. 내가 오늘 방콕으로 간다니까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가 이틀만 일찍 왔더라면 함께 재미있게(?) 놀 수 있었을텐데. 꼬 싸무이의 나이트 라이프는 혼자서 즐기기엔 좀 쓸쓸하다. 동성이건 이성이건 최소한 2명 이상이어야 흥이 난다.
  97년, 처음 꼬 사무이에 왔을 때에는 5명의 독일인들과 어울려서 일주일을 보냈다. 당시의 하루 일과: 오전 11시 기상-브런치, 해변에서 빈둥거리기(수영, 썬탠, 독서, 군것질 등)-오후 4시 낮잠-오후 6시 식사 전의 간단한 음주(독일 친구들은 ‘간단한’이라고 했는데, 그 간단한 음주가 1인당 럼주 큰병으로 반병이었다!)-오후 8시 저녁식사-오후 9시 본격적인 바 호핑(바를 순례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오후 11시 디스코텍 호핑(당시 꼬 사무이에서 가장 잘 나가던 3대 디스코텍은 그린망고, 싼타페, 레게 펍이었다. 그린망고는 차웽 메인 로드에서 가까운데 가장 일찍, 그래봤자 밤 11시지만,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린망고에서 놀다가 새벽 1시쯤 되면 싼타페로 옮긴다. 그리고 새벽 3시 경에는 업소에서 일하는 현지인들이 일 끝나고 모여드는 레게 펍으로 간다.)-오전 4시 귀가 및 취침.
  일주일 동안 독일 친구들과 어울려 질펀하게 놀다가 체력이 딸려 죽는 줄 알았다. 누가 서양인들은 술을 별로 안 마신다고 했던가! 당시는 나도 체력이 팔팔할 때여서 함께 어울릴 수 있었지 아마 지금이라면 하룻만에 KO 당했을 것이다. 
  꼬 싸무이에서 배를 타고 쑤랏타니에 와서 방콕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는데, 이 버스는 꼬 피피, 푸켓, 끄라비 등지에서 오는 여행자들도 합류한다. 꼬 피피에서 온 한국인 여대생 2명을 버스에서 만났다. 인도를 1달 가량 여행하고 귀국길에 꼬 피피만 잠깐 들린 거란다. 이 여대생들 왈, 카오산 로드에서 며칠간 하루에 1인당 70밧으로 생활했단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냐고 물으니까, 도미토리 50밧+길거리에서 파는 10밧짜리 팟타이 2끼(다이어트 하느라 2끼만 먹었단다!)=70밧이란다. 참으로 대단한 학생들이었다.
  역시 나는 쑤랏타니에서 방콕으로 가는 버스에서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1~2년 내로 중국을 여행하려고 하는데, 중국도 장거리 버스로 이동하는 코스가 많은 곳이라, 버스에서 한잠도 못자는 이 버릇이 가장 큰 걱정이다.
  새벽 5시, 버스는 방콕에 도착했다. 북부나 남부에서 오는 여행자 버스는 카오산 로드에서 가까운 파아팃 거리에 정차한다. 초행길의 여행자 중 여기에서 내려서 카오산 로드 가려고 택시를 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파아팃 거리에서 카오산 로드까지는 걸어서 5분도 안 걸린다.
  나는 지난번 치앙마이에서 올 때의 경험도 있고 해서 카오산 로드로 가지 않고 버스를 타고 훨람퐁 역으로 갔다. 그리고 7시 30분 출발 팟타야 행 3등 열차표를 구입했다. 귀국일 까지는 아직 며칠 여유가 있으므로 매연과 교통 체증이 심한 방콕보다 팟타야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짧은 일정이 남았을 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쉬기 좋은 곳으로 팟타야가 최고가 아닌가 싶다. 우선 방콕에서 가깝기 때문에(버스로 2시간 30분) 언제라도 마음이 바뀌면 귀국하거나 다른 지방으로의 이동이 간편하다. 그리고 방콕에 비해 물가, 특히 숙소가 상당히 싼 편이다. 500밧 정도면 에어컨, 냉장고, TV를 갖춘 룸에 수영장이 있는 호텔에 묵을 수 있다. 웬만한 쇼핑센터나 음식점으로의 이동은 도보로 가능하거나 썽태우(1인 5밧)를 타고 5분 정도만 이동하면 된다. 바다를 접하고 있어서 공기도 맑고 교통 체증도 없다. 단, 바다 그 자체는 별로여서 수영은 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급 호텔들이 수영장을 가지고 있고, 배로 40분 거리에 각종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꼬 란(산호섬)이 있다.
  99%의 승객을 현지인(주로 통근 학생)으로 채운 팟타야 행 열차는 8시 30분이 되어서야 출발을 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때까지 계속 승객들이 타는 것이다. 분명히 열차 출발시각은 7시 30분이다. 그렇다면 내 상식으로는 승객은 7시 30분 이전에 와야 한다. 그러나 열차가 1시간이나 늦게 출발하는 그 순간까지, 어쩌다 늦은 한두 명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수의 승객들이 꾸준히 탔다. 결론적으로 이 열차는 항상 늦고 그걸 아는 승객들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말 ‘어메이징 타일래드’가 아닐 수 없다.
 암튼 조는 둥 마는 둥 하는 가운데 열차는 팟타야에 도착했다. 약 3시간이 소요되었다. 역은 약간 외진 곳에 있어서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숙소 밀집지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처음에 40밧을 부르기에 20밧에 하자고 했더니 ‘노’한다. 다시 30밧을 부르니까 못 이기는 척 ‘오케이’한다. 그런데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이동하다보니 상당히 먼 거리다. 이래서 기름값이나 건질까 싶다. 딴에는 외국인라고 후한 인심을 기대했을텐데. 나한테 10밧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들에게 10밧은 큰돈이다. 결국 내릴 때 40밧을 다 주고 말았다.
  태국을 여행하다 보면 가끔 여행자를 걸어 다니는 금고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다짜고짜 바가지부터 씌우려고 한다. 그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솔직히 조금 씁쓸하다. 눈앞의 순간적인 이득을 취하느라 장기적으론 여행자들로부터 불신과 손가락질을 받는 일을 자초하는 것이다. 바가지를 쓰고도 싸다고 좋아하는 여행자들이 있으니까 그들이 그런 버릇을 못 버리는 면도 있다.
  한번 올라간 물가는 다시 내려오지 않는다. 현지 사정에 눈이 어둡거나 돈을 헤프게 쓰는 일부 여행자 때문에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이 고생하는 수가 있다.
  태국 물가 개념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면, 1밧이 환율 상으로는 한화 30원이지만 현지 물가 수준으로는 우리나라에서 100원 쓰는 것 이상의 위력이 있다. 일테면 태국에서 100밧 쓰는 것은 한국에서 1만원 쓰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따라서 태국에서 100밧을 쓸 때 환율상의 가치인 한화 3,000원으로 생각하지 말고, 물가상의 가치인 1만원을 쓴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100밧을 한화 3,000원 정도로 인식하고 돈을 헤프게 쓰다 보면 궁극적으로는 전반적인 물가가 오르게 되어 뒤에 오는 여행자들이 부담스럽게 된다. 현지에서는 현지의 물가와 현지인의 지갑 수준에 맞추어라, 이것이 여행을 슬기롭게 하는 비결이다.
  이번 태국 여행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여행자들의 분포가 상당히 변했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태국을 방문했던 2001년만 해도 배낭여행자 풍의 솔로 혹은 동성 그룹 여행자들이 주류를 이루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나는 유난히 이성 커플과 가족 단위의 여행자를 많이 보았다. 그리고 여성 솔로 여행자는 많이 만났는데, 남성 솔로 여행자는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만났다.
  태국이 배낭여행자의 천국에서 다른 단계로 변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성 커플 여행자와 가족 단위 여행자가 많아진 것이 그 증거가 아닌가 한다.
  또 다른 변화는 전반적인 물가가 올랐다는 것이다. 나는 97년부터 2001년까지 매년 한 차례 이상 태국을 방문했는데, 그 5년여 동안은 거의 물가의 변화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방문에서는 물가 인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여행 중에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서 위의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그들도 대체로 나의 의견에 동감을 표시했다. 한 여행자는 최근에는 아프리카가 배낭여행자들 사이에 각광받는 여행지라고 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차츰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태국으로 돌아올 것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아직 끄라비와 시밀란 군도 일대의 바다를 나는 샅샅이 경험해 보지 못했다. 다음 방문에서는 더 이상 방콕 북쪽으로는 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다음 방문이 언제일지는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리 속에서는 다음 여행 후보지로 필리핀 팔라완 섬,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 네팔 안나푸르나, 베트남 일주 등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앞일을 누가 알랴. 어쩌면 당장 다음달에 다시 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팟타야에서 3일을 보내고 방콕으로 와서 하루를 보냈다. 같은 500밧인데 팟타야의 널널한 방에 있다가 방콕의 성냥곽만한 방에 묵으니 숨이 막힌다. 하지만 이제 며칠 뒤면 이 성냥곽만한 방마저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행이란 내가 어디에 묵고 어디에 가느냐 하는 것보다 ‘떠남’ 그 자체가 더 매력적이지 않은가.
 
5 Comments
감사~ 2003.09.23 17:58  
  글 잘읽었습니다 긴시간동안 수고하셨네요 <br>
또 즐거운 여행하시고 여행기 올려주세요 !!
자나깨나 2003.09.23 23:52  
  유익한 정보와 마치 그림을 보는듯한 묘사가 <br>
가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게 하네요.. ^^* <br>
시간 가는지 모르고 한숨에 읽어버렸어요. <br>
^^*
필맆 매니아^^ 2003.09.24 02:56  
  글이 참 맛이 있습니다. <br>
수 많은 경험에 좋은 메모리 그리고 소위 문장력이 있어야 가능한 쉽고 재밌는 글이었읍니다. <br>
님의 여행담을 읽고 있으면 나도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님의 묘사를 보는 듯 합니다. <br>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리며 곧 끝나는 여행 안전하고 좋은 <br>
추억거리 쬐끔 더 만드시고 귀국하세요. <br>
부럽습니다....^^
Soo 2003.09.29 13:37  
  정말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어디선가 보라카이가셨던거 읽은게 기억나는데 그때에 비해서 많이 프로가 돼셨네요 ... 저도 필리핀 팔라완섬가고싶은데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할리 2012.05.23 03:00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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