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간의 태국 여행-종합선물 세트 같은 섬, 꼬 사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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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간의 태국 여행-종합선물 세트 같은 섬, 꼬 사무이

필리핀 2 1902
  내가 처음 태국에 와서 잔 곳이 꼬 사무이의 ‘evergreen' 게스트 하우스이다. 1997년 겨울, 나는 방콕 돈무앙 공항에 오후 4시경 도착하여 공항 앞 기차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훨람퐁 역으로 갔다. 그리고 단 한 장 남은 오후 7시발 2등 에어컨 침대차 상단을 타고 쑤랏타니로 갔다. 다음날, 쑤랏타니에서 배를 타고 꼬 사무이 나톤 선착장에 도착하여 다시 썽태우 타고(1인당 30밧) 차웽 비치에 도착하니 점심때였다. 약 1시간 정도 헤맨 끝에 독일 친구 클라우스와 율겐을 만나서 그들이 묵고 있던 에버 그린에 여장을 풀었다.
  그 후로 꼬 사무이에 갈 때마다 나는 에버 그린에 묵는다. 태국에서의 첫 잠자리라는 추억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에버 그린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에버 그린의 장점은:
  1. 해변에서 아주 가깝다. 대부분의 해변 숙소가 그렇듯이 꼬 사무이 차웽 비치도 해변에서 가까울수록 숙소 가격이 비싼데, 에버 그린은 해변에서 가까우면서도 가격은 저렴하다.(팬룸 1박 400밧.) 해변이 가까우면 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이동 시간이 짧아서 편하고, 수영복만 입은 채로 다닐 수 있고, 마음 내키면 한밤중에라도 해변에 나갈 수 있다. 에버 그린에서 해변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1분 정도이다.
  2. 에버 그린 앞 바다는 차웽 비치에서 가장 명당이다. 위치도 정 중앙인데, 왼쪽 해변은 바다에 돌이 많아서 수영하기가 불편하고 오른쪽 해변은 고급 리조트들이 많아서 왠지 주눅이 든다. 때문에 에버 그린 앞 해변은 항상 물(?)이 좋다.
  3. 숙소가 무척 깨끗하다. 태국 섬의 게스트 하우스는 청소를 자주 해주지 않는다. 꼬 따오, 꼬 팡안, 꼬 피피, 꼬 란타, 꼬 사멧 등에서 내가 묵었던 300~500밧 내외의 게스트 하우스는 3~4일 동안 청소는 물론이고 시트 교체, 수건 교체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에버 그린은 요구하지 않아도 매일매일 청소에 시트와 수건을 교체해준다.
  이번에도 나는 에버 그린에 묵었다. 핫린 선착장에서 배(1인 100밧)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꼬 사무이의 빅 부다 선착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차웽 비치까지는 썽태우로 1인당 50밧. 배에서 대만에서 온 아이들(20대 초반 4명)에게 에버 그린을 안내해 주니 좋다고 난리이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얼른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변으로 나갔다. 오, 이런! 물빛이 장난이 아니다. 그동안 나는 매번 겨울에만 꼬 사무이에 왔었다. 겨울의 꼬 사무이 바다는 파도가 심해서 물빛이 탁하다. 그리고 비가 내릴 때가 많다. 해변에서 즐기기에 최악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8월의 차웽 비치는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빛의 바다를 가지고 있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라는 일본 소설의 제목이 딱 어울리는 그런 바다였다. 파도가 거의 없어서 수면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한참을 물속에서 놀아도 꼬 팡안에서처럼 해파리는 없었다. 내가 그렇게나 그리던 바로 그 바다였다. 
  해변에서 지겹도록 놀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샤워를 하고 그린 망고 골목으로 갔다. 그린 망고는 차웽에서 가장 물이 좋은 디스코텍인데, 이 부근에 차웽 비치의 먹거리와 놀거리가 집중되어 있다. 예전에는 이 부근에 싸고 맛있는 식당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2년 전에 와보니 다 없어지고 비싼 레스토랑이 들어차 있었다. 갈수록 차웽, 아니 꼬 사무이 전체의 상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 같다. 이제 예전의 그 원시적이고 비문명적인 모습은 거의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몇 년 후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골목 안쪽을 한참 헤맨 끝에 저렴하지만 깔끔해 보이는 현지인 식당을 발견했다. 음! 돼지 족발을 삶고 있는 솥이 있다. 족발 덮밥을 시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태국음식 중 하나이다. 양도 꽤 푸짐하고 야채와 맑은 국까지 곁들여 준다. 앗! 너무 맛있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최고의 족발 덮밥은 치앙콩의 20밧짜리였는데 이것이 조금 더 맛있는 것 같다. 가격도 30밧 밖에 안한다. 차웽의 물가를 감안하면 상당히 싸다.
  그 후로 꼬 사무이에 머무는 동안 하루에 두 번씩 그 식당에 갔다. 간판이 없기 때문에 이름은 모른다.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린망고 골목 안쪽으로 200미터쯤 가면 왼쪽에 있다. 메뉴는 태국 요리 위주인데 맛있고, 깔끔하고, 저렴하고, 친절하다.
  밥을 먹고 거리를 걷다보니, 차웽 비치 최대의 명물 크리스티 캬바레가 이사를 했다. 예전에는 노천 바였는데 이제 에어컨 빵빵 나오는 실내로 옮겼다. 예전의 자리에는 새로운 캬바레 업소가 들어섰다. 그런데 삐끼는 예전 크리스티의 삐끼다. 주인이 같은 사람인가?
  크리스티 캬바레는 트랜스젠더들이 쇼를 하는 곳이다. 태국에서는 이런 쇼를 ‘캬바레 쇼’ 라고 하는데, 파타야의 ‘알카자’가 태국 캬바레 쇼의 원조이자 최고로 명성이 자자하다. 꼬 사무이 크리스티 캬바레의 쇼는 규모는 알카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지만, 배우들의 열정과 미모(?)는 태국 최고의 수준으로 손색이 없다.
  꼬 사무이에서는 온갖 형태의 놀이와 휴양이 가능하다. 은둔자처럼 지내고 싶은 사람은 보풋이나 청몬으로 가면 된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여행자는 차웽에 머물면 된다. 섬 중앙으로 가면 원시의 숲과 만날 수도 있다. 섬 곳곳에 관광명소도 꽤 있다. 다이빙, 낚시 등 각종 해양 스포츠도 즐길 수 있다.
  먹거리 또한 풍부하다. 신선한 해산물은 물론이고 인도, 독일, 프랑스, 이태리 등 세계 각국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나이트 라이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린망고와 레게 펍은 매일 밤 수많은 사람들이 부나방처럼 몰려드는 곳이다. 이번에 보니 ‘아 고고’ 바도 몇 군데 생겼다.
  한국 여행자 중에 꼬 사무이를 방문해 보고 실망했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내 생각에는 아마 시기를 잘못 선택했거나 본인의 취향과 맞지 않은 해변에 머물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꼬 사무이는 가능하면 우리나라 계절 기준으로 여름에 가는 게 좋다. 겨울에 가면 꼬 사무이의 진면목을 제대로 만끽할 수가 없다. 여름에 가면 겨울에 비해 물가도 싸다. 태국의 성수기는 서양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겨울이다.
  꼬 사무이에서 라마이 해변에만 머물다 가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 데, 라마이는 솔직히 최고의 해변은 아니다. 긴 꼬리 배들이 자주 들락거리고(긴 꼬리 배가 들락거리면 바다가 오염된다.), 하수구가 해변 근처에 있어서 썩 쾌적하지가 않다. 차웽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적한 느낌은 있지만 은둔자적 느낌이 들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차웽을 흉내 내려다 실패한 것 같은 쓸쓸함이 느껴지는 곳이다.(이런 시각이 나만의 편견일 수도 있다.)
  한적함을 즐기려면 보풋이나 청몬이 낫고, 바다의 질은 차웽이 낫다. 차웽은 메인 로드 일대가 복잡한 것이 단점인데, 해변쪽 숙소는 상당히 조용하다. 밤마다 차웽 해변에는 하얀 식탁보에 촛불 밝힌 식탁이 늘어선다. 밤바다의 파도 소리를 음악 삼아 시원한 해풍에 전신을 헹구며 축복처럼 쏟아지는 별빛 아래에서 하는 낭만적인 식사… 1인당 200밧 내외면 가능하다!
  꼬 사무이를 방문하는 사람은 가능하면 일정에 여유를 가지고, 오토바이를 대절해서 섬 일주를 해보길 권한다. 차웽에서 라마이 가는 언덕에 있는 랏 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백미이다. 섬 일주를 하다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해변을 발견하면 그곳에 눌러앉는 게 꼬 사무이를 가장 확실하게 즐기는 방법이다.
  꼬 사무이에 있는 동안 매일 해변에서 빈둥거리지만 말고 하루쯤은 앙텅 해양 국립공원 투어를 가기를 권한다.(예전에는 1인 500밧이었는데 지금은 1인 1,200밧~1,500밧으로 올랐다. 태국에서의 모든 투어는 여행사마다 가격이 약간씩 다르므로 3군데 정도의 여행사를 방문하여 가격을 비교해 볼 것. 내용은 똑같다.) 영화 ‘비치’에 등장하는 호수를 방문한다. 꼬 우아 딸랍에서는 스노클링이나 등산 중에 한 가지를 할 수 있는데, 등산을 할 것을 권한다. 물이 맑지 않아서 스노클링은 본전 생각이 난다.(스노클 세트를 유료 대여해야 한다.) 등산을 하면 100만불짜리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매일 밤 11시 무렵, 그린 망고 골목 일대는 광란의 파티장으로 변한다. 마치 풀문 파티의 축소판 같다. 온갖 피부색의 젊은이들이 바와 거리를 가득 메우고 남녀 할 것 없이 술병을 손에 든 채 몸을 흐느적거리며 기성을 질러댄다. 내일이면 영면에 빠져들어 영영 깨어나지 않을 사람처럼, 그래서 오늘 밤 남은 육신을 몽땅 불사르지 않으면 억울해서 미칠 것 같은 사람처럼, 그렇게 지구 한 구석이 열정과 욕망으로 달아오른다.
  나도 한때 거의 매일 밤을 디스코텍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점심은 라면을 먹더라도 저녁에는 디스코텍에서 라면보다 비싼 콜라를 빨던 시절이 있었다. 춤과 음악에 미쳐 덧없이 흘려보내던 그 시절, 몇 달간 디스코텍 디제이로 일하기까지 했었다.
  꼬 사무이 차웽 비치 그린 망고 골목에 가면, 내 잃어버린 스무 살의 시절과 만날 수 있다.
2 Comments
JETTA 2005.04.27 13:22  
  '꼬 사무이 차웽 비치 그린 망고 골목에 가면, 내 잃어버린 스무 살의 시절과 만날 수 있다.'
이말 책임 지셔야 합니다.
이번에 사무이 가면 꼭 가봐야겠어요^^
할리 2012.05.23 02:50  
저도 꼭 가서 보고 느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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