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동남아 3개국 기행 31일차 (태국 - 아유타야)
2002년 10월 12일 (태국 - 아유타야)
이제 떠나는 날이다. 내가 끊은 한 달짜리 비행기 티켓의 마지막 유효일. 이날 밤 12시 비행기(TG 658) 편으로 귀국한다. 마지막 날은 아유타야 , 방파인 일일투어로 마무리 한다.
2001년 태국여행때도 밤 비행기로 떠나는 마지막날에 칸차나부리, 콰이강의 다리 일일투어를 했었다. 아유타야는 고대 아유타야 제국 시대의 수도 였던 곳이라, 그 시대의 사원, 궁궐, 불탑등 멋있는 유적지가 많은,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와 같은 곳이다.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받기도 한 곳이다. 이날 코스는 맨 먼저 그 유명한 방파인 여름 궁전을 보고,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 투어를 한 후, 오후에는 여러 사원들을 둘러보고 카오산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투어가 아침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이 날은 아침 6시에 기상,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숙소를 나왔다. 6시 40분경에 마루투어 앞으로 태국인 가이드 아줌마가 나를 인솔하러 왔다. DND 옆에 있는 여행사에서 손님들이 다 모이니까, 봉고차 한 대가 손님을 모두 태우고 출발한다. 나 빼고는 모두다 서양인들 이었다. 가는 길에 돈무앙 국제공항이 보였다. 이날 밤 여기서 비행기를 타고 떠날 생각을 하니까 아쉬운 마음이었다. 1시간 30분 만에 방파인에 도착했다. 이 투어의 첫 코스인 방파인 여름 궁전. 기사 아저씨가 주차장에 관광객들을 내려주고, 1시간 30분 후인 10시 20분까지 이곳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방파인 궁전은 현재 국왕의 별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하절기때 푸미폰 국왕이 이곳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기도 하는 곳이다. 왕궁이라서 근위병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아유타야의 쁘라씻 텅 왕이 처음 지었는데, 미얀마군의 침략으로 모두 부수어 졌다. 나중에 짜끄리 왕조의 몽쿳 왕과 쫄라롱껀 왕이 다시 개축했다. 유럽양식과 중국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아름다운 궁전이다. 정원이 아름답고 궁안에 호수가 있다. 지금도 여름이면 푸미폰 태국 국왕이 며칠씩 머무른다고 한다. 정말 멋있게 꾸며놨다. 호수 안에 지어진 정자와 누각이 제일 인상적이다. 또 중국식으로 지어진 궁궐 건물, 높은 탑 위에 휘날리는 태국 국기. 이 탑위에 올라가면, 모든게 확 트인 느낌이고, 방파인 궁전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다. 여긴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엄청 많다. 전체 분위기가 하나의 공원 같다. 스피커에서는 태국 전통의 불교음악이 흘러나와서 분위기를 돋군다. 화창하고 맑게 갠 하늘, 화려한 건물들, 금가루와 보석으로 치장한 누각들... 정말 왕의 별궁으로 쓰일만 하다. 1시간 반 정도 여유있게 다 둘러보고, 궁전을 나와서 다시 타고온 봉고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복귀, 다음 코스는 보트를 타고 아유타야를 가로지르는 짜오프라야 강을 둘러보는 것이다.
보트 타는 값으로 100밧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전날 홍수가 났던 것처럼 짜오프라야 강은 흙탕물 이었다. 강은 우리나라의 한강이 훨씬 좋은 것 같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는 강, 계곡물이 진짜 안좋다. 강, 계곡, 폭포는 우리나라가 더 나아 보인다. 방콕에서 짜오프라야 투어를 할때 탔던 배도 똑같은 것이었다. 어린이들이 그 더러운 물에 들어가서 뭣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수영을 하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다들 사람들이 이 물에 똥사고, 오줌싸고 했을텐데 말이다. 모르고 그냥 재미있게 노는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개의치 않고 그냥 즐기는 건지... 달리는 보트에서 맞는 강바람이 시원하다. 강변에는 아유타야 시대의 사원과 불탑들이 즐비했다. 30분의 짜오프라야 리버 투어가 끝나고, 보트에서 내렸다. 선착장에는 잉어들이 떼지어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먹던 빵조각을 재미삼아 잉어떼한테 던져대고 있다. 맛있게 받아먹는 잉어들의 모습이 생동감 넘치고, 역동적이다.
다음 코스는 옛 왓 랏부라나 왓 마하탓를 둘러 봤다. 태국식, 캄보디아식, 크메르식 불탑들이 널려져 있었다. 과거 미얀마 군의 침공으로 파괴된 흔적들까지 뚜렷하게 남아있다.왓 랏부라나 사원은 크메르 양식의 영향을 받은 탑과 벽이 남아 있는 불당이 있다. 계단을 통해 탑 위쪽으로 올라가면 문이 있어서 탑안으로 들어 갈 수 있다. 탑 안에는 방이 두 개가 있으며 각각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옆에 마주하고 있는 사원이 왓 마하탓 이다. 사원 가운데에는 밑부분만 남아 있는 탑이 있다. 미얀마군에 의해 무참히 잘려진 불상머리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띈다. 특히 땅에 떨어진 불상버리가 세월이 지나면서 덩굴 나무들과 함께 나무에 감겨 올라온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다음에는 왓 로까야쑤타, 왓 워라쳇타람 사원을 둘러봤다. 왓 로까야쑤타는 거대한 와불상이 인상적인 곳이다. 오래된 것이라 다소 녹이 슬었지만, 상당히 웅장한 모습이다. 모로 누워 있는 거대한 흰색의 불상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와불 뒤에는 꽤 커다란 불당이 있었으리라 짐작되는 돌바닥이 남아 있다. 주변엔 아직 발굴중인 유적지가 있다.
그 옆에 나란히 있는 사원이 왓 워라쳇타람이다. 벽이 복원된 불당과 탑이 있고, 주위는 해자로 둘러 쌓여 있다.
아유타야는 여러 가지 유적들이 공원처럼 한 곳에 몰려서 이어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하다. 아유타야 왕조는 한때 타이의 통일 왕조로서, 500년간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이웃나라 미얀마의 침략으로 멸망한 극과 극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가진 왕조다. 이곳 아유타야의 유적지들을 보면, 대부분이 헐어 떨어지고, 부서진 흔적들이 남아 있다. 모두 과거 미얀마의 침략 때문에 그렇게 철저하게 파괴된 것이다.
오전 관광을 마치고, 점심식사. 식사 메뉴로 태국식 닭고기 샐러드 요리, 태국식 찌개, 쏨땀, 태국 커리 등이 나왔다. 맛있다. 봉고차 기사 아저씨는 카오산의 홍익인간, 만남의 광장 주인하고 잘 아는 사이라고 한다. 거기가서 김치를 비롯한 한국 음식 맛있게 잘 얻어 먹었단다. 근데 처음에 홍익인간을 '홍깅깅강'으로 발음해서 졸라 웃겼다. 월드컵때 우리나라의 경기를 다 재미있게 봤고, 자기네 나라도 한국 축구를 본받아서 월드컵에 꼭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여행때 어디가나 한국인이라고 하면, 2002 월드컵, 히딩크를 떠올리고 다들 그 얘기들만 한다. 누차 언급 하지만, 월드컵 4강 신화 때문에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는 잠시 기념품 상점에 들러서 윈도 쇼핑을 했다. 부채, 타이실크로 만든 전통의상, 목공예품, 은세공품, 가죽제품등 전통 공예품을 파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틀 전에 식구들과 친구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다 사놓은 터라 특별히 살게 없었다. 오후 코스는 왓 프라 시산펫과 옛 아유타야 왕궁터, 위한프라 몽콘 버핏 등의 한곳에 이어진 사원과 유적지들을 보는 마지막 코스다. 길거리에는 아유타야 시대의 군인 복장을 한 남자들이 코끼리를 끌고 다니는 광경을 많이 볼 수가 있다. 그 코끼리를 돈 몇푼 내고 탈 수 있다. 나는 지난번에 치앙마이 가서 카렌족 트레킹 할때 코끼리를 타 봤었다. 근데 코끼리가 계속 귀로 내 다리를 때려대서 아팠던 기억이 있다. 또 안장에 자리가 없어서 코끼리 머리 위에 탔다가 자꾸 흔들려서 떨어질까봐 안절부절, 조마조마 했었다. 굳이 돈주고 코끼리를 또 타보고 싶지는 않았다.
왓 프라 씨 싼펫은 터가 아주 넓다. 거기에 있는 돌로 된 불탑은 방콕의 에메랄드 사원에 있는 황금 불탑과 똑같이 생겼다. 만들어진 재료만 다를 뿐 생김세는 완전히 같은 것이다. 여기도 미얀마군의 침략으로 파괴된 흔적이 많다. 이곳은 아유타야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중 하나이다. 왕궁안에 있는 왕실 전용 사원이었다. 가운데 서 있는 세 개의 탑은 아유타야 역대 왕 중 세 명의 유골이 들어 있다. 이 사원 안에는250kg의 순금을 입힌 16m 높이의 탑이 있었으나 미얀마군이 약탈해 갔다고 한다.
그 바로 옆에 있는 빨간색 지붕의 불당이 위한 프라 몽콘 버핏이다. 태국에서 가장 큰 청동 불상이 있다. 처음에 왕궁 동쪽에 불상만 있던 것을 쏭탐왕이 왕궁 서쪽(현재의 자리)에 불당을 짓고 옮긴 것이다. 미얀마군에 의해 심하게 파손된 것을 근래에 와서 복원했다.
불당안에는 현지인들이 정성껏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일본여자들 둘도 현지인처럼 절을 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독실한 불교신자들인가 보다. 태국은 전국민의 90% 이상이 불교 신자기 때문에 어느 절에 가도 현지인들이 북적인다. 나도 비록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현지인들처럼 향을 바치고 삼배를 올렸다. 부디 군대가서 아무 사고 없이, 몸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무사히 전역해서 다시 이 땅을 밟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었다. 부디 나의 기도가 이루어져서 2년후에 지금 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국에 왔으면 좋겠다.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이 불당은 외관부터가 화려하고 웅장하다. 불상도 정말 화려하고 때깔 좋다.
그 근처에 왓 프라람이라는 사원도 둘러봤다. 왓 랏부라나처럼 크메르 양식의 탑이 있는 사원으로 아유타야 2대왕 라메쑤언왕이 부왕인 우텅왕을 화장한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아유타야의 유적지에서 감동을 느끼며, 한가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이번 여행을 멋지게 마무리 했다.
한가로이 유적지를 다 둘러보고, 카오산으로 돌아가려는데, 여기서 사고가 발생했다. 내가 타고온 봉고차와 같이 타고온 투어 일행들이 눈씼고 찾아봐도 안 보이는 것이다. 지난번 칸차나부리 투어처럼 가이드가 일행을 인솔해가며, 하나하나 다 설명하고, 챙기지 않았다. 봉고차에서 관광객들을 내리게 하고, 이 주변을 4시 반까지 알아서 관람하고 봉고차로 돌아오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들 제멋대로 제각기 흩어져서 자유분방하게 관광을 했던 것이다. 나도 누구의 간섭없이 자유분방하게 관광을 하고 싶어서 발길 닿는대로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유적지 입구에서 태국아이들과 재미있게 족구도 하고 놀았다.
재미있게 잘 놀고, 관광하고 막판에 이게 뭐람. 이러면, 차 번호와 봉고차 기사 아저씨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알아 놨어야 했는데, 진짜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봉고차가 나만 빼놓고 떠난게 분명하다. 여태껏 이런 사고는 없었는데...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날 밤 비행기로 꼭 가야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방콕으로 돌아가야 하고, 수중에는 바트화 현금도 얼마 없고... 카오산에서 일일투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한테 이 한마디 꼭 당부하고 싶다. 가끔씩 이런 사고가 있을 수 있으니, 자신이 타고온 투어 버스의 차 번호, 운전기사 혹은 인솔 가이드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반드시 알아둬라. 나는 미처 이런걸 생각지 못하고, 그런걸 알아둘 생각조차 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이 없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투어 프로그램은 대부분 가이드가 안내 및 인솔하고, 설명까지 하는데, 이번 경우처럼 인솔도 안내도 없이 자유롭게 관광하라고 풀어 놓는 일도 있다. 가이드가 인솔하고 안내하는 대로 졸졸 쫓아다니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이런 사태에 대비해서 그것들을 미리 알아놔야 한다. 그래야 즉각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다행히 운좋게도 바로 옆에서 나의 딱한 사정을 알은 일본인을 안내하던 현지 가이드 아줌마의 도움으로, 무사히 카오산 로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가이드 아줌마가 그날 관광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방콕으로 돌아가는 길에 돈무앙 공항에 나를 내려다 준 것이다. 나는 거기서 A2 공항버스를 타고 다시 카오산으로 돌아갔다. 정말 그 아줌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정말 고맙다. 공항에서 내려서 '컵쿤 찡찡'을 얼마나 연발했는지 모른다. 돈무앙 공항이 아유타야 가는 길에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이 막판의 사고로 십년 감수했다. 이런 사고를 통해 또 한가지 중요한 걸 터득했다. 일일투어라고 너무 긴장 풀지 말고, 차 번호, 가이드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놓아야 한다는 것. 아유타야의 찬란한 유적지에서 여행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하루였다.
이제 남은건 돈무앙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병역의무가 기다리는 지긋지긋한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돌아가면, 한달 쉬고, 논산훈련소에 들어가야 한다. 정말 생각하기 싫다. 앞으로 2년간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니, 막막할 따름이었다.
마루투어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맡겨둔 매덕스의 짐값을 치루고, 떠날 준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먹은 카우팟 까이와 수박쥬스, 타이 팬케이크(바나나, 쵸코)가 입맛을 땡긴다. 돌아가서 이 맛이 너무 그리울 것이다. 가지고 있던 Hello 태국, 말레이시아 가이드북과 프린트 해간 자료들, 팜플렛 등은 마루투어, 홍익여행사에 모두 기증했다. 내가 가이드 북에 밑줄, 별표 치고 한것들, 내가 전해준 자료들이 부디 여행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빈다.
내가 떠난지 일주일 후에 마루투어는 문을 닫고 영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카오산의 북적이고, 흥청거리는 야경이 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앞으로 2년 2개월간 정들었던 이곳 카오산과도 안녕이다. 2년 2개월 후에 다시 왔을때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A2 공항버스를 기다리는데, 약 1시간 후에나 카오산 정류장에 온 것이다. 밤 10시 20분 경에 버스가 출발했다. 그때 돈무앙 공항으로 가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혼자 버스안에 타니까 상당히 뻘줌했다. 야간이라 차량소통이 원활 했고,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금방 갔다. 11시에 무사히 돈무앙 국제공항에 도착. 비행기를 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타이항공 카운터에 가서 탑승수속 밟고, 공항 출국세 500밧 내고, 출국수속 밟고 한느 시간이 걸리다 보니까 탑승게이트에 간지 몇 분 안돼서 금방 비행기에 탔다. 탑승시간에 딱 맞춰서 간 것이었다. 지난 2001년에 귀국할 때와 시간도 같고, 분위기도 비슷했다. 0시 정각에 인천행 타이항공 여객기(TG 658)는 이 어둠을 가르고 이륙. 한국을 향해 출발했다.
비행기는 한국으로 가는 승객들로 만원이었다. 단체 패키지 투어를 마치고 돌아가는 한국인 관광객들,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가는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네팔, 필리핀 등지의 동남아시안들.. 아마도 부산아시안 게임을 보러가는 모양이었다. 내 바로 옆 좌석에는 오산의 미군기지로 일하러 가는 태국여자 둘이 타고 있었다. 둘다 붉은 악마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자기네들은 오산에 일하러 10번이나 가봤단다. 미군 기지촌에 유흥업소가 많은데, 그럼 혹시? 매춘업쪽? 하지만 외모가 너무 아니어서, 그들은 그런쪽에 종사하지 않을 것 같았다. 동남아 여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유흥업소에 끌려들어가 한국남성들의 성노리갯감으로 전락하고, 돈도 제대로 못받고, 상습적으로 구타 및 가혹행위에 시달리는 등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아 이게 크게 사회 문제가 되고, 나아가 주한 외교관이 우리나라 정부에 크게 항의하는 사태로 이어져서 나라망신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말이다. 그 둘을 보고 있노라니, 다소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부디 제대로 돈이나 받아가서, 고국으로 돌아가 편히 살수 있었으면 한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소위 말하는 '핵퍽탄'이어서 그런데서 일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런쪽이 아니라, 가정부나 음식 만들기, 청소 같은 잡일을 하는 거였으면 한다. 부디 둘 한테 행운이 따르길... 입국할 때 쫓겨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등병의 편지'가 나왔는데, 얼마후면 입대하는 나에게 가슴에 와 닿았다. 그 노래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나왔다. 이제 즐거웠던 날들은 모두 가고, 막막한 순간, 힘겨운 시간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고, 한국가는 비행기 좌석은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큰맘 먹고 떠난 여행. 많은걸 경험하고, 맛나는거 많이 먹고, 재미 있는거 많이 보고 즐기고, 충분히 기분전환하고 재충전을 했다. 건강관리를 제대로 해서 몸살, 독감에만 걸리지 않았다면 더더욱 좋은 여행이 되었을텐데 말이다. 31박 32일, 한 달여의 2002 동남아 3개국(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기행도 여기서 다 끝나간다. 아쉬움을 뒤로한채, 인천행 타이항공 여객기는 밤새 어둠을 뚫고 날아갔다.
* 지출내역 : 940B
이날 사먹은 물, 음료수, 간식거리 : 55밧
저녁식사(카우팟 까이) : 60밧
짜오프라야 강 보트 투어 : 100밧
방콕국제공항 출국세 : 500밧
짐보관료(마루투어 : 3일 * 5밧) : 15밧
A2 공항버스 두 번 : 200밧
동빈이형한테 공중전화 : 10밧
이제 떠나는 날이다. 내가 끊은 한 달짜리 비행기 티켓의 마지막 유효일. 이날 밤 12시 비행기(TG 658) 편으로 귀국한다. 마지막 날은 아유타야 , 방파인 일일투어로 마무리 한다.
2001년 태국여행때도 밤 비행기로 떠나는 마지막날에 칸차나부리, 콰이강의 다리 일일투어를 했었다. 아유타야는 고대 아유타야 제국 시대의 수도 였던 곳이라, 그 시대의 사원, 궁궐, 불탑등 멋있는 유적지가 많은,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와 같은 곳이다.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받기도 한 곳이다. 이날 코스는 맨 먼저 그 유명한 방파인 여름 궁전을 보고,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 투어를 한 후, 오후에는 여러 사원들을 둘러보고 카오산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투어가 아침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이 날은 아침 6시에 기상,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숙소를 나왔다. 6시 40분경에 마루투어 앞으로 태국인 가이드 아줌마가 나를 인솔하러 왔다. DND 옆에 있는 여행사에서 손님들이 다 모이니까, 봉고차 한 대가 손님을 모두 태우고 출발한다. 나 빼고는 모두다 서양인들 이었다. 가는 길에 돈무앙 국제공항이 보였다. 이날 밤 여기서 비행기를 타고 떠날 생각을 하니까 아쉬운 마음이었다. 1시간 30분 만에 방파인에 도착했다. 이 투어의 첫 코스인 방파인 여름 궁전. 기사 아저씨가 주차장에 관광객들을 내려주고, 1시간 30분 후인 10시 20분까지 이곳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방파인 궁전은 현재 국왕의 별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하절기때 푸미폰 국왕이 이곳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기도 하는 곳이다. 왕궁이라서 근위병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아유타야의 쁘라씻 텅 왕이 처음 지었는데, 미얀마군의 침략으로 모두 부수어 졌다. 나중에 짜끄리 왕조의 몽쿳 왕과 쫄라롱껀 왕이 다시 개축했다. 유럽양식과 중국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아름다운 궁전이다. 정원이 아름답고 궁안에 호수가 있다. 지금도 여름이면 푸미폰 태국 국왕이 며칠씩 머무른다고 한다. 정말 멋있게 꾸며놨다. 호수 안에 지어진 정자와 누각이 제일 인상적이다. 또 중국식으로 지어진 궁궐 건물, 높은 탑 위에 휘날리는 태국 국기. 이 탑위에 올라가면, 모든게 확 트인 느낌이고, 방파인 궁전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다. 여긴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엄청 많다. 전체 분위기가 하나의 공원 같다. 스피커에서는 태국 전통의 불교음악이 흘러나와서 분위기를 돋군다. 화창하고 맑게 갠 하늘, 화려한 건물들, 금가루와 보석으로 치장한 누각들... 정말 왕의 별궁으로 쓰일만 하다. 1시간 반 정도 여유있게 다 둘러보고, 궁전을 나와서 다시 타고온 봉고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복귀, 다음 코스는 보트를 타고 아유타야를 가로지르는 짜오프라야 강을 둘러보는 것이다.
보트 타는 값으로 100밧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전날 홍수가 났던 것처럼 짜오프라야 강은 흙탕물 이었다. 강은 우리나라의 한강이 훨씬 좋은 것 같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는 강, 계곡물이 진짜 안좋다. 강, 계곡, 폭포는 우리나라가 더 나아 보인다. 방콕에서 짜오프라야 투어를 할때 탔던 배도 똑같은 것이었다. 어린이들이 그 더러운 물에 들어가서 뭣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수영을 하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다들 사람들이 이 물에 똥사고, 오줌싸고 했을텐데 말이다. 모르고 그냥 재미있게 노는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개의치 않고 그냥 즐기는 건지... 달리는 보트에서 맞는 강바람이 시원하다. 강변에는 아유타야 시대의 사원과 불탑들이 즐비했다. 30분의 짜오프라야 리버 투어가 끝나고, 보트에서 내렸다. 선착장에는 잉어들이 떼지어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먹던 빵조각을 재미삼아 잉어떼한테 던져대고 있다. 맛있게 받아먹는 잉어들의 모습이 생동감 넘치고, 역동적이다.
다음 코스는 옛 왓 랏부라나 왓 마하탓를 둘러 봤다. 태국식, 캄보디아식, 크메르식 불탑들이 널려져 있었다. 과거 미얀마 군의 침공으로 파괴된 흔적들까지 뚜렷하게 남아있다.왓 랏부라나 사원은 크메르 양식의 영향을 받은 탑과 벽이 남아 있는 불당이 있다. 계단을 통해 탑 위쪽으로 올라가면 문이 있어서 탑안으로 들어 갈 수 있다. 탑 안에는 방이 두 개가 있으며 각각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옆에 마주하고 있는 사원이 왓 마하탓 이다. 사원 가운데에는 밑부분만 남아 있는 탑이 있다. 미얀마군에 의해 무참히 잘려진 불상머리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띈다. 특히 땅에 떨어진 불상버리가 세월이 지나면서 덩굴 나무들과 함께 나무에 감겨 올라온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다음에는 왓 로까야쑤타, 왓 워라쳇타람 사원을 둘러봤다. 왓 로까야쑤타는 거대한 와불상이 인상적인 곳이다. 오래된 것이라 다소 녹이 슬었지만, 상당히 웅장한 모습이다. 모로 누워 있는 거대한 흰색의 불상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와불 뒤에는 꽤 커다란 불당이 있었으리라 짐작되는 돌바닥이 남아 있다. 주변엔 아직 발굴중인 유적지가 있다.
그 옆에 나란히 있는 사원이 왓 워라쳇타람이다. 벽이 복원된 불당과 탑이 있고, 주위는 해자로 둘러 쌓여 있다.
아유타야는 여러 가지 유적들이 공원처럼 한 곳에 몰려서 이어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하다. 아유타야 왕조는 한때 타이의 통일 왕조로서, 500년간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이웃나라 미얀마의 침략으로 멸망한 극과 극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가진 왕조다. 이곳 아유타야의 유적지들을 보면, 대부분이 헐어 떨어지고, 부서진 흔적들이 남아 있다. 모두 과거 미얀마의 침략 때문에 그렇게 철저하게 파괴된 것이다.
오전 관광을 마치고, 점심식사. 식사 메뉴로 태국식 닭고기 샐러드 요리, 태국식 찌개, 쏨땀, 태국 커리 등이 나왔다. 맛있다. 봉고차 기사 아저씨는 카오산의 홍익인간, 만남의 광장 주인하고 잘 아는 사이라고 한다. 거기가서 김치를 비롯한 한국 음식 맛있게 잘 얻어 먹었단다. 근데 처음에 홍익인간을 '홍깅깅강'으로 발음해서 졸라 웃겼다. 월드컵때 우리나라의 경기를 다 재미있게 봤고, 자기네 나라도 한국 축구를 본받아서 월드컵에 꼭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여행때 어디가나 한국인이라고 하면, 2002 월드컵, 히딩크를 떠올리고 다들 그 얘기들만 한다. 누차 언급 하지만, 월드컵 4강 신화 때문에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는 잠시 기념품 상점에 들러서 윈도 쇼핑을 했다. 부채, 타이실크로 만든 전통의상, 목공예품, 은세공품, 가죽제품등 전통 공예품을 파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틀 전에 식구들과 친구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다 사놓은 터라 특별히 살게 없었다. 오후 코스는 왓 프라 시산펫과 옛 아유타야 왕궁터, 위한프라 몽콘 버핏 등의 한곳에 이어진 사원과 유적지들을 보는 마지막 코스다. 길거리에는 아유타야 시대의 군인 복장을 한 남자들이 코끼리를 끌고 다니는 광경을 많이 볼 수가 있다. 그 코끼리를 돈 몇푼 내고 탈 수 있다. 나는 지난번에 치앙마이 가서 카렌족 트레킹 할때 코끼리를 타 봤었다. 근데 코끼리가 계속 귀로 내 다리를 때려대서 아팠던 기억이 있다. 또 안장에 자리가 없어서 코끼리 머리 위에 탔다가 자꾸 흔들려서 떨어질까봐 안절부절, 조마조마 했었다. 굳이 돈주고 코끼리를 또 타보고 싶지는 않았다.
왓 프라 씨 싼펫은 터가 아주 넓다. 거기에 있는 돌로 된 불탑은 방콕의 에메랄드 사원에 있는 황금 불탑과 똑같이 생겼다. 만들어진 재료만 다를 뿐 생김세는 완전히 같은 것이다. 여기도 미얀마군의 침략으로 파괴된 흔적이 많다. 이곳은 아유타야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중 하나이다. 왕궁안에 있는 왕실 전용 사원이었다. 가운데 서 있는 세 개의 탑은 아유타야 역대 왕 중 세 명의 유골이 들어 있다. 이 사원 안에는250kg의 순금을 입힌 16m 높이의 탑이 있었으나 미얀마군이 약탈해 갔다고 한다.
그 바로 옆에 있는 빨간색 지붕의 불당이 위한 프라 몽콘 버핏이다. 태국에서 가장 큰 청동 불상이 있다. 처음에 왕궁 동쪽에 불상만 있던 것을 쏭탐왕이 왕궁 서쪽(현재의 자리)에 불당을 짓고 옮긴 것이다. 미얀마군에 의해 심하게 파손된 것을 근래에 와서 복원했다.
불당안에는 현지인들이 정성껏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일본여자들 둘도 현지인처럼 절을 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독실한 불교신자들인가 보다. 태국은 전국민의 90% 이상이 불교 신자기 때문에 어느 절에 가도 현지인들이 북적인다. 나도 비록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현지인들처럼 향을 바치고 삼배를 올렸다. 부디 군대가서 아무 사고 없이, 몸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무사히 전역해서 다시 이 땅을 밟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었다. 부디 나의 기도가 이루어져서 2년후에 지금 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국에 왔으면 좋겠다.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이 불당은 외관부터가 화려하고 웅장하다. 불상도 정말 화려하고 때깔 좋다.
그 근처에 왓 프라람이라는 사원도 둘러봤다. 왓 랏부라나처럼 크메르 양식의 탑이 있는 사원으로 아유타야 2대왕 라메쑤언왕이 부왕인 우텅왕을 화장한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아유타야의 유적지에서 감동을 느끼며, 한가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이번 여행을 멋지게 마무리 했다.
한가로이 유적지를 다 둘러보고, 카오산으로 돌아가려는데, 여기서 사고가 발생했다. 내가 타고온 봉고차와 같이 타고온 투어 일행들이 눈씼고 찾아봐도 안 보이는 것이다. 지난번 칸차나부리 투어처럼 가이드가 일행을 인솔해가며, 하나하나 다 설명하고, 챙기지 않았다. 봉고차에서 관광객들을 내리게 하고, 이 주변을 4시 반까지 알아서 관람하고 봉고차로 돌아오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들 제멋대로 제각기 흩어져서 자유분방하게 관광을 했던 것이다. 나도 누구의 간섭없이 자유분방하게 관광을 하고 싶어서 발길 닿는대로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유적지 입구에서 태국아이들과 재미있게 족구도 하고 놀았다.
재미있게 잘 놀고, 관광하고 막판에 이게 뭐람. 이러면, 차 번호와 봉고차 기사 아저씨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알아 놨어야 했는데, 진짜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봉고차가 나만 빼놓고 떠난게 분명하다. 여태껏 이런 사고는 없었는데...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날 밤 비행기로 꼭 가야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방콕으로 돌아가야 하고, 수중에는 바트화 현금도 얼마 없고... 카오산에서 일일투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한테 이 한마디 꼭 당부하고 싶다. 가끔씩 이런 사고가 있을 수 있으니, 자신이 타고온 투어 버스의 차 번호, 운전기사 혹은 인솔 가이드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반드시 알아둬라. 나는 미처 이런걸 생각지 못하고, 그런걸 알아둘 생각조차 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이 없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투어 프로그램은 대부분 가이드가 안내 및 인솔하고, 설명까지 하는데, 이번 경우처럼 인솔도 안내도 없이 자유롭게 관광하라고 풀어 놓는 일도 있다. 가이드가 인솔하고 안내하는 대로 졸졸 쫓아다니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이런 사태에 대비해서 그것들을 미리 알아놔야 한다. 그래야 즉각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다행히 운좋게도 바로 옆에서 나의 딱한 사정을 알은 일본인을 안내하던 현지 가이드 아줌마의 도움으로, 무사히 카오산 로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가이드 아줌마가 그날 관광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방콕으로 돌아가는 길에 돈무앙 공항에 나를 내려다 준 것이다. 나는 거기서 A2 공항버스를 타고 다시 카오산으로 돌아갔다. 정말 그 아줌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정말 고맙다. 공항에서 내려서 '컵쿤 찡찡'을 얼마나 연발했는지 모른다. 돈무앙 공항이 아유타야 가는 길에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이 막판의 사고로 십년 감수했다. 이런 사고를 통해 또 한가지 중요한 걸 터득했다. 일일투어라고 너무 긴장 풀지 말고, 차 번호, 가이드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놓아야 한다는 것. 아유타야의 찬란한 유적지에서 여행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하루였다.
이제 남은건 돈무앙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병역의무가 기다리는 지긋지긋한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돌아가면, 한달 쉬고, 논산훈련소에 들어가야 한다. 정말 생각하기 싫다. 앞으로 2년간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니, 막막할 따름이었다.
마루투어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맡겨둔 매덕스의 짐값을 치루고, 떠날 준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먹은 카우팟 까이와 수박쥬스, 타이 팬케이크(바나나, 쵸코)가 입맛을 땡긴다. 돌아가서 이 맛이 너무 그리울 것이다. 가지고 있던 Hello 태국, 말레이시아 가이드북과 프린트 해간 자료들, 팜플렛 등은 마루투어, 홍익여행사에 모두 기증했다. 내가 가이드 북에 밑줄, 별표 치고 한것들, 내가 전해준 자료들이 부디 여행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빈다.
내가 떠난지 일주일 후에 마루투어는 문을 닫고 영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카오산의 북적이고, 흥청거리는 야경이 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앞으로 2년 2개월간 정들었던 이곳 카오산과도 안녕이다. 2년 2개월 후에 다시 왔을때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A2 공항버스를 기다리는데, 약 1시간 후에나 카오산 정류장에 온 것이다. 밤 10시 20분 경에 버스가 출발했다. 그때 돈무앙 공항으로 가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혼자 버스안에 타니까 상당히 뻘줌했다. 야간이라 차량소통이 원활 했고,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금방 갔다. 11시에 무사히 돈무앙 국제공항에 도착. 비행기를 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타이항공 카운터에 가서 탑승수속 밟고, 공항 출국세 500밧 내고, 출국수속 밟고 한느 시간이 걸리다 보니까 탑승게이트에 간지 몇 분 안돼서 금방 비행기에 탔다. 탑승시간에 딱 맞춰서 간 것이었다. 지난 2001년에 귀국할 때와 시간도 같고, 분위기도 비슷했다. 0시 정각에 인천행 타이항공 여객기(TG 658)는 이 어둠을 가르고 이륙. 한국을 향해 출발했다.
비행기는 한국으로 가는 승객들로 만원이었다. 단체 패키지 투어를 마치고 돌아가는 한국인 관광객들,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가는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네팔, 필리핀 등지의 동남아시안들.. 아마도 부산아시안 게임을 보러가는 모양이었다. 내 바로 옆 좌석에는 오산의 미군기지로 일하러 가는 태국여자 둘이 타고 있었다. 둘다 붉은 악마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자기네들은 오산에 일하러 10번이나 가봤단다. 미군 기지촌에 유흥업소가 많은데, 그럼 혹시? 매춘업쪽? 하지만 외모가 너무 아니어서, 그들은 그런쪽에 종사하지 않을 것 같았다. 동남아 여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유흥업소에 끌려들어가 한국남성들의 성노리갯감으로 전락하고, 돈도 제대로 못받고, 상습적으로 구타 및 가혹행위에 시달리는 등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아 이게 크게 사회 문제가 되고, 나아가 주한 외교관이 우리나라 정부에 크게 항의하는 사태로 이어져서 나라망신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말이다. 그 둘을 보고 있노라니, 다소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부디 제대로 돈이나 받아가서, 고국으로 돌아가 편히 살수 있었으면 한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소위 말하는 '핵퍽탄'이어서 그런데서 일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런쪽이 아니라, 가정부나 음식 만들기, 청소 같은 잡일을 하는 거였으면 한다. 부디 둘 한테 행운이 따르길... 입국할 때 쫓겨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등병의 편지'가 나왔는데, 얼마후면 입대하는 나에게 가슴에 와 닿았다. 그 노래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나왔다. 이제 즐거웠던 날들은 모두 가고, 막막한 순간, 힘겨운 시간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고, 한국가는 비행기 좌석은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큰맘 먹고 떠난 여행. 많은걸 경험하고, 맛나는거 많이 먹고, 재미 있는거 많이 보고 즐기고, 충분히 기분전환하고 재충전을 했다. 건강관리를 제대로 해서 몸살, 독감에만 걸리지 않았다면 더더욱 좋은 여행이 되었을텐데 말이다. 31박 32일, 한 달여의 2002 동남아 3개국(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기행도 여기서 다 끝나간다. 아쉬움을 뒤로한채, 인천행 타이항공 여객기는 밤새 어둠을 뚫고 날아갔다.
* 지출내역 : 940B
이날 사먹은 물, 음료수, 간식거리 : 55밧
저녁식사(카우팟 까이) : 60밧
짜오프라야 강 보트 투어 : 100밧
방콕국제공항 출국세 : 500밧
짐보관료(마루투어 : 3일 * 5밧) : 15밧
A2 공항버스 두 번 : 200밧
동빈이형한테 공중전화 : 10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