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의 꼬사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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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의 꼬사멧

빨간풍선 3 917
여기에 쓰는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딱히 맞는곳이 없는거 같아서요. 필요하면 운영자님이 옮겨주세요.. ^^;;

96년 1월에 꼬사멧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만남의 광장의 노트에 꼬사멧 후기를 남겼었습니다. 물론 당시에 거기에 가보신 분들도 많았겠지만 그렇게 기록으로 남긴건 거의 처음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꼬사멧행의 시초라는 쓸데없는 뿌듯함...ㅋㅋ^^;;
지금은 많이들 가는 곳이지만 그때만 해도 하이텔의 세계로 가는 기차나 책자에 가봤다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 게시판의 글을 읽다보니 그때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것 같네요. 새삼 옛날 생각이 납니다.

당시에 저는 영문판 론리플래닛을 들고 갔었는데, 방콕에서 가까우면서도 한적한 바닷가를 찾고있었습니다. 카오산의 어느 카페에 앉아서 책을 뒤지다보니 꼬사멧이란 곳이 눈에 띄더군요.. 주로 태국 현지인들이 주말 여행으로 많이 가는 곳이며, 그곳의 모래가 돈무앙공항의 재털이에 사용된다는등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래,, 여기다 하는 생각에 카오산의 여행사에서 왕복표를 구입했습니다.

다음날 점심때쯤에 여행사 앞에서 봉고차를 타고 출발... 12명이 꽉차게 탔는데 모두 외국인에 저 혼자 동양인이더군요.. 그런데 이 차가 파타야를 거치더니 모두 내리고 어떤 서양여자와 저 혼자 남더군요.. 론리플래닛에 보니 4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아무리가도 목적지는 안나오고.. 날은 어두워지고.. 점점 주변은 시골스러워지는데.. 덜컥 무서운 생각도 들더군요.. 새우잡이 어선에 팔려가는거 아닌지.. 앞자리의 여자분도 걱정이 되었던지 꼬사멧가는 차가 맞는지 물어보는데 낸들 압니까? 가는데로 가는거죠.. ^^;;(똥배짱~)

7시쯤 되어서 반페에 도착했는데 날은 완전히 캄캄해지고 주변에 사람도 거의 없고, 더구나 섬으로 가는 배도 보이지 않아 불안한 마음에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어떤 큰 배를 타라고 하더군요.. 상당히 큰 배라서 기다리면 다른 사람들이 더 올줄 알았는데, 그냥 저희 둘만 타고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때 정말 불안했습니다. 주위에 사람은 없고 두 사람만 큰 배에 타고 가는데... 바다 한가운데에서 돌메달아 고기밥 만드는건 아닌지... ㅠㅠ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때 배를 타고 갈때 보던 풍경은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봤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는것이었습니다. 그날 보름달이 떴었거든요.. 보름달이 밤바다에 길게 비치는 풍경은 정말 신비롭습니다. 바닷물에 반사되서 반짝이는 달빛을 보고 있노라니 영화속의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거기에 달빚을 부수며 밤바다를 홀로 가로질어 가는 배.. 환상적이었죠.. 그걸 보면서 뱃머리에 둘이 앉아서 꼬사멧에 갈때까지 얘기하면서 갔었죠.

8시쯤 섬에 도착해서 둘이 숙소를 찾으러 다녔는데.. 밤이 늦어서인지 방갈로가 200바트와 400바트이렇게 딱 2개만 남아있었습니다. 근데 방 상태는 거의 비슷했고요.. 당근 200바트 방을 잡고 싶었지만 그게 하나밖에 없으니 누군가는 포기해야죠. 그 여자가 동전을 던지든지 해서 이긴 사람이 200바트 방에 가기로 하자고 하는데.. 제가 과감하게 양보했습니다. 너 가져라.. 나는 다른데 더 찾아보겠다고 말이죠.. 근데 아무리 찾아도 제가 갔던 비치에는 비싼방밖에 없어서 할수 없이 거기에 숙소를 정하고 밥을 먹으러 비치로 나갔습니다.

숙소 바로앞에 바닷가에 테이블을 놓고서 영업을 하는곳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앉으면 테이블에 촛불을 켜줍니다. 분위기 좋습니다...주문을 하고 먹으려는데, 아까 그녀도 밥먹으러 나왔더군요.. 합석해서 같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것저것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때 생각했죠.. 아~ 평소에 영어공부 좀 열심히 해놓을껄.. ㅠㅠ

그녀는 아일랜드 사람이고 휴가차 태국에 왔답니다. 방을 양보해준게 고마웠던지 주소를 적어주면서 언제든지 10년 뒤라도 아일랜드에 오면 찾아오라고 하더군요.. 지금도 그 주소는 가지고 있는데.. 아일랜드에 갈일이 없어서 말이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일랜드나 영국 여자들은 미국여자들하고는 좀 다른거 같습니다. 뭔가 좀 엄마분위기(좀 챙겨주는듯한.. 조금은 한국적인 느낌)가 나는거 같습니다. 미국 배낭여행때 헐리우드에서 만나서 같이 돌아다닌 영국여자도 좀 그랬던거 같거든요. 뭐..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쩄든 당시 꼬사멧은 그렇게 사람이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없어서 심심한 것도 아닌 쉬기에 딱 적당한 곳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많이들하는 해양스포츠(낙하산타기, 바나나보트등..)도 거의 없었고요.. 오직 해수욕과 비치 파라솔 밑에서 책읽는 것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게시판에서 꼬사멧이라는 단어가 보일때마다 그 밤바다와 바닷가의 테이블,
그리고 그 아일랜드 여자가 생각이 납니다. 꼬사멧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둔 나만의 여행지였는데 이제는 자주 들리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마치 나만이 좋아하는 알려지지 않은 노래가 어느날 갑자기 유행하면서 모든 사람의 노래가 되었을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거 같네요..

그래도 그렇게 아름다운 밤바다를 가로질러 꼬사멧에 가본 사람은 저 밖에 없을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다른 게시판에서 이곳으로 이동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꼭 게시판 성격에 맞도록 글을 올려주세요.  ^_^ (2004-01-27 09:46)
3 Comments
레아공주 2004.01.27 11:13  
  오오........ 그러셨군요........ 상상이 되네요...환상적이네요...
2004.01.27 18:19  
  저도 너무 가이드북에만 의존해서 여행하는 것 같아서 <br>
저혼자 이곳저곳 시도해보자 하는 맘은 갖고 있는데 <br>
또 여행가면 그렇게 잘 안되더라구요. <br>
라농만 해도 어떤 여자분이 혼자서 가보곤 <br>
홍익인간에 글 올려 놓으셨던데... <br>
적어도 배낭여행이라면 그런 식의 여행이 더 <br>
기억에 남고 좋을 것 같은데 용기를 내서 <br>
다음여행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여행하고 싶네요. <br>
여편네 2004.02.05 01:54  
  호호호 저랑 같은 해에 꼬사멧에 가셨네여 저두 96년도에 님과 비슷하게 밤에 배타고 사멧에 들어갔는데......정말 쉬기 조~~~은 곳이었죠...그립군요 방갈로의 작은 도마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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