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여행기 4 폴론나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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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여행기 4 폴론나루와

랑카맨 0 1052
*폴론나루와

서기 10세기말 남인도의 쵸라왕조에 의해서 아누라다푸라가 파괴된 이후 건설 된 스리랑카의 두 번째 수도로 전성기 때에는 미얀마와 태국에서 승려가 찾아올 정도로 불교도시로 번성했다.

어제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눈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아프던 눈이 하루 자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아팠다. 마치 눈에서 무엇이 이러저리 굴러니는 듯 했다.
뻘겋게 핏줄이 선 오른쪽 눈은 이제 투명막으로 가린 것처럼 잘 보이지도 않았다.

불교 최초 전래지인 미힌탈레로 가는 것을 포기해야했다.
다시 콜롬보로 돌아가서 병원에 갈까 아니면 캔디로 가서 병원에 갈까....내 눈을 볼 수 있는 병원에 가는게 제일 급선무일 정도로 눈의 상태가 안좋았다.

지도를 내 놓고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미힌탈레는 포기하고 일단 폴론나루와로 가서 눈이 계속 아프면 바로 캔디로 가는 것으로 하고 폴론나루와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 역시나 우리의 뚝뚝기사 마치 어제저녁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반갑게 맞아준다. 그러나 무시하고 생각해 놓은 호텔로 향했다. 그런데 정말 허접한 방에 가격만 비싸고 맘에 들지 않아서 그냥 나왔다.

나오는데 아까 그 뚝뚝기사 기다리고 있다가 자기가 아는 곳으로 가잔다. 또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또 별로다.
 땡볕에 배낭을 메고 아픈 눈을 참아가면서 숙소 찾기를 1시간 그 때까지 우리의 뚝뚝 기사 줄기차게 나를 따라 다녔다. (그 놀라운 프로 정신이란....)

결국 걸어서 가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는 호텔로 그 뚝뚝을 타고 가기로 했다. 20루피에..

그러나 그 호텔은 깨끗하기는 한데 가격이 너무 비쌌다. 45불...허걱...

뚝뚝기사
"야, 내가 비싸다고 했지"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싸고 깨끗한 방?"
"에어컨 필요없어?"
 하길래

정말 힘들고 피곤한 마음에 그 뚝뚝기사에게 난 깨끗한 방만 원한다고 했더니
'오케이' 하더니
한적한 시골길로 날 데리고 갔다. 야자나무 우거진 동네에 슬라브식으로 지어진 깔끔한 숙소였다. 물론 에어컨 없고, 핫샤워 안되는 방이다.

거의 2시간 가까이 나를 쫓아다닌 뚝뚝기사의 프로정신에 감탄하고 고맙기도 해서 100루피를 주었더니 놀라는 표정이었다.
지도를 놓고 숙소 위치를 물어보고 확인을 하니 문제는 이 곳 숙소에서유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짐을 풀고 마당에 밀린 빨래를 널고 있는데 현지인이 와서 우리말로 분명 한국말로
"한국사람이세요?"
하는 것이었다.
어라? 놀란 마음에
"예, 한국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
하니까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서 3년 있다 왔어요"
하는 거였다.
스리랑카에 와서 한국인은커녕 동양인도 못만났는데 이렇게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니 참으로 반가웠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 내 눈을 보여주면서 지금 눈이 아픈데 내일 아침에도 이러면 바로 캔디로 갈거라고 했더니 이 곳에도 병원이 있고 의사가 아주 잘해준단다.
'아쥬악 병원'
그래서 나는 안과에 가야 한다고 했더니 안과도 보니까 걱정말고 지금 가보란다.

그러면서 지도를 보고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또한 사람들에게 병원이름 말하면 다 알려줄테니 찾는 것은 걱정마라고 했다.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가서 병원을 찾아 갔는데 상당히 큰 병원인데도 의사는 퇴근하고 없단다. 마침 응급환자가 앰브런스에 실려와서 소란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내 눈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병원을 나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한국사람이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또 뭐야 하면서
"예 맞아요"
하고 보니 현지인이 역시 자기도 한국에서 일을 하고 왔다면서 지금은 시간이 늦어서 (5시 조금 넘었나?)의사가 퇴근하고 없는데 길 앞에 또 병원이 있으니까 자기가 안내하겠단다.

지금의 큰 병원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국가에서 하는 의료원 같은 곳이고 길 건너편은 개인병원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곳도 의사는 퇴근하고 없었다.

그러자 그 현지인이 자기가 의사집을 아니까 그 의사집까지 나를 데려다 주겠다고 하는게 아닌가. 정말 고마웠다. 그렇지만 의사집에 간다고 치료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정말 고맙지만 내일 다시 병원에 온다고 말하고는 헤어졌다.

이렇게 한국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돌아온 현지인들을 세 명 정도 만났다.
모두 한국에 대해서 아주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사람들 정말 좋다고 말을 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 날 일찍 병원에 갔는데도 접수를 기다리는 사람줄이 마당 밖에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직원인 듯한 사람에게 눈이 아파서 왔다고 하니 접수를 하고 기다리란다. 기다리는데만 한나절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유적지를 보고 다시 오기로 하고 가까운 유적지를 보고 점심을 먹고 다시 병원에 갔다. 아까보다는 줄이 줄었지만 역시나 사람이 많다.

그래도 다시 올 수는 없어서 다시 직원인 듯한 사람에게 말을 하니 한가한 진료실로 안내를 해주었다. 이거 접수를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망설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그냥 진료실로 들어가서는 의사에게 무턱대고 내 아픈 눈을 가리키면서 눈이 아프다고 했다.
"마이 아이 허트"
여자 의사였는데 그냥 들여다 보더니 자기는 잘 모르겠는지 옆에 있는 남자의사를 부른다.
남자의사가 손전등으로 눈을 까고 비쳐보더니 손으로 눈을 비비는 시늉을 하면서 비볐냐고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영어로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알아 들을 수가 없어서 의사만 쳐다보니 다시 차근차근 말해준다.

약국에 가서 약을 사서 하루에 세 번 넣으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처방전을 적어주었는데 친절하게 약값도 105루피라고 적어 주었다.

내가 병원에 가서 한 영어는 위에 쓴 한마디 뿐이었다.
그럼에도 정말 친절한 의사가 진료비도 받지 않고 진료를 하고 처방전을 적어 주었다.
아마 스리랑카말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일 것 같다.

(처방전대로 약을 사서 눈에 넣으니 저녁부터는 신기하게도 눈이 가라앉고 다음날부터 편하게 잘 다닐 수 있었다. 물론 시력이 정상적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약 1주일 정도 걸렸다.)

이렇게 해서 다시 정상적인 몸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폴론나루와 유적지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서 역시 자전거나 뚝뚝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숙소에서 시내나가는 버스를 탔는데 시내에서 내리지 못하는 바람에 북쪽 유적지 끝부분에서 내리게 되었다. 오히려 잘 되었다 싶어서 끝에서부터 걸어 내려 오면서 유적지를 하나하나 보게 되었다.

유적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가이드북이나 다른 곳을 보면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고 또 내가 설명을 그렇게 잘 하지도 못하고 솔직히 말하면 유적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하게 쓰기 싫어서이다.
(이해하시기를...)

이렇게 폴론나루와를 보고 시기리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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