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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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2

필리핀 3 964
12월 20일 흐림
아침에 일어나니 간밤의 음주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린다. 한국에서 부탁받은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카오산의 한국업소 동대문에 들렸다가 그곳 사장님과 새벽까지 술을 마신 후유증이다.
동대문은 1층은 식당, 2층은 바를 운영하는 곳으로 한국인 여행자뿐만 아니라 현지인과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동대문의 메뉴 중 숯불에 구워주는 옥돔구이와 새우구이는 정말 별미이다.
타이레놀을 한 알 삼키고 시계를 보니 겨우 7시다. 따나오 거리의 노점 죽집에 가서 죽을 한 그릇 사먹는다. 두유도 한 병 마신다. 다시 숙소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시간을 보내다 마사지를 받으러 짜이디 마사지로 간다. 내가 첫 손님이다.
1시간 정도 마사지를 받고나자 몸이 좀 풀리는 것 같다. 경찰서 옆 인터넷 카페에서 인터넷을 한다. 인터넷을 하다보니 다시 배가 고프다.
태사랑(태국 배낭여행 전문 사이트) 운영자 요술왕자님이 추천한 소갈비국수를 먹으러 파아팃 거리로 간다. 애걔, 양이 너무 적다. 공기밥까지 한 그릇 시켜 먹었는데도 양이 차지 않는다. 결국 옆집에 가서 다시 한 그릇 먹는다. 엊저녁에도 족발 덮밥과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었다. 오늘도 하루 종일 5끼 이상은 먹을 것 같다.
태국 음식의 양은 정말 적다. 그런데 가끔 유심히 살펴보면 현지인과 외국인에게 주는 양이 다른 곳이 종종 있다. 그런 차별이 점차적으로 여행자들의 발길을 끊게 만들 것이라는 걸 모르고 하는 행동일까? 아님 이제 오지 말라는 뜻의 완곡된 표현인가?
정오 무렵,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를 나섰다. 훨람퐁 역으로 가서 오후 3시 발 핫야이 행 기차를 타야 한다.
핫야이는 태국 최남단에 있는 도시이다. 그러나 핫야이가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핫야이에서 팍바라라는 항구로 이동한 후, 팍바라에서 다시 배를 타고 꼬 리페(‘꼬’는 태국어로 ‘섬’이라는 뜻이므로 꼬 리페=리페 섬)로 이동해야 한다.
방콕에서 핫야이까지만 17시간이 걸린다. 핫야이에서 팍바라와 팍바라에서 꼬 리페까지는 또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아마 내일 늦게나 꼬 리페에 도착할 것 같다.
내가 꼬 리페에 가기로 작정한 것은 한국을 떠나기 직전 인터넷에서 발견한 어느 여행자의 여행기 때문이다. 그 여행자는 엽서 판매대에 꽂혀 있는 꼬 리페 해변을 찍은 엽서 한 장을 보고 꼬 리페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팍바라까지 갔다가 배 시간이 맞지 않아서 꼬 리페에는 가지 못하고 주변의 다른 섬을 방문하고 돌아온다.
혼자만의 해변이 아직 남아 있는 섬,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미련이 많은 섬, 라스트 파라다이스, 꼬 리페.
여행기를 읽고나자 꼬 리페가 구미에 당겼다. 엽서 속의 해변이 얼마나 멋지기에 그 여행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아 버렸을까. 내 눈으로 그곳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훨람퐁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가 좀체 오질 않는다. 기차는 오후 3시 출발이다.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데 1시간을 넘게 기다려도 버스가 오질 않는다. 더 이상 기다리는 걸 포기하고 막 택시를 잡으려는데 버스가 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수많은 버스들이 내뿜는 매연을 고스란히 들이마셔야 했다. 현지인들은 아예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고 교통경찰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방콕이다. 방콕의 매연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여행 초장부터 톡톡히 맛을 본 셈이다.
그 지독한 매연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어코 버스를 타는 이유는 현지인들의 평범한 삶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이다. 택시를 타면 편하기는 하지만, 여행 온 이유가 반감된다. 현지에서 현지인처럼 생활해 보기, 이것이 내가 여행을 하는 주목적 중 하나이다.
여행을 와서도 한국에서처럼 편리함을 추구하고 한국 음식만 찾는다면 여행 온 의미가 없어진다. 그럴 거면 그냥 한국에 있는 게 돈도 절약하고 훨씬 편하다. 여행을 왔으면 좀 불편해도 현지인의 생활 문화에 젖어보는 것이 그 나라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다.
현지인의 생활을 파악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무작정 걷는 것이다. 방콕에 처음 왔을 때, 수쿰윗 거리에서 훨람퐁 역을 거쳐 카오산까지 걸어온 적이 있었다. 시간이 엄청 걸리고 몸도 상당히 피곤했지만 그렇게 한번 걷고 나니 방향 감각이며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딘가로 떠나고 어딘가에서 떠나온 사람들로 훨람퐁 역은 분주했다. 역에 오면 항상 마음이 설렌다. 내 마음도 저 사람들과 섞여 비누방울처럼 둥둥 어딘가로 떠날 것만 같기 때문이다.
매점에 들러 장거리 기차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샀다.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으로 먹을 빵과 중간에 간식으로 먹을 스낵과 과일, 음료수, 그리고 맥주 한 캔.
플랫폼에는 이미 기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기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자 교외로 소풍 가는 아이처럼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나는 버스 여행보다 기차 여행을 좋아한다. 버스는 ‘여행’보다 ‘이동’의 느낌이 강한 교통수단이다. 버스를 타면 어디론가 짐짝처럼 실려 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밤 버스를 타도 전혀 잠을 자지 못하는 습관도 버스 여행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에 비해 기차는 여행의 낭만과 묘미를 만끽하게 해준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들판과 먼 산, 그 산 위에 걸려 있는 흰 구름,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 그리고 짧은 눈인사처럼 스쳐 지나는 간이역, 그 간이역을 지키고 서 있는 키 작은 들꽃들, 그런 것들과 동행하며 덜컹덜컹 어디론가 한없이 실려 가고 있는 나, 떠나온 곳도 돌아올 것도 이미 아득해져 버린 여정…….
덜컹, 하는 흔들림과 함께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드디어 출발이다. 이제 또 어떤 새로운 세계가 나는 맞아줄 것인가. 눈앞에 펼쳐질 낯선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흥분으로 온몸이 짜릿해졌다.
나는 내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하고 아늑한 좌석 등받이에 느긋하게 기댄 채 천천히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낡은 건물, 낯선 이정표, 이름 모를 풀 한 포기조차도 유난히 새롭고 신선했다. 세상의 모든 여행자여, 행복하라!

3 Comments
요술왕자 2004.02.08 10:59  
  주영씨에게 전해주세요 <br>
<a href=http://www.dcinside.com/kodak/dx6440.htm target=_blank>http://www.dcinside.com/kodak/dx6440.htm</a>
myway 2004.02.08 14:52  
  글이 참 와닿네요.. 글 속에서 배어나는 사람냄새는 꾸밀려 꾸밀 수 없는 것이겠지요..! 앞으로의 글들 기대할께요.. 힘내세요..
할리 2012.05.23 09:29  
글을 정말 맛깔나게 잘 쓰셔서 읽고 있는 저 조차도 기차를 타고 가는듯한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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