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벙이 부부 태국+캄보디아 가다 (셋째 날)
3/30(화) 셋째 날 아란국경에 황토먼지
06:00.
못 먹어서 탈, 먹어도 탈이나는 땅콩의 컨디션을 어찌 조절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준비해온 소화제를 6알이나 밤새 물 말아서 다 먹어버린 왕성한 식욕이다. 창문을 열자 밤새에도 식지 못한 더위, 비켜갈 수 없는 태국의 향기가 왈깍 몰려 들어온다.
잠이 덜 깬 느슨한 골목에는 검정개 한 마리가 숨을 헐떡이며 누워있다.
“여보, 이리좀와 봐. 저 놈을 끓는 물에 삶아서 된장 좀 바르면... 당신 기운 좀 날려나”
아침부터 괴팍한 식욕이 솟는다.
두 밤짜리 호텔도 이제 끝이다. 간단히 배낭을 꾸리고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어제 정탐해둔 음식을 집중 공략할 참이다. 아짐씨도 차츰 적응이 되어 가는지 구운 토스트와 과일로 제법 입을 댔다.
꺼벙이 원래 잡식성이 아니었으나, 이번 여행을 피부로 느껴보려는 마인드 콘트롤 덕분에 잡식성이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조식시간을 30분이라도 당겨주면 좋으련만, 마음만 바쁘다. 일일이 뱃속 비축고에 챙겨 넣지도 못한 채 배낭을 가지고 나와 체그아웃를 한다. 20b짜리 물 두병 값을 지불했다.
스위트룸이여 안녕. 기념으로 찰깍.
VIP버스 약속시간, 7:10. 픽업장소까지 뛰었다.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내리쪼이는 더위는 아짐씨의 걸음을 좀처럼 놓아주질 않는다. 대한민국 아줌마의 간도 점차 단단해 가는 모양이다. 정확히 5분 지각이다.
H 여행사는 삐꼼히 열린 대문에 사슬이 채워져 있다. 10분을 기다려도 아무 인기척이 없다.
아짐씨는 절치부심 법석을 떤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작년 브리즈번 에서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이다.
한국시간과 현지시간을 구분하여 사용하던 2개의 손목시계 밴드가 절체되는 통에 픽업버스 시간에 10분 정도 늦었다. 야박하게 가버린 버스를 원망하며 거금 11만원짜리 택시로 공항까지 이동한 웃지 못 할 추억이었다.
주변을 머뭇거리던 태국인 택시기사와의 의사소통도 무소식, 한참만에야 나타난 H 여행사 한국인 도우미(그 역시 여행중)의 중재로 픽업 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무려 30분이 지난 뒤였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안도의 한 숨이다. 알고보니 저쪽에 몰려있던 코큰이 무리들도 동행이었다.
무릇, 장거리 이동시에는 좋은 자리를 선점해야한다. 잽싼 행동으로 꺼벙이일행은 2층 로얄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또 시간을 죽이고, VIP버스는 8:20분에야 발차했다.
조인 여행사의 헝클어진 시간개념을 탓하고 싶진 않다. 다만 호텔 조식을 제대로 못 챙겨먹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H 여행사 꽁지머리 캡틴은 이 사실을 알고 계신지.(된장 맛있어슈)
역시 내가 찍은 좌석은 일품이었다.
달리는 차장의 전면과 측면을 자유롭게 관망할 수 있는, 운전자 바로 머리 윗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다. 자리가 편안한지 내 아짐은 또, 잠에 열중이다. 내일부터 있을 앙콜왓 관련 내용을 훑어 보고 짬짬이 메모도 했다.(8일 동안의 메모가 수첩 22장)
10:30. 버스도 쉬고 사람도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해야 한다.
휴게소 내 침침한 편의점은 우리 2층버스 손님뿐이다. 만국적인 콜라의 맛은 그렇다 치더라도 생김새가 같은 콘 스타일 아이스크림 맛은 우리제품과 별반 차이가 없다.
잘 생긴 이층버스와 사진도 한 장 박았다. 일본인 청년 2명을 제외하고는 역시 우리와는 외모가 다른 사람들 뿐이다.
그래도 동행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 포섭대상 1호로 일본 청년 2명을 눈 도장 찍었다.
‘아란’을 향해 동남쪽으로 달리는 차창에는 너른 평야가 자꾸만 이어졌다.
어린 조림수(造林樹)가 성냥개비처럼 반듯하게 심겨져 있고 아랫도리로는 바람이 드나들만한 공간이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다. 산과 굴곡에 익숙한 내 눈에 그림처럼 비쳐지는 탁 트인 평원은 해방감이다. 보이는 대로 상상하고 유추하며 이국적인 풍경을 차곡차곡 적재해 간다.
때로는 역사속으로, 현실의 더운 기후에 부대끼며 마냥 어린마음으로 돌아간다.
“아란~”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어디서 연유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말에서 풍기는 어감이 아주 애뜻하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역사의 어느 정점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절한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상상이 줄곧 머릿속을 지배해왔다. 그 무의식이 내 발길을 이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국경이라는 인위적인 경계선을 넘는다는 통과의례와 천년 역사의 현장을 소급해 간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곧게 뻗은 편도 일차선 도로에 작은 물체가 가물가물 나타났다 스쳐 지나간다. 신기루는 아닐까.
서행차량을 추월해가는 모습이 마치 신기루를 따라 가는 듯 중앙선을 넘나드는 일이 잦았다.
분명히 맞은편 차량이 근접해 오고 있음에도 서슴없이 중앙선을 넘었다.
맞은 편 차량은 아무내색도 없이 넓은 노견으로 멀리 비켜지나 갔다. 선을 넘는 위반자체를 호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이면에 숨은 상대방의 거친 행동에도 우회 할 줄 아는 마음이 살갑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일정 중 큰소리는 듣지 못한 것 같다.(입국소의 얼굴 값 한 아줌마만 빼고)
12:20. 국경 전 약4k 전방 휴게소 ‘아란~’
2층버스는 한적한 휴게소에 정차했다. 운전기사, 차장아줌마는 깍듯하게 두 손님을 맞이했다.
‘사복 경찰인가’국경이라는 생소함이 주는 발상이었다.
그들은 영어로 한참을 이야기 했다. 손에 들어 보이는 종이는 분명히 비자신청서였다.
‘그래, 느그들이 항간에 떠도는 삐끼(비자대행으로 1200b)들 이었구나’
“내릴 준비해”
“이 이는, 어떻게 할려구”아짐씨는 쫄아 있었다.
차안의 모든 사람들이 삐끼를 따라 내렸다.
잠시 망설이다 배낭을 들고 내렸다. 아마 여기가 그들의 아지트인 듯, 휴게소 탁자에 미리 비치해둔 캄보디아 비자신청서를 나누어주며 쓰라고 했다.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200b 대행료도 문제지만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지체한다는 것이었다.
미리 눈도장 찍어 둔 일본청년들 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보더(border)는 금방이다. 툭툭 타고 같이 가자. 이곳에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오 케이”따라 나설 듯 하던 그들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짧은 일어와 영어를 썩어가며 설득한 꺼벙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설명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젊은 놈들이 의심은 많아 가지고’(다시 앙콜왓에서 만난 그들, 밤 9시에 시엠렙에 도착 했다고 한다.)
조직을 탈출하는 묘한 심정으로 꺼벙이가 먼저 배낭을 메고 삐끼들의 눈을 피해 휴게소 뒤로 나왔다. 이어 빈 몸인 아짐씨를 오라고 손짓했다.
바로 앞 도로에서 50b 짜리 툭툭을 타고 국경으로 탈출(약10분) 하는데 성공했다.
13:00. 탈출의 기쁨도 잠시, 국경시장을 지나 툭툭에서 내리자마자 삐끼 한 명이 바짝 달라붙었다.
차근차근 눈치 살피면서 통빡으로 찾아가면 쉽게 갈 수 있으리라던 계산에 혼선이 왔다.
열댓 살 먹음직한 녀석은 쉬지 떠들어 댔다.
타국 언어에 청각장애자인 꺼벙이는 점차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기온과 북적이는 사람들의 대화가 난무했다. 철조망과 통문 내지는 철문을 예상했던 국경의 상상은 예상을 빗나갔다.
꺼벙이의 고정관념은 무지의 소치였다.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곳은 태국출국소, 영어간판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꺼벙이는 이곳에서 비자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시력조절을 위해 안경을 벗었다. 공백을 메워간다.
여기가 맞나?. 안경을 쓰고 주위를 살핀다. 입구에 앉은 정복 차림의 직원에게 물어 본다. 패스포트를 가지고 창구로 가라고 한다. 다시 2명 분의 신청서를 마무리 했다.
아짐씨는 짐을 맡아 주변 구경에 여념이 없다.
여권과 함께 창구에 주었더니 여권만 펼쳐 보는지 신청서는 다시 돌려주었다.
‘제도가 바뀌었나. 필요 없으면 말고’
젠장. 태국 출국소에 캄보디아 비자신청서가 왠 말인가!
출국소를 나오자 네명의 삐끼가 아우성치며 출몰했다. 삐끼여 비켜라. 대담하게 나갔지만 땀은 온몸을 타고 흘렀다.
아짐씨는 벌집 쑤셔놓은 것 같은 순간에도 어디서 새로운 아군을 모시고 왔다.
대한민국 아줌마는 위기에 강했다. 이들은 우리일정에 큰 힘이 되어준 송&조 아가씨들이었다.
송&조 그네들도 일행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안녕~ 하세요”
삐끼들의 호위(?)를 받으며 비자발급소 이르자 반듯한 스포츠 머리의 남자가 일어나 굽신 인사를 해왔다. 순간 이 자(者)도 삐끼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흐르는 땀과 더위로 인해 포기했다.
사진과 여권을 맡기고 서명만 하니 알아서 통과다. 삐끼는 1200b을 요구했지만 단호하게 1100b 으로 짤랐다. 시엠렙 행 택시는 1200b까지 흥정을 했다.
카지노 건물을 거쳐 입국신고를 마치고, 포이펫 주차장으로 가는 동안 송&조는 역시 장기배낭 경력자 답게 당황하지 않고 삐끼들과 흥정을 해 내려갔다.
900b, 끈질기게 따라붙던 야구모자 운전기사와 합의를 보았다.
처음부터 따라 붙었던 삐끼에게 20b 수고비를 지불한 뒤에야 무사히 출발 할 수 있었다.
13:40경. 캄보디아 입성은 땀의 결과였다. 길은 순탄치 않다. 황토 먼지와 깨진 아스팔트, 움푹파인 도로를 거침없이 내 달리는 무적 택시는 사막의 랠리 수준이었다.
스물여덜 총각 야구모자는 싱긍싱글 웃음을 달고 땀이 나는 등을 들썩들썩거리며 잘도 달렸다.
너른 평원에는 간간히 나무가 보일 뿐 벌건 흙과 메마른 논바닥만 보였다.
원두막처럼 아랫도리가 붕뜬 건물만 드문드문 나타나고 개울은 흔적만 있을 뿐 바닥은 거북이등처럼 갈라져 있다. 큰 트럭 이라도 지나가면 황토먼지는 폭풍을 일으키듯 시야를 가려온다.
6-70년대 내 고향도 그랬었지. 비만 오면 골이 패이는 신작로는 자동차가 지날 때면 물이 튀기고, 더운 여름이면 뿌연 먼지가 짓무른 안개처럼 펄펄 날리는 고향길이 있었다.
추억을 들추는 내 유년의 환영을 보는 듯 했다.
야구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함이 너무 아쉽다.
그는 중간 몇 군데에서 차를 세우더니 거만하게 의자에 앉은 수문장에게 달러를 건넸다.
아마 일종의 통행세를 내는 모양이었다. 무적택시에게도 노상에서 파는 말통 프라스틱에 든 밥을 멕이고 물도 부어준다.
이 무서운 랠리수준의 차안에서도 고개를 떨구며 꿈을 꾸는 세 여성들의 담력은 어디서 연유함인가. 3-4번의 배낭여행과 이번만도 2달째라는 송&조는 가히 대단한 여인들이다. 이 길을 생태우로 이동하려고 했던 철각들이라니.
5:30 경. 지나온 마을과 풍경에 비하면 시엠렙은 화려함의 극치다. 황토먼지는 여전하지만 군데 군데 위엄을 자랑하는 호텔건물은 정말 관광도시 다운 면모였다.
야구모자는 칼텍스 주유소를 지나 G.H 게스트 하우스에 내려주었다. 황토먼지와 짝이된 더위는 더이상의 배회를 허락치 않았다.
어설픈 조식에 점심 끼니도 건너 뛴 것을 모르고 지나온 강행이었다.
줄곧 컨디션 난조를 보이던 아짐씨의 상태를 보니 의외로 좋았다. 어제의 영화(榮華), 호텔의 기억을 털고 십 달러짜리 에어컨룸에 들었다.
김치+ 김치볶음 밥은 여정의 피로를 녹여주는 피로 회복제였다.
이틀간의 앙콜왓 일정을 송&조의 일행과 합류하기로 했다.
해가 떨어져도 열기는 살아있다. 밤길,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보았다. 어두운 밤에도 외지인들을 어찌나 잘 알아 보는지 어김없이 모토를 들이 댄다.
“어디 갑니까?”
“밤 마실 갑니다.”
딱딱한 침대의 짓무른 밤은 오는지 가는지, 구별 할 수가 없다.
달리는 차안에서 10시간 내내 고정 불침번을 자원한 노병이 무슨 힘으로 밤을 이길 수 있으리요.
천년, 훨씬 이전의 역사를 넘나들며 타임머신을 타고 간다.
-거꾸로 보는 꺼벙이 세상-
06:00.
못 먹어서 탈, 먹어도 탈이나는 땅콩의 컨디션을 어찌 조절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준비해온 소화제를 6알이나 밤새 물 말아서 다 먹어버린 왕성한 식욕이다. 창문을 열자 밤새에도 식지 못한 더위, 비켜갈 수 없는 태국의 향기가 왈깍 몰려 들어온다.
잠이 덜 깬 느슨한 골목에는 검정개 한 마리가 숨을 헐떡이며 누워있다.
“여보, 이리좀와 봐. 저 놈을 끓는 물에 삶아서 된장 좀 바르면... 당신 기운 좀 날려나”
아침부터 괴팍한 식욕이 솟는다.
두 밤짜리 호텔도 이제 끝이다. 간단히 배낭을 꾸리고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어제 정탐해둔 음식을 집중 공략할 참이다. 아짐씨도 차츰 적응이 되어 가는지 구운 토스트와 과일로 제법 입을 댔다.
꺼벙이 원래 잡식성이 아니었으나, 이번 여행을 피부로 느껴보려는 마인드 콘트롤 덕분에 잡식성이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조식시간을 30분이라도 당겨주면 좋으련만, 마음만 바쁘다. 일일이 뱃속 비축고에 챙겨 넣지도 못한 채 배낭을 가지고 나와 체그아웃를 한다. 20b짜리 물 두병 값을 지불했다.
스위트룸이여 안녕. 기념으로 찰깍.
VIP버스 약속시간, 7:10. 픽업장소까지 뛰었다.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내리쪼이는 더위는 아짐씨의 걸음을 좀처럼 놓아주질 않는다. 대한민국 아줌마의 간도 점차 단단해 가는 모양이다. 정확히 5분 지각이다.
H 여행사는 삐꼼히 열린 대문에 사슬이 채워져 있다. 10분을 기다려도 아무 인기척이 없다.
아짐씨는 절치부심 법석을 떤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작년 브리즈번 에서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이다.
한국시간과 현지시간을 구분하여 사용하던 2개의 손목시계 밴드가 절체되는 통에 픽업버스 시간에 10분 정도 늦었다. 야박하게 가버린 버스를 원망하며 거금 11만원짜리 택시로 공항까지 이동한 웃지 못 할 추억이었다.
주변을 머뭇거리던 태국인 택시기사와의 의사소통도 무소식, 한참만에야 나타난 H 여행사 한국인 도우미(그 역시 여행중)의 중재로 픽업 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무려 30분이 지난 뒤였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안도의 한 숨이다. 알고보니 저쪽에 몰려있던 코큰이 무리들도 동행이었다.
무릇, 장거리 이동시에는 좋은 자리를 선점해야한다. 잽싼 행동으로 꺼벙이일행은 2층 로얄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또 시간을 죽이고, VIP버스는 8:20분에야 발차했다.
조인 여행사의 헝클어진 시간개념을 탓하고 싶진 않다. 다만 호텔 조식을 제대로 못 챙겨먹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H 여행사 꽁지머리 캡틴은 이 사실을 알고 계신지.(된장 맛있어슈)
역시 내가 찍은 좌석은 일품이었다.
달리는 차장의 전면과 측면을 자유롭게 관망할 수 있는, 운전자 바로 머리 윗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다. 자리가 편안한지 내 아짐은 또, 잠에 열중이다. 내일부터 있을 앙콜왓 관련 내용을 훑어 보고 짬짬이 메모도 했다.(8일 동안의 메모가 수첩 22장)
10:30. 버스도 쉬고 사람도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해야 한다.
휴게소 내 침침한 편의점은 우리 2층버스 손님뿐이다. 만국적인 콜라의 맛은 그렇다 치더라도 생김새가 같은 콘 스타일 아이스크림 맛은 우리제품과 별반 차이가 없다.
잘 생긴 이층버스와 사진도 한 장 박았다. 일본인 청년 2명을 제외하고는 역시 우리와는 외모가 다른 사람들 뿐이다.
그래도 동행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 포섭대상 1호로 일본 청년 2명을 눈 도장 찍었다.
‘아란’을 향해 동남쪽으로 달리는 차창에는 너른 평야가 자꾸만 이어졌다.
어린 조림수(造林樹)가 성냥개비처럼 반듯하게 심겨져 있고 아랫도리로는 바람이 드나들만한 공간이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다. 산과 굴곡에 익숙한 내 눈에 그림처럼 비쳐지는 탁 트인 평원은 해방감이다. 보이는 대로 상상하고 유추하며 이국적인 풍경을 차곡차곡 적재해 간다.
때로는 역사속으로, 현실의 더운 기후에 부대끼며 마냥 어린마음으로 돌아간다.
“아란~”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어디서 연유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말에서 풍기는 어감이 아주 애뜻하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역사의 어느 정점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절한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상상이 줄곧 머릿속을 지배해왔다. 그 무의식이 내 발길을 이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국경이라는 인위적인 경계선을 넘는다는 통과의례와 천년 역사의 현장을 소급해 간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곧게 뻗은 편도 일차선 도로에 작은 물체가 가물가물 나타났다 스쳐 지나간다. 신기루는 아닐까.
서행차량을 추월해가는 모습이 마치 신기루를 따라 가는 듯 중앙선을 넘나드는 일이 잦았다.
분명히 맞은편 차량이 근접해 오고 있음에도 서슴없이 중앙선을 넘었다.
맞은 편 차량은 아무내색도 없이 넓은 노견으로 멀리 비켜지나 갔다. 선을 넘는 위반자체를 호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이면에 숨은 상대방의 거친 행동에도 우회 할 줄 아는 마음이 살갑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일정 중 큰소리는 듣지 못한 것 같다.(입국소의 얼굴 값 한 아줌마만 빼고)
12:20. 국경 전 약4k 전방 휴게소 ‘아란~’
2층버스는 한적한 휴게소에 정차했다. 운전기사, 차장아줌마는 깍듯하게 두 손님을 맞이했다.
‘사복 경찰인가’국경이라는 생소함이 주는 발상이었다.
그들은 영어로 한참을 이야기 했다. 손에 들어 보이는 종이는 분명히 비자신청서였다.
‘그래, 느그들이 항간에 떠도는 삐끼(비자대행으로 1200b)들 이었구나’
“내릴 준비해”
“이 이는, 어떻게 할려구”아짐씨는 쫄아 있었다.
차안의 모든 사람들이 삐끼를 따라 내렸다.
잠시 망설이다 배낭을 들고 내렸다. 아마 여기가 그들의 아지트인 듯, 휴게소 탁자에 미리 비치해둔 캄보디아 비자신청서를 나누어주며 쓰라고 했다.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200b 대행료도 문제지만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지체한다는 것이었다.
미리 눈도장 찍어 둔 일본청년들 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보더(border)는 금방이다. 툭툭 타고 같이 가자. 이곳에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오 케이”따라 나설 듯 하던 그들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짧은 일어와 영어를 썩어가며 설득한 꺼벙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설명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젊은 놈들이 의심은 많아 가지고’(다시 앙콜왓에서 만난 그들, 밤 9시에 시엠렙에 도착 했다고 한다.)
조직을 탈출하는 묘한 심정으로 꺼벙이가 먼저 배낭을 메고 삐끼들의 눈을 피해 휴게소 뒤로 나왔다. 이어 빈 몸인 아짐씨를 오라고 손짓했다.
바로 앞 도로에서 50b 짜리 툭툭을 타고 국경으로 탈출(약10분) 하는데 성공했다.
13:00. 탈출의 기쁨도 잠시, 국경시장을 지나 툭툭에서 내리자마자 삐끼 한 명이 바짝 달라붙었다.
차근차근 눈치 살피면서 통빡으로 찾아가면 쉽게 갈 수 있으리라던 계산에 혼선이 왔다.
열댓 살 먹음직한 녀석은 쉬지 떠들어 댔다.
타국 언어에 청각장애자인 꺼벙이는 점차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기온과 북적이는 사람들의 대화가 난무했다. 철조망과 통문 내지는 철문을 예상했던 국경의 상상은 예상을 빗나갔다.
꺼벙이의 고정관념은 무지의 소치였다.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곳은 태국출국소, 영어간판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꺼벙이는 이곳에서 비자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시력조절을 위해 안경을 벗었다. 공백을 메워간다.
여기가 맞나?. 안경을 쓰고 주위를 살핀다. 입구에 앉은 정복 차림의 직원에게 물어 본다. 패스포트를 가지고 창구로 가라고 한다. 다시 2명 분의 신청서를 마무리 했다.
아짐씨는 짐을 맡아 주변 구경에 여념이 없다.
여권과 함께 창구에 주었더니 여권만 펼쳐 보는지 신청서는 다시 돌려주었다.
‘제도가 바뀌었나. 필요 없으면 말고’
젠장. 태국 출국소에 캄보디아 비자신청서가 왠 말인가!
출국소를 나오자 네명의 삐끼가 아우성치며 출몰했다. 삐끼여 비켜라. 대담하게 나갔지만 땀은 온몸을 타고 흘렀다.
아짐씨는 벌집 쑤셔놓은 것 같은 순간에도 어디서 새로운 아군을 모시고 왔다.
대한민국 아줌마는 위기에 강했다. 이들은 우리일정에 큰 힘이 되어준 송&조 아가씨들이었다.
송&조 그네들도 일행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안녕~ 하세요”
삐끼들의 호위(?)를 받으며 비자발급소 이르자 반듯한 스포츠 머리의 남자가 일어나 굽신 인사를 해왔다. 순간 이 자(者)도 삐끼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흐르는 땀과 더위로 인해 포기했다.
사진과 여권을 맡기고 서명만 하니 알아서 통과다. 삐끼는 1200b을 요구했지만 단호하게 1100b 으로 짤랐다. 시엠렙 행 택시는 1200b까지 흥정을 했다.
카지노 건물을 거쳐 입국신고를 마치고, 포이펫 주차장으로 가는 동안 송&조는 역시 장기배낭 경력자 답게 당황하지 않고 삐끼들과 흥정을 해 내려갔다.
900b, 끈질기게 따라붙던 야구모자 운전기사와 합의를 보았다.
처음부터 따라 붙었던 삐끼에게 20b 수고비를 지불한 뒤에야 무사히 출발 할 수 있었다.
13:40경. 캄보디아 입성은 땀의 결과였다. 길은 순탄치 않다. 황토 먼지와 깨진 아스팔트, 움푹파인 도로를 거침없이 내 달리는 무적 택시는 사막의 랠리 수준이었다.
스물여덜 총각 야구모자는 싱긍싱글 웃음을 달고 땀이 나는 등을 들썩들썩거리며 잘도 달렸다.
너른 평원에는 간간히 나무가 보일 뿐 벌건 흙과 메마른 논바닥만 보였다.
원두막처럼 아랫도리가 붕뜬 건물만 드문드문 나타나고 개울은 흔적만 있을 뿐 바닥은 거북이등처럼 갈라져 있다. 큰 트럭 이라도 지나가면 황토먼지는 폭풍을 일으키듯 시야를 가려온다.
6-70년대 내 고향도 그랬었지. 비만 오면 골이 패이는 신작로는 자동차가 지날 때면 물이 튀기고, 더운 여름이면 뿌연 먼지가 짓무른 안개처럼 펄펄 날리는 고향길이 있었다.
추억을 들추는 내 유년의 환영을 보는 듯 했다.
야구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함이 너무 아쉽다.
그는 중간 몇 군데에서 차를 세우더니 거만하게 의자에 앉은 수문장에게 달러를 건넸다.
아마 일종의 통행세를 내는 모양이었다. 무적택시에게도 노상에서 파는 말통 프라스틱에 든 밥을 멕이고 물도 부어준다.
이 무서운 랠리수준의 차안에서도 고개를 떨구며 꿈을 꾸는 세 여성들의 담력은 어디서 연유함인가. 3-4번의 배낭여행과 이번만도 2달째라는 송&조는 가히 대단한 여인들이다. 이 길을 생태우로 이동하려고 했던 철각들이라니.
5:30 경. 지나온 마을과 풍경에 비하면 시엠렙은 화려함의 극치다. 황토먼지는 여전하지만 군데 군데 위엄을 자랑하는 호텔건물은 정말 관광도시 다운 면모였다.
야구모자는 칼텍스 주유소를 지나 G.H 게스트 하우스에 내려주었다. 황토먼지와 짝이된 더위는 더이상의 배회를 허락치 않았다.
어설픈 조식에 점심 끼니도 건너 뛴 것을 모르고 지나온 강행이었다.
줄곧 컨디션 난조를 보이던 아짐씨의 상태를 보니 의외로 좋았다. 어제의 영화(榮華), 호텔의 기억을 털고 십 달러짜리 에어컨룸에 들었다.
김치+ 김치볶음 밥은 여정의 피로를 녹여주는 피로 회복제였다.
이틀간의 앙콜왓 일정을 송&조의 일행과 합류하기로 했다.
해가 떨어져도 열기는 살아있다. 밤길,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보았다. 어두운 밤에도 외지인들을 어찌나 잘 알아 보는지 어김없이 모토를 들이 댄다.
“어디 갑니까?”
“밤 마실 갑니다.”
딱딱한 침대의 짓무른 밤은 오는지 가는지, 구별 할 수가 없다.
달리는 차안에서 10시간 내내 고정 불침번을 자원한 노병이 무슨 힘으로 밤을 이길 수 있으리요.
천년, 훨씬 이전의 역사를 넘나들며 타임머신을 타고 간다.
-거꾸로 보는 꺼벙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