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만난 사람8 – 불만투성이 미국인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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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만난 사람8 – 불만투성이 미국인 할아버지

스따꽁 4 1066
카메론하이랜드에서 떠나는날..
아침일찍 숙소를 나섰다. 페낭으로 가는 첫차를 타기 위해서…
어둑해졌을때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면, 낯선곳에서 함부로 돌아다니기가 불안하다.
다 보이는 대낮에도 길을 잃어버리는데,
깜깜하면, 오갈곳을 몰라 삐끼따라가기 쉽상이다.
특히나 쿠알라룸푸르에서는 깜깜해져서 도착한데다 숙소를 잘못골라 고생을 해서..
페낭에서는 같은 실수를 하기 싫었다.

버스터미널 매표소가 아직 문을 안열었다.
한 서양인할아버지가 밖을 쳐다보며 서있다..
눈이 마주쳐서 씩~ 웃어줬더니.. 뭔가 반응은 하는 것 같은데, 화난표정이다.
아.. 매표소가 문을 열었다. 페낭으로 가는 첫버스표를 샀다.
할아버지도 버스표를 산다.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는 모르겠다. 매표소에는 둘밖에 없었으니까..
내게 어디가냐고 묻는다.
“페낭이요”
“페낭? 폐낭은 어디야? 거긴 뭐가있어?”
“저도 안가봐서 모르는데… 섬이에요”
매표소 벽에 말레이시아지도가 있길래 손가락질로 위치를 가르켜주었다.
“섬? 해변이 있겠군”
“큰 도시라던데요.. 어디가세요?”
“싱가폴. 싱가폴에서 왔는데, 말레이시아가 싫어서 다시 가는거야”

작은 키에 단단해보이는 체형, 돌돌이가방에 단정한 보조가방을 얹어놓고, 허리띠를 한 무릎위까지 오는 반바지, 반팔체크남방은 바지 안에 이쁘게 넣고, 콧수염을 기른..
왠지 틀에 잘 맞는듯한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잔뜩 화가 난듯 했다. 표정이 심술궂어보였다.
가까이 하지 않는게 상책이다.
행여 내게 심술이라도 부리면..
말발도 딸리고..
장유유서가 아주 조금은 몸에 베어있는 한국인으로써 할아버지한테 대들기도 힘들다.

30분정도 시간이 남았다. 아침밥을 먹어야겠다.
할아버지한테, 아침밥 먹으러 간다고 인사하고 길건너 인도음식점으로 갔다.
다른 인도음식점에서 인도사람들이 먹던 커다란빵을 물어물어 주문했다.
페이퍼어쩌구하는 이름이었는데.. 난이나 로띠처럼 커리소스에 찍어먹는거다.

자리에 앉았는데, 바로 할아버지가 따라들어왔다.
나를 따라온건지, 우연히 이곳으로 왔는지는 모른다.
그시간에 문을 연 식당은 얼마 없었으니까…
할아버지는 자연스레 내 테이블에 앉았다.

요리사가 내 빵을 만들면서, 내게 오라고 손짓한다.
만드는 걸 보여준다.
커다란 철판에 반죽을 아주 얇게 편다.. 동그랗게..
그리고, 얇게 만들기 위해서 계속 반죽을 걷어낸다..
내가 재미나게 보고 있으니까, 할아버지도 따라와서 본다.
여전히 얼굴은 굳어있었고, 별것 아니라는 표정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오믈렛을 주문했다.
주문한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부터..
차시간이 급한데 빨리 안가져온다고 투덜댔다.
할아버지는 나보다 30분이나 늦게 출발하면서….

이때부터, 할아버지의 불평불만은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숙소가 더럽다고 투덜댔다.
“방에 침대하나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방도 쪼그만게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너무 더러워.”
“제 숙소도 더러워요”
내가 묵은 숙소는… 더러울 뿐 아니라, 벽에 ‘이”라고 생각되는 벌레도 기어다녔다.
이불과 배게는.. 속은 빤적이 없는것만 같고, 껍데기도 새로 빤게 아니었다.
“여기에 같이 버스타고 온 젊은이가 가길래 따라간데였는데.. 너무 더러워.. 그래서 싱가폴로 갈꺼야”
“얼마짜리 방인데요?”
“33링깃” 영수증을 꺼내 보여준다.
“아….”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묶은 18링깃짜리나 33링깃짜리나 더러운건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에…
할아버지보다 덜 손해본듯한 느낌….

내가 주문한 커다란빵이 먼저 나왔다.. 아주 크다.
“무슨 맛이야?”
“몰라요.. 처음 먹는거거든요. 드셔보세요”
할아버지는 귀퉁이를 조금 뜯어서 소스에 찍어먹더니,
인상을 찡그린다. 맘에 안드나보다.
나는 맛있는데..

할아버지가 주문한 오믈렛이 나왔다.
“우리는 계란안에 토마토랑 치즈를 넣어서 오믈렛을 만들어.
이게 뭐야. 위에다 얹어놓다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
뭐라 할말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말레이시아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는것도 불만이었다…
“말레이시아사람들은 어떻게 다 영어를 할 수가 있어?
심지어 식당종업원들도 영어를 잘해. 이상하지 않아?”
“네.. 거지들도 영어 써요. 잘해요”
“TV에서 조차도 영어를 써. 이해할 수가 없어. 무슨 나라가 영어를 다 잘하는거야”

“어디서 왔어?”
“한국”
“난 한국에 두번 가봤어”
“네..”
“한번은 전쟁때 갔었지..”
“미국사람이죠?”
“그래. 미국사람이야”
나는 할아버지가 한국에 가봤다는 말을 듣고도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어떤 좋은 소리도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냥.. 차시간에 늦지 않게 내가 주문한 이 음식을 다 먹기 위해서 노력했다.
할아버지는 정작 차시간이 급한 나를 남겨두고, 늦었다면서 가버렸다.

할아버지는.. 외로워보였다.
 
‘할아버지.. 그렇게 불만가득한 얼굴로..
싫은 얘기만 하면, 아무도 친구해주지 않는다구요..’

식당사람들은 할아버지가 불편했는지,
할아버지가 가고나자 내 테이블로 와서 말을 건다.
“맛있어?”
“응 맛있어. 근데, 차시간 때문에 걱정돼”
“걱정마. 아직 시간 남았어. 천천히 먹어. 버스 저기 있자나. 내가 보고 있을게”
그들의 말을 믿고 마냥 느긋하게 먹고 있을 수는 없었다.
버스출발이 5분도 안남았다.

“가야겠어. 정말 맛있는데, 다 못먹어서 미안해”
“정말 맛있어?”
“응. 다 먹고 싶은데, 늦었어”
“그럼.. 잠깐만 기다려”
빵을 구워줬던 자상한 요리사가 내가 먹던 빵을 일회용도시락에 접어서 넣어준다.
그 위에 소스도 새로 퍼서 뿌려줬다. 그리고 비닐봉지에 넘어지지 않게 담아주었다.
“가져가. 차안에서 먹어.”
“와.. 정말 고마워”

나는 버스를 늦지 않게 탔다.
하지만, 카메론하이랜드-쿠알라룸푸르 구간은 꼬불꼬불길이다.
차도 오래되어서 냄새가 심하다.
내가 들고 탄 커리얹은 빵… 냄새도 더해졌다.
온 차안에 냄새를 풍기고, 기름냄새를 두어시간 맡았더니.. 멀미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아까웠지만.. 첫번째 휴게소에서 버려야만 했다.
4 Comments
정글속 제인 2004.03.26 11:30  
  재미있네여..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으로 살면 참 행복한데.. 할아버지 안되보이네여..맘만 조금 바꾸면 아름다운 세상인데..
띵똥 2004.03.26 19:02  
  의외로 만나신 미국 할아버지같은 사람을 사겨보면 좋아요..^^
의리에 죽고 사는 사람들이..만나신 할아버지같은 스타일일것 같네요..
만나서 나쁜 사람은 한번도 못 만났습니다..
제가 운이 좋은 건가요 ??[[으응]]
스따꽁님처럼 저도 정식으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적어 보고 싶네요..
이넘의 귀차니즘이 아니라면..[[낭패]]
아부지 2004.03.26 20:39  
  저도 태국에서 우울한점 한가지..왜 오믈렛&햄,치즈를 시키면 다 따로나오는건지..ㅠ.ㅜ 안에다가 넣어줘~!!!!!!!!
사랑 2004.03.31 16:49  
  할아버지....그렇게 불만 가득한 얼굴로...
싫은 얘기하면,아무도 친구해주지 않는다구요...
뭔가를 느끼게해주는 문장이네요...
그건 그렇고 스타꽁은 어떤 의미인가요?
베트콩이 떠올라서리...^^
꽁님 책 한권 펴내서도 될 것 같은데요.
제목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로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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