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만난 사람7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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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만난 사람7 – 한국인

스따꽁 3 1233
말레이시아의 카메론하이랜드..
서양틱한 이름의 이 곳으로 가는 여행자들은 정글을 보러 간다.
이름 그대로 고원지대의 정글숲이다.

나는.. 정글에 들어가지 않았다.
혼자 코스를 따라 갈 엄두도 나지 않았고, 가이드를 따라가더라도 40링깃을 쓰면서까지 뱀과 벌레들을 만나러 가고싶지 않았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출발한 버스가 카메론하이랜드에 오는동안, 2시간정도는 정글속에 뚫어놓은 도로를 따라 꼬불꼬불 산길을 달렸다.
창밖을 보면서, “내가 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 심각한 고민을 하다가…
“2시간 봤으면 충분해. 돌아갈때 또 볼텐데 뭐..”
이런 설득력없는 이유를 갖다붙이고는 정글행을 포기했다.

그럼.. 카메론하이랜드에 왜 간거지…
그냥 갔다. 정글이 만만해보이면 시도해볼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말라카에서 방콕까지 계속 북진을 하는 중이었는데..
지도보다가.. 북쪽에 있길래 가고 싶어서 갔다.

카메론하이랜드의 여행자편의시설이 있는 타나라타는 작은 마을이다.
너무 작아서 1시간이면 마을 5바퀴는 돌 수 있을거다.
도로를 따라가면.. 그냥 정글로 뻗은 도로만 있을 뿐이다.
아무데도 갈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났다.
숙소에 같이 체크인을 했던 필리핀청년이 정글트래킹이나 농장투어를 하냐고 물어본다.
“아니”
“나는 농장투어하는데, 15링깃이야. 좀있으면 출발해”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전날, 나는 이미 마을을 두세바퀴 돌았다.
갈데도 없고, 할것도 없다. 오늘 하루 뭘하고 지낼수 있을지 깜깜하다.
그렇다고 농장투어가 끌리는건 아니었다.
차밭은 버스타고 올 때, 옆자리의 중국인아저씨가 꾸벅꾸벅 졸고있는 나를 깨워서 보여줬다.
택시타고 가면 차가 낮아서 볼수 없는데, 버스타고 가니까 훤히 볼수 있는거라고.. 멋있지 않냐면서…
저기는 일꾼들 집이고, 차밭이 얼만큼 크다고..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양봉장, 나비농장은 가고싶지 않았다. 난 벌레들이 무섭다.
딸기농장, 선인장농장.. 이런거 우리나라에서도 볼수 있다.
게다가 입장료는 따로 계산이었다…

그래도… 나는 농장투어를 하기로 했다.
필리핀청년을 잘 꼬셔서, 심심할 오후를 대비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필리핀청년은.. 투어버스를 세워놓고 꼼지락거리면서 빨리 안오더니…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통째로 들고오는거다..
투어가 끝나면 바로 카메론하이랜드를 떠날꺼란다. 망했다.

어쨌든 나는 농장투어의 버스를 탔다.
다른 GH에 들러 손님을 몇 명 더 태웠다.
동양인 여자 2명이 탄다.
기다렸다. 그들이 어느나라말을 하는지..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운전기사 아저씨가 준 이름 체크하는 종이에 KOREAN이라고 써있다. 이거다.
“한국사람이세요?”
“네~”
“와~ 정말 반가워요.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사람 처음 만났어요. 한국말 잊어버릴뻔했어요..엉엉”
너스레를 떨면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
방콕 떠난지 얼마나 지났다고 한국말을 잊어버린단 말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 말을 걸었다.

심심한 카메론하이랜드에서.. 사기꾼이 말걸어줘도 반가운데, 한국사람이라니…
그들이 내눈앞에 나타나준것에.. 고마웠다.

처음에는 별로 할말이 없어서 어색했다.
그들은.. 두명이라 심심하지도 않을꺼다.
게다가 나는 붙임성이 떨어져서 낯선사람에게 자연스레 말을 건다거나 하는걸 잘 못한다.
하지만, 나는 노력했다.
미로 같은 선인장농장에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그 2명의 주변을 맴돌았다.
어떻게든.. 외롭고 불쌍한 한국인여행자를 봐줬으면 하는 생각에…
그리고, 쓸데없거나, 통상적인 얘기들로 계속 말을 걸었다.
내가 옆에서 얼쩡거리는걸 꺼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지만, 그들은 싫은 내색 없이 나와 동행해주었다.

농장들은 이미 내 안중에 없었다.
난.. 이 한국인들을 꼬셔서 오늘 저녁에 스팀보트를 함께 먹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혼자서는 못먹는 스팀보트.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음식도 아니건만,
전날 사기꾼이 너무 맛있게 설명하고,
옆자리에 앉았던 외국인들이 맛있게 먹었고,
길거리 지나가면 함께 정글을 탐험하고 온 여행자들이 둘러앉아 시끄럽게 웅성거리면서 나눠먹던…
카메론하이랜드에서 스팀보트를 먹지 못하면, 이곳에서 아웃사이더가 되버릴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되버린 스팀보트.. 나의 목적은 스팀보트였다.

역시 혼자인 필리핀청년이 마음에 걸려 몇마디 말을 걸기는 했지만,
농장투어 후에 바로 떠나버릴 사람과 오늘 저녁, 꿈에 그리던 스팀보트를 같이 먹어줄 한국사람의 저울질에서 필리피노는 운이 나빴다.
사진찍는걸 좋아하는 필리피노의 사진 몇장 찍어주고,
내 모든 신경은 한국인들에게 쏠려있었다.

“스팀보트 먹어봤어요?”
“그럼요. 정말 맛있어요”
망했다.
“같이 먹고 싶었는데.. 전 혼자라서 스팀보트 못먹어봤거든요..”
“1인분도 팔아요. 쿠알라룸푸르에서요.”
쿠알라룸푸르는 더 이상 갈일이 없다. 나는 북쪽으로 갈거니까…
게다가.. 혼자먹는 스팀보트라니.. 전혀 매력이 없다..
그렇게 나의 스팀보트 작전은 허무하게 끝났다.

군것질꺼리도 사면 나눠먹고, 그들이 사온 이름모를 과일도 얻어먹고,
몇시간의 농장투어를 끝냈다.

점심먹을 시간이었는데, 한명의 한국인이 또 있었다. 그들은 하루 전에 만났다고 한다.
1주일이상 해외여행을 하는 한국인은 딱 3부류가 있다는 말을 여기서도 확인할수 있었다. 투어에서 만난 두명은 선생님, 투어끝에 합류한 한명은 학생, 나는 백수…

우리는 한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고원지대라 덥지 않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노천에서 식사를 했다.
우연인지.. 우리 넷은 모두 정글에 들어가지 않았다.
남학생은 혼자 코스를 따라가려고 했으나.. 코스초입에서 엄두가 나지 않아 돌아왔단다.

정글를 경험하지 못한 우리는..
카메론하이랜드가 얼마나 심심한지에 대해서 얘기했다.
밥먹고 나면, 뭐할거냐는 질문을.. 시간차를 두고 서로 질문하다가 웃었다.
여행자들이 수다를 떠니, 여행얘기뿐이다.
즐거웠다.
우린 그 식당에 몇시간을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주인아저씨는 눈이 마주치면 그냥 씩 웃을 뿐이다.
하릴없는 따뜻한 오후에, 점심을 먹고 노닥거리는것도 나쁘지는 않다.

“이제 슬슬 짐챙겨서 가야죠”
“앗. 어디가요?”
“쿠알라룸푸르요”
“아~앗. 오늘 가요? 오늘 저녁 같이 먹을줄 알았는데. 또 나혼자…”
“그럼 쿠알라룸푸르에 같이 가요. 남학생도 북쪽으로 간다고 하니까..”
“KL는 남쪽이자나요.. 되돌아갈순 없어요.ㅠ.ㅠ”

그들이 떠날때까지 같이 있었다.
아쉬웠지만,
혼자서도 재미있고 할일 많은 다른 곳이 아니라,
적적한 카메론하이랜드에서 그들을 만난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것은…
외국인 여행자가 없는 곳에서는..
피부색깔이 어떻든 외국인여행자만 눈에 띄어도 달려가서 인사를 하고픈 생각이 든다.
외국인 여행자는 많지만, 동양인이라고는 찾아볼수 없을 때,
중국인이건, 일본인이건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을 보면 동족을 만난듯 반갑다.
한국인을 오랜만에 만나면.. 그 반가움이란…
카오산 같은.. 한국인도 많고, 각종나라의 여행자로 터져나가는.. 곳에서는
그런 반가움이 없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일 뿐..

보석이 돌이 아니고 보석인 이유는.. 희귀성이라고 했던가..

그 이후로도..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인을 만나지 못했다.
그들이 내가 만난 유일한 한국인이다.

<차밭>
<차밭에서 뮤직비디오를 찍고있는듯한 인도계배우들>
3 Comments
한마디 2004.03.23 12:26  
  차밭 보니까..생각 나는건데... 마법에 걸린 여자분은 차 밭에 못들어가거나 차잎 못따게 하는거 아세여.....--:::
레아공주 2004.03.23 23:29  
  왜요?
한마디 2004.03.25 18:16  
  차를 잘 덖어서 만들어 놓아도 blood냄새가 난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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