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벙이부부 태국+캄푸챠 가다(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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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벙이부부 태국+캄푸챠 가다(여섯)

꺼벙이 4 805
4/2(금) 여섯째 다시 국경으로 ‘민초(民草) ’

05:00.
건모의 모닝콜 노크소리는 정확히 다섯 시였다.
역사는 새벽에 이루어진다. 무슨 과오를 저질렀는지 모르겠다. 초췌한 모습에 남루한 배낭 한 개를 들고 새벽 미명에 야반도주를 해야 했다.

싸립문 밖에서 기다리는 택시는 시간을 재촉하듯 연실 방귀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보더(Boder까지 데려다 줄 기사는 꺼벙이 보다 훨씬 저 학년으로 보였다.
먼저 통 성명을 했지만 대답을 들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음, 입이 무거운 친구로군’
"Boder?" "Yes"
“몇 시간 걸립니까(영어로 그 정도는).” “3시간”
‘짧은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네’

사물을 분별하기 어려운 어두움, 정확히 5:20분 출발 이었다.
사막의 랠리가 어떤 수준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입 무거운 친구의 차를 타고 보니 대충 짐작이 가는 것 같다.
아스팔트 포장도로에서의 속력은 그렇다 쳐도 비포장 웅덩이를 넘나드는 그의 드라이버 솜씨는 놀라웠다. 들어 올 때의 ‘야구모자’운전솜씨는 비교도 안 됐다.

어둠 속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자전거, 오도바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내려 앉았다.
한 치도 분간하기 힘든 먼지 구름 속에서 앞차를 추월하는 그의 대담한 심장은 전문가였다.
역시 행동으로 보여주는 ‘짧고 굵은 친구’였다.
두려움도 잠시, 이왕 목숨을 맡길 바에야 통 채로 내어 주기로 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는 법’캄보디아 총알택시 구간에서 점차 우리도 공모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시소폰? ”
“... yes ”
06:00 가 넘었다. 어둠이 벗겨졌다.
밤새 비가 뿌린 것 같다. 차량이 통행하는 도로는 이미 물기가 사라졌지만 들에는 제법 물기가 촉촉이 남아 있다. 황량한 벌판에 몇 채 안되는 가옥들은 벌써 잠이 깨어 있다.
그 많은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은 어디서 나왔는지, 어디를 향해 그리 바쁘게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들의 생업이 될 만한 공장이나 농토는 보이지 않았다.
큰 건물이라고는 가끔 낮은 건물 모양의 학교가 눈에 띄었다.

일제 픽업트럭은 화물칸에 빽빽이 들어앉은 사람들을 태우고 잘도 달린다.
그나마 생산성 있게 보이는 것은 돼지가 오토바이 탄 풍경이었다.
하늘을 보고 삼태기에 벌렁 뉘인 채 50cc 짐받이에 매달려 팔려가는 돼지들은 그래도 호강이지 싶다. 논인지, 밭인지 모를 벌판은 텅 비어 있다.
비슷한 구조로 엉성하게 설치된 철제다리를 수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다리 밑에 자국만 희미할 뿐 개울은 모두 다 벌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국경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수효가 많아졌다. 오토바이, 자전거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08:00 국경
소요시간 2:40분 만에 국경에 도착했다. ‘짧고 굵은 드라이버’친구의 랠리는 거기까지였다.
우리는 그의 랠리에 도움을 받은 수혜자로 정확 신속한(?) 서비스에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차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땅 덩어리에 그어진 인위적인 선 때문만은 아니다.
수레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 민초(民草)들의 힘이 저항하기 때문이다. 뽀이펫-아란 국경의 아침은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국경을 지나기 위해 겹겹이 늘어선 빈 수레의 줄은 마치 지난(持難)한 인생의 생명 줄처럼 느껴진다. 늘어선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카지노 호텔의 위용은 왠지 서먹하다.

우리는 한 동안 민초들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진풍경을 마냥 바라보았다.
허름한 옷차림 가운데도 드러낸 하얀 이가 돋보이고, 요란한 대화의 소음가운데도 까만 눈매들이 선하게 느껴진다. 이들이 앙코르의 후예들인가.
웅장한 돌 틈에 느껴졌던 힘과, 화려하고 섬세한 벽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민초들의 피와 눈물, 죽음을 댓가로 이루었을 앙코르는 바로 이 선대들 이어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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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오갈 수 있는 것은 맨 몸의 사람들, 그리고 나무막대기로 엉성하게 조립한 수레들 뿐 인 듯 했다. 짐은 일일이 검문을 받고 있었다.

아짐씨는 태국 입국소 한쪽 구석에서는 벌어지는 기이한 장면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구석진 곳에서 지나는 사람을 포섭해 청바지 두 세 개를 몸속에 묶어 준다. 그들은 불룩한 배를 툭툭쳐 보고, 매무새를 가다듬은 후 유유히 국경을 통과했다.
마대자루로 꽁꽁 묶은 수레를 대여섯 사람들이 힘겹게 운반하고 있다. 수레에는 비린 생선냄새가 났다. 궁금한 마음에 웃음으로 양해를 구하고 들쳐보니 물고기가 가득하다(리엘?)
시엠렙 호수에서 잡혀 캄보디아 국민의 먹거리가 된다는 물고기가 아닌지.
boder1_2.JPG

시장을 매개로 북적이는 국경은 ‘「사람만이 희망」(박노해) 이었다.

“여보, 난 이 구절이 자꾸 떠오르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이가 나이는 듬으루 먹었남. 더워 국겠구만 뭔 감상이야..뭘로 살긴,.밥씸으로 살지”

입국 사무소의 절차는 어김없이 경계의 대상이다.
국경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생각 없이 여권만 달랑 내미니 쌀쌀맞은 직원 아줌마의 손이 금방 돌아 왔다. “포옴”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그것뿐 이었다. 반대편 출국소에 가서 땀을 뻘뻘 흘려 가며 두 장의 신고서를 작성했다.
얄미운 아줌마를 피해 옆 창구의 미남 아저씨에게 서류를 건넸다.
“유어 핸섬보이” 입이 함박 만 큼 벌어졌다.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아쉬운 국경의 풍경을 뒤로하고 툭툭을 탔다.
아란터미널의 방콕행 버스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재촉을 해댔다.
‘아무리 바빠도 화장은 해결해야지’떠나는 버스를 잡아 놓고 느긋하게 다녀와 버스에 올랐다.
거리에 비해 5,000원 상당의 버스치고는 에어컨이 시원했다. 물론 꺼벙이의 하체를 조금 접어야 하는 불편은 있었다.

어쩌다 보니 아침식사도 건너뛰었다.
그나마 국경에서 사 들고 온 달콤한 포도가 요깃거리였다. 아짐씨는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휴지에 닦아서 건네준다. ‘음~, 열심히 데불고 다닌 효과가 있긴 하네 그려’
“근데 저건 뭐하는 거유?”
“궁금하면 물어 보셔, 입이 안 떨어져 죽겠으니께”
아란 출발부터 앞좌석 4개에 붙여 둔 누런 골판지 조각에 “*****”라고 적혀 있는 표식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예약석이란 말인지.
넉넉한 차장 아줌마는 연실 좁은 차안을 오가며 차비를 받느라고 분주하다.
눈을 붙이려고 하면 어깨를 툭 치고, 다시 잠이든 얼마 후에는 복도로 삐져 나간 무릅을 건드렸다. 내 무릅이 거기 있어서 미안하다고 표시했지만 차장 아줌마는 눈만 멀뚱멀뚱 굴렸다.

버스는 휴게소(주유소)에서 정차했다. 화장을 고치라는 얘기 같았다.
가판에서 파는 빵과 쵸코우유를 샀지만 태국음식 경계령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짐씨는 입을 대지 않는다. 몇 군데의 검문소, 정류장을 지났다. 버스는 큰길 노견에 정차했다.
“더위 먹어서 고장 났나 보우”
하얀 제복의 운전기사 아저씨와 중간에 교대한 예쁜 차장이 내려갔다. 간이 부페 식당인지 이것저것 입맛을 보고는 한 도시락 싸들고 올라와 출발했다.
다른 승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우리만 이상한 표정이다.
“맛있게 자시고 안전운행 해주쇼”

1:40분, 북부터미널 도착, 제법 여유 있게 택시를 타고 ‘M 광장(G.H)’에 도착했다.
냄새도 향기롭지 않은 방콕운하가 한 눈에 쫙 내려다보이는 3층 에어컨 방에 짐을 들였다.
더위는 다시 온몸을 칭칭 옥죄여 온다.
배부터 채울려고 소문으로 주워들은 씨푸드 식당을 찾아갔지만 개점 전(야간에만 개점)이었다.
오후에 왕궁을 관람할 요량으로 새벽부터 설쳤지만 이미 시간 3시가 되었다.

다시 돌아와 ‘M광장’에서 왕새우 요리로 기중 푸짐한 식탁을 맞았다.
해산물이라면 ‘게 눈 감추듯’하는 아짐씨는 나머지 한 토막까지 쓸고 손가락을 빨았다.
금새 얼굴에 화색이 돈다. 오후일정을 포기할 듯 하던 아짐씨가 다시 앞장을 선다.
‘저토록 맛나게 자시는 것을...돈이 웬수지’
“여보셔, 사람은 무엇으로 산다고?”
“사랑으로 살지요~ ”
“우리 내일 또 먹자“

망설이던 끝에 시내 중심가(세계무역센터)를 다녀 보기로 했다.
실은 그녀 아짐씨에게 조그만 ‘링이라도 하나 사줄까’하는 마음이 있었다.
지도에 목적지를 표시해가며 서로 소통했으니 땅딸보 툭툭이 아저씨는 분명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방향이 틀린 왕궁 앞 툭툭이 집합소에 세웠다.
툭툭이 호객꾼인 듯한 중년이 다가오더니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 지도의 세 곳을 지적하며300b을 요구했다.

꺼벙이의 의지를 재차 밝혔지만 막무가내다.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50b을 약속했던 땅딸보는 헛걸음치고, 덕분에 내일 올 왕궁주변을 정탐 할 수 있었다.

천천히 걸어 ‘챠오강’ 선착장으로 향했다. 호객꾼은 여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모에 약한 꺼벙이는 할인해 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600b에 보트를 타기로 했다.
바이킹호 처럼 앞이 뾰죡하게 생긴 날렵한 배에 둘이만 탔다. 힘찬 소리를 내며 파도를 가르는 기분이 시원했다.
‘왓아룬’ 새벽사원을 저녁놀에 관람, 감상하는 것이 얄굿지만 어쩌랴.
‘차오강’을 주변으로 늘어선 허름한 가옥들, 사원, 별장인 듯한 호화로운 건물은 또 다른 방콕의 일면으로 보였다.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바로 연결되는 강물에 텀벙거리는 어른, 아이들 모두 표정은 밝았다.
허술한 울타리 너머로 울울창창하게 푸른 나무들은 보기만 해도 좋다.
혼자 앉은 작은 배에서 노를 젓는 노인의 느린동작이 결코 기력이 쇠잔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좁은 강폭을 꼬불꼬불 돌아오기를 한 시간, 아주 넓은 챠오강 폭을 만나 유람을 마쳤다.
쉼 없이 들고 나는 유람선, 수상버스의 몸부림에 강물은 연실 깊은 파도를 일구어 낸다.
물은 비록 탁하지만 시원한 바람을 대동한 ‘챠오강’의 선착장은 더위를 식히기에 충분했다.

선착장을 벗어나 시장과 야식노점을 거쳐 나오니 왕궁 앞 광장이었다.
어두워진 광장 곳곳에 불을 밝히고 이색 공연이 한창이다. 링에서는 여전사의 킥복싱, 전통무예가 실감나게 벌어지고 관중들의 환호도 대단했다.
오색연이 날아오른다. 가족단위 돗자리 피서객, 노점의 먹거리들, 광장은 한 여름 밤의 장사진을
이뤘다.
이색적인 모습을 찍으려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카메라는 또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렸다.

카오산 밤거리는 더위와 사람의 숨소리, 특유의 향으로 식지 않았다.
노점에서 바나나 팬케익을, 유명하다는 죽 집에서 야참을 먹는다.
이색적인 밤 문화의 호기심을 조미료로 첨가해서, 맛 그 이상이었다.

방콕운하에서 올라오는 시큼한 향(*궁창)과 쿨렁쿨렁 돌아가는 에어컨 소리도 잠깐. 물 먹은 솜처럼 풀어져 갔다. 몸은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인가 보다.

“여보~ 내일은 진짜 랍스터 먹는 거유 ”
“z z z z ..”
-거꾸로 보는 꺼벙이 세상-

4 Comments
겨울남 2004.04.24 00:53  
  언제나 느끼지만 글에 부부애가  다정하게 담겨있어서 보기 좋습니다.
그렇지뭐 2004.04.24 04:36  
  하하하...
"밥심으로 살아요!"
정말 웃겨요... 저는
"술심으로 살지요?" ㅎㅎㅎ
재미있습니다.
짧고 굵은 드라이버가 어찌 생겼나요..?
몬테크리스토 2004.04.24 13:54  
  ㅋㅋㅋ 저하구 거의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셨네요...
캄보디아 국경이요....ㅎㅎ
슬리핑독 2004.04.27 14:43  
  저도 님의 시선과 감동을 갖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아직 수양이 되지 않았고, 마음을 열지 못했나봅니다. 전 태국가면 꼭 편안함과 유희를 더 찾게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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