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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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20

필리핀 5 795
1월 7일 맑음
새벽 5시, 버스가 카오산에 도착했다. 무사히 도착한 것에 감사했다.
태국에서의 야간버스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 이유는 첫째, 한 운전사가 6시간 이상 쉬지 않고 운전을 한다. 한국에서는 차량의 안전과 운전사의 휴식을 위해서 2시간 마다 꼭 휴식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들었는데, 태국에서는 그것이 절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둘째, 태국의 도로는 너무 어둡다. 가로등도 변변히 없는 왕복 2차선의 도로에서 수시로 추월이 감행된다. 태국의 도로에서는 큰 차가 왕이다. 버스가 추월을 시작하면 마주 오던 차들이 알아서 피한다. 그러면 졸지에 2차선 도로가 3차선이 된다. 마치 모세가 사해를 가르듯이 기적이 행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적이 너무나 수시로, 그것도 모세가 아닌 평범한 운전사에 의해서 행해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실정이니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게 태국의 야간버스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야간버스를 잘 안 타려고 하지만, 그 놈의 돈 때문에 타게 된다. 피치 못해서 야간버스를 탔다면, 앞날은 운명에 맡기도 잠이나 자는 게 최선이다.
치앙마이의 경우, 기차는 편도 700밧 정도한다. 일반버스는 400밧, 여행자 야간버스는 200밧 정도이다. 이러니 위험을 무릅쓰고 여행자 야간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암튼 무사히 도착했으니 다행이다. 마음속에 점 찍어놓았던 숙소인 돈나 게스트하우스로 향한다. 돈나 게스트하우스는 싸고 깨끗해서 최근 한국인 배낭여행자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돈나 게스트 하우스는 정말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도 만족스러웠다. 위치도 카오산 번화가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조용했다. 게다가 가격도 선풍기 더블룸이 200밧이라니, 대만족이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뭐를 좀 먹어야 했다. 마침 숙소 앞에 노천식당이 있었다. 밥에다 미리 조리되어 있는 반찬을 얹어주는 덮밥집이었다. 1그릇에 20밧. 싸다. 한번 먹어보기로 한다. 맛도 괜찮다. 얼음물까지 한 잔 준다.
밥을 먹고 있는데 하얗게 센 꽁지머리에 수염까지 멋있게 기른 도인 풍모의 사내가 합석을 한다. 그는 내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더니, 일본어로 묻는다.
“일본인입니까?”
나는 내가 아는 몇 마디 안 되는 일본어 중 하나로 대답을 했다.
“아닙니다. 한국인입니다.”
사내는 한국이라면서도 일본어로 대답하는 게 놀라워서인지 다시 일본어로 몇 마디 물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영어로 이야기했다.
“미안합니다. 일본어는 못합니다.”
“아, 그래요. 암튼 반갑습니다.”
사내는 60 이쪽저쪽의 나이로 보였다. 행동거지에 여행 고수의 풍모가 배어 있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었다. 주로 그가 말하고 나는 듣는 입장이었다.
그는 1년에 반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살고, 나머지 반은 터키에서 산다고 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 비자 연장을 위해서 잠시 태국에 들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꽤 좋은 직장에 다녔었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좋은 직장, 즉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에 다니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은 만국 공통이다. 준만큼 빼먹으려고 하니까!)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떠나왔다고 한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담배도 많이 피고 술도 엄청 마셨는데, 이제는 술도 담배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없는데 왜 그런 것이 필요하냐는 게 그의 말이었다.
그의 말이 너무나 공감이 갔다. 자신의 말에 솔깃해진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그는 마지막으로 충고 한 마디를 던졌다.
“만약 떠나려면 일찍 떠나야 해요. 그래야 더 빨리 행복해지지.”
그도 나도 식사를 끝냈다. 하지만 왠지 선뜻 일어서기가 아쉬웠다. 그도 이 근처에서 묵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저녁에 이 식당에서 다시 만나서 맥주나 한 잔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하지만 그날 밤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저녁에 그 식당에서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문득 그가 뭔가 내게 깨우침을 주기 위해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 진짜 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내와 헤어진 나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내 단골 마사지집은 람부뜨리 거리에 있는 짜이디 마사지. 이곳에서 발마사지와 태국식 마사지를 패키지로 한 코스를 주로 받는다. 1시간 동안 온몸을 시원하게 주물러 주고 겨우 4천원 남짓한 요금을 받는다. 남자 마사지사도 있고 여자 마사지사도 있는데, 경험에 의하면 남자가 더 잘하는 것 같다. 마사지는 손아귀의 힘이 중요한데, 아무래도 남자가 힘이 세기 마련이다, 같은 여자라도 호리호리한 여자보다는 아줌마 스타일이 잘한다.
마사지를 받고나서 카오산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웬 서양인들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온다. 가만히 살펴보니 꼬 묵에서 만났던 독일인 커플 한스와 마리아다.
“어쩐 일이냐?”
“응, 난 오늘 아침에 끄라비에서 도착했어.”
“우리는 어제 오후에 도착했어. 오늘 밤 비행기로 독일로 가.”
“그래? 나는 내일 한국으로 가는데.”
“지금 어디 가는 길이냐?”
“아무데도. 그냥 걷는 중이야.”
“우리 밥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갈래?”
“나는 조금 전에 먹었지만, 맥주나 한잔하지 뭐.”
그래서 그들과 같이 카오산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갔다. 한스와 마리아는 스파게티를 시키고 나는 칼스버그를 한 병 시켰다. 두 사람은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휴가를 무척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너희는 나은 편이야. 적어도 1년에 1달 정도는 휴가가 보장되잖아. 한국인은 1년에 1주일 가는 것도 힘들어.”
“겨우 1주일? 오 마이 갓! 그게 기계지 사람이니?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렇게 오래 여행하지?”
“나는 실업자거든.”
“부러운 직업이야.”
“하지만 우리는 실업수당이 없어.”
“실업수당이 없다고? 그러면 어떻게 살지?”
“한국인은 부자거든.”
나의 역설을 그들이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자꾸 이야기를 할수록 치부만 드러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한국에 태어난 것이 나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한국의 근로조건과 복지제도가 내 책임은 아니지만, 한국보다 더 열악한 근로조건에 복지제도라고는 아예 없는 나라도 있다고 자위하고 싶지만, 그래도 자꾸 마음 한구석이 공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이들과도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한스는 내가 마신 맥주값을 자신이 지불해도 되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남은 태국돈을 다 써버리고 싶어서라는 이유까지 들먹였다. 3천원도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그들의 배려에는 오랫동안 사귄 친구에게서 느낄 수 있는 진한 정이 배여 있었다.
카오산 거리 한가운데서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한스와 마리아가 등을 돌렸다.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사람들 틈에 섞여서 완전히 안 보이게 되자, 나도 내 길을 가기 위해서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태양이 불의 화살을 쉴 새 없이 지상으로 내리쏘고 있었고,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아직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5 Comments
필리핀 2004.04.28 11:39  
  제 여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탄핵사태와 여행 후유증으로 인해서 여행기를 제때 올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바다건너서 2004.04.29 12:36  
  님의 여행기를 이틀에 걸쳐서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잘 읽었씁니다. 때로는 웃다가, 때로는 와인한잔과 함께 진지해 지기도 하다가,,, 이러다 보니 벌써 다 읽어 버렸네요.
늦은 나이에 유학을 와서, 학위를 마치고 여기서 직장을 잡고 살아간지 벌써 6년째입니다. 고국이 그립기도 하고 그렇다고 십사리 돌아가기를 결정할수도 없고....
하여간, 님의 여행기 덕분에 공짜(?) 여행 잘 했씁니다
소화 2004.05.17 22:22  
  뒤늦게 찾아 읽은 여행기가 많은 생각을 던져줍니다.
이렇도록 깊이 있게 세상을 보는 분은 누굴까 궁금하기도 하네요.
정갈하고 정확한 문체가 참으로 좋았습니다.
또 뵙게되길 바랍니다..
찔레꽃 2006.03.04 20:50  
  뒤늦은 검색으로 이제야 읽었습니다.
매우 사려깊은 분이라는 걸 느낍니다. 아마도 단독자의 여행이 주는 가르침이 몸에 배인 탓이라는 생각을 감히 해 봅니다. 여행이 인생에 주는 교훈은 그처럼 크고 넓지요.
또 다른 여행, 이국에 대한 이해심을 갖춘 여행자의 값진 기록을 기대해 봅니다.
아리잠 2006.06.07 22:05  
  “만약 떠나려면 일찍 떠나야 해요. 그래야 더 빨리 행복해지지.”

왜 눈물이 흐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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