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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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8

필리핀 0 808
1월 5일 맑음
끄라비에서 가장 좋은 비치는 라일레이다. 아오낭에서 보트를 타면 가장 먼저 서는 곳이 똔사이 비치이고, 그 다음이 라일레 비치이다.
아오낭은 대도시의 번화가 못지않은 화려함을 자랑하는 곳이다. 다양한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과 바, 시설은 별로지만 값비싼 호텔들이 해변을 향해 늘어서 있다. 휴양지에 와서도 도시가 그리운 사람들은 아오낭에 묵는다. 아오낭의 단점은 늘 들락거리는 보트들로 인해서 해변이 번잡하고 물도 그리 맑지 않다는 것이다.
라일레는 해변이 맑고 아름답다. 여자의 늘씬한 허리처럼 굽어 있어서 무척 안락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약점은 물가가 비싸다는 것이다.
아오낭에서 똔사이로 들어갈 때, 라일레에 묵고 있다는 캐나다 커플과 같은 배를 탔다. 그들이 묵고 있는 숙소는 선풍기 방갈로인데 1박에 2,000밧이라고 했다. 아무리 성수기라지만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똔사이 비치의 강점은 물가가 싸다는 것이다. 내가 묵은 안다만 내츄럴 리조트는 선풍기 방갈로가 300밧이다. 이곳이 특히 싸긴 하지만, 주변의 다른 방갈로도 400~500밧 정도이고, 아주 멋져 보이는 방갈로도 700밧 수준이다.
똔사이의 약점은 바다에서 수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쪽 끝으로 가서 바위를 타고 넘어가면 라일레 비치로 갈 수 있다. 나도 시도해보았지만,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따라서 끄라비에서의 최선의 선택은 똔사이에 묵으면서 라일레에 가서 노는 것이다.
물가도 싸고 천연 암벽타기 장소가 있기 때문인지 똔사이에는 젊은 여행자들이 많았다. 새벽에 해변에 나가보면 벌써부터 암벽에 매달려 있거나, 모래밭에서 요가를 하고 있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암벽을 타는 사람들은 몇 달씩 장기체류를 하기도 한단다.
똔사이의 바와 레스토랑은 좁은 해변에 모여 있다. 대부분의 바들은 비치의자를 해변을 향해서 배치해놓고 있다. 해변이 서쪽을 향해 있다보니 당연히 매일 저녁마다 멋진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시원한 맥주나 칵테일을 한 잔 시켜놓고 해변을 향해 있는 비치의자에 눕듯이 앉으면, 마치 내가 세상으로의 소풍을 마치고 천국에 돌아와 있는 기분이다. 머리 위에는 수많은 별들이 어둠의 눈처럼 빛나고 있고, 발끝에서는 저 먼 바다 깊은 곳으로 하염없이 걸어들어 오라고 유혹하는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조금씩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다 보면,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은 어둠의 세상으로 한 발씩 빠져들게 된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은 히피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세상에 대한 아무런 책임과 의무도 느끼지 않고, 그저 흐르는 물 위의 나뭇잎처럼 아무데로나 둥둥 떠다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진다. 아, 이렇게 감상적이 된 걸 보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간밤의 감상과 잡념들이 아침까지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다. 오늘은 4아일랜드 투어(점심, 스노클링 마스크 포함, 1인당 300밧)를 가기로 한 날이다. 얼마 남지 않은 여행, 신나게 즐기자.
끄라비에서 할 수 있는 아일랜드 투어는 4아일랜드와 6아일랜드 투어가 있다. 숙소 직원에게 어느 것이 더 낫냐고 물어보니 4아일랜드가 낫단다. 그래서 4아일랜드 투어를 가기로 했다. 
모든 투어는 아오낭에서 출발한다. 똔사이에서 3명이 4아일랜드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서 아오낭으로 갔다. 아오낭에 있는 여행사는 생각보다 규모가 꽤 컸다. 4아일랜드 투어에만 약 70여 명의 사람들이 참가하는 것 같았다. 5대의 긴꼬리 배가 동원되었다. 사람들에게 보트를 배정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4개의 섬을 돌면서 스노클링도 하고 휴식도 취하는 4아일랜드 투어는 괜찮았다. 스노클링은 경험이 많은 내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경험이 없는 다른 많은 사람들은 꽤 만족해했다. 나는 스노클링보다 섬에서의 휴식이 더 좋았다. 잘게 부서진 조개껍질이 깔려 있는 해변이 참으로 고왔다. 바다 색깔도 연한 잉크빛으로 무척 아름다웠다.
보트마다 1명의 사공과 1명의 가이드가 탔는데, 내가 탄 보트에는 수습직원처럼 보이는 여자애가 한 명 더 탔다. 가이드는 수습직원을 훈련시키려고 이것저것 시키는데, 수습여자애는 부끄러워서 잘 하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한다. 그때마다 혀를 삐쭉 내밀며 창피함을 감추려고 하는 모습이 무척 순박하다.
김민기의 ‘서울로 가는 길’이라는 노래가 있다. 어려웠던 시절에 시골에 살던 우리의 누이들이 돈 벌러 서울로 간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서울로 돈 벌러 가서 생전 처음 보는 시커먼 괴물 같은 방직기계를 대하는 누이들의 겁먹은 모습이, 이 새카만 태국 여자애의 얼굴에 겹쳐져서 떠올랐다.
아마 너에게도 병들어 누우신 아버지와 밭일로 손등이 갈라진 어머니와 질질 흐르는 콧물을 제 손으로 닦을 줄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 동생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을 위해서 단돈 몇 천원을 벌기 위해서 오늘도 하루 종일 이렇게 뙤약볕 아래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면서 고참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지도 모른다.
기념으로 간직하려고 스노클링할 때 주웠던 조개껍질을 그 여자애에게 건넸다. 흔한 조개껍질인데도 그 여자애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맑게 웃고 있는 그 여자애의 두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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