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7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7

필리핀 4 810
1월 4일 맑음
꼬 묵을 떠나는 날이다. 역시 아침 일찍 잠을 깼다. 새벽 4시. 슬리퍼를 꿰어 신고 해변을 거닐어 본다. 무슬림 두건을 쓴 여자아이들 몇이 해변을 거닐고 있다. 태국 남부에서는 무슬림들을 가끔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의 영향이다.
태국 남부에 많이 살고 있는 무슬림들은 독립을 원하고 있다고 한다. 2년 전에는 핫야이 기차역에서 무슬림들의 폭탄 테러가 있었다. 2명이 사망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이틀 전, 나는 핫야이역에 있었다.
아침을 먹고 꼬 묵 리조트로 갔다. 어제 투어를 같이 했던 오스트리아 가족(부부와 1남 1녀)가 보트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보트를 전세 내어 꼬 란타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나는 꼬 묵 리조트 단체투숙객들이 빌린 보트에 끼어서 팍멩으로 나갈 예정이었다. 그곳에서 뜨랑으로 간 후, 끄라비로 갈 생각이었다. 어제 투어를 같이 한 독일인 커플이 끄라비의 좋은 해변과 숙소를 소개해주었다. 그곳에 가볼 생각이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외국인이지만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럼 그 사람이 추천하는 해변이나 숙소는 믿을 만 하다. 어제 대화를 나누다보니 독일인 커플은 나와 취향이 비슷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좋은 해변과 숙소를 추천해주기를 부탁했고, 그들은 내게 끄라비의 똔 사이 비치와 안다만 내츄럴 리조트를 추천해주었다.
팍멩으로 가는 보트를 빌린 주인공은 태국 젊은이들이었다. 보트로 가면서 그들과 가볍게 눈인사를 하는데, 그중 한 남자가 영어로 묻는다.
“일본인?”
나는 태국어로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남자애는 “오!” 하는 감탄사를 터뜨리더니 앞을 향해서 “까올리, 까올리”(한국이라는 뜻의 태국어)라고 외쳤다. 그러자 일행 중 여자애 하나가 뒤돌아보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내게 다가오더니 서툰 한국말로 물었다.
“한국인이세요?”
이제 스물 한두 살쯤 되었을까. 생쥐처럼 조그맣고 새까만 얼굴을 한 여자애였다. 그녀는 자신을 파타니(핫야이 동쪽에 있는 조그만 도시)에 있는 외국어대학교 다니는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알고 보니 같은 학교 선후배끼리 주말여행을 떠나온 것이었다. 맨 처음 나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애는 불어전공의 졸업반이고, 영어전공 학생, 일어전공 학생 등이 섞여 있었다.
여자애는 자신의 학교에 2명의 한국선생님이 있다고 서툰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한 사람은 제주도가 고향이고 다른 한 사람은 부산이 고향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자애는 자신에게 한국어 이름도 있다고 했다. 뭐냐고 물으니까, ‘봉숭아’란다. 왠지 연변 분위기가 나는 이름이라 우스웠지만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 여자애는 자신의 한국 이름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학생 일행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배가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에 도착하자 웬 남자가 다가왔다.
“어디 가냐?”
“뜨랑 간다.”
“저기로 가면 차가 있다.”
그는 뜨랑행 미니버스 운전사였다. 나와 대학생 일행이 모두 그 차에 탔다. 그들도 뜨랑에 가서 차를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뜨랑까지 요금이 얼마냐고 물으니까, 불어전공 학생이 30밧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릴 때 운전사에게 30밧을 주니 그는 눈알을 부라리면서 50밧을 내라고 했다. 내가 30밧이라고 들었다고 하니까, 운전사는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기색으로 50밧이라고 우겼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불어전공 학생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결국 50밧을 주고 말았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공공연하게 이중가격제를 실시하고 있는 태국 사회의 의식수준이 씁쓸했다. 
명절 뒷끝이라서 그런지 버스터미널은 무척 혼잡했다. 창구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서 있었다. 그중 가장 한가한 줄을 찾아가보니 완행버스 줄이었다. 직행버스를 타면 끄라비까지 2시간 이내이지만 완행버스를 타면 4시간 정도 걸린단다.
나는 완행버스를 타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이 많기도 하거니와, 완행버스를 타면 현지인들의 생생한 생활 풍경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편해서 자주 이용할 수 없지만, 여행 중에 가끔씩 완행버스 타면 우리나라 시골버스에서처럼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다.
조그만 식빵 하나와 물 한 통을 사고 버스에 올랐다. 식빵을 다 먹을 때까지도 버스는 출발할 기색이 없었다. 2시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는 바쁠 것 없는 시골 할머니의 나들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짓말 안 보태고 5분마다 한번씩 정차했다. 가다가 아무데서나 손만 들면 차를 세우고 사람을 태웠다.
가장 극적이었던 장면은,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나는데 손님 중 하나가 갑자기 뭐라고 외치니까 차가 섰다. 나는 그 사람이 거기서 내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내리고도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다. 1분쯤 지나서 내렸던 사람이 다시 탔는데, 그의 손에는 조그만 봉지가 들려 있었다. 주위사람들이 뭐라고 한 마디씩(태국어라 알아들을 수가 없었음)하더니, 이윽고 운전사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승차한 그들의 손에는 똑같은 봉지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내가 목격한 정황을 근거로 추리를 해본 이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승객 중 한 명이 마침 지나던 마을에 맛있는 과자를 파는 집이 생각나서 그것을 사기 위해서 버스를 세웠다. 그러자 운전사를 비롯한 승객 몇 사람이 덩달아 내려서 그 과자를 산 것이다!
암튼 이런저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남기면서 버스는 4시간여 만에 끄라비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썽태우를 타고 아오낭으로 향했다. 요금은 20밧. 아오낭은 끄라비에서 가장 번화한 해변이다. 나의 최종 목적지인 똔사이 해변은 아오낭에서 다시 보트를 타고 가야 했다.
아오낭에서 똔사이 해변까지 보트 운임은 50밧이었다. 생각보다 비쌌다. 똔 사이는 초승달처럼 조그맣게 휘어져 있는 해변이었다. 해변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10분이면 충분할 정도로 작았다. 해변에서 가까운 바다는 얕고 돌이 많아서 수영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해변 양쪽으로 카르스트 지형의 영향으로 인한 석회암 바위들이 절벽을 이루고 있어서 경관이 무척 뛰어났다. 그 절벽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달라붙어서 암벽타기를 하고 있었다.
안다만 내츄럴 리조트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2시간 정도 기다리면 방이 생긴다고 했다. 끄라비에서 방콕 가는 밤비행기를 예약한 사람이 2시간 후에 체크아웃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숙소에 딸려 있는 식당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바나나 쉐이크를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모기가 극성이었다. 양쪽 발목을 집중 공격하고 있는 모기들을 쫓고 있자니, 종업원이 다가와서 무언가를 내밀었다. 바르는 모기약이었다.
태국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손님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알아서 손님이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는 서비스. 사실 이런 서비스는 한국에서도 받아보기 힘든 서비스이다. 게다가 바르는 모기약 같은 것은 서비스 품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거라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나는 안다만 내츄럴 리조트의 분위기가 왠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등을 의자 등받이(이 의자도 참 편했다)에 깊숙이 몸을 붙이고서 식당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까 메뉴를 훑어본 바에 의하면 이 식당은 스페셜 음식이 100밧 내외인, 태국의 어느 여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낭여행자를 상대로 한 보통 수준의 식당이다. 인테리어도 평범한 수준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종업원들이다. 이곳의 종업원들은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약 10초 정도의 뜸을 들인 후에 다가와서 메뉴판을 건넨다. 친절한 미소와 함께. 그리고 약 2~3미터 떨어져서 기다린다. 그러다가 손님이 메뉴를 결정하면, 손님이 부르지 않고 눈만 마주쳐도 재빨리 다가와서 주문을 받아 적는다. 그리고 능숙한 영어로 손님의 주문을 확인한다.
손님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메뉴를 들이밀며(혹은 메뉴도 주지 않고) 주문을 재촉하거나, 아니면 손님이 오는지 신경도 안 쓰다가 큰 소리로 여러 번 불러야 겨우 돌아보는 시늉을 하는 태국의 다른 식당들에 비하면, 안다만 내츄럴 리조트의 식당은 최고급 레스토랑 수준의 서비스를 실천하고 있었다. 나는 어제 독일인 커플이 서로 번갈아 가며 이곳에 대해서 그렇게 극찬을 한 이유를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4 Comments
필리핀 2004.04.27 12:59  
  귀국해서 얼마 후, 파타니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서 경찰관 2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시 무슬림독립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한다. 꼬 묵에서 만났던 그 여자애의 얼굴이 가물가물 떠올랐다...
필리핀 2004.04.28 17:35  
  오늘 뉴스를 보니 파타니에서 무슬림 무장세력이 폭동을 일으켜서 무려 150여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봉숭아는 무사할지 걱정입니다...
uooda 2008.07.31 05:09  
  저런............;;;
할리 2012.05.24 02:25  
하도 오래전 글이라 역사 소설을 읽는 기분도 들고 있습니다.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