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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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말레샤, 인도네샤 여행기-16

필리핀 1 698
1월 3일 맑음
밤새 바다에서 해변으로 바람이 불었다. 선풍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했다. 아침에 해변에 나가보니 바닷물이 숙소 바로 앞까지 밀려 와 있다.
아침으로 스크램블 에그와 과일 샐러드를 먹고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 꼬 묵 리조트로 갔다. 오늘 스노클링 투어를 할 사람은 나와 10대 중반으로 되어 보이는 아들과 딸 하나를 대동한 부부, 그리고 커플 한 쌍, 이렇게 모두 7명이다. 나를 제외하곤 모두 꼬 묵 리조트에 묵고 있는 서양인이다.
긴 꼬리배를 타고 첫 번째 스노클링 포인트로 가니, 관광객을 가득 태운 대형 선박이 여러 척 와 있다. 대부분 서양인 여행객이지만 현지인도 상당수이다. 서양 여행자는 꼬 란타에서 1일 투어로 온 것이라고 한다.
1998년만 해도 꼬 란타는 원시의 신비가 가득한 섬이었다. 그때 나는 꼬 사무이-꼬 란타-꼬 피피, 이렇게 섬들을 순례하고 있었는데, 꼬 란타에서는 하루 만에 탈출하고 말았다. 1km가 넘는 긴 해변에 수영하는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밖에 없고, 해변에서 유일한 바에도 손님이 없어서 너무너무 심심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당시만 해도 꼬 란타는 길에 왕도마뱀이 심심찮게 출현할 정도로 인적이 드물고 원시의 자연을 간직한 섬이었다. 그런 섬이 불과 몇 년 만에 서부 해안 최고의 여행자 섬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동해의 꼬 사무이 못지않은 ‘파티 아일랜드’가 된 것이었다.
태국은 정말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그 변화가 좋은 쪽으로 이루어지면 다행인데, 좋지 않은 쪽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꼬 묵 근처의 섬들만 해도 그렇다. 육지에서 가깝고 아름다운 스노클링 포인트가 많다는 이유로 인해 수많은 여행자들이 방문한다. 수많은 여행자들은 수많은 쓰레기들을 남기고 수많은 산호초들을 파괴한다.
태국의 많은 섬들이 원시의 파라다이스에서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파티 아일랜드로 변하고 있다. 젊은 여행자는 자신의 청춘을 불태울 수 있는 파티 아일랜드를 선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진정한 낙원을 찾아 헤맨다. 이제 태국에서는 더 이상 평화롭고 한적한 섬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꼬 묵 주변 바다의 산호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물고기들은 태국의 다른 아름다운 바다 못지않게 다양했다. 점심식사를 위해서 들른 섬도 좋았다. 방갈로 몇 채만 있는 작은 섬이었는데, 해변이 무척 아름다웠다.
점심을 먹고 에메랄드 동굴을 방문했다. 바다 한 가운데 작은 섬 앞에 배가 멈추었다. 바위 절벽 사이로 동굴 입구가 보인다. 헤엄쳐 들어가면 이내 사방이 깜깜해진다. 사람들은 암흑의 공포에 휩싸여 비명을 지른다. 죽음처럼 진한 암흑을 뚫고 2~3분쯤 헤엄쳐 들어가면 보석의 광채처럼 환한 빛이 쏟아지며 사방이 바위로 둘러싸인 작은 해변에 도착한다.
에메랄드 동굴은 예전에 제비집을 채취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드나들 때 접하게 되는 암흑의 공포와, 그 공포를 지나서 만나는 동굴 안의 신비로운 해변은 이제 꼬 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가 되었다.
일행 중에 독인인 커플이 있었다. 친절하고 유쾌한 커플이었다. 그들과 서툰 영어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일에서도 사오정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고 한다. 20~30대에는 직장을 다니다가 훌쩍 떠나서 몇 년 여행을 다니다 돌아와도 다시 취직하기가 쉽지만, 40대부터는 한번 직장에서 밀려나면 끝이라고 했다.
그들도 몇 년 전부터 어느 한적한 휴양지에서 게스트 하우스나 하면서 느리게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문명의 혜택 때문에 실천할 수가 없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민초들이 점점 마음 편하게 살기 힘들어지는 건 자본주의 사회 공통의 문제인 것 같다.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이제 해변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주홍색 옷감을 잔뜩 펼쳐놓은 것처럼 서녘 하늘이 노을로 물들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짙은 색으로 변해가다가 이내 암흑으로 변해버리는 노을은, 마치 커다란 불새 한 마리가 자신의 몸을 훨훨 불태우면서 한바탕 춤을 추다가 이윽고 재로 변해버리는 광경과도 같다. 세상이 만들어진 이후로 얼마나 많은 불새들이 날마다 서녘하늘에서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저렇게 미치도록 아름다운 춤을 추어댔을까. 

1 Comments
할리 2012.05.24 02:14  
정말 해지는 석양을 너무나 멋지게 표현하시네요.
눈앞에 그 광경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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